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혐오인지도 모른 채 혐오를 쏟아 내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언젠가부터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주변에 성소수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저렇게는 못할 텐데….' 단 한 명이라도,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다. 주변에 성소수자가 없다는 게 아니라, 있어도 그런 사람들에게는 밝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를 척결의 대상으로 보는 이유를 파고들어가 보면 기저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가 있다. 뿌리는 깊을지 몰라도 탄탄하지는 않다. 교계에 떠도는 온갖 허위·왜곡·과장 정보라는 불량 식품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겠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를 걷어 내고 제대로 된 정보부터 습득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려면, 먼저 성소수자들이 삶에서 어떤 일들을 겪는지 제대로 알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 주변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성소수자가 없다? 그렇다면 올해 6월 출간된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은행나무)를 권한다.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가 썼다. 한채윤 이사는 한국 퀴어 인권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불릴 만큼 25년 이상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로 살아온 인물이다.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돌아보는 그의 첫 에세이집이다.

<우린 춤추면서 싸우지> / 한채윤 지음 / 은행나무 펴냄 / 392쪽 / 1만 7000원

성소수자와 지지자들을 취재하다 보면, 한채윤 이사의 강의를 통해 편견을 깰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들은 무지로 인한 혐오성 짙은 질문에도 포기하지 않고 대답해 준 한채윤 이사에게 감사를 표한다. 책에도 한채윤 이사가 강의할 때 있었던 일이 많이 나오는데, 그의 답변을 보며 내 안에 있는 편견을 되돌아보게 된다. 동성애에 대해 궁금해서 묻고 싶을 때, '동성애'가 들어가는 자리에 '이성애'를 넣어 보면 대부분 묻지 않아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다(166쪽)는 그의 말은 명쾌하다.

한국교회가 반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는 2001년 제2회 퀴어 문화 축제 때부터 기획단이었던 만큼 한국의 퀴어 문화 축제의 역사와 의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글을 읽다 보면 반동성애 사상으로 무장한 개신교인들이 얼마나 집요하고 악랄하게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들이 진짜 싫어하는 노출은 신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노출하는 것이니까"(191쪽)라는 말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놀랍게도 한채윤 이사는 한국 보수 개신교의 역사도 꿰고 있다. 그는 2016년 발간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교양인)에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라는 글을 쓴 바 있다. 여기서 그는 보수 개신교계가 어떤 역사를 통해 공동의 적을 만들어 왔는지 분석한다. <우리는 춤추면서 싸우지>에도 정치권과 보수 개신교계의 밀월 관계를 지적하는 글이 있다. 나아가 한채윤 이사의 성경 해석(!)도 새롭다.

"성경에서 '죄'라는 단어가 언제 처음 등장하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창세기'에서 '죄'는 카인이 아벨을 죽일 때 처음 등장하지 아담과 이브를 내쫓을 때 등장하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는 신에게 잘못을 저질렀을지 모르지만 같은 인간에게 잘못한 적은 없다. 신은 카인이 동생에 대한 질투심으로 표정이 일그어질 때 그의 마음을 알아채시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죄는 무엇일까. 신이 보시기에 인간의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 바로 인간인 인간에게, 인간이 신의 다른 피조물들에게 저지르는 폭력, 혐오, 멸시가 아닐까." (253~254쪽)

"나는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와 억압이 강해질 때마다, 그들이 퀴어 퍼레이드의 행진을 막을 때마다, 항의 민원을 폭탄처럼 던져서 내가 하는 강의를 취소시키려 할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과 신이 금지하고 인간이 허락한 차별 중에서 이기는 쪽은 어디일까. 답을 찾기가 쉽진 않겠지만 내심 믿는 구석은 있다. 오, 부디 주의 뜻대로 하소서. 그 어떤 혐오도 거룩할 수 없음을 믿나이다." (300쪽)

한채윤 이사는 책에서 에이즈, 탈동성애, 동성애의 선천성, 결혼 및 가족제도,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성 중립 화장실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위트와 '귀여움'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세상에 퍼져 있는 오해 섞인 질문들에 성실하게 답변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러한 질문이 가능한 판 자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그는 이토록 편견 가득한 세상에서 편견 없이 사고한다. 그래서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창조질서를 언급하며 동성애자끼리는 아이를 못 낳는데 어찌 생각하느냐는 "조심스럽고 정중한 어조"의 질문에 "저는 신께서 그래서… 이성애자도 함께 만드셨다고 생각해요"라고 경건하게 답했다(176쪽)는 에피소드에서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하핫'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2022년 제23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 한채윤 이사. 사진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무지無知자와 지지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알려 주었다. 기자로서 성소수자들이 당하는 차별이 어떤 것인지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은 뭔가 거대 담론 안에 존재하는 개념과 같았다. <우리는 춤추면서 싸우지>에는 성소수자들이 일상에서 어떤 차별과 모욕, 어려움을 경험하는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성소수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연관된 '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기독교인들이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성소수자도 '사람'이라는 단순하고도 명징한 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인데, 단지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고 누구를 사랑하는지에 따라 이토록 차별당하고 혐오당해야 할까. 그 혐오와 차별에 내가 속한 집단이 앞장서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뿌리 깊은 오해를 걷어 내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게 됐다면,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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