[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최현범 목사(65)는 지난 12월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났다. 이 교회에서 19년 10개월간 시무한 최 목사는 2개월만 더 있었다면 교단 헌법에 따라 원로목사가 될 수 있었지만 스스로 사양했다. 특별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원로직도 마다하고 5년 먼저 조기 은퇴한 것이다. 전임 목사가 은퇴 후에 교회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따라, 부산에서 경기도 광명으로 거처까지 옮겼다.

최현범 목사의 행보가 교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뉴스앤조이>는 1월 10일 최 목사를 만나, 조기 은퇴와 원로 추대 거절 이유 등을 자세히 들었다. 아울러 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부산기윤실)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사회참여에도 적극 목소리 내 왔던 최 목사의 목회 여정과 목회관에 대해서도 들어 봤다.

원로 추대를 사양하고 65세 조기 은퇴한 부산중앙교회 최현범 목사를 만났다. 최 목사는 원로목사 제도가 교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이 제도를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원로 추대를 사양하고 65세 조기 은퇴한 부산중앙교회 최현범 목사를 만났다. 최 목사는 원로목사 제도가 교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이 제도를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 두 달 더 시무했다면 교단 헌법상 원로목사가 되실 수 있었는데요. 정년도 아직 5년이나 남으셨는데, 왜 이렇게 빨리 은퇴하신 건가요?

신학대학원 다닐 때 사랑의교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했는데, 부산중앙교회에 부임할 때 옥한흠 목사님 소개로 오게 됐어요. 옥 목사님이 65세에 은퇴하셨잖아요. 옥 목사님 밑에서 부목사 하던 사람들에게는 그게 하나의 유행처럼 됐어요. '옥 목사님이 65세까지 하셨으니 당연히 나도 65세까지만 해야지' 늘 생각해 왔는데요. 저는 정말 조기 은퇴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독일에서 8년 7개월, 여기서 19년 10개월을 목회했어요. 30년 가까이 담임목사 했으면 할 만큼 했죠.(웃음)

원로목사 제도를 지양하고 조기 은퇴해야 한다는 건 평소 지론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원로목사 때문에 갈등을 겪는 교회를 많이 봐 왔어요. 그래서 저는 은퇴하고 난 다음에 교회에 일절 관여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줄곧 부산에서 지내시다가 은퇴 후 경기도 광명으로 이사하셨는데요.

무조건 떠나야 한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신 것 같아요. 이미 독일에서 한 번 경험해 봤어요. 1993년 독일로 유학 간 후 거기서 8년 7개월을 목회했는데, 논문 쓸 때 마지막에 가서는 도저히 목회와 학문을 병행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교회를 사임했어요.

문제는 집이 대학교 바로 옆에 있어서 이사를 못 간 거예요. 사임하고 나서도 교회와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내에게 교인들과 일절 연락하지 말고 만나지도 말자고 얘기했고, 교인들에게도 간곡히 부탁했어요.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몰라요. 한두 달 너무 고생했지만, 나중에 보니까 잘 결정한 것 같더라고요. 한국에서 목회할 때도 그렇게 하자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2022년 12월 고별 설교 중인 최현범 목사. 사진 출처 부산중앙교회 홈페이지
2022년 12월 고별 설교 중인 최현범 목사. 사진 출처 부산중앙교회 홈페이지

- 오래 정든 교회와 도시를 떠나는 게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힘들죠. 부산이 얼마나 따뜻하고 좋은 동네인데요. 여기(광명)는 너무 추워요.(웃음) 독일에서 목회할 때 '목사가 져야 할 십자가가 참 많지만, 가장 큰 십자가는 교회를 떠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지만 교회를 떠나는 게 목사를 위해서나 교회를 위해서나 맞는 방향이에요. 원로목사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교회 일에 관여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새로 오신 목사님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장로가 한 명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면 원로목사를 찾아가서 이야기하겠죠. '목사님 계실 땐 좋았는데, 새로 온 목사가 다 뜯어고쳐서 교인들이 시험 들고 있어요'라고. 원로목사가 한두 마디 거들기라도 하면 장로가 교회 돌아가서 '우리 원로목사님도 내 편이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애당초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의도적으로 시무해 온 교회와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게 교회로서도 좋은 일이에요.

주위에 교회를 성장시킨 좋은 목사님들이 있어요. 그런데 은퇴하고 난 후에 원로가 돼서 자기 손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후임 목사가 제대로 목회하지 못하게 하고…. 그렇게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가장 마음이 아프겠어요. 원로목사예요. 한국교회 문화를 바꿔야 해요. 사역을 마친 목사는 그 교회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말씀하신 대로 원로와 후임 목사의 갈등으로 교회가 시끄러워지는 경우가 있다 보니, 원로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원로목사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만 얘기하면 안 됩니다. 은퇴하는 목사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교회가 충분히 배려해야죠. 그건 마땅히 교회가 해야 할 일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교회가 은퇴 후에도 사례비를 계속 지급하는 방식보다는, 목회할 때 연금을 미리 들어 놓는 방식이 좋다고 봐요. 그게 교회를 위해서도 맞다고 보고요. 앞으로 멀지 않은 미래에 한 교회에서 원로목사 두 분을 모시는 곳도 많이 나올 거예요. 그때 교회의 재정적 여력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교회로서는 굉장히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얘기를 하면 목회자들도 내 말이 맞다고 다 좋아하는데, 문제는 이 얘기를 자기 교회에서 못 하더라고요. 목사들이 항상 고민하는 게 자신의 처우에 관한 문제를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거 말하기가 참 어려워요. 고양이 목에 방울 매는 것과 같다고나 해야 할까요?

- 교회에서 책정한 전별금보다 낮게 받고, 세금 신고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전별금을 전혀 못 받고 은퇴하는 목사님들도 많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미안하기도 해요.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은퇴할 때 되니 당회가 전별금을 책정해 주셨어요. 제가 볼 때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좀 줄여서 받았어요. 그래도 그런 사랑에는 무조건 감사하죠.

저도 내야 할 세금이 적지 않더라고요. 그렇지만 납세하는 게 당연하죠. 목사에게 주는 돈을 월급이 아니라 사례금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생활비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죠. 독일에 있을 때는 국가에 소속된 국가교회뿐 아니라 소속되지 않은 자유교회 목회자들도 다 세금 냈어요.

우리 교회는 한국에서 종교인 과세가 시행되기 전부터 세금을 냈는데요. 이 제도가 시행될 때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막상 시행하고 나니까 지금은 아무도 반대하는 분이 없죠.

누군가 가야 할 길을 제가 조금 더 일찍 가는 것뿐이지, 10~20년 후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속한 건 아니지만 세상 속에서 공동체를 함께 세워 가야 할 책임이 있고, 종교 기관으로서 세상의 법도 따르는 게 필요하니까요.

부산중앙교회 교인들은 지역 환경 현안인 탈원전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경각심을 가진 교인들은 고리1호기 폐쇄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 사진 출처 부산중앙교회 홈페이지
부산중앙교회 교인들은 지역 환경 현안인 탈원전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경각심을 가진 교인들은 고리1호기 폐쇄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왔다. 사진 출처 부산중앙교회 홈페이지

- 부산기윤실 공동대표 등을 지내시면서 교회가 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데 앞장서 오셨는데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1976년 학부에 입학했는데, 유신헌법이 제정되고 휴교령을 밥 먹듯 할 때였죠. 그때는 데모라는 걸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할 일은 전도하고, 영혼 구원하고, 교회 세우는 것이라는, 아주 이원론적인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목사가 되기 위해 1987년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어요. 6월 민주 항쟁 할 때잖아요. 전 시민이 다 함께 데모를 하더라고요. 신대원 학생들도 데모를 하는 거예요. 신대원에 다니면서 사랑의교회 부교역자로 일했는데, 교회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고요.

그걸 보면서 내가 추구해 온 신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직선제 개헌 같은 게 맞는 방향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나중에 담임목사가 되면 내가 교회와 국가의 관계 문제를 소화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런 의문을 풀고 싶은 생각에서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독일에서 조직신학과 기독교윤리를 공부했는데, 주제는 바르멘 선언이었어요. 나치에 협력하던 독일 교회들에 맞서, 고백교회 목회자·신학자들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정립한 선언이죠. 그 여섯 조항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 교회와 사회의 윤리 강령처럼 됐어요. 그것을 공부하면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목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산중앙교회 부임 이후에 한 게 '1% 사마리아인 운동'이었어요. 우리가 가진 시간과 물질의 1%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하자고 했더니 교인들이 호응해 주더라고요. 그때까지는 우물 안에 머물러 있는 교회였는데, 우리 주위의 이웃을 바라보고 섬기는 교회로 변해 갔죠.

교회에서 '사회 선교 아카데미'라는 활동도 시작했어요. 보수 교단에서는 이 사회 선교라는 말에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보통 사회 선교라고 하면면 도시산업선교회같이 진보적인 교회들에서 했던 이미지를 떠올리나 봐요. 하지만 해외 선교, 국내 선교처럼 우리 사회를 선교한다는 뜻이잖아요. 한 달에 한 번씩 사회 내 여러 이슈, 이를테면 다문화·장애·토지·정치 문제 등의 전문가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했죠.

불평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저를 신뢰하고 따라와 줬어요. 부산기윤실이나 YWCA 활동을 하면서 다른 교회도 많이 도왔고, 무엇보다 설교 속에서 "정치 영역은 믿음의 영역과 분리된 게 아니다. 정치라는 영역도 우리 믿음 안에 들어와야 한다. 이게 칼빈주의고 개혁주의다"라고 얘기했던 것을 교인들이 잘 이해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 사회 이슈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고, 싸움 나기 좋은 주제이지 않나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절대로 현실 정치를 강단에서 거론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일단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요. 저도 확실히 모르는 얘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주로 나치 시대에 독일에서 일어난 정치와 종교 사이의 갈등, 또 우리나라 군사정권 시절 교회가 잘못했던 것들을 이야기했고, 교인들도 현실을 객관화하면서 잘 들어 줬던 것 같아요.

- 고리1호기 원전 조기 폐쇄 등 탈원전 운동에도 적극 나서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저도 관심을 크게 갖지 못했어요. 그런데 그 사고가 나고 보니, 우리 지역에 있는 원전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어요. 원전 수명이 20년이고 한 차례 10년 연장했던 게 끝나 갈 시점이었거든요. 후쿠시마 사고를 보니 고리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죠.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지역사회, 지역 정치권 여야 할 것 없이 다 고리1호기 폐쇄에 목소리를 냈어요. 그래서 교인들과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요. 사용 후 연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식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요. 지역사회가 공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교인들이 잘 따라와 줬다고 생각해요. 몇몇 교인은 고리 원전 견학도 가고, 서명운동도 자발적으로 했어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친문'이라는 오해도 받았어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적극 추진했으니까요. 그런데 나는 그런 정치 논리와 아무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활동해 왔던 거고요.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로 바꿔 가는 게 추세이니까 그렇게 가자고 말했던 거예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최현범 목사는 영혼 구원과 사회참여는 다른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부산중앙교회 홈페이지
최현범 목사는 영혼 구원과 사회참여는 다른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부산중앙교회 홈페이지

- 영혼 구원과 사회참여, 어떻게 보면 한국교회에서 이 둘은 쉽게 조화하기 어려워 보이는데요. 보통 영혼 구원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교회들은 사회참여에 소극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그러한데요.

이 주제가 나오면 저는 꼭 타이타닉호 비유를 듭니다. 어떤 교인들은 세상을 가라앉는 타이타닉처럼 생각하는 거 같아요. 어차피 이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곳이고, 가라앉는 배에서는 죽을 테니까 여기 있는 사람 몇 명의 영혼이라도 구원해야 한다고밖에 생각하지 않는 거죠. 배를 고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전도와 선교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올 인'을 해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침몰하는 타이타닉이 아니라고 말해요. 나쁜 선장을 몰아내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선장이 되셨으니, 그걸 승객들에게 널리 알리면서 좋은 배가 되게 만드는 게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라고 말하죠. 다만 배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젠가 궁극적으로는 소망의 항구에 도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자는 거고요.

- 30년 목회 여정을 뒤로 하고 은퇴하셨는데요.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으신가요?

앞으로는 교회의 공공성에 대한 활동과 연구를 좀 더 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과 구별된 곳이라고 말해도, 이제는 교회의 모든 움직임이 다 공론화되는 시대예요. 교회가 사회 속에서 공공성을 갖느냐 아니냐에 따라 빛과 소금이 될 수도 있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거든요.

예수님의 사람은 단순히 교회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교회는 거기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가르쳐야 하는 거고요. 여기까지 생각하면, 왜 영혼 구원과 사회 선교가 나눠지느냐는 거죠. 우리의 복음이라는 게 영혼 구원, 이신칭의 그것만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운동이잖아요. 하나님나라 운동은 교회와 가정 직장을 넘어 국가에도 적용되는 거고요.

교회가 잘 세워지는 것도 하나님나라의 큰 확장이지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하나님나라의 원리대로 변해 가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바르멘 선언에 대해서도 책을 쓰고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지 찾아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통전적인 신앙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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