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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3년 여의도 5·16광장과
2023년 상암 월드컵경기장

과거를 기억하고 소환하는 방식은 현재에 대한 이해와 미래를 향한 기대를 보여 준다. 2023년 한국교회는 어떤 과거를 기억하고 소환하고 있는가.

2023년 6월 3일,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 50주년 기념 대회가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1) 50년 전인 1973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지금은 여의도공원이라고 부르는 '여의도 5·16광장'에서 한 시대를 대표하는 복음 전도자이자 부흥사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2018)의 전도 대회가 열렸다. 빌리 그래함 평전을 쓴 그랜트 왜커는 서울 전도 대회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한국 전도 대회의 폐막 집회는 그의 사역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였다. 이 집회는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던 도로 1.6km를 벗겨 만든 여의도 광장에서 진행되었다. 항공 측정에 따르면 총 112만 명이 뜨거운 여름날 그 비좁은 공간에 한데 모여 있었는데, 이는 의심할 나위 없이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밀집한 기독교 모임들 가운데 하나였다."2)

일어난 사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그 평가는 과거를 기억하고 호출하는 이들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3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수만 명이 모인 것은 분명한 의도와 계획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023년에 50년 전 '역사적인 대형 집회'를 호출하고 그를 기념하는 것은 "부흥의 역사를 재연하며 믿음의 다음 세대로 한국교회가 회복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3)

2023년 6월 3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 50주년 기념 대회'의 홍보 영상 도입부. 극동방송 유튜브 채널 갈무리
2023년 6월 3일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 50주년 기념 대회'의 홍보 영상 도입부. 극동방송 유튜브 채널 갈무리
2. 1974년 로잔 언약과 엑스플로 '74

50년 전 빌리 그래함은 서울에만 왔던 것이 아니다. 그는 1974년 7월 16일 스위스 로잔에서 150개국 24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모인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국제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는 그 뒤로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 혹은 '로잔 운동'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리고 2024년 9월 서울에서 로잔 50주년을 기념하는 네 번째 로잔 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제1차 로잔 대회에는 한국에서 조종남·한철하·조동진·김옥길 등 65명이 참석했다.4) 그렇다면 1973년 서울에서 역사적인 전도 대회를 열었던 빌리 그래함이 이듬해 주도했던 로잔은 한국교회에 어떻게 소개됐을까. 로잔을 자랑스럽게 기념하고 이를 부흥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지금의 노력과 달리, 1974년 제1차 로잔 대회를 다녀온 한국 참가자들은 로잔 언약을 교계에 소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박정희 유신체제 등을 비롯한 국내 정세가 그 이유였다. 1974년은 로잔을 다녀온 교계 지도자들에게 그렇게 부담스럽고 위험한 해였던 것일까. 로잔 언약은 한국 교계에서 꽁꽁 숨겨야 할 만큼 위험한 문서였을까.5)

그러나 로잔 대회와 로잔 언약이 함구되던 1974년 여름, 한국교회는 1973년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와 같은 또 하나의 초대형 집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여의도 5·16광장에서 한국대학생선교회(CCC)의 주최로 열린 엑스플로 '74 대회가 그것이다. 여의도 5·16광장이 다시 한번 열렸다. 그 광장은 "예수 혁명"과 "성령 폭발"을 주제로,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라는 표어와 함께 수많은 사람으로 채워졌다.6)

엑스플로 '74 대회 자료 사진. CCC 유튜브 채널 갈무리
엑스플로 '74 대회 자료 사진. CCC 유튜브 채널 갈무리
3. 로잔 언약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로잔을 다녀온 한국 참가자들은 구체적으로 로잔 언약의 어떤 내용을 부담으로 느꼈을까. 아마도 다섯 번째 조항인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짐작'하는 이유는 65명의 참가자들이 무엇에 대해 함구하기로 했는지 알 수 없고, 온건하고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로잔 언약의 15개의 조항 가운데 당시 박정희 유신 정권과의 긴장을 만들어 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조항이기 때문이다.

이 다섯 번째 조항은 복음 전도의 우선성을 주장하면서도, 사회참여와 사회적 책임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에게 '복음의 통전성' 혹은 '총체적 복음'이라는 확장된 이해를 가능케 했다고 평가받는다.7) 로잔을 주도했던 빌리 그래함은 변화된 세계 선교의 지형과 흐름 가운데 '복음 전도'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기대했다. 하지만 로잔은 남미 교회를 중심으로 제시된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제 역시 함께 다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74년 로잔 언약은 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정말 언급하기조차 어려웠던 것일까. 로잔 대회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1966년 베를린 전도 대회를 직접 다녀왔고 1974년 엑스플로 대회를 주도했던 김준곤은 훗날 로잔 언약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인용한다.

"사회 해방이, 사회 구원이 예수의 십자가의 구원의 목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구원력은 이 사회 구석구석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중략) 이런 문제들을 복음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세계의 전 교파를 대표하여 4000명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몇 년 전에 로잔느에서 모였습니다. 그때 로잔느 커버넌트라고 선언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전도에 대해, 특별히 사회 구원과 관계되는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회 행동이 전도는 아니며, 또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절대로 정치 해방이 인간 구원이 될 수 없다.' 굉장히 간략하고 선명하게 전도에 대하여 정의를 내린 줄로 압니다."8)

김준곤의 로잔 언약 인용은 로잔 언약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보인다. 로잔 언약의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물론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또 사회 참여가 곧 전도일 수 없으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 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 부분임을 인정한다. 이 두 부분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교리와 이웃을 위한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을 나타내는 데 필수적이다."

이러한 내용이 어떻게 "사회 행동이 전도는 아니며, 또 인간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절대로 정치 해방이 인간 구원이 될 수 없다"는 식으로, "굉장히 간략하고 선명하게" 내려진 전도에 대한 정의로 읽힐 수 있을까. 한국교회에서 로잔 언약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춰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은폐 혹은 오용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준곤 목사(1925~2009). CCC 홈페이지 갈무리
김준곤 목사(1925~2009). CCC 홈페이지 갈무리
4.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기억할 것이 많은 시대를 산다. 2023년은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 50주년이기도 하지만,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이기도 하다. 한국 개신교 급성장의 외부 요인으로 '반공주의'와 '민족주의'가 논의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박정희의 유신 독재가 계속되던 1970년대 반공 궐기대회를 제외하고 수십만~수백만의 사람들이 여의도에 모인 적은 없었다.

2023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광장에 많은 사람이 모이던 그 시절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가 그 시기에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 시절 부흥의 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묻지 않았던 질문들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간절히 바라는 미래는 1970년대의 모습으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굳이 50년 전 빌리 그래함과 로잔 언약을 다시 들추지 않더라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모였던 제3차 로잔 대회의 주제가 "화해"였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화해가 간절한 곳에서 성장한 한국교회 아니던가. 화해의 복음을 받고, 화해의 사명을 받은 교회가 '반공'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는 데 이보다 더 분명한 이유가 있을까. 지난 50년 동안 '민족 복음화'를 부르짖으며 한국교회가 준비해 온 미래에는 복음 전도와 교회 개척 외에, '화해'를 위한 어떤 구체적인 노력과 준비가 있었을까.

정전협정 후 70년. 조금 더 있으면 100년 전쟁이다. 박정희 시절보다 퇴행하고 있는 남북 관계를 보면서, 지금 한국교회는 어떤 기억을 붙잡으려고 하는지 걱정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붙잡으려는 그 과거는 현재의 질문에도 미래의 방향에도 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성한 /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동북아시아지부 대표.



1) 'Billy Graham'은 '빌리 그레이엄'이 바른 한글 표기이겠으나, 한국빌리그래함전도협회의 표기에 따르기로 한다. 
2) 그랜트 왜커, <빌리 그래함 - 한 영혼을 위한 발걸음>(서울, 선한청지기 2021), 426.
3) 빌리 그래함 전도 대회 50주년 기념 대회 공식 홈페이지
4) 옥성득, 엑스플로 74 전도 대회
5) 로잔 언약을 포함한 로잔 문서들의 의미와 수용에 대해서는 <복음과상황>에 소개된 이강일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6) 옥성득, 엑스플로 74 전도 대회
7) 로잔 언약
8) 김준곤, "보냄받은 자의 사명" (19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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