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전상건 총회장)가 '성적 지향' 용어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기장 정체성을 담은 '제7문서'를 채택하지 못했다. 기장 총대들은 108회 총회 둘째 날인 9월 20일 오전 회무에서, 새역사70주년특별위원회가 헌의한 '제7문서' 채택 여부를 논의했다. 30여 분간 이어진 논의는 주로 동성애 찬반 논쟁으로 점철됐다. 

'제7문서'는 20년 만에 만드는 기장의 정체성에 대한 선언이다. 기장은 1970년대 '하나님의 선교'를 기초로 한 '4대 문서'를, 1987년 '4대 문서'의 연장선상에서 '제5문서'를, 2003년에는 교단 50주년을 맞아 '희년 문서'를 발표했다. 새역사70주년특별위원회는 지난해 107회 총회에서 작성하기로 결의한 '제7문서'를 이번 총회에서 발표했다. 

'제7문서'는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 △교회의 위기와 기장성의 지속적 실천 △차별 없는 사랑의 교회 공동체 △기후 위기와 생태적 전환 △과학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혁명 △불평등의 극복과 경제 정의 실현 △한반도 평화를 일구어 가는 교회 등 7개 의제와 '제언: 팬데믹 이후 미래 세대를 위한 선교의 새 이름, 마음의 에큐메니즘'으로 구성돼 있다. 

기장 교단의 정체성을 천명한 '제7문서'에는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금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일부 총대들은 이 내용을 문제 삼았다. 
기장 교단의 정체성을 천명한 '제7문서'에는 '성적 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금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일부 총대들은 이 내용을 문제 삼았다. 

정치부는 새역사70주년특별위원회가 헌의한 '제7문서' 채택의 건을 허락하기로 했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일부 총대가 곧바로 몇몇 용어에 문제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세 번째 의제 '차별 없는 사랑의 교회 공동체'에는 "우리 사회에서는 인종, 국적, 지역, 출신, 종교, 학벌, 연령, 성별, 결혼, 성적 지향, 장애 등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 중 '성적 지향'을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총대는 "'성적 지향'의 차별을 금한다는 내용은 애매하고 반성서적이다. 성서와 우리 헌법 제3장 '인간과 죄'에도 '사람은 남녀로 창조됐다'고 돼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또 다른 총대는 "사회는 성적 지향 혹은 성의 다양성이라고 말을 애매모호하게 해서 사람을 몽롱하게 만든다. '동성혼을 찬성하는 건가 아닌가', '동성 간 섹스가 죄인가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알기 쉽다"라면서 "나는 기장이 성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단이 되면 기장 목사로 있지 않겠다. 성경과 신념, 장로교 신조 고백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밟고 지나가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전문에 포함된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7문서' 전문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펼쳐지는 오늘의 세상은 세속화, 세계화, 탈이념화, 다문화·다종교·다인종 중심의 다변화, 성평등, 디지털 혁명, 불확실성, 역사의 종말, 불평등, 이주민과 난민의 발생, 기후 위기 등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고 적혀 있다. 한 총대는 "우리 교단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양성평등인데, 사회적으로 요즘 많이 쓰고 있는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민감한 사안"이라며 '성평등'을 '양성평등'이라고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제7문서'를 그대로 채택해야 한다는 총대들도 있었다. 이강실 목사(전주고백교회)는 "이곳에서 성적 지향의 문제에 대해 찬반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근본적인 지향이다. 때문에 성적 지향성 문제를 가지고 소수의 사람을 배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교단이 예수님의 정신에 어긋나서 차별하는 교단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소모적인 동성애 찬반 논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 총대도 기장 정신은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가 우리 교단 출발 70주년이 되는 해다. 문자주의·교리주의·교권주의에 반대하고, 성경 해석과 신앙 양심의 자유를 쫓아서 이단으로 판정받고 핍박받으면서 세워진 교단이 한국기독교장로회다. 성경을 시대정신에 맞게 해석해야 기장스러운 것"이라면서 "창세기 1장 1절에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 하늘과 땅만 창조하셨겠는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도 여러 가지를 만드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대의 발언에 "그만해"라는 고성과 박수 소리가 뒤섞였다. 

'제7문서' 채택은 동성애 찬반 논쟁으로 번졌다.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장로회
'제7문서' 채택은 동성애 찬반 논쟁으로 번졌다.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대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격론이 오갔다. 논쟁이 이어지자, 한 총대는 성소수자 문제가 신학적·역사적으로 아직 논의되고 있다며 총회에서 이를 결론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제7문서'는 총회 임원회에 맡겨 검토하게 한 뒤 실행위원회에서 다루게 하자고 제안했다. 총회장 전상건 목사도 "여기서 논쟁을 더 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며 총대들의 발언을 제지했다. 이어 총회 임원회가 '제7문서'를 다루기로 하는 개의안에 관해 가부를 묻겠다고 했다. 

언권위원인 전국여교역자회 대표 이혜진 목사가 마지막으로 발언을 요청했다. 이 목사는 "캐나다연합교회나 미국장로교회의 역사를 보면 성소수자 문제는 아주 오랫동안 숙고하고 경청하고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진일보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찬반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아픔을 우리가 어떻게 껴안고 차별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을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전상건 목사는 총대들의 발언을 종결하고 개의안을 투표에 부쳤다. 이를 찬반 투표에 부치는 것이 맞느냐는 이견이 오갔지만, 투표는 그대로 진행됐다. 표결 결과, 찬성 309표 대 반대 94표로 '제7문서' 채택은 임원회로 넘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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