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장합동이 12년 만에 선거제도를 변경하기로 했다. 제비뽑기에 직선제 요소를 가미한 방식인 새로운 선거제도는 내년 98회기부터 적용된다. 절충안을 헌의했던 전서노회 김기철 목사는 선거운동은 장려하되 금권 선거를 철저히 막는 후속조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대구에서 있었던 제97회 총회는 그동안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를 중심으로 진행하던 탐라대학 인수 작업을 공정한 토론을 통해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 밖에도 아이티구제헌금특별조사위원회와 찬송가공회조사위원회, GMS특별조사위원회 등에 대한 조사와 감사 결과를 보고받고,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는 재조사를 실시하고, 그래도 안 되면 사법고소를 통해서라도 부정 의혹을 일소하고 깨끗한 교단으로 설 수 있도록 결정하는 등 오랫동안 문제가 되었던 사안들에 대하여 개혁적인 결의를 이끌어 낸 총회였다.

아직 총회 마지막 날인 21일, 총회장의 전격적인 파회 선언으로 비상대책위원회와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그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도 필자는 이번 총회에서 결의된 선거제도 개혁의 제안자로서 그 후속 작업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을 앞으로 구성될 5인 위원회가 참고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제비뽑기, 인물보다 금권 선거 방지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그 공동체에 속한 인재군 가운데 최적의 인물을 뽑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제비뽑기는 최적의 인물을 뽑는데 필요한 제도라기보다 금권 선거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필자도 우리 총회가 어떤 선거제도를 채택해도 총회 산하 모든 선거에서 금권 타락 선거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 몇 번의 총회에서 선거제도 논의 과정을 통해 자유 경선 시절 모든 총대가 금권 타락 선거의 동조자인 것처럼 여기는 발언을 들을 때, 너무 안타깝고 자괴감까지 안겨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소위 돈 봉투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는 깨끗한 총대도 상당수 있을 텐데 모든 총대가 금품을 수수한 것처럼 매도되는 것 같은 발언은 듣기에 거북스런 일이었다.

총신대학원의 정훈택 교수는 '제비뽑기의 규범성'이라는 글에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총회장 선출에 제비뽑기 방식을 동원했다면 그것은 제비뽑기가 거룩한 하나님의 방식이어서가 아니라 교회에 침입한 부패 선거를 피하기 위해 편법을 쓰는 것일 뿐"이며, "편법은 항상 또 다른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투표할 권리 박탈

무릇 지도자라면 자신의 공동체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한데 제비뽑기는 비전 제시가 어렵다. 또한 이 제도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기적 측면에서 볼 때 총회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후보자 입장에서도 당선을 위한 기도는 하겠지만 구체적인 공약을 제시할 필요는 절실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교단 발전을 위하여 별다른 비전을 제시하지 않아도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괜히 당선 후에 발목 잡히는 일이 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비뽑기의 가장 큰 맹점은 후보 본인조차 자신에게 투표할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제비뽑기는 본인의 의사와 달리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투표 결과 동수가 되자 선관위원 중에서 투표 하지 않은 사람이 뒤늦게 투표하는 상식 밖의 촌극이 빚어진 일도 있었다.

사실상 한 표만 더 얻었다면 당선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그 한 표가 없어 낙선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그토록 소중한 한 표를 던질 수 없는 모순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제비뽑기와 직접선거로 당선자 가려

▲ 제비뽑기는 본인의 의사와 달리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는 상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투표 결과 동수가 되자 선관위원 중에서 투표 하지 않은 사람이 뒤늦게 투표하는 상식 밖의 촌극이 빚어진 일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그렇다면 현행보다 더 나은 후보를 뽑을 수 있는 진일보한 제도는 없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금권 선거를 원천 배제할 수 있는 철저한 대책과 함께 공명선거에 대한 보완책을 강구한다면 직접선거가 가능하다고 보지만, 아직 시기상조라고 보고 한시적으로 제비뽑기와 직접선거를 혼용한 제도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째, 기본적인 자격을 갖춘 후보들이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문호를 대폭 열어 준다.

후보 연령을 현행 60세가 다소 높은 점을 감안하여 조금 낮추고, 오랜 세월 총회 기관에서 봉사한 준비된 인사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참신한 인물이 두루 진입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어야 한다. 지난 7월 미국 장로교회는 35살의 젊은 총회장을 배출하여 화제가 된 바 있다. 현재 대통령에 입후보할 수 있는 나이가 40살이고, 지난 정부 시절 40대 후반의 장관도 있었으며, 50대 초반의 대학 총장도 훌륭하게 대학을 이끌어 가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앞장서야 할 경우, 60대 후반의 나이에 총회장을 지내고 연합 기관의 대표회장 같은 한국교회 전체를 섬길 수 있는 자리에 나가는 것은 너무 늦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미 지켜보았다.

둘째, 총회 발전 기금을 대폭 낮추어야 한다.

필자는 원래 발전 기금을 완전히 없애거나 후보 본인이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금액으로 대폭 낮추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발전 기금을 내는 일은 불가피하다는 여러 사람의 주장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이번 헌의안을 낼 때 부총회장 3000만 원 이하, 임원 후보 1000만 원 정도를 제시한 것이다. 목사 후보의 경우 개인이 발전기금을 내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총회장으로 봉사하기 위해 9000만 원에 육박하는 거금을 2년 연속 내는 것은 본인은 물론 시무 교회에도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총회장을 배출하는 교회는 발전 기금 외에도 총회를 치르는 과정에서 거액의 예산을 쓰는 것이 현실이다. 단독 출마라고 해도 선물과 식사비 등 과도한 비용 지출이 따르는데 그 결과 크고 작은 후유증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다른 교단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거액의 총회 발전 기금은 무보수 명예직인 총회장과 임원들, 그리고 시무하는 교회에 너무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고, 역량 있는 인사 중에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출마를 망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셋째, 총회 현장에서 복수의 후보를 제비뽑기를 통해 경선 후보로 선출한다.

인원은 담합 가능성을 배제하고 자유 경선이 보장되도록 2~3명 정도 뽑는 것이 좋고, 경선 후보를 뽑을 때는 총대들 전체가 하는 제비뽑기가 아니라 현재의 상비부장 선거처럼 후보들이 직접 제비를 뽑도록 하면 빠른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넷째, 10분 정도의 정견 발표 후에 직접투표를 통해 두 명의 부총회장을 선출한다.

노골적인 자기 자랑을 할 수 없는 교회 선거의 특성을 감안하여 후보자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분이 찬조 연설을 한다면 후보를 선택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정견 발표가 진행되는 바로 그 시간에 투표용지를 인쇄한다면 선거를 원활하게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전자 투표를 도입한다면 시간과 비용 절감 등 여러 면에서 좋을 것이다. 기호만 표기된 투표용지를 인쇄해 두었다가 총회 현장에서 기호만 추첨한다면 빠른 진행이 가능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후보자들이 후보 단일화나 임원 자리를 놓고 금권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회합을 금지시켜야 하고, 후보 사퇴도 받아주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총회장단이 임원 후보를 추천해서 본회의에서 인준을 받는다.

그렇게 하면 총회장의 권위도 살고 팀워크도 살릴 수 있어 회기 동안 효율적인 업무 수행이 가능할 것이다. 이때 임원 후보를 추천할 때는 지역, 기수, 연령 등을 감안하는 것이 좋겠고, 출석 총대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다시 추천하여 반드시 과반수 득표를 요구한다면, 함량 미달의 후보를 추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 총회는 부임원에 대하여 하자가 없는 한 정임원으로 그대로 받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단독 후보라도 신임투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른 교단은 총회장의 경우 3분의 2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 교단도 있다.

깨끗한 선거 위한 대책 마련할 수 있어

새 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접선거에 준하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거운동을 위한 말은 풀고, 돈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전화나 문자, 이메일을 통한 선거운동은 일정 범위 안에서 허용하고, 매표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공직선거법의 내용을 원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지난 몇 달 간 기독교윤리운동실천본부의 주선으로 각 교단 총회 임원 선거의 공정화 방안에 대하여 연구하고 토론하는 기회가 있었다. 각 교단의 목회자와 교수, 그리고 교계 사정에 밝은 변호사가 한 팀이 되어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 △선거운동 규제 위반 시의 조치 △선거법 위반자에 대한 재판 △당선 무효 및 당선 무효시의 대책 △피선거권 제한 △금품 등을 받은 사람에 대한 제재 방안 등을 놓고 깊이 있는 토론과 검토가 있었다.

어떤 제도를 선택해도 금권 선거에 대한 우려를 완벽하게 막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새 제도의 성패는 깨끗한 선거에 대한 총대들의 의지가 어느 정도 강한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접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주요 교단 가운데 금권 선거 우려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공명선거를 정착시킨 중형 교단이 있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금품 수수자는 모두 성직을 면직하고 형사 고발까지 한다면 금권 선거 근절에 분명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직까지 내려놓는 것을 각오하고 무모한 시도를 감행하거나 몇 푼의 돈을 받고 불명예 퇴진을 선택할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사회법정에 고발하자는 필자의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금권 타락 선거를 철저히 추방하자는데 그 초점이 있을 뿐이다. 그런 다음 공직선거법을 준용하여 주고받은 돈의 20배(공직선거법은 50배) 정도의 벌과금을 부과한다면 금권 선거를 시도하는 일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을 것이다.

새 제도 정착 위해 지혜 모아야

지난 총회가 새 제도 채택을 결정하긴 했지만 필자가 점검한 바로는 선거관리운영규정 등 세칙을 마련하고 준비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대선이나 총선 등 공직 선거는 나날이 공명선거 분위기가 성숙해 가고 있다. 사실 교회 지도자를 뽑을 때는 세속적인 지도자를 뽑는 일보다 더 깨끗하고 성숙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를 선출하면서 금권 선거를 한다면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고,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새 제도가 진일보한 제도라고 믿고 있지만 완벽한 제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보다 많은 분들의 지혜를 모아 제대로 준비하여 성공적으로 시행한다면 우리 교단의 역량을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는다.

김기철 / 정읍성광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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