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부정하다'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거부감을 자아낸다. 단순히 그 이유가 지상의 다양한 동물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누고 접촉이나 식용을 금지하는 규정들이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정하다'는 말을 둘러싼 거부감 뒤에는 만물의 존재를 정결과 부정으로 구별하는 행위가 결과적으로 '증오'와 '혐오', '차별'과 단단히 연결돼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정의 의식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이렇게 예민한 감수성에서 볼 때, 구약성서가 아무리 안식년과 희년을 이야기하고, 이방인('게르', 공동번역은 '더부살이하는 자'로 번역함)을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큰 윤리를 말한다고 해도, 너무나 많은 구절에서 다수의 동물과 여성과 병자, 이방인('노크리')을 부정한 존재로 선언하고 있다는 사실은 편치 않은 것일 수밖에 없다. 정결과 부정의 잣대가 작동하고 있는 구약성서 속 존재론은 성별과 지위, 국적, 인종 등을 뛰어넘는 '인권'과 지상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번영을 인정하는 '동물권' 등의 개념에 이제 막 익숙해지기 시작한 현대인들에게, 성서에서 가장 덜어 냈으면 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의학이나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기에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전염병이나 해명되지 않은 인간의 생리 활동, 식용으로서 위생적 섭취와 보관에 취약한 동물, 성적으로 문란한 문화를 담지한 이방 종교와 같은 대상을 우선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보호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라는 설명도 우리는 종종 들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도 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위험할지 모르는' 존재들을 공동체로부터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작동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수의 유익을 우선하여 행동의 원칙을 세우는 공리주의 윤리는 당장 다수의 편에 들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폭력이요, 길게 보면 '역사는 강자의 편'이라는 비극적 역사관으로 독점과 착취를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문화를 후세에 유포하고 만다.

<문학으로 읽는 레위기> / 메리 더글라스 지음 / 이윤경 옮김 / 시대가치 펴냄 / 356쪽 / 2만 2000원
<문학으로 읽는 레위기> / 메리 더글라스 지음 / 이윤경 옮김 / 시대가치 펴냄 / 356쪽 / 2만 2000원

이화여자대학교 이윤경 교수(기독교학과)가 번역한 메리 더글라스의 <문학으로 읽는 레위기>(시대가치)는 구약성서, 그중에서도 레위기와 관련한 현대 기독교인들의 껄끄러움을 덜어 낼 수 있는 인류학적이면서도 신학적인 연구 결과를 보여 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전작인 <순수와 위험>(현대미학사)에서부터 이미 레위기에 대한 사회인류학적 통찰로 상당히 주목받은 메리 더글라스는 <문학으로 읽는 레위기>에서는 현대인들에게 거부감을 자아내는 레위기의 규정들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새로운 견해를 내놓는다.

첫째, 부정한 것들에 대한 접촉이나 식용 금지는, 지상의 모든 사람에게 내린 금지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유효한 것이다(그러니 접촉이나 식용 금지 대상이 본질적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해석될 수 있다).

둘째, 부정한 것으로 지정된 것들의 존재 자체가 열등하거나 부정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은 '봉건적 하나님'이 금지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어기고 하나님의 것을 침범했을 때 표현되는 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제의란 침해받고 공격받은 하나님의 명예를 회복하는 예식이었다.

셋째, '가증스럽다'는 말은 대상에 대한 심리적 증오나 혐오가 당연하다는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봉건적 하나님과 맺은 특수 언약에 따라 '피해야 할 것'을 지시했을 뿐이다.

넷째, 동물의 살생 시 제의를 지내도록 한 규정은 인간의 식용으로 제공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인간이 무자비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 피조물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피조물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지신 것이다.

다섯째, 더글라스는 레위기에서 부정하거나 가증스러우므로 먹지 말라고 한 동물들이 주로 '떼로 몰려다니는 동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기존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는 '떼 지어 다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가 '번식'이나 '출산'의 뜻을 동시에 가졌다는 점을 지적하며, 떼 지어 다니는 동물들도 인간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번성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함부로 해치지 못하게 하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니 떼 지어 다니는 것을 가증스럽게 여기라는 말씀은, 떼 지어 다니는 것들도 하나님으로부터 번성의 축복을 받았으니 인간은 그것들을 피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보존하라는 뜻이다.

여섯째,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없는 것들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비늘이 없는 문어나 장어는 새끼 물고기 떼만큼 취약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 역시 식용이 금지된 동물에 대한 혐오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번성을 걱정하는 하나님의 연민의 마음이 담겨 있는 금지규정이다.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소수자 혐오나 동물 학대, 생태계 파괴에 대해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소수자나 비인간 동물의 권리를 해명하고자 하는 현대 신학(여성신학·퀴어신학·생태신학 등) 연구자들에게 레위기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아주 잘 보여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레위기 상당 부분을 뛰어넘어 읽어 왔던 불편함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이 책은 현대인에게 매우 합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설명을 제공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되살려 내고 있다. 왜 성서 해석이 시대를 따라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다시 행해져야 하는지 매우 잘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레위기의 일반적인 성찰은 욥기까지 이어진다. 하나님의 선택은 제약이 없다. 하나님의 선택은 절대 받을 만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단점은 불행을 설명하지 않는다. 질병이나 불임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레위기 가르침의 이러한 특징은 다른 종교의 징벌적 신정론과 대조된다. 두 염소의 운명은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존재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하나님은 자유롭게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의 예언과 약속은 이스라엘의 운명이 되었다." (308쪽)

김혜령 / 이화여자대학교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기독교윤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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