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 김혜령 부교수가 '페미니스트 신학자와 치매 아버지'를 주제로 연재를합니다. 연재는 격주 월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추석날 아침 일찍 집에 온 남동생 가족과 바통 터치하듯 아버지를 맡기고 시댁에 갔다. 그러나 저녁이 되기 전에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은 아버지가 자기를 못 알아보고, 자꾸 집에 돌아가라 한다고 했다. 치매 환자가 가족을 못 알아보게 되는 것은, 모든 아이가 자라고 모든 인간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결국 일어날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리만큼 단 한 번도 그런 날을 제대로 상상한 적이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감히 믿어 온 것이다.

서둘러 집에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드디어 딸이 왔다며 화색이 돌아 내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저 덩치 큰 형님이 누군지 모르겠는데. 자기 집에 가라고 해도 안 가."

놀란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아버지에게 반복하여 아들의 존재를 설명하였지만, 기어코 아버지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셨다. 내 설명을 듣는 순간만은 아들의 존재를 떠올리는 듯하다가도, 이내 "저 형님은 누구냐"를 반복하였다. 그러한 아버지 앞에서 내 마음에는 원망 아닌 원망의 소리가 맴돌았다. 

'아버지, 어떻게 아들을 잊어버릴 수 있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자기보다도 더 아꼈던 아들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어!'

망각의 병에 걸린 아버지가 제대로 존재를 기억하는 이는 이제 아내와 딸인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나마 이름까지 제대로 호명할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 아내는 이름이 아니라 '여보'로 평생 불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닥친 충격과 슬픔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아버지는 자신이 지금 알고 있는 세계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다시 수정해 주려는 사람들 앞에 엄청난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동생 가족을 함께 배웅하고 돌아오던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버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이 바보 같은 놈"이라 자책하고 있었다. 

이번 일이 이토록 충격인 것은 아버지가 잊은 이가 당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미 아버지에게는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잊혀 갔다. 30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같이했던 성도들이 빠르게 잊혀 갔으며, 평생을 함께한 형제들과 누나,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도 결국 잊혀 갔다. 

의문이 드는 것은 아버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어김없이 "형님"이라 부른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나이를 몰라보고 상대방을 무조건 "형님"이라 부른다고 생각하여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점점 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형님이라고 부른 이들은 모두 남자였다. 아버지가 몰라보는 남자들을 "형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여자들에게 "누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성별의 구분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가 자기보다 몸이 건장한 남자들에게 나이를 불문하고 "형님"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점을 알게 되니, 아버지가 집에 함께 사는 남자가 딸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아직 잊지 않았음에도 언젠가부터 그를 "이 서방"이나 그전부터 부르던 "이 목사"라고 부르지 않고 "형님"이라고 부르며 매우 조심히 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 

"아버지, 왜 사위를 형님이라고 불러요. 저 사람 무서워?"

"아니, 안 무서워. 좋은 사람이야. 근데 덩치가 커… 조금 무서울 때도 있지."

실제로 아버지는 기억력을 잃은 와중에도 가끔 자신이 키가 작다는 평생의 콤플렉스를 반복적으로 말해 왔다. 왜 아버지는 여성보다 남성인 타자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들에게 "형님"이라는 존댓말로 조심히 부르며 예의를 다하는 것일까?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남성 지배>라는 책에서 성별 특성 혹은 '젠더'란 자연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온 것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자연적인 것처럼 여기도록 만들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은밀히 작업해 온 역사가 사회에 존재해 왔음을 폭로하였다. 사실 폭로는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페미니스트 학자에게는 꽤 상식이나 다름없었던 본질주의(남성이나 여성은 각각의 성적 특성을 자연적으로 타고나는 본성을 갖는다)에 대한 비판을 부르디외가 자기 연구 전반에 수용 및 적용한 것에 불과하였다. 다만,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남성 학자가 서구 사회의 전통적 지배 구조를 "남성 지배"라고 자인했다는 면에서 적지 않은 파급력이 있었다. 

그는 남성 지배 사회에서 여성이 침묵과 포기, 희생이라는 부정적 가치를 몸과 사고방식 모두에 익히면서 남성의 부수적 존재로서 사회화될 동안, 남성은 여러 가지 특권을 사회 속에서 독점하게 되었음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이러한 '남성 되기' 과정이 '여성 되기'의 상대적 반작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여성성(féminité)뿐만 아니라 남성성(virilité) 역시 자연적 본성의 발현이 아니라 사회화의 결과라는 사실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자 했다. 쉽게 말해, 여성들이 연약하고 비독립적인 존재로서 '여성다움'을 사회화하는 것은 남성들이 의도적이거나 의지적으로 그렇게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자신을 강하고 독립적인 존재로서 '남성다움'을 사회화하는 것의 상대적 작용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현대 페미니즘은 성의 사회화가 생물학적 성을 가리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는 점을 '젠더'라는 개념을 통해 이미 잘 설명하고 있었다. 약간의 진부함 속에도 부르디외의 책 행간에 눈이 머문 것은 아버지가 건장한 남성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지금 상황에 대해 해석할 만한 논리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르디외는 "남성다움이란 남성이 현재적이거나 잠재적인 난폭함(violence) 안에 있는 자기 모습을 다른 남성들로부터 인정받게 되거나, '진짜 남성들'의 그룹에 속해 있다고 인정받을 때에 증명"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1) 쉽게 말해, 남성은 남성들 간의 현실적이거나 잠재적으로 발생하는 물리적 힘의 경쟁 속에서 서로 위계를 나누고 자신의 남성다움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말이 맞는다면, 우리 아버지가 덩치 큰 남성들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보다 육체적으로 강한 남성 앞에 자기의 약한 위치를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현재는 물론이고 잠재적으로라도 "나는 당신과 싸우고 싶은 의지가 없다"고 알리는 퇴역 장교의 사전 고지와 같아 보였다. 더 나아가, 약간의 굴욕을 수용해서라도 '형님과 아우' 그룹, 즉 '진짜 남성들'의 그룹에 여전히 속해 있음을 확인하려는 최후의 의지가 빚어낸 결과일 수도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주의력이나 조절 능력의 손상이 먼저 일어나는 혈관성 치매와 달리, 우리 아버지가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지남력과 기억력, 이름 대기 능력 등이 먼저 심하게 손상받기 시작한다고 한다.2) 아버지의 경우 신체 조작 능력이나 운동신경에는 여전히 건강한 사람에 뒤지지 않는 편이지만, 하루에 여러 차례 집 밖을 배회하고 옷도 뒤집어 입더니, 결국 아들까지 잊어버림으로써 인지적 능력의 심각한 결손을 나타내고 있다. 중증 치매에 이미 들어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남성다움'을 가장 분명하게 확인할 부자父子 관계에 대한 기억마저 손상을 입은 상황에서, 남성 지배의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남성다움의 아비투스'(habitus, 행동과 사고, 취향의 무의식적 성향)가 어떻게 아버지에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남아 있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아버지의 이상행동은 단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남성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르디외는 서구 사회에서 발생한 남성과 여성의 차별적 성 역할이 마치 자연적 본성인 것처럼 둔갑하여 몸과 정신에 은밀히 새겨지는 곳이 바로 가정과 학교, 그리고 (가톨릭) 교회라고 지목하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평생 부양하는 자로, 한때는 고등학교 교목으로, 그리고 40년에 가까운 시절을 목사로 살아왔다. 부르디외의 시선으로 보자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사람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사회화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일로 평생을 산 것이다. 

아버지는 가부장과 선생, 목사로서의 자신의 위계적 특권을 지켜 내면서도 가족과 학생, 교인의 안위를 지켜 내는 데에 적지 않게 이바지한, 소위 '착한' 가부장의 표본이었다.
아버지는 가부장과 선생, 목사로서의 자신의 위계적 특권을 지켜 내면서도 가족과 학생, 교인의 안위를 지켜 내는 데에 적지 않게 이바지한, 소위 '착한' 가부장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나를 가부장제와 가부장의 지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삶을 무작정 부인할 수는 없다. 그는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전문인으로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단순히 자신의 지위만을 독점적으로 누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를 아주 성실하게 짊어지고 왔다. 그는 가부장과 선생, 목사로서의 자신의 위계적 특권을 지켜 내면서도 가족과 학생, 교인의 안위를 지켜 내는 데에 적지 않게 이바한, 소위 '착한' 가부장의 표본이었다. 그러니 두말할 것도 없다. 아버지는 비록 체구는 160cm가 되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부장 남성으로서 우뚝 선 사람이었다. 

가부장 남성으로서 성공한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막무가내로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는 권력과 명예를 이미 차지하고 있으므로, 가족과 학생, 교인에게 너그러운 관용으로 자기 인격의 성숙함을 보여 주는 데에 보람을 느끼며, 이미 차지한 특권의 소득을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양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쓰는 일에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이러한 점에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아버지가 인지와 판단에 상당한 손상을 입었음에도 자신은 여전히 가정을 부양해야 할 주체라는 자아상을 아주 강하게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의지는 '돈'과 관련하여 현실적으로 드러났다. 아버지의 무기력증과 우울감은 단순히 치매라는 질병의 병리적 특성으로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심리적으로 느끼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력과 강력하게 연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목회자 연금을 받고 있음에도 아버지는 그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에, 엄마에게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하는 '못난 자신'을 너무 많이 미안해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작년부터 치매 환자를 위한 데이케어센터를 다니게 되자, 엄마는 센터 출석의 작은 동기라도 될까 하여 집에 돌아오시는 아버지께 작은 봉투를 일당처럼 챙겨드렸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돈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손사래 치며 거절하셨지만, 엄마가 "이 돈은 오늘도 일 잘하고 오셨다고 나라에서 주는 것"이라고 '착한 거짓말'을 하였더니 아버지는 봉투를 받아 들고 정말로 너무 기뻐하셨다. 그리고는 꽤 오랫동안 센터에서 집에 돌아오실 때마다 엄마에게 오늘은 봉투를 주지 않느냐고 물으시며 자신의 당당한 '몫'을 즐겁게 받으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돈을 자신을 위해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흔한 취미도, 여가도 갖지 못한 아버지의 재미없는 삶은 그가 직업인으로서 벌어 오는 소득 전부를 가족 부양에 기꺼이 바쳐 온 결과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노년에 다시 받아 들게 된 돈 봉투의 주인은 결국 본인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봉투에서 돈을 꺼내 지갑에 잘 보관하다가,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은 듯하거나,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한 듯했을 때, 엄마에게 그 돈을 건네셨다. 기분이 좋으면, 가끔 나나 손녀딸에게도 인심을 쓰며 뿌듯해하셨다.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존재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부르디외의 말로, '남성 지배' 사회에서 남성 가부장은 그렇게 자신의 '남성다움'에 "죄수가 되고, 은밀한 희생자가 되며, 지배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3)  

하지만 문제는 그의 지남력이 더 많이 힘을 잃게 되면서, 아버지의 몸과 정신에 새겨진 가부장제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만으로는 더 이상 '착하게' 순화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기도 했다. 남동생과 나, 이렇게 남매만을 두고 있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내게 여자니까 공부는 여기까지 하라거나, 여자니까 사회생활을 제한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그 덕분이었는지 나는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프랑스로 유학 갈 때도 아버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심지어 형편이 넉넉지 않은 신학 전공의 유학생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사윗감을 앞에 두고 둘이 공부하다가 경제적으로 힘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묻고는, "저는 공부를 못하더라도 혜령이는 제가 끝까지 밀어주겠습니다"라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던지고 보는 사윗감에게 누구 하나 포기하지 말고 꼭 둘이 학위를 하고 돌아와야 한다고 여러 번 다짐을 받았다. 이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에 나는 정말로 단 한 번도 '여성'이라는 나의 성별이 집 안과 밖에서 행하는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크게 생각하지 못하고 자란 것 같다. 

그런데 아버지의 발병 뒤 두 가족이 함께 모여 살게 된 이후부터 나는 너무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 아이 셋이 살 때 남편은 나와 요리도, 청소도 많이 나눠서 했다. 산술적으로 역할을 1/2로 나눈 것은 아니지만, 우리 둘은 형편이 되는 사람이 그날의 가사 노동을 한다는 점에는 어렵지 않게 합의가 된 X세대였기 때문이다. 합가 이후, 남편은 이전과 같이 틈틈이 부엌에서 요리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때마다 남편이 요리하는 모습을 안절부절 바라보며, 내게 다가와 "왜 네가 하지 않고 남자를 시키냐?"고 따지거나 화내기 일쑤였다. 심지어 그가 해 주는 식사를 드실 때면 마음 편하게 식사하시지 못한 채, 자신이 요리를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저렇게 변명하셨다. 

분명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여성도 평등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으며, 남성도 가사 노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지지해 온 분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아주 고리타분한 꼰대처럼 여자와 남자의 일을 다시 철저하게 나누고, 아들이 아니라 사위의 집에 함께 사는 자기 자신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얹혀사는 존재'로 여기며 주눅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성평등 사고는 원래부터 아버지에게 있던 게 아니었다. 1990년대 이후 사회가 변하고, 사랑하는 딸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배경 속에서 아버지도 다만 성평등 사고를 새롭게 학습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깨어 있을 때 새롭게 학습한 성평등 사고 체계는 제법 작용하며 그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꽤 진일보하도록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망각의 질병은 의지를 갖고 새롭게 학습한 것들을 모래성처럼 금세 허물었다. 이 원망스러운 질병은 아버지로부터 딸에 대한 애정과 그의 사회적 지위가 의무 지워 준 관용의 책임마저 빠르게 앗아 가고 있다. 

그렇게 되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독재 정권과 산업화의 체계 속에 성인기 대부분을 보낸 '한국 남자'의 그렇고 그런 가부장제가, 철거되기 직전의 낡은 건물의 철근처럼 다 녹슨 상태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점점 더 아내를 '자기 소유물'처럼 대하며 자신의 욕구에 어떠한 이의 제기 없이 그대로 응하기를 요구한다. 사모로서 목회를 내조하는 아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데에 단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았던 자상했던 아버지는 이제 "당신은 내 아내야. 내 말을 들어야지, 내 말을!"이라고 거칠게 말하거나, 엄마의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도 전적으로 의존하기를 점점 더 원하고 있다. 그러한 아버지를 멈추기 위해 나는 열심히 엄마와 아빠 사이를 개입하고 중재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몸과 마음이 점점 더 지쳐 가며 곯아 가는 중임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치매가 고약한 병이라면, 나는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문화의 계몽을 통해 정신과 삶의 습관이 고양된 인간이라고 해도, 치매는 결국 가장 새롭게 배운 것부터 사라지게 하고 결국 무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원초적인 것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고 만다. 우리 아버지에게, 우리 아버지 세대에게 그것은 바로 남성의 지배이며, 남성의 난폭함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예장합동 교단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평등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종속'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예장합동 교단은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존재론적으로 평등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종속'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그런데 여기서 나는 혹시나 치매 환자의 원초적 무의식을 장악한 남성 지배의 가부장제가 "창조주 하나님이 남성을 여성을 지배하는 존재로 본성상(nature) 창조하셨다"는 궤변의 증거로 사용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아직도 한국의 가장 큰 교단에서 여성 안수를 불용하는 근거로 남성과 여성이 "존재론적으로는 평등하지만, 기능적으로는 종속적이다"라는 칼뱅의 창세기 주석을 든다. 칼뱅은 매우 억울할 것이다. 초대 교부 시대로부터 중세 1000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신학자가 오직 남성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유일한 피조물로 여기며, 여성은 남성에 종속되어 출산과 양육을 전담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열등한 존재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칼뱅은 시대적으로 그보다 더 강한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강력한 여성 해방의 메시지를 주장했다. 비록 기능상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쨌거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4) 

그런데 시대적 배경에 비추어 매우 놀라운 칼뱅의 해방적 선언이 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어떻게 '여성이 목사가 될 수 없는 근거'로 변질하였을까? 여기에는 논리적으로 한가지 전제가 작동했다. 여성과 남성을 생식기의 기능에 따라 구분하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자연적 본성(nature) 그 자체라고 믿는 전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성서를 임의로 선택·편집하여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창조하신 최초의 인간 본성에 생육의 기능을 명령하셨다(창 1:28). 그러나 창세기 1-2장의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생육하는 데 본성상 어떻게 서로 다른 기능을 나눠 맡았는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배와 복종을 뜻하는 위계는 지시하지조차 않았다. 하나님이 남녀의 차별적 기능(여성은 자식을 낳고, 남편은 아내를 지배하는 기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시는 것은 창세기 3장 16절 이후, 즉 두 사람이 죄를 범하여 에덴에서 쫓겨나게 될 때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연적으로 타고났다'라고 주장하는 생식기에 의한 여성다움/남성다움의 '본성(nature)'은 하나님이 최초로 창조하셨던 인간 본성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자, '망가진 자연'일 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난폭함과 지배의 본성이 아담과 하와 이후 너무나 오랫동안 인간이 사회 속에서 왜곡하며 변조해 온 '망가진 자연'의 잔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망가진 자연에 기대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다. 자기 스스로 최후의 화목제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최초의 본성이 타락한 인간과 창조주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며 인간을 죄에서 해방하셨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망가진 자연이 만들어 낸 낡은 성차별의 아비투스를 부여잡고 살 수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회복된 본성으로 새로운 삶을 마땅히 살아야 한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원초적 상태에 다가서고 있는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 사회의 가장 오래된 차별 구조가 어떻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까지 아주 단단히 옭아매고 있는지를 증거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간절하게 하나님 편에서 오는 전적인 구원을 기다리는 인간 존재를 대표한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할 것이라곤 구원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어야 하는 법은 없다.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다해 아버지의 곁에 머물고 싶다. 아버지가 전적인 은혜를 기다리는 동안 혼자 외롭거나 두렵지 않도록 함께 인내하며 기다리고 싶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존엄을, 그리고 나의 존엄을 담담히 지켜 나갈 수 있기를 아버지가 믿고 내가 믿는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이후 글 순서' (제목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4. 합가: 당신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5. 치매 환자에게도 사회생활이 있다
6. 가장 고마운 사람들
7. 동생아, 도와줘!
8. 나는 나의 치매를 맞이할 수 있을까

주)

1) Bourdieu, Pierre. La domination masculine, Paris: Edition du Seuil, 1998, p. 77. 
2) 홍재란, "알츠하이머병과 혈관성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 평가", <대한고령친화산업학회지>, vol2. pp.27-34, p.29.  3
3) Bourdieu, p. 74.  
4) 칼뱅 관련해서는 다음 기사를 볼 것. (박유미, "'기능적 종속'은 여성 차별이 아니라는 예장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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