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성경 본문을 잘못 읽어 버렸네. 청소년부 설교 본문이랑 헷갈렸구만요. 다시 읽을게요. 여러분도 내 나이 되어 봐요.(웃음)"[뉴스앤조이-이용필 대표] 아직 쉰 살도 안 된 전상규 목사(47)가 능청스럽게 말하자, 평균 연령 일흔 살의 '할매'들은 재미난다는 듯 깔깔 웃었다. 잠시 뒤 한 할매가 전 목사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근디, 목사님 동생 계시드만. 육십 넘었단가?" "우리 권사님 뭔 소리 한단가. 나가 아직 오십도 안 찼는디요." 예배당은 다시 한번 할매들 웃음 소리로 가득 찼다. 어르신뿐인 교회라고 해서 다소
[뉴스앤조이-유영 이사] 2011년, "십자가 불 끄니 까치집 또 생겼어요"라는 기사를 보았다. 까치들이 십자가 밑 첨탑에 집을 지었는데, 까치들이 십자가에 연결된 전선을 쪼아대는 바람에 십자가 조명이 나갔다는 내용이었다. 담임목사는 전화 인터뷰에서 "몇 번은 첨탑에 올라가 수리하기도 했지만 '까치들이 왜 전선을 쪼아댈까'를 곰곰이 생각하다 십자가 불빛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십자가 불빛이 너무 밝으니, 까치들도 나름대로 살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십자가 조명을 껐다"고 말했다. 2011년 보도지만, 실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덕천리 하늘은 좁았다. '정선 하늘은 세 평'이라는 옛말처럼,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로 가는 길은 어둡고 험했다. 빼곡한 나무 사이로 난 고갯길을 지나 차 한 대 겨우 다니는 작은 굴을 빠져나가면, 산비탈 도로 너머로 높이 솟은 '뻥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뻥대는 강원도 사투리로 벼랑, 낭떠러지를 뜻한다. 붉은 뻥대가 하늘을 가려 동강 위를 덮었다. 덕천리는 정선에서도 오지 중 오지다. 동강을 끼고 있지만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다. 도로는 물길을 따르지 않아, 고갯길을 넘어야 닿을 수
[뉴스앤조이-이용필 대표] 어머니 목사는 '기도파'였다. 자신의 안위를 위한 기도보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를 올렸다. 기도만 해 주지 않았다. 아픈 이들이 회복할 수 있게 손수 음식을 차려 내주었다. 잘 먹인 다음에는 다시 함께 기도했다.기도를 마친 어느 날, 어머니 신점숙 목사는 교회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전도사 신분이던 23년 전, 천관산(723m)이 보이는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마을 끄트머리에 회복의교회를 세웠다. 개척 당시 2가정이 함께했는데,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동네였다. 회복의교회가 세워졌
"윤석열이 드디어 파면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외쳐 볼까요.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뉴스앤조이-유영 이사] 선입견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우파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서만 '대한민국 만세'를 보아 왔던 터라, 무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회에서 만세삼창을 권유하는 일을 볼 줄 몰랐다. 게다가 목사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설교 제목은 아주 보수적으로 '사랑하라'로 정했다. 설교를 들으며, 나이가 지긋한 교인들 눈치를 살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교인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만세'를 외치고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시간이 지날수록 사역은 확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축소하는 듯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이 차는 걸 기대하는 게 나았을까, 마른 땅에 싹이 트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빨랐을까. 농촌 사역은 시간을 잊게 했다. 시골 교회에서 20년을 보냈다. 매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전도를 하고 주민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하지만 교인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서, 10명이었던 교인은 2명이 됐다.한경인 목사(55)는 2004년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감애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뉴스앤조이-이용필 대표] '섬 속의 섬'으로 불리는 전라남도 완도군 금일읍 소랑도는 목회자들에게 험지 중 험지로 꼽혀 왔다. 육지에서 먼 데다가 가는 방법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배를 두 번 타야만 소랑도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1970년 초 완도읍에서 20km 떨어진 외딴섬 소랑도에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도사·목사 등이 사역 문의를 해 왔다. 자진해서 찾아오긴 했지만 막상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교통 문제를 비롯해 주거 환경, 사례비 등 어느 것 하나 마땅하지 않았다. 사명감으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교회가 문을 닫았다. 1941년,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조선에 거주하던 영미권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했다. 이른바 '외국인의 입국, 체재 및 퇴거에 관한 건'(1939년)이라는 법을 제정해 선교사들을 내쫓았다. 영국국교회를 배경으로 하는 조선성공회 역시 이 법령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영국인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정든 조선 땅을 떠나야 했다. 이로 인해 충남 예산군 대한성공회 예산교회가 폐쇄되고 교회가 운영하던 신명유치원 운영권이 몰수됐다.대한성공회 예산교회는 1917년 김만준 전도사가 전
[뉴스앤조이-유영 이사]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의 인구 감소세는 1965년 이래로 이어지고 있다. 1965년 6만 3200명이던 인구는 현재 2만 6000명 수준까지 줄었다. 2023년 고성군의 출생아 수는 87명에 불과하고,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면 고성군 초등학생 전체 숫자는 500명을 넘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 그만큼 인구 감소 폭이 큰 소멸 위험 지역이다.인구가 줄어들면서 고성군에 있는 교회도 교인이 부족해지고 있다. 지역에 죽는 인구가 태어나는 인구보다 많은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인 탓이다. 가끔 펜
[뉴스앤조이-이용필 대표]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송동면 세전리 일대는 한눈에 담기 어려울 만큼 넓게 드리운 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남쪽으로는 지리산 줄기가 뻗어 있고 그 아래로 섬진강 지류들이 흐른다. 농사짓기에 탁월한 곡창지대에는 자연스럽게 대규모 자연부락이 조성됐다. 과거 한양을 향하던 나그네들이 '여기가 한양이냐'고 물을 만큼 마을 규모가 컸다.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인 위인사(Samuel Dwight Winn, 1880~1954)는 1916년 남원 땅을 밟았다. 위인사는 남원에서 가장 큰 마을을 수소문하던 중 세전리를 알게 됐다
"사람이 없어서 교회 유지가 어려운 상황인데 노회나 교단은 아무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농촌 목회 너무 어려운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뉴스앤조이>가 여력이 된다면 다뤄 달라."[뉴스앤조이-이용필 대표] 휴대폰을 통해 들려오는 전상규 목사(옥매교회)의 음성에는 무력감과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전 목사는 10년간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목회를 해 오고 있다. 교인 대다수가 "할매"들이고, 교회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 전 목사 자신이라고 했다. 마을로 유입되는 젊은 사람은 없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줄고 있다면서 "앞날이 걱정"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