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문창극 장로 사태를 둘러싼 역사 인식은 비단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개신교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문제이다. 문창극 씨가 온누리교회에서 행한 강연 동영상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일 합방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우리 민족이 게으르고 문제가 많다'는 것은 문창극 씨 본인의 말이 아니라 윤치호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문창극 씨가 윤치호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서 인용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증명하기 위한 목적에서 방증 자료로 인용한 것인지 여부일 것이다. 나는 강연 전반의 기조를 보았을 때 후자일 가능성이라고 본다.

다른 하나는, 문창극 씨가 말하려고 한 본의는 하나님께서 한일 합방이나 한국전쟁 같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강하게 단련시켜서 오늘의 복된 자리에 이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문창극 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런 역사관이 성경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런 주장들은 얼핏 보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주장이, 그리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상당수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의 생각이 여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문창근 총리 후보, 사회 통합에 부적절

문창극 씨 측에서 자신의 강연 동영상을 악의적으로 발췌, 왜곡한 사람들에 대해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는 정말 자신의 역사 인식에 그토록 자신이 있는 것인가. 또 한 사람의 개신교인으로서 자신의 신앙관에 그토록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단 문창극 씨가 온누리교회에서 행한 강연 내용은 잠깐 옆으로 미뤄 두고라도, '한일 합방이나 한국전쟁 등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윤치호를 앞세운) 주장이 평소 그 자신의 세계관이자 역사관 속에 담긴 진심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이 사건을 둘러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일간지는 문창극 씨가 이 사건 발발 이전에 서울대에서 행했던 한 강의에서 '일본이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나 배상을 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 어느 일간지는 문창극 씨가 서울대에서 행한 마지막 강의에서 '젊은이들이 남에게 의존해서 살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자립하려고 해야 한다, 복지는 남에게 기대서 살려고 하는 못된 태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비록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런 기사들을 볼 때 그가 윤치호의 말을 인용했다고 하는 '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의존적이다'거나 '한일 합방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실은 그 자신의 생각이기도 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지금 상당수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문창극 씨 총리 지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단 그가 우발적 실수에 의해서 한일 합방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발언한 것 때문만이 아니다. 상당수 지식인들과 국민들이 이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즉 문제의 본질은 그가 사회 통합과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절실히 필요한 작금의 우리 상황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언론 기사에 따르면, 그가 고려대에서 행했던 강연에서는 이런 취지의 발언도 했다. "언론은 기득권 편에 서는 것이 맞다", "대중은 무지하고 미련하므로 계도의 대상이다." 또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합리적 보수 논객인 남재희 씨(문창극 씨와 초·중등학교 동문임) 같은 경우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문창극 씨를 가리켜 '뼛속까지 기득권', '피난민의 사고에 물든 자’라는 극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거니와 문제의 본질은 그가 사회 통합에 부적절한 인사라는 점이다.

문창극 씨가 <중앙일보> 대기자 시절에 쓴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글들은 지금 다시 읽어 봐도 도무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문창극 씨가 새 총리로 부적절한 근본적 이유는 그가 단순히 교회에서 강연 중에 실수한 것 하나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일평생을 그 같은 인식 속에서 살아왔기에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의 참담한 마음을 보듬고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면서 사회 통합을 실천하는 총리로서는 전혀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문 장로의 역사 인식에 담긴 신학적 오류

자, 이제 문창극 씨가 했다고 하는, 그리고 대다수 보수 개신교인들이 동일하게 생각하는, 하나님께서 한국 현대사의 비극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을 정금과 같이 연단하셔서 오늘 이 만큼 잘 먹고 잘사는 나라가 되게 하셨다고 하는 역사 인식 속에 담긴 신학적 오류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고난과 시련은 우리 민족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단련시키는 하나님의 뜻이자 방법이다'는 말은 얼핏 보면 성경적인 듯하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가령 요셉, 모세, 다윗 같은 인물들은 고난과 시련의 과정을 통과한 후에 후일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으며, 이스라엘 같은 경우도 바벨론 유수를 통해서 집단적인 정화의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는 더 주의 깊은 생각을 요구받는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먼저 소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문구가 현세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현상에 대해서 평면적으로, 혹은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통치(세계 경영,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상당수의 일들이 하나님의 통치에 불순종하거나 역행하거나 대적하는 사단적인 것들임을 고려한다면, 그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간에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일들을 통해서 또 시련과 고난을 사용하여서 궁극적으로 그 개인 혹은 집단에게 더 큰 유익과 결실을 가져다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하나님은 고난을 허용하시는 분이시지, 고난을 창조하거나 제공하는 분이 아니시다. 모든 불행과 고난의 일차적인 제공자는 악 혹은 악의 전위대인 악인들이다. 이 악의 세력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샬롬의 통치를 뒤흔들면서 이 세상을 혼돈과 공포의 세상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한다. 특별히 정사와 권세라고 불리는 우주적 세력들은 국가적, 지역적, 제도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샬롬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치적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면서 악을 보편화시키려고 시도한다.

이때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이 다 포착할 수 없는 신비 속에서 그런 악의 세력들, 그리고 그 악에 동조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면서 악이 세상에서 활동하도록 일시적으로 허용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순히 악의 활동을 방관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악을 무력화시키시는 분이신데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실행된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악의 희생자들, 즉 악에 의해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한숨과 눈물과 피와 죽음과 함께하시며-약자들의 기도를 들으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악의 희생자들을 격려하시고 도와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악에 저항하여서 결국 악을 몰아내게 하신다.

이 논지를 우리 민족 현대사의 불행한 사건들에 대입해 보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 하나님이 진짜 일제가 우리 민족을 점령하도록 하셨을까? 하나님이 진짜 우리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죽이고 죽게 만드셨을까? 하나님이 그 모든 불행의 원인 제공자이실까? 결코 아니다. 그것은 악의 힘이 저지른 일들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동아시아 국가들과 우리 민족의 배후에 있는 정사와 권세들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단지 그 모든 것을 일시적으로 허용하셨을 뿐이시다.

그럼 그때 우리 민족이 그토록 큰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답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하나님은 일제의 탄압 아래 고통당하던 우리 민족과 함께하셨다. 하나님은 전쟁의 참상에 삶의 모든 희망을 상실당한 수많은 피난민들, 민중들과 함께하셨다. 더 구체적으로 그들의 눈물과 한숨과 아픔과 함께 아파하시고 눈물 흘리시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악에게 일시적으로 허용하셨던 시간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서는 악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자극하시고 격려하시고 동원하셔서 악을 몰아내게 하신다. 그리고 악의 희생자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베푸신다.

한일 합방도 한국전쟁도 군사독재도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위험한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을 악의 조성자로 만든다. 혹은 하나님을 악의 숨은 창시자로 만든다. 둘째, 가해자는 결국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하므로 역사 안에서나 역사 밖에서나 가해자를 처벌하거나 비난할 수 없게 된다. 이로써 실상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금과옥조처럼 믿고 있는 최후 심판 교리에서처럼 처벌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상실한다. 셋째, 역사는 결국 승자들의 이야기가 되며, 이로써 자연스럽게 역사의 과정은 무시되고 오직 결과만이 숭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역사관은 한 사회를 반칙과 편법이 지배하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예민한 주제 중 하나, 곧 하나님께서 분단을 통해서 한반도 전역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으셨다거나, 이승만을 통해서 남한에 기독교를 보존하셨다고 하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더 자세히 말하기가 어렵다. 이 주제는 별도의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섭리하셨든지 간에, 한국전쟁 동안에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던 그리고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물었던 이승만의 죗값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가룟 유다가 하나님의 뜻·섭리 가운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팔았다고 해서 그의 죗값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결과적으론 일제 침탈이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는 교인들께

이렇게 설명을 해도, 반대하는 이들은 역시, 문창극 장로가 말한 우리 민족의 고난과 시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전반적인 논지가 잘못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가령 요셉을 고난의 풀무를 통과하게 하셔서 이집트의 총리가 되게 하셨듯이 우리 민족을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하게 해서 오늘 무역 규모 세계 10위권의 잘사는 나라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 인식에 담긴 '신앙적인 순수함이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거나 반박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신학적이거나 인문학적인 틀'에 관한 것이라면 충분히 반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나 주장은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100보 양보해서 설령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고난과 시련을 사용하셔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개조하시고 또 경제적으로 큰 복을 주신 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해도, 이런 이야기는 역사의 피해자가 말을 할 때 그 말이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말이 되는 이야기이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이나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큰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시간이 더 흘러서 하나님께서 일제 강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에게 복을 주시는 것을 보면서, 이 모든 고난과 시련이 하나님의 뜻이었구나 라고 말을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역사의 가해자들이 혹은 가해자의 역사관을 공유하는 제3자가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것은 후안무치할 뿐더러 잔인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요셉의 경우도, 후일 요셉 본인이 자신의 모든 시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고백하지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형들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여전히 우리나라에 친일파의 후손들이 많게는 일천 만 명 정도가 생존해 있을 것으로 파악한다는 어떤 역사학자들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의 잔혹했던 아픔에 대해서 그것을 신앙적으로 승화시켜서 말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독립운동이나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분들 혹은 그분들의 후손들이지, 친일 행위를 했거나 혹은 식민지 근대사관을 가진 분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선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모든 부조리하고 모순된 일들을 합력해서 선으로 만드시는 분이심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 민족의 현대사의 큰 고난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또 바로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들과 별개로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이다.

나는 역사학도가 아니어서 아주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내가 단편적으로나마 공부했던 자료에 따르면 저 멀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그리고 가까이는 한일 합방과 한국전쟁 당시, 차마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가 지도자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매국노들과 모략배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엄청난 오판과 직무 유기와 음모와 배신들이 있었다.

흔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혹시 그 당시 국가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그리고 기득권자들이 그런 식으로 판단하고 움직이지 않고 달리 생각하고 대처했더라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분노 속에서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배우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우리 민족을 향한 당신의 뜻을 이루셨다고 해도 또 앞으로 이루어 가실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역사 공부를 통해서 과거의 지도자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를 정확하고 냉철히 짚어 내야 하고, 또 오늘의 지도자들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잘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기왕이면 같은 실수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굳이 예를 들자면, 현대 독일이 과거 나치즘 시대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들이 자신들의 역사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민족도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한일 합방이나 한국전쟁 당시 어떤 잘못들이 있었는지를 올바른 역사 인식과 연구를 통해서 깨닫고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지, 그 모든 과거의 흑 역사를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긍정하거나 묵과하거나 승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셋째,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정말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거룩한 말씀으로 믿는다면, 성경의 역사-이스라엘의 역사-는 이른바 구속사라고 해서 매우 특별하고 특수한 역사적 기록임을 기억하자. 따라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성경의 역사나 교훈을 곧바로 우리 현실에 대입하거나 혹은 양자를 같은 선상에 놓고 융합시키려고 하는 일이다. 최근 한국 개신교 일각에서 '알이랑 민족' 운운하면서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런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한국 개신교 안에 우리 민족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정서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신학적으로 비판의 소지가 다분하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와 열방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공평하게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각 나라와 민족마다 다 고유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 따라서 하나님을 마치 우리 민족(만)의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거나 우리 역사를 그렇게 해석하거나, 또 이를 위해서 성경을 그런 눈으로 봐서는 안 된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의 틀 안에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특별한 방식으로 대하셨어도 신약에서는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우선권마저 폐지하셨다.

나는 문창극 장로로 대표 되는 작금의 한국 개신교 보수 신자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심정적으로 이해를 하는 편이다. 이런 생각과 정서들이 개신교 안에 널리 퍼져 있는 이유는, 긍정적으로 본다면 한국 개신교인들의 뜨거운 신앙적 에토스 때문이고, 부정적으로는 그동안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아볼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일반 신자들의 경우는 교회에서 듣는 설교들 대부분이 늘 그런 식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그 밖의 다른 생각을 잘 못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이 시점에 내가 정중히 제안한다. 혹 한국 현대사의 역경과 시련이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믿고 있는 이들도, 그런 생각을 말로 표현할 때는 한일 합방이나 한국전쟁 등이 다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하지 말고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비록 우리 민족이 여러 부족한 점도 있고 약점도 있어서 현대사에서 큰 시련과 고난을 많이 당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그 모든 시련과 역경을 이겨낼 수도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결국 우리 민족이 지금은 식민지의 참상과 전쟁의 비극을 다 이겨 내고 오늘 이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부디 한국 보수 개신교인들이 자기도 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역사의 가해자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말하기보다는, 역사의 아골 골짜기에서 우리 민족의 아픔과 눈물 속에 동행하신 하나님의 손길과 발걸음에 대해서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김요한 / 목사·새물결플러스 출판사 대표

*이 글은, 김요한 목사의 페이스북에 실린 두 개의 글을 허락하에 하나로 엮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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