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에큐메니컬을 표방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김종생 총무)가 보수 교계를 대표하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장종현 대표회장)이 명성교회(김하나 목사)에서 여는 2024년 부활절 연합 예배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회협은 3월 7일, 한국교회 주요 교단장들이 모이는 한국교회교단장회의에서 "교회협 100주년을 맞이하며 부활절 연합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고 교단장회의를 통해 드리는 예배에 함께하게 됐다"고 밝혔다.

교회협이 보수 교계 단체와 연합 예배를 여는 것이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교회협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정서영 대표회장)가 내분을 겪기 전까지 부활절 예배를 함께해 왔다. 문제는 이번 부활절 연합 예배 장소가 불법 부자 세습으로 한국교회를 분열시키고 교계에 큰 상처를 남긴 명성교회라는 점이다.

더욱이 한교총은 지난 1월 9일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기자회견까지 열어 명성교회를 개최 장소로 확정했다고 발표한 만큼, 명성교회에서 부활절 연합 예배가 열리는 것을 알고도 교회협이 동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총무 인선 당시 '친명성', '김삼환 목사 최측근'으로 논란이 됐던 김종생 총무의 이력과 맞물려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앞으로 세습 비판할 수 있겠나…
교회협마저 보수 교계 놀이터 될 것"

교회협 실행위원 이은재 전도사(기독교대한감리회)는 교회협이 명성교회에서 열리는 부활절 연합 예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실행위원, 청년위원, 총회대의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그는 3월 12일  소셜미디어에 "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부활절 연합 예배를 통해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불러들이고 개신교의 세력을 과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일인가. 정녕 신앙의 양심이 존재는 하는지 묻고 싶다. 이 유치한 작태에 교회협이 동참한다는 사실로, 교회협에 일말의 신뢰마저 깨지고 말았다.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장사치들의 잔치로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협의 이름을 내걸고 연합 운동 100년의 역사와 에큐메니컬의 가치를 팔아넘기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썼다.

이 전도사는 교회협이 절차도 생략하고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3월 1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1월 25일 진행한 실행위원회에서 올해 부활절 연합 예배를 한교총과 연합으로 한다는 안건은 회의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한교총이 다 깔아 놓은 판에 교회협이, 교회협 100주년이 장신구가 됐다"고 말했다.

전남병 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도 교회협 총대직을 사퇴했다. 그도 3월 12일 소셜미디어에 "교회협은 더 이상 진보적 에큐메니컬 운동을 대표하는 연합 기구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2024 부활절 연합 예배가 부자 세습으로 지탄받은, 한국교회에 큰 오점을 남긴 명성교회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협이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을 위해 참여한다고 합의한 것은 경악할 만한 소식"이라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전 목사는 김종생 총무에 대해 "그러잖아도 현 총무님의 명성교회 유착 의혹이 선거 때부터 제기되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그는 이에 대해 긍정이나 부정을 하는 대신 '자신을 믿고 기다려 달라, 나중에 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진정성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김 총무가 이번 부활절 연합 예배 참여를 통해 명성교회 부자 세습에 완전한 면죄부(면벌부)를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남병 목사는 3월 1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도 "지난 총무 선거 때도 다수가 김 총무를 반대하며 명성교회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우려했다. 절차 문제를 떠나, 결국 이번 결정으로 교회협이 명성교회의 자본 아래 있게 되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교회협 실행위원 강은숙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보와 보수가 함께 예배하는 장소가 명성교회라는 것은 교회협 100주년에 큰 오점이다. 과거 교회협이 세습하지 않겠다고 성명했던 것을 뒤집고 명성교회의 부자 세습을 인정해 주는 꼴이 된다. 향후 세습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없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고난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의 의지 저하를 몰고 올 뿐만 아니라 실낱같은 희망조차 놓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교회협 임직원들의 분위기도 술렁이고 있다. 한 임원은 1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임원회에서조차 언급이 없었고 나도 기사를 통해 이번 사안을 접했다. 추후 임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교회협은 100주년을 맞아 부활절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고 한교총과 함께 드리겠다고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교회협은 100주년을 맞아 부활절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고 한교총과 함께 드리겠다고 발표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교회협은 진보·보수가 하나 되는 차원에서 연합 예배를 하기로 결정한 것일 뿐, 장소가 명성교회라는 사실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교회협 관계자는 3월 1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부활절 연합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건 한국교회교단장회의다. 교회협은 그동안 따로 드려 오던 예배를 같이 드리기로 한 것뿐이다. 나뉘어 예배를 드리는, 분열의 모습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그 부분에 있어 고민해 왔다. 장소나 설교자가 결정되는 문제에 있어 참여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부활절 연합 예배와 같은 중요한 안건이 실행위원회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는 데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으나 지난해 4차 실행위원회에서 부활절 TF팀을 구성해 위임하기로 했고, 이번 1차 실행위원회에서 보고했다"며 절차를 준수했다고 답했다. 김종생 총무는 현재 해외 출타 중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2022년 한국교회 주요 교단 74곳이 공동 주최한 부활절 연합 예배는 '윤석열 찬양의 장'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2년 한국교회 주요 교단 74곳이 공동 주최한 부활절 연합 예배는 '윤석열 찬양의 장'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번 부활절 연합 예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장소'뿐 아니라 '내용'도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한교총을 비롯한 보수 교계가 개최해 온 부활절 연합 예배는 정교 유착과 혐오 메시지 전파 등의 이유로 많은 지탄을 받아 왔다. 예배 때마다 차별금지법 반대와 낙태죄 폐지 반대, 이슬람 혐오 등의 메시지가 퍼졌다. 2022년 부활절 예배는 '윤석열 당선인 찬양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반면 교회협은 부활절마다 새벽 예배를 열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미얀마 민주화, 해고 노동자 연대, 남북 평화 등 사회적 약자에게 초점을 맞춘 예배를 열어 왔다. 

만약 이번 예배에서 '차별금지법 반대'를 비롯해 논란이 있는 메시지가 나온다면 교회협 전체가 이에 동조하는 것처럼 비칠까 우려하는 것이다. 전남병 목사는 "부활절 연합 예배 때 한교총이 차별금지법 반대 서명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동안 한 번도 공식적으로 동성애 문제에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던 교회협이 최초로 동성애에 관한 입장을 발표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협마저 보수 교계의 놀이터가 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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