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기(Biography)로 만들어진 복음서

성서에는 수많은 장르와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누군가 제게 가장 흥미롭고 재밌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 망설임 없이 '복음서 네 권'을 꼽을 것입니다. 이는 제가 신구약성서 66권의 진정한 주인공을 '예수'로 보는 보수적 관점을 지닌 목사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저 복음서가 실제로 재밌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존재,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인 그가 자신을 둘러싼 온 세상과 맞서 싸우며 참사랑과 공의를 가르쳐 주는 이야기만큼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서사는 더 없을 테니까요.

수년 전 마가복음 전체를 강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묵상하던 차원을 넘어서 설교를 위해 여러 두꺼운 주석과 학술서들을 완독하며 깨달은 점은, 복음서가 단지 재밌기만 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네 권의 복음서 중 가장 먼저 나타났으며 가장 짧은 분량으로 구성된 마가복음만 해도 그 문학적 깊이가 어마어마했습니다. 파도 파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책이었지요. 본문을 쪼개고 분석하면서 수시로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대체 복음서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책이었을까? 초대교회 신자들이 함께 남겼던 많은 규범집이 아니라, 왜 복음서라는 이야기책이 정경으로 우리에게 전수된 걸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그리스-로마 전기 장르로 다시 읽는 마가복음> / 권영주 지음 / 감은사 펴냄 / 308쪽 / 2만 2000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그리스-로마 전기 장르로 다시 읽는 마가복음> / 권영주 지음 / 감은사 펴냄 / 308쪽 / 2만 2000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감은사)는 '복음서의 본질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다'라는 단순한 통념을 넘어서, 그것이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전기(Biography)' 형식을 취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전기란 유대 문학이 아니라 그리스-로마 문학의 전유물에 가깝습니다. 물론 구약성서, 특히 역사서의 여러 단락이 전기적(Biographical) 측면을 띠기는 하지만, 한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하나의 책으로 완전히 엮어 내는 '전기'로 발전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복음서는 특정한 존재의 영웅화와 미화, 그를 향한 존경과 숭배를 목적으로 삼은 그리스-로마 전기의 특질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복음서는 반드시 '전기'라는 형식을 취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모든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각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그리스-로마의 전기 형식을 차용한 복음서를 가장 적절히 읽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전기가 지닌 네 가지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며 복음서 본문에 접근하는 것이지요. 시편을 신문 읽듯 묵상하는 사람이 현명한 해석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서를 해석할 때 그 본문을 고유한 장르로 기술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고려한다면, '장르적 읽기'란 필연적인 방법론이지요. 복음서의 장르는 '전기문학'이므로, 우리는 다른 그 어떤 목적이 아니라 복음서를 가장 복음서답게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당시 그리스-로마 전기들이 지닌 장르적 특성을 파악하고 거기에 입각해 네 권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그게 성서를 존중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일 테니까요.

2. '그'가 주인공이다

이 책은 그리스-로마 전기의 장르적 특성 네 가지를 1) 주인공에 대한 집중적 관심, 2) 주인공에 대한 인물 묘사를 통해 독자들을 덕스러운 삶으로 초청, 3) 비교 및 대조를 통한 메시지 전달, 4) 넓은 독자층이라 규정합니다. 2장 후반부에서부터 8장까지는 위와 같은 장르적 특성에 입각해 마가복음의 여러 본문을 어떻게 '장르적 읽기'로 해석해 내는지, 훌륭한 모범을 직접 시연해 보여 주고 있기도 하지요.

다만 이 책은 다양한 학술지에 게재된 저자의 논문들을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기에, 전기의 장르적 특성 네 가지에 해당하는 사례 모두를 마가복음에서 골고루 선별해 예시로 삼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마가복음이라는 책 자체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요. 특별히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다루는 장르적 특성은 1) 주인공에 대한 집중적 관심과, 3) 비교 및 대조를 통한 메시지 전달입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은 사복음서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빈번하게 발견되는 지점인데, 저자는 이러한 대목들을 표면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리스-로마 전기를 탐독하듯 충실하게 장르적 읽기에 매진할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복음서 본연의 맛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고대의 신자들 역시 성서를 읽을 때 그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했을 것입니다. 성서 전체를 하나의 거대 서사로 상정하다면, 그 중심부에 위치한 복음서들이 특별히 '전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저자가 여러 번 반복해서 강조하듯, '전기'는 철저하게 '주인공'의 존재를 부각하고 독자들을 그에게로 집중시키는 문학이기 때문이지요. 놀랍게도 성서에서 전기 장르로 기록된 책은 복음서들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복음서의 주인공이 '성서 전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는 통찰로 발전하게 됩니다.

구약에서부터 쌓여 온 다양한 서사는 마침내 복음서에서 '진짜 주인공'의 등장으로 그 꽃을 만개합니다. 예수 외에 그 누구도, 예수와 동일한 위치를 점유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성서 이야기 전체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 줍니다.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핵심 존재가 '야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이 둘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에게서 병합하며 비로소 하나의 주인공이 된 셈이지요. 그래서 복음서를 그리스-로마 전기의 장르적 맥락에 두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성서라는 거대 서사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해 주는 부수적인 효과 역시도 누릴 수 있으니까요.

3. 예수 이야기에서 우리 이야기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그동안 복음서를 단순히 역사적 사실(fact)에 대한 기록으로 읽거나 혹은 그와 반대로 미신적 세계관을 반영한 비과학적 문서로 봐 온 독자들은, 과거의 선입견을 버리고 복음서를 새로운 시선, 즉 '전기문학적 특성을 두루 갖춘 하나님의 아들 이야기'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마가복음의 여러 본문을 장르에 맞는 독법으로 해석해 가는 저자의 충실함에 경탄하면서, 복음서를 어떤 관점에서 어떤 방식으로 묵상하면 좋을지에 관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는 그것을 무미건조한 역사적 기술이나 황당한 신화가 아닌 하나의 정교한 전기문학으로 보고,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를 둘러싼 여러 비교/대조 기법을 면밀히 관찰하며, 종래에는 그분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고양된 윤리적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저는 현장 목회자로서, 그리스-로마 전기의 형식을 차용한 복음서들이 단지 전기의 장르적 특성만 공유하는 데서 그치는 책들이 아니며, 오히려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있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성서의 대부분은 저항문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고, 기존의 형식과 메시지를 답습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그것을 '패러디'함으로써 색다른 차원의 주제와 메시지로 도약하는 계시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전기들이 지향하는 전형적인 모습의 윤리적 삶을 넘어서는 목적이 복음서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지요. '십자가'라는 새로운 차원의 윤리를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모범적 생애를 살아간 예수의 이야기로 말입니다.

전기는 그 특성상 최대한 넓은 독자층을 타깃으로 둡니다. 이를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복음서들을 연구하며 각각의 배후에 존재했을 것이라 여겨진 '○○ 공동체'라는 이름의 지평을 넘어서, 사복음서는 결국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갈 것을 목표로 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해집니다. 예수 이야기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분이 사랑한 온 피조 세계를 향해 뻗어져 나가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복음서가 전기로 기록됐다는 사실조차 절대자의 섭리 아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흥미롭고 재밌는 성서입니다. 주님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돼야 함을 복음서 자체가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이렇게 복음서의 전기문학적 특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그 특성을 고려한 독법을 제안합니다. 복음서의 장르인 그리스-로마 전기가 지니고 있던 특질 네 가지를 알려 줌으로써 우리가 네 권의 예수 이야기를 읽을 때 어떤 측면에 집중하고 어떤 대목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 상세하게 안내해 줍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16장 전체를 강해했던 마가복음을 다시 한 번 숙독해 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라는 관점에서 말이지요. 설레는 그 새로운 작업에 이 책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좋은 가이드가 돼 줄 것 같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복음서를 진지하게 읽고 싶은 신자가 계신다면, 그 여정을 각자의 자리에서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

정우조 / 부산에 소재한 '광야교회'의 일원이자 예배 섬김이로 살아가는 사람. 호도스신학원 기획팀장이자 강사. 기독교 이단 말고 극진공수도 2단. 부업으로 복싱장 코치 일을 하며 연명 중. 공저로 <지금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읽는 이유>(두란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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