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하지만 정작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문턱을 넘기 어렵습니다. 현재 한국교회 지형상 대부분 '동성애'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린 교회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지개 교회'에 모이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그리고 이들은 왜 함께 모이기를 선택했을까요. '퀴어 프렌들리' 교회란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가능할까요. 성소수자 친화적인 교회 공동체를 실천해 가고 있는 무지개 교회들을 소개합니다. - 기자 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정언향교회는 2010년 설립됐다. 성소수자 문제에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장로교단 소속 교회이지만, 성소수자 교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정언향교회는 2010년 설립됐다. 성소수자 문제에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장로교단 소속 교회이지만, 성소수자 교인들과 함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성소수자를 정죄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개념은 있었어요. 근데 실제로 우리 교회 문제가 된 거죠."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정언향교회 권영진 목사가 말했다. 정언향교회가 성소수자 교인을 맞닥뜨린 건 2017년 초였다. 6년간 신실하게 신앙생활 했던 A가 권 목사에게 메일을 보내 커밍아웃 했다. 오래전부터 성소수자를 향한 보수 교계의 배타적인 모습에 문제를 느끼고 있던 권 목사는 교인들과 성소수자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누어 왔지만, 교회 안에서 성소수자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교인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교회 전체가 A를 받아들이는 데는 2년 반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정언향교회가 거쳐 온 과정은 더디지만 사려 깊었다. 각자 사정도 형편도 다른 교인들에게 환대의 태도가 스며드는 데 들인 시간이었다. 권영진 목사를 포함한 몇몇 교인에게만 자신을 드러냈던 A는, 2019년 여름 전교인 수양회에서 전체 교인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다. 그와 함께 또 다른 성소수자 교인 두 명도 자신을 드러냈다.

2010년 설립된 정언향교회는, 성소수자 문제에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한 장로교단에 소속된 교회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20여 명이 모이고 있다. 성경에 기반한 개혁적인 신앙을 추구하고, 장로교 전통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기성 교회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성소수자 교인들이 함께한다는 것 외에는. 

정언향교회는 2020년 12월, 성소수자 교인들의 커밍아웃과 교회가 이들을 환대하기까지의 과정을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214쪽 분량 책에는 동성애에 관한 정언향교회의 입장은 무엇인지, 전교인 대상 커밍아웃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과정마다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나머지 교인들의 생각과 반응은 어땠는지를 상세히 기록했다. 새롭게 공동체를 찾아오는 교인들에게 정언향교회가 거쳐 온 고민과 노력을 이해시키고 후대에도 전수하기 위한 기록물로 활용하고 있다. 

스스로를 '무지개 교회'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지만, 동성애를 정죄하고 반대하는 보수 교계의 목소리에 저항하며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 정언향교회를 찾았다. 10월 8일과 11월 19일, 정언향교회 권영진 목사와 김석희 전도사, 성소수자 교인 B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정언향교회 예배 모습. 지극히 '말씀 중심'적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정언향교회 예배 모습. 교인들은 저마다 성경을 펴고, 공책에 필기하며 설교를 듣는다. 지극히 '말씀 중심'적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 

정언향교회 권영진 목사는 2010년 초 교회를 막 개척했을 무렵 '동성애'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성소수자 차별 문제가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대두되던 시기였다. 이전까지는 동성애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 교회에도 성소수자 교인이 올 수 있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맞이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성소수자 관련 서적을 직접 하나하나 찾아 읽었다. 성서학을 전공한 그는, 성경에서 죄악시하는 동성애는 오늘날 성소수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기회가 될 때면 교인들과 동성애를 주제로 토론하고 세미나를 하면서 성소수자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정작 정언향교회에 성소수자 교인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던 2017년, 6년을 함께한 청년 A가 메일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걸 알려 왔다. 교회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라고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청년이었다. '그동안 나름 교회 안에서 성소수자 이슈를 다뤄 왔는데 이제야 커밍아웃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보여도 된다는 믿음을 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권 목사는 그에게 "이전에도 말했듯 동성애는 절대 죄가 아니다. 달라질 건 없다"는 답을 보냈다. 

문제는 다른 교인들이 A의 커밍아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였다. 교인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권영진 목사의 설교와 세미나를 통해 성소수자 교인이 공동체에 온다면 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몇몇은 여전히 성소수자를 낯설고 불편한 존재로 여겼다. 권 목사는 이런 상황에서 A가 곧바로 커밍아웃 하면 모두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권영진 목사는 2017년 교인 A의 커밍아웃을 접하고 교회 전체가 성소수자 교인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권영진 목사는 2017년 교인 A의 커밍아웃을 접하고 교회 전체가 성소수자 교인을 어떻게 환대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권 목사는 A에게 교인들에게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커밍아웃 하자고 제안했다. 서로의 입장을 듣고, 이해하고, 설득하는 세심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다른 교인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었다. 공동체 전체에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성소수자에 관해 배우고 협의하겠다고 했다. 일명 '공동체 커밍아웃' 준비 프로젝트였다. 

"합의를 위한 과정은 꼭 필요했어요. 저는 공동체 전체에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끊임없이 협의하고 설득하는 게 장로교 정치가 지닌 강점이자 본질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비록 더디고 귀찮고 불편하지만, 큰 실수를 줄이고 교회가 지닌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죠. 

천천히 커밍아웃 하자는 말이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목회자 한 명의 생각대로 교인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으니까요. 교회는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에요.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무시할 수 없고요. 

대신 (성소수자를 낯설어하는 교인들과) 일대일로 만나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최선을 다해 설득하다 보면 언젠가는 변화하는 순간이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예전에 우리가 중증 장애인을 잘 몰랐을 때는 무서워하거나 거부감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잖아요."

보수적인 교인들이 '울타리'가 되기까지

김석희 전도사는 권영진 목사와 함께 '공동체 커밍아웃' 준비 프로젝트를 도맡았다. 김 전도사는 A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세미나, 책 모임, 퀴어 문화 축제 참가 등 교인들이 단계적으로 성소수자 교인의 존재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교인들은 점차 교회 안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 전도사는 성소수자 이슈에만 국한하지 않고, 기독교반성폭력센터에서 진행하는 '교회를 바꾸는 젠더 스쿨' 프로그램을 수강한 뒤 교인들을 대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는 등, 교회의 전반적인 공기를 보다 평등하게 바꾸려고 노력했다. 

"2년 동안 성소수자 책만 봤어요. 책장 두 칸 정도가 거의 다 성소수자 관련 서적으로 찼더라고요. 제가 교회에 와서 배운 게 우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였거든요. 세월호 사건 때 교인들과 함께 처음 거리와 광장으로 나갔는데, 그때 '기존 교회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다음 접한 성소수자 문제도 마찬가지였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차별의 원인은 묻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교인들과 했던 건, 질문하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는 거였어요. 한국교회에서 통용되는 '동성애는 괴물이다', '변태적인 성행위를 한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정말 그래?'라고 묻고, 성소수자 교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 보는 것부터였죠. 

나이가 드신 교인분들은 성소수자를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성소수자와 함께 지내는 건 괜찮지만 굳이 커밍아웃을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죠. 그런 분들에게는 커밍아웃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소수자 교인이 왜 커밍아웃 하려고 하는지 등을 정리한 문서들을 가져가서 직접 말씀을 드리고 설득했어요. 

그때 느낀 건 어른들의 품이 있다는 거였어요. 머릿속으로 다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않아도 일단 성소수자 교인이 겪는 어려움을 듣고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당사자들도 10년, 20년 넘게 정체성을 고민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생각을 고치겠어요. 그럼에도 이분들이 '우리 같이 (커밍아웃) 하자'고 말했을 때는, 굉장히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거죠."

김석희 전도사는 2019년 3월 교인들과 함께한 <무지개 성 상담소>(양철북) 독서 모임에서, 모임 전과 후에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진단해 보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전반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개선됐다는 반응이 많았다. 공동체 커밍아웃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공동체 커밍아웃' 준비 프로젝트를 도맡은 김석희 전도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공동체 커밍아웃' 준비 프로젝트를 도맡은 김석희 전도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2019년 8월 10일, 마침내 전 교인 여름 수양회에서 공동체 커밍아웃이 진행됐다. 음악인인 한 교인은 앞서 A가 교회 운영위원들에게 보낸 편지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고, 다음으로 A가 교인들 앞에서 편지를 읽었다. 이어 또 다른 성소수자 교인도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이들의 커밍아웃을 들은 교인들은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감정에 눈물을 흘렸다. 사랑과 환대의 말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한 교인은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낭독했다. 

공동체 커밍아웃 이후, 정언향교회는 정관(강령)을 개정했다. 기존 정언향교회 정관에는 "교회 공동체에 들어온 모든 사람들을 빈부귀천과 남녀노소에 상관없이 동일한 지체로 인정하고 대우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운영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남녀노소'라는 표현을 '성별과 나이에 관계없이'라고 바꿨다. 공동체 커밍아웃을 준비하며 익힌 성평등 관점 덕분이었다. 

성별 이분법적인 교회 문화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청소할 때 "여자분들은 안에서 그냥 닦아 주시고, 남자 교인들은 힘쓰는 일을 해 주세요"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 이제는 대신 "각자 할 수 있고 원하는 부분을 청소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물론 공동체 안에 성소수자 교인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정관을 개정했다고 교회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이따금 대화 중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어린 언어가 튀어나왔다. 그럼에도 공동체 커밍아웃 준비 과정을 거치며 내공이 쌓인 교인들은 서로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불편했던 지점은 한 달에 한 번 전교인이 모여 교제하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공유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권영진 목사는 커밍아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머리로 안다고 모든 게 다 되는 건 아니잖아요. 연인으로 살 때와 부부로 살 때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요. 적응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서로에게 상처도 생기고 서운한 것도 있지만 그 과정을 넘어선 이후에는 훨씬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과정이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싶고요."

더디더라도 '서로 사랑하라'

이후 교회의 방향성을 놓고도 이견이 있었다. 첫 문제는 성소수자 교인들의 커밍아웃 과정을 정리한 <있는 모습 그대로>를 외부에 공개할지 여부였다. 교회가 겪은 고민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 교회를 새로 찾는 이들에게 공유하고, 혹시 모를 백래시를 방지하기 위해서 제작했지만, 비매품으로 하기로 했다. 교인들의 의견이 갈렸다. 

A는 책을 공개해 고통받는 현실의 퀴어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성소수자를 환대하려는 다른 교회들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또 다른 성소수자 교인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받는 데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커밍아웃 이후 주변 관계가 단절되는 경험을 했다며 반대했다. 교회에서는 다행히 환대받을 수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밖으로까지 드러내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공동체 커밍아웃 이후 무지개예수가 발표한 '무지개 교회' 명단에 교회 이름을 넣는 일에도 의견이 갈렸다. A는 무지개 교회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자고 했지만 B는 반대했다. B는 원치 않게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 강제로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었다. 신앙적으로도 여러 교회를 전전하다 힘겹게 정언향교회에 정착했다. '무지개 교회'가 된다는 건 신상이 모두 밝혀질 위험을 무릅쓰고 '운동'을 해야 하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한국교회 전반에 깔린 성소수자를 혐오·차별하는 분위기 탓이었다. 

"저는 교회가 운동을 하는 데에는 부정적이었어요. 무지개 교회가 되면 그 안에 있는 교인들도 공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 셈이잖아요. 커밍아웃을 하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대다수의 성소수자는 숨어 살아가요. 우리 교회가 당장 운동을 하기보다, '퀴어 그리스도인들이 안전하게 예배하고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곳' 정도의 태도를 갖는 게 더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비당사자 교인들에 대한 고민도 있었어요. 그동안 다양한 무지개 교회를 다녀 봤는데요. 성소수자 교인들은 교회에 나오면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울분을 토해 낼 수밖에 없어요. 교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성소수자가 겪는 문제가 사회에서 겪는 수많은 차별 문제 중 하나로 이야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것만이 가장 큰 이슈인 양 간주돼요. 그럼 소외되는 구성원도 분명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B는 정언향교회가 성소수자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커밍아웃하고 안정적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성소수자를 환대하는 교회로 알려지기를 바랐다. 서로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A는 교회 구성원들과 오랜 대화 끝에 진보적인 교단에 소속한 교회로 옮겨 갔다. <있는 모습 그대로>에는 시간이 흐른 뒤 A가 보내온 글도 실렸다. 

"같은 성소수자라 하지만 차별과 억압의 경험은 다르고, 반응은 다 다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성서적인 목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바르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구현한다. 여전히 난 동의하진 않는다. 다만 목사님, 전도사님, 게이 성도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로 보려 한다. (중략) 정언향교회는 정언향교회의 길이 있을 거라 믿는다. 가끔 서로의 길을 걷다 마주치길 소망한다." (186쪽) 

2020년 12월 출간된 <있는 모습 그대로>는 정언향교회 성소수자 교인들의 커밍아웃 과정을 담은 백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0년 12월 출간된 <있는 모습 그대로>는 정언향교회 성소수자 교인들의 커밍아웃 과정을 담은 백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정언향교회는 성소수자만을 위해 '특화'된 교회는 아니다. 성소수자를 환대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동등하게 대하고, 모두가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한다는 의미다. 이는 성소수자를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대상화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석희 전도사가 생각하기에 정언향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공동체'다. 정언향교회에는 저마다 다양한 문제로 고통받는 구성원들이 있다. 교회의 입장이 하나의 관심사로만 좁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김 전도사는 말했다.

"저희는 성소수자만을 위한 교회나 운동 단체처럼 성소수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애썼던 건 아니에요. 눈앞에 성소수자 지체들이 드러났고, 이들과 어떻게 함께 지낼까를 고민했던 것뿐이죠. 무지개 교회가 되어 외부 활동에도 나서고, 퀴어 문화 축제에도 교회가 단체로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저희 교회에는 질병이나 빈곤 등으로 고통받거나 나이가 많은 교인이 더러 있었거든요. 현실적으로 성소수자 이슈가 모두의 가장 큰 관심사일 수는 없었죠. 그분들에게 모든 퀴어 이론을 알려 드릴 수도 없었고요. 그냥 같이 밥 먹고 예배하면서 성소수자가 나와 동일한 존재라는 걸 아는 게 최선이었죠. 

저는 교회가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고, 다른 위치와 입장에 있는 서로를 들여다보고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각자 조금씩 최소한의 교집합을 찾으며 같이 지내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인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관심이 성소수자 이슈로만 좁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이들은 정언향교회처럼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는 교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언향교회가 어떤 방향을 제시하거나 모델이 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동안 정언향교회의 커밍아웃 스토리를 밖으로 알리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석희 전도사는 "우리 교회를 모델로 삼고 따라오는 사람들은 자기 교회의 상황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되고 아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성소수자에 대한 담임목사의 신학적 해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구조다. 이러한 개교회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우리만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권영진 목사는 성소수자 교인을 환대하려는 목회자가 있다면, 정언향교회와 같은 과정을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퀴어 이슈를 정치적인 문제로 가져와 싸우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사람을 살리는 데 목적을 둬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퀴어 교인 만큼이나 비퀴어 교인을 설득하기 위해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도 있어요. 퀴어 교인이든 비퀴어 교인이든 다 소중한 성도들이니까요. 어쩌면 저는 그게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긍휼하심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을 도구로 보지 않고 인내하면서 다가가는 거죠. 

그리고 사랑이라는 건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든 바꿔 놓겠다'가 아니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바라본다면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봐요.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 그게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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