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긴급 토론회…"성평등 인식 전환 없이는 성폭력 해결 안 돼"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최근 텔레그램에서 딥페이크 기술을 악용해 친족·친구·지인 등의 얼굴로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유포하는 대화방이 잇따라 발견됐다. 특히 가해자·피해자 대부분이 10대 청소년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8월 27~28일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유치원과 초·중·고 등에서 접수된 관련 신고는 2429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아동·청소년들 사이에서 불법 합성물 제작·유포가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를 '국가 재난 사태'라고 부르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반면 교회 구성원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할 수 있고,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학별로 불법 합성물을 제작·공유한 텔레그램 대화방에는 신학대인 총신대와 성결대 방도 있었지만, 한국교회에서는 별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를 계기로, 교회가 경각심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긴급 토론회가 9월 19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열렸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여성위원회·정의평화위원회와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진행한 토론회에는 현장 15명, 온라인 50명이 자리했다. 이명화 센터장(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최순양 박사(이화여대), 전수연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 최수산나 국장(한국YWCA연합회), 이은재 팀장(기독교반성폭력센터), 이성철 간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번 딥페이크 사태는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겨난 것이지만, 패널들은 과거 'n번방' 등 여성들의 일상을 위협해 온 성폭력과 전혀 다른 형태의 범죄가 아니라고 했다. 성평등한 인식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의 성범죄든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전수연 변호사는 "결국은 남성 중심적인 성 문화와 여성을 도구화하는 여성 혐오적인 성 문화, 즉 기존부터 만연해 온 여성에 대한 성 인식이 새로운 기술과 결합하면서 나타난 무늬만 다른 성범죄"라면서 "법의 한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근본적으로는 성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9월 19일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 대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9월 19일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에 대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이번 사태가 발생하게 된 22가지 전조 현상 중 하나로 '포괄적 성교육과 청소년 성평등 교육을 막던 기독교 혐오 세력'을 꼽기도 했다. 이번 사태가 교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은재 / 당장 한국교회는 교회 내 성폭력도 근절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내 성폭력 예방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올바른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성폭력 교육, 나아가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지만, 한국교회 극우 개신교 세력은 반페미니즘 운동, 포괄적 성교육 반대 운동을 벌여 오고 있다. 공공도서관에 성교육·페미니즘 도서를 폐기하라는 압력을 꾸준히 행사해, 올해 경기도 내 학교 도서관에서 성교육 관련 도서 2528권이 폐기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딥페이크 성범죄와 같은 성 착취를 막기 위해서는 포괄적 성교육,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런 점에서 이런 교육을 막아 온 극우 개신교가 이번 사태에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교회에서는 섹슈얼리티와 관련해 가부장적인 인식을 그대로 수용·학습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 '성품 성교육', '절제 성교육' 등 상당히 퇴행한 교육을 진행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데, 이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최순양 / 교회에서는 성에 대해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교육하면서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성교육이 아니라 인간 주체 모두가 자신의 성이 존중되고 안전하고 동등한 관계성을 통해 서로를 인식하게 하는 성교육을 시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상대방의 신체를 폭력적으로 악용하거나 수단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알게 하고, 아동이나 비인간 존재들과 같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 자신의 행동이 가학적(폭력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명화 / 현재로서는 10대 남학생들이 성에 대한 호기심을 긍정적으로 해소할 방법이 거의 없다. 범죄 아니면 쾌락이라는 이분법적 상황 속에 있다. 이 중간 지대에서 내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인지하게 할 것인지 교육해야 하는데, 어디서도 다루어지지 않다 보니 음란물 포르노를 통해서 접하고 딥페이크나 디지털 성범죄의 경계로 손쉽게 넘어가는 것이다. 나의 호기심, 성적인 나의 주체성을 어떻게 해소하고 발견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최수산나 / 여성이라면 가족·지인 할 것 없이 누구나 '지인 능욕'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성 착취 대상으로 삼는 여성 혐오가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의 실체다. 하지만 한국교회 내에는 여성에 대한 혐오 표현이 만연해 있고, 오히려 리더십에서 이를 전파하고 있다. 교회를 혐오의 장이 아닌 포용과 공감의 언어가 이뤄지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성평등한 사랑의 종교를 회복할 수 있는 설교와 가르침, 교회 문화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 당장 교회에서는 성을 음지화하고, 목회자 성범죄도 쉬쉬하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가 다양한 형태의 성폭력 범죄를 막지 못하는 데 일조한 게 아닌가. 

이성철 / 온라인상의 성폭력과 성매매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일상화하는 경향은 단지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매체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손쉽게 성폭력 범죄에 가담하면서도 죄책감이나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윤리적 근거와 가치가 부재한 현 사회와 교회의 문제다. 교회 내 성 인지 감수성은 뒤처져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위계적 권위에 의해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대부분 고연령층의 특정 성별이 현재 한국교회 내에서 대표성을 가지고 목소리를 독점하는 대의 구조는, 교회를 안전한 공동체로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 이번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는 피해 규모를 추산하기 어렵고, 불법 합성물이 급속도로 확산하기 때문에 '국가 재난 상황'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앞으로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나.

최순양 / 피해자를 보호하고 딥페이크 기술의 악용을 방지하는 규제나 법률적 제재를 만들어 내는 것도 시급하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개개인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빠른 속도로 AI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인공지능 윤리는 사실 인공지능 기술을 만들고 퍼트리고 이용하는 '사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딥페이크 기술을 통한 성 착취 문제가 주로 청소년에 의해 발생한 만큼, 자라나는 세대의 인식을 개선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워 주는 게 필요하다. 인간이 더욱 성숙해지기 어렵고 더 퇴보하고 있다면 이런 부분이야말로 교회가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일반적인 청소년 윤리 교육, 사이버 혹은 인공 지능 기술을 접하는 기독교인의 자세를 운운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범위를 좀 더 좁혀서 접근해야 한다. ‘왜 자라나는 청소년이 다른 존재를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가?'가 핵심이다. 따라서 교회가 앞장서서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의사가 자유롭게 교환되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관계적 성'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 교회가 딥페이크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 있다면. 

이은재 / 디지털 성폭력은 언제, 얼마나 확산할지 모르는 범죄다. 급속도로 퍼지고, 피해자는 한 명이더라도 가해자는 수십 명이 생겨날 수 있다. 따라서 최대한 빠르게 디지털 성폭력을 지원하는 '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에 상담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삭제 지원과 심리 상담, 법률 상담까지 하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이 확산하면서 '불안 피해'라는 게 새롭게 명명됐다. 피해자들은 언제 어디서 나의 불법 촬영물이나 합성물이 돌아다닐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이 자체만으로 큰 피해인 것이다. 불안 피해에 대한 심리 상담 지원을 한국교회가 도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교회에서 앞장서서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식 개선 교육을 하고, 피해자의 편이라는 시그널을 계속 주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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