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4년 로잔 한국 대회에 바란다(상)'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 편집자 주

*글 읽는 순서

- 2024년 로잔 한국 대회에 바란다(상)
1. 총체적 복음의 가치로 이어 온 로잔 운동 50년
2. 왜 로잔 한국 대회인가?
3. 로잔 한국 대회 새롭게 준비돼야 한다.

- 2024년 로잔 한국 대회에 바란다(하)
4. 로잔 한국 대회에 드리는 제언
5. 복음주의 사회 선교 운동가로서의 개인적 소회

4. 로잔 한국 대회에 드리는 제언

1) 한국 대회는 총체적 복음 대회여야 한다.

로잔 한국 대회는 다시 한번 복음 전도, 곧 전통적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중요성을 확인해야 하며, 이는 언제까지나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제한적 신학과 신앙, 편중된 역할과 활동보다 항상 크고 넓다.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전통적 복음 전도의 영역을 뛰어넘는 다양한 영역과 역할을 통해 복음화와 선교가 더 활성화되고 있다는 것이 모든 선교계의 공통된 증언이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굳건한 믿음 가운데서 시대적 요청에 힘껏 부응하는 사회적 책임의 역할은 세계 선교를 위해서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은 로잔 이전의 오해처럼 복음 전도를 대체하려는 세속주의의 도전도, 인간적 유토피아로 하나님나라를 대신하려는 인본주의의 유혹도 아니다.

케이프타운 대회의 신학적 방향성을 이끌었던 크리스토퍼 라이트에 의하면, 교회의 선교 형태는 다섯 가지 선교의 징표으로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복음 전도, 가르침, 긍휼 사역, 정의, 창조 세계의 돌봄 등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총체적 선교는 이처럼 다양한 선교 형태를 갖고 있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소명에 따라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모든 선교에 포함된다. 세계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이해는 각 대회를 거치며 이렇게까지 확장·발전해 왔으나 현재 한국교회와 한국로잔의 이해는 50년 전 존 스토트의 수고에조차 미치지 못한 것 같다. 

2) 시대 상황의 변화를 복음과 선교에 담아야 한다. 

로잔 1차 대회 때는 인간화와 미전도 종족 선교 과제를 포함시키는 발전을 이뤘고, 3차 대회에서는 선교의 범위를 전문인 영역과 하나님의 창조질서까지 포괄해 내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이처럼 시대 변화에 따라 우리의 선교적 이해와 과제는 더욱 넓어지고 깊어져야 한다. 그래서 시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주류 교회는 시대 상황의 변화를 그저 세속화·인본주의·다원주의라는 부정적 방식으로 언급하는 데 치우쳐 있다. '젠더 문제는 전통적 가정 질서를 해체할 수 있어서', '무슬림을 포함한 국내 이주자들에 대한 관심과 포용은 종교다원주의의 위험이 있어서', '환경 보존 운동은 범신론에 물들 위험이 있어서' 반대한다. 우리 스스로에게는 아무리 그럴듯 해도, 기독교가 그저 세상과 변화를 반대하는 집단으로만 기억된다면 그것은 복음의 왜곡이며, 교회의 선한 영향력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런 조짐이 너무 분명하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라는 주님의 중보 기도를 다시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로잔 한국 대회는 국내외의 다양한 우리 시대 과제를 복음 안에 담아내야 한다. 당장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도, 복음 안에서 최소한의 고민은 담아야 한다. 기후 환경 위기, 한반도 평화 위기, 지방 붕괴, 세대 단절과 다음 세대 절망, 젠더 갈등 등 중요한 현안들에 기독교가 무조건적 거부로 일관하지 않고 어떤 생각과 마음을 담아 낼 것인지는 선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3) 비서구권의 역할 증대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자.

교회적·선교적으로 이미 완연히 쇠퇴하고 있는 서구권을 대신해서 모든 면에서 왕성한 모습을 보여 주는 남미·아프리카·아시아 등 비서구권의 성장은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제2회 필리핀, 제3회 남아공에 이어 이번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게 된 것이나, 국제로잔 총재가 한국계인 마이클 오로 선임돼 있는 것 등은 모두 그런 추세의 반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로잔 총재가 단지 한국계라는 사실만으로는, 한국교회와 선교계가 분명히 비서구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지금껏 서구적 입장을 대변해 왔던 행태에서 벗어나는 데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단지 한국 대회만이 아니라 아시아가 함께 개최하는 공동 연대의 장이기도 한 만큼, 남은 기간 장로교 일색의 텍스트 중심 복음 이해와 선교 방식을 반성하고, 고된 삶의 현장의 애환을 더 많이 담아내고, 영적 권세들과의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성령의 은사(방언·치유·축귀)를 구했던 오순절적 관심도 존중해야 한다. 또한 해외 선교뿐 아니라,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수많은 이주민(난민·노동자·유학생·이민자·탈북민 등)을 적극 섬기는 가운데, 본격적 환대 선교의 계기도 만들어 내기 바란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개최한 로잔 제3차 대회 모습. 로잔 운동 홈페이지 갈무리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로잔 제3차 대회 모습. 로잔 운동 홈페이지 갈무리

4) 다음 세대의 입장과 시선을 담아야 한다.

인구학적 변화는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나 사회 문화의 변화를 넘어, 세계 구조의 격변과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도 매우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2030 청년층을 비롯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자란 더 어린 세대들의 출현은 미래 사회의 엄청난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더불어 결혼과 출생이 크게 줄면서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고, 비대면과 각자도생의 문화, '워라밸', '욜로(YOLO)'처럼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환경과 인권 감수성은 높아지고, 민족적·인종적·국가적 경계선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국제성·보편성이 어느 세대보다 높은 세대가 이미 출현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히 찬반이나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지 않느냐',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식의 일방적 판단은 갈등만 키울 뿐이다. 

오히려 급격한 인구학적·세대적 변화를 잘 해석하여 선교적 자산과 사회 발전의 계기로 삼는 게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성세대는 예전처럼 자신들의 익숙한 가치·문화·습관을 어떻게든 전수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다음 세대를 잘 모르고 있음을 인정하고 소통·협력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20세기 이성 중심 사회에서 21세기 감성 및 전인격 사회로 접어든 시기에도 여전히 가부장적 분위기에 익숙한 교회 및 선교계의 분위기를 일신하여, 여성의 시각과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고 젠더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예전처럼 큰 행사에 그저 구색 맞추기로 청년과 여성 몇 사람 데려다 쓰는 방식으로 이뤄지면 결코 안 된다. 한국 대회와 국제로잔에도 다음 세대와 성평등, 지속 가능한 변화를 위한 미래사회위원회를 만들어 지속적인 과제로 담아내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은 세계 교회와 선교에 매우 큰 과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5) 대사회적 메시지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이나 중세 유럽 사회, 또 종교를 국가 정체성으로 삼는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와는 다르게, 현대 세속 사회의 종교는 더는 구성원의 모든 것을 결정 짓는 열쇠나 마침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하나님나라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가 그저 믿는 이들만의 신앙이 아니며, 개인의 마음 안에만 존재하는 내적 고백이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는 여전히, 아니 영원토록 복음이 온 세상에 두루 미치는 좋은 소식이요, 그리스도가 온 세상 모든 영역의 구주임을 고백하고 선포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고백과 선포는 갈수록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더 일반적·보편적 언어로 구성돼야 하며, 겸손한 섬김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겸손으로 하고." (벧전 3:15)

그러므로 로잔 한국 대회가 단지 복음주의자로 불리는 특정한 개신교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으려면 익숙한 우리들의 언어로만 남아서는 안 되고,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메시지가 함께 들려져야 한다. 로잔 한국 대회는 세상과 함께 하나님의 모든 세계의 우려와 기대, 애정과 사랑을 담아내야 한다. 그것은 공격적이지 않아야 하고, 최대한 겸손한 섬김의 형태가 돼야 한다. 지난 6월 '로잔 뉴욕 국제 리더십 회의(L4NY)'에서 유기성 목사가 했던 말처럼 한가하고 태평한 심정으로 큰 행사 하나 잘 치렀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대회가 되지 않으려면, 좀 더 절박하고 겸손한 자세로 로잔 한국 대회의 참된 성공을 위해 더 깊이 성찰하고 절실히 고민해야 한다.

한국로잔 의장인 이재훈 목사가 자신의 말대로 로잔 한국 대회를 준비하면 좋겠다.

"이재훈 목사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복음적으로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없으면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날 것'이라며 '젊은이들을 세상 속에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해 복음적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어야 하는데 그 해답은 로잔 문서에서밖에 찾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2024 한국 로잔 대회 "행사가 아니라 한국교회 변화의 기회로", <뉴스파워>, 2022년 6월 19일 자] 

로잔 운동 공식 로고. 로잔 운동 홈페이지 갈무리
로잔 운동 공식 로고. 로잔 운동 홈페이지 갈무리
5. 복음주의 사회 선교 운동가로서의 개인적 소회

감히 판단컨대, 대다수 한국교회가 과연 로잔 정신을 이해하고 있을까? 하나님나라와 총체적 복음이 과연 한국교회와 선교에서 의식되고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로잔 한국 대회라니 좀 당황스럽다. 당장 내가 주최자가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30년 가량 사회 선교 운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내게는 꽤 중요하게 느껴졌다. 

1) 지금껏 한국의 하나님나라 운동, 총체적 복음 운동, 복음적 사회 선교 운동은 로잔 언약을 성경적·신학적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워 여기까지 왔다.

20년 이상 이 운동을 접해 온 50대 이상 시니어 활동가들치고 로잔 언약에 빚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만 해도 1980년대 엄혹했던 20대 시절 신앙과 현실의 큰 고민 앞에서 복음 안에 세상을 향한 사랑과 책임이 있다는 로잔 언약을 처음 접하고 감격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특히 주류 기독교 사회와 일반 교회로부터 '교회가 왜 세상에 관심을 갖느냐'는 항의를 들을 때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존 스토트와 빌리 그래함 등이 1974년 로잔 언약을 선포하고 어쩌어찌했다"라며 로잔 언약을 정당성의 근거로 활용했 게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첫 대회로부터 50년 가까이 로잔 운동은 여러모로 발전해 왔지만, 지금 한국에서 준비되고 있는 로잔 대회는 자칫 50년 전 존 스토트의 양 날개 균형 복음에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래로라면 한국교회가 '이것이 진짜 로잔'이라는 식으로 오해하게 될까 염려된다. 그렇다면 가뜩이나 한국교회에서 여전히 일부 좌파들의 주장으로 치부되는 하나님나라 복음, 총체적 복음, 복음적 사회 선교 운동은 더욱 그 설 자리를 잃지 않을까 염려된다.

2) 앞으로의 한국교회, 다음 세대 복음 운동의 미래를 생각해도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50대 이상 기성세대 운동가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40대 이하 세대는, 로잔 운동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별 관심이 없고 한국 대회가 열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게 일반적인 정서일 것 같다. 그러나 대다수의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에서 열리는 기독교계 국제 행사의 소식은 널리 퍼질 것이다. 로잔 한국 대회가 착한 부자 어른들의 화려한 잔치로 막을 내리고, 열정은 충만하되 시대 변화와 흐름은 읽지 못하는 불소통의 메시지들만 난무하게 된다면, 복음과 선교에 대한 젊은 세대의 마음은 더욱 닫히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3) 로잔 한국 대회가 복음과 선교를 사랑하되, 시대 변화의 흐름과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과정과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로잔 한국 대회를 준비하는 주최 측과 그들의 수고를 폄하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안으로는 복음의 중심성에 소홀하고 밖으로는 시대·사회와 소통하지 못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 현실을 일신하고, 총체적 복음과 하나님나라에 좀 더 충실한 모습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해 본다. 특히 로잔 운동은 기존의 기독교 대회나 교단 같은 것과는 달리, 강력한 수직적 구조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필요한 주제와 역할을 자유롭게 조직해 활동해 나갈 수 있는 열린 네트워크가 특징이다. 따라서 주최 측의 전체 활동뿐 아니라, 의지만 있다면 전국적·국제적 연대망 속에서 의미 있는 활동과 메시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많다. 로잔 한국 대회가 준비 과정에서 이러한 애정 어린 우려까지 잘 담아내, 한국교회와 세계 선교에 큰 보탬이 되기를 기도한다.(끝)

구교형 / 성서한국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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