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 김혜령 부교수가 '페미니스트 신학자와 치매 아버지'를 주제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연재는 격주 월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결국 두 주 전 '치매 도어락'이라는 별명이 붙은 최신식 양방향 도어락으로 현관문 잠금장치를 교체하였다. 사실 작년에도 도어락 교체를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합가한 집에 투박한 디자인이 너무 어울리지 않아 선뜻 마음을 먹지 못했다. 다행히 1년 만에 겉으로는 일반 도어락과 구분이 되지 않는, 꽤 괜찮은 디자인의 양방향 도어락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작년에 교체하지 않은 이유를 디자인 탓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그때 바꾸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알츠하이머 치매인 아버지가 혼자 하루에 두세 번 외출하시는 것이 가족 모두에게 귀찮기는 해도 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제외한 사람을 알아보거나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데에는 상당한 장애를 이미 입었지만, 두어 시간을 걸어 다녀도 문제가 없을 만큼의 건강한 신체적 기능과 공간 인지의 상당 부분을 다행히 잘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아예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3년 전 진단을 받자마자 우리 세 식구(나와 남편, 딸)는 부모님과 새집을 얻어 합가하였는데, 그 뒤로 아버지는 대여섯 번 정도 늘상 다니는 산책 코스를 벗어나 이전에 일하시던 곳을 가시겠다고 나섰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미리 핸드폰에 깔아 둔 통신사의 위치 추적 앱(SK통신사 경우 '친구 찾기' 앱)을 통해 아버지를 매번 옆 동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집에 모시고 올 수 있었다. 물론 '어렵지 않았다'는 것은 매번 아버지를 결국에는 찾고 난 뒤 남은 주관적인 기억에 불과하기에, 치매 환자와 사는 일이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홀로 외출하신 아버지가 지금 어디쯤 있는지 마음을 졸이며 신경을 쓰는 일을 매일 반복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한번 길을 잃으시면 주보호자인 엄마는 물론이고 나나 남편도 엄마를 보조하며 차량을 운전하기 위해 일상이나 업무를 즉시 멈춰야만 했다. 그중 두 번은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거의 대부분은 혼자 산책을 잘 마치시고 집에 돌아오실 뿐만 아니라, 위기 시에도 위치 추적 기술과 경찰의 서비스가 크게 도움이 된다는 걸 거듭 경험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감히' 치매 환자가 계속해서 혼자 거리를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지 기능이 완전하지 않은 환자에 대한 방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한 부분의 일상생활 기능이 남아 있는 사람을 일정 부분 장애를 핑계로 집 밖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았다. 엄마와 나, 남편 그 누구도 외출하겠다고 마음먹은 아버지의 마음을 쉽게 포기시킬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일부 기능 면에서 이미 5~6세의 아동과 같은 인지 판단 능력으로 퇴화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의식과 정체성 면에서도 같은 퇴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능력과 상관없이, 아버지는 스스로 여전히 사회인이라고 여겼으며 가족을 지키는 가장이라고 여겼다. 그런 그를 우리 셋은 집 안에만 가만히 머물게 할 논리도 물리력도 갖지 못했다. 아버지가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강제로 육탄전을 벌이지 않고는 그를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육탄전의 타당한 근거도 전혀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혹여나 우리가 막아선다고 해도 아버지의 외출 의지는 오히려 훨씬 더 강해질 뿐이었다. 한마디로, 나가겠다는 아버지를 도대체 이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올해 늦은 봄, 치매 등급 4등급에서 3등급으로 하향 판정받게 될 무렵부터 아버지의 외출에 대한 우리의 대비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되어야 했다. 4등급과 3등급의 차이는 비전문가나 가족 외 사람들이 보기에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4등급은 '심신 기능의 장애로 일상생활에서 일정 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자'를, 3등급은 '심신 기능의 장애로 일상생활에서 부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자'를 뜻한다. 그러니까 3등급으로의 하향 판정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조금 더 필요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버지 역시 엄청난 수준의 인지 기능 퇴행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함께 사는 가족을 잘 알아보았으며, 컨디션에 따라 대화도 꽤 잘하였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 했고,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녀의 부모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싶어 했다. 심지어 걷는 능력은 오히려 더 좋아진 듯하였다. 그러한 능력과 의지의 지속성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빠진 것은 '숫자'에 대한 인지 능력이었다. 물론 그전부터 이미 간단한 계산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는 했지만, 10까지 숫자를 인지하고 구별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작은 인지력이 훼손되고부터 아버지의 일상 외출은 가족뿐만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의 일상을 방해하는, 생각보다 큰 불안 요인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가 엘리베이터 층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층들도 엉뚱하게 함께 누르고 다른 층에 내려 이웃집 현관 도어락에 손을 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외출. 일러스트 야호 @yaho.woony
아버지의 외출. 일러스트 야호 @yaho.woony

사실 우리 아파트 라인 주민 대부분은 아버지의 질병을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 합가로 인해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때부터 나는 같은 라인 이웃들에게 편지를 돌리며 아버지의 질병을 공개하고 양해를 구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아버지가 이웃들에게 소위 '정상'에서 벗어난 제스처나 말(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주로 아이들에게 예쁘다고 말하거나, 이웃들에게 멋진 분이시라고 칭찬하신다)을 할 때면, "할아버지 알츠하이머예요~"라고 웃으며 말해 왔다. 그 덕분이었을까? 감사하게도 이웃들은 우리 가족이 크게 상처받지 않도록 신중하게 아버지의 문제를 알려주었다. 아버지가 층수를 헷갈려 도어락을 열려고 시도했던 이웃집의 주인은 우리에게 직접 말하기보다 경비실을 통해 사실을 조심스럽게 알려 왔다. 특히 딸들이 있는 집이라 낯선 남자가 도어락을 열려고 할 때는 무서워한다고 이유를 잘 설명해 왔다. 며칠 뒤, 우연히 만난 한 이웃 아주머니는 아버지가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내릴 때 함께 내리셔서 집에 따라 들어오시더니 아내를 찾았다고 하셨다. 이미 아버지의 치매 상태를 알고 있었기에 아주머니는 엘리베이터를 잡아 집 앞에 모셔다 주셨다고 했다. 

이 일이 있자, 엄마는 아버지가 평생 목회를 한 목사임을 이웃들에게 알려 주자고 하였다. 엄마는 그게 아버지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전해지리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답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치매'이건 아니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의 생활양식에 있어서 층수를 헷갈리고 남의 도어락을 누르거나, 이웃집에 들어가는 자는 모두 하나같이 '주거침입죄'라는 멍에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지 기능 중 숫자를 인식하는 기능 단 하나가 더 훼손되었을 뿐인데도, 아버지의 삶은 우리가 사는 공동주택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했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가 혼자 집을 나설 수도, 혼자 집을 들어올 수도 없게 '통제'해야 했다. 아버지로부터 이동의 자유를 박탈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육탄전이라도 벌여서 아버지의 외출 의지를 꺾거나 매번 외출에 동행해야 하는 사태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 교체한 양방향 도어락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어떤 환자는 도어락을 부수기도 한다는데, 아버지는 한두 번 문을 열려고 시도하시다가 안 열리는 걸 확인하게 되면 엄마나 나를 나지막하게 부르신다. 

"어? 이게 이상해. 안 돼. 내가 바보가 됐나 봐."

그러고는 문 앞에서 얌전하게 서서 문 좀 열어 달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자신의 퇴행하는 인지 능력에 대해 "바보가 됐다"고 표현하시곤 하는데, 문을 열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능력의 퇴행은 아버지 입장에서 사위나 손녀딸에게까지 공개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조용히 엄마나 나를 부르는 것이다. 그나마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나도 가장 덜 창피하다고 생각되는 두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제 치매 3등급 아버지와 살기 위해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외출을 원하실 때 함께 1층까지 동행하고 배웅한다. 그리고 20여 분 뒤 위치 추적 앱을 확인하고 아파트 1층 현관 앞에서 아버지를 맞이하여 엘리베이터의 집 층수를 대신 눌러 모셔 온다. 그 방법이 아버지의 박탈된 이동의 자유를 일부라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된 것이다. 영구 박탈에서 임시 제한으로 말이다.

나는 우리 아파트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깊이 갖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이 온전히 아버지나 우리 가족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사는 주거 양식이 층별·호수별로 단단히 고립되어 서로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누가 말 걸어오는 것조차 귀찮거나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거대 도시의 '삭막한 아파트'가 아니라, 이웃 간의 말과 음식, 사람이 오고 가는 것이 늘 일어나는 '마을'과 같은 친숙한 관계가 상존하는 곳이었더라면, 숫자를 인지하는 기능을 잃게 된 아버지의 지금 일상은 숫자를 인지할 수 있었던 몇 달 전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이웃의 관계가 살아 있는 주거 공동체에서 아버지는 통제가 필요한 낯선 사람으로 매번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아이고, 할아버지. 오늘도 이리로 오셨네" 하며 친숙하고도 쾌활하게 맞이하는 동네 이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시 물을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사는 공동체의 생활 세계는 '정상적 생활'이 어려운 질병자들을 통제하면서 일구는 차별적 안전이자 평화가 아닌지 말이다. 누군가를 '집 안'이나 '기관'에 가두어야만 이루어지는 인공적 안전과 평화, 그 매정한 상태를 우리는 이제 함께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치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어차피 일하러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가도 길을 잃고 고생만 하는데 왜 자꾸 집을 나서 배회하려고 하는지, 집처럼 편한 곳이 어디에 있다고 그냥 편히 집에 머무르는 것이 가족이나 이웃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아버지, 왜 자꾸 나가시려고 그래. 나가셔도 할 일도 없잖아. 아버지 은퇴하셨어요. 집에서 엄마랑 편히 쉬시는 게 좋지 않아? 왜 쓸데없이 자꾸 나가시려고 해요?"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치매 환자의 외출은 '쓸데없는' 배회라고 여겼다. 그러나 치매 노인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일본의 안과 의사 히라마쓰 루이가 쓴 <치매 부모를 이해하는 14가지 방법>(뜨인돌)을 읽고, 이제까지 내가 아버지의 외출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배회'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 없이 걷는 것'이지만, '치매에 의한' 배회는 대부분 목적이 있다고 한다.1) 

다만, 환자가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렸거나, 혼자 찾아갈 수 없는 목적지를 설정했을 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어떤 목적이 있어 외출하였지만 인지 기능 저하로 기억력이 약해져서 원래의 목적이나 도착지를 잊어버려 헤맨다는 것이다. 루이는 외출의 목적이 다양하다고 했다. 먼저, 기억 속에 친숙한 이전의 집이나 요양 기관 이전에 살던 집을 찾아 돌아가고자 배회하는 것인데, 이를 귀택원망성歸宅願望性이라고 했다. 다른 경우는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반대로 가족에게 쓸모없는 짐이 되었다는 생각에 외출을 하는 경우다. 또 의외로 집이나 병원 안에서 화장실을 찾지 못해 집 밖을 배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아버지가 이 경우에 속하는데, 평생 근면하게 생활해 왔던 삶의 태도가 환자의 외출과 배회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평생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반복적으로 다녔던 직장이나 식재료 마트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는다는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아버지의 외출이 이웃들에게 초래하는 문제들이 심란하고 불안하여 외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했는데, 아버지의 외출은 그야말로 평생토록 우리 가족을 위해 '쓸데' 찾아 일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근면성에 따른 것이었다. 그제야 기억이 났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셨느냐고 물으면 아버지는 거의 매번 똑같이 대답하셨다. 

"나갔는데, 할 일이 없어. 아무것도 못 하고 왔어. 재미없어."

중절모는 꼭 쓰고 외출하는 아버지의 뒤를 몰래 따라갔던 날들도 생각이 났다. 터벅터벅, 치매 환자 고유의 발걸음으로 거리를 걷는 아버지는 정면을 응시한 채 걸으면서도, 종종 대답하지 않는 길거리 사람에게 말을 걸곤 하였다. 어린아이를 보고 예쁘다고 말을 건네거나, 길가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며 괜찮으시냐고 말을 건넸다. 때때로 신축 오피스텔을 홍보하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한참 이야기를 듣고는, 행주며 휴지를 받아 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매우 신나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밖에 나가서 자신의 쓸모와 쓸데를 찾아 헤맸던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공간의 시학>이라는 책에서, 인간 존재에 대해 집의 '안'과 '밖'을 끊임없이 오고 가는 존재로 설명하였다. 이는 다분히 그와 동시대를 살았으면서 생전에 이미 철학자로서 최고의 명성을 쌓고 있던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대비되는 설명이었다. 

하이데거는 형이상학과 관념론, 유물론이 뒤섞여 있는 서구 철학의 전통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세계 내에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성 탐구를 강조하기 위해 "인간은 세계에 거주한다"라고 곧잘 표현하였다. 그러나 하이데거에게 '집' 자체는 '현존재'(Dasein)로서의 인간이 세계 내에 존재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나의 도구로밖에 인식되지 못했다. 그에게 현존재가 기투된 곳은 집이 아니라 세계였기 때문이다. 즉, 세계 내의 존재로서의 존재 물음이 중요한 것이지, 집의 안과 밖을 오가는 존재로서의 거주 물음이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명사가 아닌 존재의 동사적 사태를 강조하고, '존재하다'를 '거주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집은 인간 존재의 동사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통찰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바슐라르는 집을 단순한 거주의 도구로 보는 데에 반대했다. 집이 아무리 그 크기가 보잘것없이 작더라도, 광활한 세계의 유랑자인 인간에게는 밖에서 돌아올 곳이자 밖으로 나서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의 중심점이 곧 집이며, 그 모든 활동이 집을 오고 가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재 안에 갇힌 자는 항상 거기서 나와야 한다. 존재 밖으로 어렵게 나왔지만, 항상 거기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따라서 존재 속에서는 모든 것이 순환이고, 모든 것이 우회이자 귀환이며 담화이고, 모든 것이 체류의 연속이자 모든 것이 끝없는 노래의 후렴이다."2)

치매 환자가 집을 나서야 하는 이유와 집 밖에서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는 연재 5회 글에서 다룰 것이다. 그러나 이유를 따지기 전에, 인간의 인간다움은 집을 거점으로 하여 집과 세계를 멈추지 않고 오고 가는 반복성에서 근원적으로 다져지게 된다는 바슐라르의 통찰은, 치매를 비롯하여 거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모든 이에게 가족과 사회가 저지르는 폭력을 폭로하는 듯하다. 

아버지의 외출은 치매 환자라는 특수성이 발생시키는 병의 증세가 아니다. 아버지는 세상의 누구나 그렇듯이 인간이기에 집 안과 밖을 오고 가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으며, 그의 신체가 허락할 때까지 그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실천하는 중이다. 배회라는 증상은 다만 안과 밖을 오고 가는 인간 본연의 능력에 장애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 중 누구도, 치매 환자에게 쓸데없이 왜 자꾸 밖에 나가려 하느냐 물을 수 없다. 그런 말은 인간에게 왜 인간이고 싶은지 묻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질문의 폭력이 가장 자주 발생하는 곳은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자란 내 내면임을 나는 부정할 수 없다. 하루 8시간 등하교하듯 다니시는 데이케어센터(치매 환자 주간보호 기관)가 쉬는 주말이면, 아버지는 하루에 네다섯 번도 외출하시려고 한다. 집 안과 밖을 멈추지 않고 오고 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바슐라르의 통찰을 300페이지 박사 학위논문에서 40페이지나 다루었으면서도, 나는 아버지의 외출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아하며 원망해 왔다. 그래서 이 글은 치매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호소문이 아니다. 이 글은 치매 환자가 된 아버지와 하루하루 더불어 살기 위해 애쓰는 내 마음에서 쉬지 않고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삶 그 자체에 대한 경외감으로 아버지와 가족을 다시 이해하고자 하는 생존의 해석학이다. 좌절과 희망이 무한대의 변증법처럼 교차하는 삶의 순간순간, 이 해석학을 통해 나는 아버지의 질병을 이해하고 나의 부족함을 견뎌 보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의 자리에서 혹시나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각자 고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만이라도 줄 수 있다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공개하는 데에 기꺼이 동의해 준 가족 모두에게 큰 보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치매 당사자인 아버지의 동의를 받을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 이 글이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한계임을 나는 고백한다. 

'이후 글 순서' (제목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2. 옷을 벗는 병과 옷을 입는 병, 본질은 다르지 않다
3. 모든 기억이 사라진 자리, 가부장제가 남아 있다 
4. 합가: 당신에게 가장 미안합니다
5. 치매 환자에게도 사회생활이 있다
6. 가장 고마운 사람들
7. 동생아, 도와줘!
8. 나는 나의 치매를 맞이할 수 있을까

주 

1)  히라마쓰 루이, <치매 부모를 이해하는 14가지 방법>, 뜨인돌, 2019, 70쪽.
2) Gaston Bachelard, La poétique de l’espace, Paris : PUF, 1957,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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