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복적정의협회 회복적정의연구소가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라는 주제로 회복적 정의의 개념과 사회 곳곳에 회복적 정의가 적용되는 모습들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마다 발행됩니다. - 편집자 주
회복적 사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종종 범죄에 대한 엄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나라 법은 왜 이렇게 관대한 거지? 처벌이 너무 약한 것 아니야?" 이러한 질문에 "처벌이 강화되면 과연 범죄가 줄어들까? 피해자의 엄벌 요구가 엄벌을 요구하는 것 말고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는 아닐까?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하면 우리가 말하는 정의가 실현될까?"란 반문을 던져 본다. 사실 다수의 범죄자는 자신의 범죄가 발각되어 처벌될 것을 염두에 두고 행위를 하지 않는다. 엄벌화가 범죄에 좋은 대안이 아니라는 다양한 형사정책 연구 결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범죄에 엄벌을 요구하는가. 피해자의 고통과 피해에 대한 이해와 공감도 없이, 단지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원하는 정의는 실현될까. 사법에서 요구하는 책임엔 얼마만큼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관심이 들어 있는가. 이러한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새로운 사법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

회복적 정의는 사법 영역에서도 '피해와 어긋난 관계 회복'의 필요를 이야기한다. 사법 영역에 새롭게 등장한 패러다임인 회복적 정의를 회복적 사법이라 부르며, 다양한 회복적 실천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형사 조정, 소년사건의 화해 권고 제도, 회복적 대화 모임 등이 현재 운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또 다른 실천 프로그램이 더해질지도 모른다.

회복적 정의를 소개하는 네 번째 시간은 '사법' 영역에서, 특히 '형사 사법'에서 일어나는 회복적 정의의 실천, '회복적 사법'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누군가의 잘못은 다른 누군가의 피해가 된다

법은 정의를 실천하는 도구이다. 정의를 구현하는 형법의 구조는 단순하다. 행위가 형법전에 명시한 범죄에 해당하면 그 결과로 '국가'가 '형벌'이란 것을 실행(집행)하게 된다. 즉 행위자의 행위로 사회에 해악(범죄)을 만들었으니 국가가 그에 상응한 해악(형벌, 형법은 이를 필요악이라 부른다)을 주겠다는 구조이다. 생명(형), 자유(형), 재산(형), 명예(형) 등이 그것이며 각각의 형벌은 가해자로부터 생명, 자유, 재산, 명예 등을 빼앗는 구조이다.

이러한 형사 사법 시스템 안에서 가해자는 무엇을 할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또는 덜 빼앗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사법 시스템에 들어선 순간 덜 빼앗겨야 하는 싸움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때 피고인을 위한 각종 방어권 보장과 적정 절차라는 보호 장치가 작동한다. 덜 빼앗기기 위한 방어의 절차 속에서 행위자는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을 가동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정서적·시간적 여유도 없다). 자기 합리화와 정당화의 시스템이 함께 작동하는 동안 필요에 따라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를 비난하기도 한다. 피해 회복이라는 과정도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예컨대 피해 회복을 위해 도입된 형사 공탁이 단순히 가해자의 양형을 감경하는 요소로 작용할 때 우리는 앞선 질문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과연 정의롭다고 부를 수 있는가.

기존 형사 사법으로 발생한 범죄에 대응하는 이론적 틀에 부족함을 느끼게 되면서, 우리는 이에 상응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게 되었다. 잘못을 하면 그 잘못으로 인하여 누군가가 피해를 받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피해로 받은 고통의 무게와 이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기존 시스템에서 빠져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그 빠진 부분을 채워 보자. 질문(관심)이 바뀌면 대답도 바뀐다는 회복적 정의 실천가들의 주장은 형사 사법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 "그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회복적 사법에 대한 오해

다수 형법학자들은 우려한다. 형사법의 주요 원칙(무죄 추정의 원칙, 방어권 보장 등)이 당사자의 용서와 화해, 적극적인 피해 회복의 노력의 과정에서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작은 범죄에 국한하여 형벌을 대신하는 보안처분(다이버전)을 회복적 사법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워드 제어(Howard Zehr) 교수는 이를 회복적 정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오해라고 지적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관점에서, 기존 잘못에 상응한 형벌(必罰)이라는 패러다임의 틀에 갇혀 있던 좁은 시야를 넓혀 줄 새로운 패러다임(관계 회복과 피해 회복 과정의 필요)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즉 관점의 변화(Changing Lenses)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형법은 누구에게나 그 결과가 동일하고 예측 가능하도록 정형화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회복적 사법은 사건 당사자가 중심이 되어 회복을 향해 가는 과정이므로 비정형적이고 유연하다. 당사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따라서 형사 사법 절차에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 상호 충돌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유엔 마약및범죄사무소(UNODC)는 2006년 형사 사법 개혁을 시도하는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위한 핸드북>(박영사)을 발간(2020년 개정판 발간)하면서, 2002년 선언한 '형사 사법에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적용하기 위한 기본 원칙'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예컨대 기존 무죄 추정의 원칙이나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사건을, 범죄 혐의가 확실한 사건이면서(원칙 제7조) 당사자가 절차의 참여를 '동의한 사건'으로 한정하고,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의 참여가 형사 절차에 불리하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원칙 제8조)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회복적 프로그램의 운영을 관리하는 지침과 표준을 입법화할 것을 제12조에서 언급하고 있다.

회복적 사법을 옹호하며 기존 형사 사법을 포기하고 회복적 사법의 패러다임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형사 사법 시스템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형사 사법 절차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회복적 실천 프로그램에 대한 토대로 지침과 입법화가 필요하다.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위한 핸드북> / UNODC 지음 / 김재희 등 옮김 / 박영사 펴냄 / 124쪽 / 1만 2000원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위한 핸드북> / UNODC 지음 / 김재희 등 옮김 / 박영사 펴냄 / 124쪽 / 1만 2000원
법은 언제 용서해야 하는가

관계 회복을 위한 과정은 기독교의 죄에 대한 고백, 회개, 신의 용서의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기독교에선 죄에 대한 용서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잘못에 대한 고백과 회개가 없다면 용서나 화해도 불가하다.

피해 회복을 위한 현장에서 가해자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진정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의 사과는 왜 피해자에게 진정 어린 사과가 되지 못했을까.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과 발생한 손해에 대한 언급 없이 사과나 손해배상만을 이야기할 때, 피해자는 진정 어린 사과보다 형사 절차에서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로 상대방을 의심하게 된다.

회복적 사법에서의 책임은 형사 사법에서의 책임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고, 이로 인한 상대방의 피해를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발생한 피해(잘못)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즉 능동적 책임(법관에 의해 선고된, 행위에 대한 일정한 형벌의 책임을 지는 수동적 책임에 상응하여 능동적 책임이라 명명하였다)을 자발적으로 지는 것을 말한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혹은 부족했던 피해 회복과 관계 회복은 기존 패러다임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회복' 여부는 객관적 결과만을 놓고 법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닌 당사자 중심의 실질적 '회복'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법부에서도 기습 공탁과 같은 형사 공탁을 감경 인자로 고려하지 않는 판례가 늘고 있다. 피해 회복의 의미가 수동적 책임(판결 등)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예이다. 물론 여전히 형사 공탁 유무만으로 피해 회복의 노력 유무를 판단하는 판결도 존재한다. '피해 회복'의 의미와 이에 따른 '법은 언제 용서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혼재하는 판결은 장래엔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 믿는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누가복음 17:3)

김재희 / 성결대학교 교양학부(파이데이아학부)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다. 범죄 피해자의 보호와 지원 및 형사 절차에서 회복적 사법의 운용에 관심을 두고 기존 형사 사법 패러다임의 취약점인 피해 회복을 위한 신패러다임의 도입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동료들과 <유엔 형사 사법 핸드북,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위한 핸드북>(박영사), <성 학대와 회복적 정의-트라우마를 넘어 희망으로>(대장간)를 번역하였고, <형사 조정을 위한 핸드북>을 저술하였다.

'이후 글 순서'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5. 회복적 정의와 경찰 활동 - 윤구식(RJ실천센터 소장)
6. 회복적 정의와 장애 - 황필규(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장애인소위원회 위원장)
7. 회복적 정의와 사회적 참사 - 김훈태(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8. 회복적 정의와 웰엔딩 - 남태일(세사람 대표, 어.울림교회 목사)
9. 회복적 정의와 공동체 - 한정훈(한국평화교육훈련원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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