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시절 바라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는 굉장히 커 보였습니다. 진보 기독교 운동 가운데 가장 든든한 언덕으로 인식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오히려 기대나 희망보다는 실망과 우려가 더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이번 부활절 연합 예배를 보수 세력과 함께 명성교회(김하나 목사)에서 드리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몇몇 위원이 사퇴하기도 했고, 안팎으로 반대 성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 장소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보수 세력과 예배하면 안 되냐고, 혹자는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실로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장소나 사람이 아니라, 교회협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일 겁니다.

우리는 당연히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식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구와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식탁으로 인하여 내가 믿고 있던 복음을 버려야 한다면, 그 예배가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독재 정권의 폭력 아래, 민주화 운동 안에서 세워진 것이 교회협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품고 있던 진보의 가치를 버리고 보수 정권, 그리고 보수 기독교와 결탁하는 형식의 화해를 이룬다면 그것은 처음의 가치를 흔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진보적인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제가 졸업 후 기관이나 단체로 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신학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교회보다는 신학교나 학회에서 연구하고 싶기도 했고, 거리에서 해고 노동자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나는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사회 선교지에 머물고 싶기도 했습니다. 변화와 체험이 가득한 현장에 비해서 교회는 안락한 근무지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보수적인 신학이 움직일 생각 없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 혹은 아예 신학 자체가 거부되는 곳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신학대학원 시절에는 교회에서 신학을 써먹을 일 없으니 신학을 공부하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것도 신학 교수들과 신학생들을 모아 둔 채플실 강단에서요. 그럴 때면 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결국 졸업 후 기관이나 단체가 아니라, 교회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전혀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기본적인 일들입니다. 그것은 바로 신학교에서 공부한 신학과 거리에서 만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교회에 전하고, 그들과 함께 목회하는 일입니다. 

교회 일치로 해석되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공교회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개교회 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공교회 운동, 그래서 교단 협의체 교회협에 더욱 기대를 걸었는지도 모릅니다. 교단 협의체의 과정이 조금 느리더라도 그 한 걸음이 소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총회장·감독·주교가 모여서 아무리 무슨 성명을 내더라도 그것이 교회를 진보시킨다는 느낌을 전혀 받을 수 없고, 그동안 거리에서 투쟁하는 이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같이 가거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 느낌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인권 운동, 노동 운동, 도시 운동, 여러 현장에서는 활동가들의 피와 땀이 넘치도록 흘렀지만, 그 현장에서는 주교들과 총회장들의 작은 기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이런 공교회 운동으로는 점점 보수화하는 한국교회의 광풍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이미 그것은 자본의 광풍에 흡수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교단 협의체 안에서도 진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결국 큰 교회들이 모아 준 돈으로 급여를 받거나, 그 단체 역시 교단 분담금으로 유지되다 보니, 늘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힙니다. 가끔 어떤 이는 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믿기도 합니다. 교회가 너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며, 구시대적인 사고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시민단체나 기독 운동 단체, 혹은 교단 협의체에서 희망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사람이 받는 급여가 교인들의 헌금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언제나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무언가라도 지키기 위해 늘 타협해야 했습니다. 절망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명성교회라는 지교회가 교단 협의체를 품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그 공교회 운동을 지키는 것에 연명 말고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교회협을 비롯한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은 크게 두 가지를 놓쳤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고난 현장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입니다. 에큐메니컬, 교회 일치 운동은 제국주의적인 선교관이 만연했던 시대를 지나 교회의 선교에 대한 반성으로 시작됐다고 배웠습니다. 선교사들이 여러 대륙에 교회를 세웠지만, 가난과 전쟁, 기후 위기와 불평등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교회가 그 문제들을 야기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반성이 있었던 것이죠.

이 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교회가 모이자고 한 것이 제가 배운 에큐메니컬 운동입니다. 그런데 에큐메니컬이라고 하면서, 고난 현장에서 흘리는 처절한 눈물과 땀방울 없이 교회 모임만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에큐메니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그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마저 놓쳤습니다. 에큐메니컬이 적어도 교회 운동이라면, 그러니까 교단 운동이 아니라 교회 운동이라면, 목사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교인들과 함께하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교가 아니라 성도의 교제 안에서 교회의 표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지교회들의 연합 안에서도 공교회성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인들이 에큐메니컬을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신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신앙으로 설득해 내는 일, 당연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인정해 버리면 내가 굳이 목회를 왜 하고 있나, 이런 생각도 합니다. 그렇게 결론지을 때마다 선교와 목회의 괴리는 더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두, 그러니까 목사든 평신도든 그리스도로 인하여 변화할 수 있다고 믿기에 목회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늘 그랬듯이 새민족교회 교인들과 함께 예배하고 공부하며 씨름하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교회 십자가를 교회 안에만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선교할 것입니다. 사회적 재난으로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쫓겨난 사람들, 차별과 혐오에 짓눌린 이들에게 찾아가 연대할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신앙을 잃지 않는 삶을 위해 서로를 보듬고 도우며 진실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다른 교회들과도 연합할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며 우리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을 묻고, 용감하게 하나님께 응답할 것입니다.

물론 이 여정은 어려운 길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할 거라는 오만한 생각은 하지 않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선교는 주교들의 모임이 아니라, 교회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뜻을 품은 이들이 요즘 일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한순간도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소망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목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황푸하 / 성공회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지금은 새민족교회 담임목사이다. 2016년부터는 뜻이 맞는 신학생들과 함께 도시권 운동 단체, '옥바라지선교센터'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 기독교 노래 운동 <함께 부르기>(대장간), <사랑을 한다는 건>(쥬쥬베북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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