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모두가 잠자는 시간. 한 남성이 어둑어둑한 거리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다. 걸음을 멈춘 곳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ㅅㅇㅇㄷ교회 앞. 남자는 이 아무개 씨로, 이 교회에서 관리집사를 맡고 있다. 이 집사는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교회의 문을 열었다. 곧 있을 새벽 기도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이 집사는 매일 새벽 기도회가 시작하기 한 시간 반 전에 출근한다. 그렇게 25년을 보냈다. "평일에는 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근무해요. 주일과 수요일은 저녁 10시까지 있고요. 월요일에는 오전 8시까지만 있다가 갑니다."

중간에 밥 먹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교회에 있는 시간이 상당하다. 이 집사는 근무 시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교회 청소부터 예배당·사택·학사관 등 시설물 관리, 주차 업무 등 두세 사람의 몫을 맡고 있다.

"그래도 저는 나은 편이에요." 한 주에 꽤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할애하는 것만 봐도 과잉 노동, 노동 착취 아니냐고 따질 법도 한데, 이 집사의 반응은 예상과 정반대였다. 이 집사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이 집사는, "우리 교회는 직원들의 형편을 많이 배려해 주는 편이에요. 오히려 지난 25년 동안 받은 은혜가 더 많습니다"고 했다.

▲ 관리집사는 보통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교회를 지킨다. 업무도 다양하다. 보통은 경비를 서지만, 청소부터 시설물 관리까지 두세 사람의 몫을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회에 받은 은혜가 커요"

이 집사는 지금까지 담임목사나 장로들에게 하대를 받거나 싫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교회 관리집사들 얘기를 들으면 속상할 때가 많아요. 교회 분들이 '이 씨', '김 씨'라고 부르며 일을 부린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우리 교회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제가 일을 특별히 잘해서도 아니에요. 오히려 담임목사님과 교인들이 저의 부족한 모습을 참고 기다려 주는 편이에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부목사가 담임목사의 컵을 닦으라고 해, 이 집사가 그건 관리집사의 일이 아니라며 화를 냈다. 부목사는 자신이 경솔했다고 사과했지만, 이 집사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이 담임목사의 귀에 들어갔다. 이 집사는 꾸중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담임목사는 잠잠했다. 나중에 이 집사는 담임목사에게 "나는 그동안 이 집사와 한 번도 부딪친 적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부목사가 잘못했다고 생각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잘 보이려고 열심히 일했어요. 그러자 담임목사님이 지나가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이 집사, 관리집사 일은 마라톤이야. 쉬엄쉬엄해요.' 이런 신뢰와 사랑을 받았는데 어떻게 일을 열심히 안 할 수 있겠어요?" 이 집사는 그 당시 담임목사의 따뜻한 말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있었다.

부당 해고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만난 이 집사의 이야기는 기자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이 집사는 말 그대로 담임목사와 친밀해 보였다. 10년 동안 아침마다 같이 배드민턴을 치고, 목욕탕도 가고,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이것은 모 교회 부당 해고 사례에서 본 담임목사와 교회 직원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뉴스앤조이>는 앞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부당 해고 사례를 보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들을 근로기준법에서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봤다(관련 기사: [기획1] 그들은 왜 교회에서 해고당한 걸까 / [기획2] 교회 내 해고, 근로기준법은 뭐라고 할까).

기사를 본 독자들은 댓글로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남겼다.

"3인 가족의 생계도 책임지기 어려운 사례비를 주면서 해고해 놓고 미안하다는 말은 뭡니까. 사역자들은 이런 불합리한 일을 당해도, 교단에 소문나면 갈 곳 없어지니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삼킵니다."

"담임목사들은 사택에, 사택 보조비, 기름값 등 교회에서 주는 혜택이 많습니다. 그러나 부교역자, 특히 전도사들은 그런 거 없습니다. 담임목사가 받는 혜택의 반이라도 부교역자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사임시키려면, 큰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다면, 다음 사역지를 구할 때까지는 기다려 줘야죠."

부당 해고는 교역자나 교회 직원에 대한 교회의 인식을 보여 주는 사례다. 독자들의 반응을 보고, 이 집사의 사례가 다른 교회에 좋은 참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이 집사가 근무하는 ㅅㅇㅇㄷ교회가 교역자와 교회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취재했다. 그리고 비슷한 사례들은 또 없는지 더 찾아봤다.

교역자와 직원의 삶을 책임지는 교회들

ㅅㅇㅇㄷ교회 담임목사 정 아무개 목사는 교회가 교역자를 함부로 내친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교역자 같은 경우에는, 교단에서 부교역자 임기를 1년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부교역자들의 연차도 평균 6·7년이다.

교회는 부교역자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학을 원하는 교역자에게는 학비를 지원하고, 다른 곳으로 사역지를 옮기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임지를 알아봐 주었다.

경기도 분당에 ㅇㅎㅅㅁ교회도 교역자와 교회 직원을 해임한 경우가 없다. 교역자를 임용·해임하려면 당회의 결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담임목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구조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ㄷㄹ교회 담임목사 오 아무개 목사도 교역자를 해고한 경우가 없다고 했다.

오 목사는 "해고를 안 하는 게 꼭 옳은 것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어 교역자나 직원을 해임하려면, 적어도 1년 정도 사역지를 구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했다.

ㄷㄹ교회는 직원의 생계를 걱정해 오히려 정년을 연장한 적도 있다. 관리집사의 정년은 60세다. 그런데 관리집사가 정년이 되던 해, 교회는 관리집사의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관리집사가 세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느라, 노후 대비를 못 한 것이다. 교회는 관리집사의 정년을 본인이 그만둔다고 할 때까지 연장하기로 결의했다.

▲ 교회가 교역자와 교회 직원들의 삶에 대해 관심과 책임을 갖는다면, 부당 해고는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사진은 영등포의 ㄷㄹ교회. ⓒ뉴스앤조이 박요셉

위 세 교회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나 직원에 대한 대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봉급이다. 담임목사나 부교역자나 교회 직원이나, 풀타임 근무자라면 모두 비슷한 수준의 봉급을 받는다. 기본급은 연차에 상관없이 크게 차이가 없다. 가족 수당과 학자금 지원 등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 지급한다. 이론상, 부양가족이 많으면 직원이 부교역자나 담임목사보다 더 받을 수 있다.

교회가 이렇게까지 부교역자와 교회 직원을 대우하는 이유는 뭘까. ㅇㅎㅅㅁ교회는 교역자나 직원이 교회가 주는 봉급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했다. ㅅㅇㅇㄷ교회 정 목사도 이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ㅇㅎㅅㅁ교회는 6개월 전 교회를 건축한 뒤, 용역 업체를 구할 때도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업체를 선정했다. 파견 근로자들의 인건비가 제대로 책정됐는지, 복리 후생 제도가 갖춰졌는지 등을 검토한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용역 업체 중 가장 단가가 높은 업체를 선정했다. 교회는 업체가 근로자들을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단서 조항도 두었다고 했다.

부당 해고 문제는 갑자기 직장을 잃은 교역자와 직원의 생계 문제와 맞닿아 있다. 교회가 교역자와 직원의 삶에 책임 의식을 갖고, 교회가 주는 봉급으로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관심을 갖는다면, 더 나아가 이 집사의 경우처럼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닌 교제를 맺는 관계라면, 부당 해고는 어림없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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