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4일 이동환 목사의 출교 판결 확정 이후, 이날 저녁에 열린 기도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박승렬 목사(한림교회)가 설교한 '믿음의 사람 이동환'(갈 2:16-21) 전문입니다. - 편집자 주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성소수자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했다는 것으로 출교시키다니요.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설마설마했지만 역시였습니다. 

이동환 목사님께서는 출교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줄 압니다. 출교 처분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번 징계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출교 처분을 내린 자들이 부끄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를 처형한 빌라도와 후손들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는 서울의 빌라도 감리회 재판위원들이 부끄러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이고 순리입니다. 재판장 이름 앞에 '서울의 빌라도'라는 이름을 계속 붙여 주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동환 목사님, 목사님은 감리교의 보배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보배가 되었습니다. 출교 처분은 주님의 사랑을 전하다가 받은 영광의 스티그마, 낙인입니다. 주님을 따르며 지게 된 영광의 십자가입니다. 이동환 목사님도 바울 사도처럼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동환 목사님과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고난받는 사람들의 고난을 함께 나누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와 나는 해고당한 노동자들을 위해 함께 싸웠습니다. 이제는 부당한 재판을 받고 쫓겨난 그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이동환 목사님은 지난 2019년 피소당해서 지금까지 5년여 걸친 긴 시간 동안 재판과 징계 등으로 매우 힘들게 지내 왔습니다. 우리는 이동환 목사의 고난에 함께 연대하고 함께 싸우기로 다짐한 사람들입니다. 이동환을 지지하고 이동환을 사랑합니다. 

이 목사님의 최후진술을 읽으면서 매우 마음 아팠습니다. 목사가 교우들과 이웃들을 위해 축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목사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축복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게 되면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누구에게나 요한 사도처럼 복을 빌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사가 축복기도 할 때 상대를 선별합니까? 여러분은 교회에서 축복기도 할 때 신분증 검사하고 하십니까? 참여자들의 전과를 검사합니까?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의 민족과 인종을 구분합니까? 그의 사상과 종교를 검증하고 축복기도 합니까?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는 축복기도를 할 때 어찌 사람을 차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한다니 소가 웃을 일입니다. 목사는 자신의 신앙 양심에 따라서 판단하며 축복기도 합니다. 그의 신앙 양심을 누가 재판할 수 있습니까? 모든 인류의 어버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반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사전 검열하겠다는 놈이 사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감히 사람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서울의 빌라도들은 바울 사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율법을 행하는 것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우리가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잘 지켰습니까? 율법을 잘 지켜서 칭찬을 받았습니까? 안식일 규정을 잘 지켰습니까? 정결 규정을 잘 지켰습니까? 주님은 나병 환자를 만지며 율법을 어겼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고 사마리아 사람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제사장도 아니면서 죄인을 마음대로 용서도 했습니다. 주님은 하지 말라는 일을 너무나 많이 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로 살았습니다. 술보이며 먹보로 살았습니다. 주님은 자유롭게 사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인의 친구로 사는 것을 통해 죄인을 해방하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유롭고 해방자로 사셨던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죄인을 축복하셨던 예수를 그리스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율법을 지키며 사는 삶보다 죄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라고 믿었던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예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동시에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8)

율법에서 벗어나 이미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율법의 행위로 되돌리려는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의 교회를 율법의 교회로 만드는 자들에게 하늘의 벌이 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이동환 목사가 퀴어 축제에서 축복기도 하는 것은 목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바를 한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축복기도를 선별해야 한다는 어떤 근거도 없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종교재판에 출석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성경의 증언이나 또는 명백한 이성의 증언에 의해서 본인이 틀리다고 증명되지 않는 한 저로서는 취소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본인은 공회나 교황의 결정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회의 결정은 오류일 뿐만 아니라 서로가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전율을 느끼며 이러한 양심을 거슬러서 행동한다는 것은 정직하지도 못하며 안전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 나를 도우소서. 아멘!"

이동환 목사님, 지금은 고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힘내십시오. 당신은 감리교의 보배에서 한국교회의 보배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목사님의 고난을 통해 사람에 대한 차별은 잘못임이 더욱 분명하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이동환 목사님의 고난을 통해 환대와 포용의 소중함이 더 빨리 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동환 목사님, 당신의 고난을 통해 무엇이 참된 믿음인지 드러났습니다. 예수의 믿음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이동환 목사야말로 참된 믿음의 사람임이 드러났습니다. 출교 판결을 받은 이동환 목사님을 향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막 1:9)

이동환 목사님의 승리를 바라보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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