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오죽하면 우리의 선택권을 빼앗아 가셨겠는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이 직선제를 포기하고 제비뽑기를 선택한 것을 두고 한 총대는 이렇게 자조했다. 매년 돈 봉투가 살포되는 교단 현실을 염려하던 총대들은 2000년 제85회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비뽑기를 결의했다. 고 옥한흠 목사를 필두로 금권 선거로 얼룩진 현실을 개탄하던 교단 내 갱신 그룹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교갱협·김경원 대표회장)'는 "이는 예장합동 교단이 하나님 앞에 전향적으로 회개하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 예장합동이 제비뽑기를 시행한 2001년 86회 총회부터 금권 선거에 대한 우려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곧 자질이 떨어지는 후보가 임원이 되는 경우가 생겼고, 교단 지도력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직선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진은 95회 총회에서 제비뽑기 후 구슬을 계수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제비뽑기 제도를 시행한 86회 총회부터 금권 선거에 대한 우려는 크게 잦아들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잠재해 있던 문제점이 드러났다. 최소한의 자격 요건만을 통과한 인물이 임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자질이 떨어지는 후보가 임원회 곳곳에 자리를 차지했고, 직선제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여론도 서서히 형성됐다. 금권 선거 근절이 절실했던 이들은 제비뽑기가 완전한 제도가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다. 호주머니가 돈 봉투로 두둑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던 그룹들은 이를 틈타 직선제로 돌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회 때마다 직선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과 제비뽑기를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선거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교갱협은 고심했다. 김경원 대표회장은 "총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금권 선거다. 허나 지도력을 세우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자질이 미달되는 후보가 임원에 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고 진단했다. 금권 선거 방지와 교단 지도력을 세우는 것을 동시에 만족하기 위해 머리를 싸맨 교갱협은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하는 제비뽑기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3개 지역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30%의 선거인단을 제비로 뽑고, 이들이 직접 투표하는 방식이 골자였다.

제비뽑기를 시행한 지 10년 만인 2010년 95회 총회에서 등장한 제비뽑기 개정안은 8부 능선을 넘었지만 곧 주저앉았다. 총회 넷째 날 정치부에서 통과됐지만, 마지막 날 규칙부에서 부결된 것이다. 엎치락뒤치락하며 하루 만에 번복된 해프닝은 총대들이 아직 금권 선거 방지와 교단 지도력 세우는 것,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자신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96회 총회에서도 개정안과 직선제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총대들은 여전히 제비뽑기를 고수했다.

이번 97회 총회 역시 선거제도 개정에 대한 헌의가 올라왔다. 전서노회는 총회 선거제도의 개선책으로 선거인단 제도를 도입하는 안을, 경상노회는 선거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위원회를 설치해 달라고 헌의했다. 교갱협 김찬곤 총무는 "어떤 선거법을 세운다 할지라도 인간의 생각이 들어가다 보니 문제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고 했다.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는 언제든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를 수 있는 사안이다. 언제쯤 예장합동이 스스로 반납했던 선택권을 찾아올 만큼 성숙할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제비 뽑고 투표하러 나간다

95회 총회를 한 달 앞둔 2010년 8월 말, 규칙부 공청회에서 교갱협은 제비뽑기 개정안을 들고 나왔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부총회장 선거 시 전체 총대를 3개 지역(영남, 중부·호남, 서울·서북)으로 나누어 지역별로 30%의 선거인단을 제비로 뽑는다. 뽑힌 선거인단은 선거 현장에서 바로 직접 선거를 실시하도록 한다. 누가 선거인단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전 선거 운동과 금권 선거를 막을 수 있고, 직선제 요소를 가미했음으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을 직접 뽑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후보자의 지역 안배를 고려하는 '3지역 구도'는 폐지하여 좋은 인물이 언제든지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서기·회계 등 기타 임원 선출은 3개 지역별로 안배하여 총회장과 부총회장이 지명하고 총회 현장에서 동의를 받는 '팀 러닝메이트' 제도를 도입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직선제 요소가 추가됐기 때문에 암중비약할 수 있는 금권 선거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돈을 뿌린 후보에게 공직 선거법과 같이 50여 배의 벌금을 내게 하고, 모든 공직(노회, 총회)에서 피선거권을 영구 박탈하도록 한다. 금권에 대한 불안으로 정 안심이 안 될 경우에는 국가 선거관리위원회가 총회 선거를 관장하도록 위탁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밖에 다른 개정안으로는 맛디아식 제비뽑기가 있다. 이 방식은 95회 총회 박광재 규칙부장이 제기한 것으로, 사도행전 1장에서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제비로 맛디아를 뽑은 것과 유사하다. 전체 총대가 1차로 직접 투표를 하여 2명을 선출한 뒤, 2차로 2명의 입후보자들이 직접 제비를 뽑아 당선자를 가린다. 이 역시 인물난 해소를 위해 제비뽑기에 직선제 요소를 가미한 방식이다.

이명구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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