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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천사 만나고 온 SSUL'

2023년 3월 9일 오전, 안식월 차 방문한 파리에서 설렌 마음을 품고 베르사유궁전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입장한 베르사유궁전은 정말 황홀했습니다. 벽, 바닥, 창문, 천장, 기둥, 허공에 달린 샹들리에까지, 빈 곳을 찾을 수가 없게 화려한 장식과 그림으로 도배가 돼 있었습니다.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더군요.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니 '앙시앵 레짐(프랑스 구체제)'의 수탈과 착취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백성들은 먹을 빵도 없는데, 왕이 이런 데 살고 있으니 '혁명' 안 하고 배겨?).

아무튼 구경을 잘 마치고 점심 먹을 곳이나 찾아볼 심산으로 구글 지도를 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 봐도 핸드폰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방금까지만 해도 분명히 있었던 제 핸드폰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말로만 듣던 '소매치기'구나, 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잡상인을 포함한 주변 모든 사람이 수상해 보이고, 핸드폰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마다 범인 같아 보이더군요.

심지어 그 핸드폰 뒤에는 제가 유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지불 수단인 신용카드·체크카드까지 꽂혀 있었습니다(미련하게 한 곳에 '몰빵'을 해 뒀던 것이죠…). 프랑스에 도착한 지 이제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사달을 어떻게 할 것인가. 로마·바르셀로나에도 가야 하는데 무슨 돈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관광객 소지품이나 털어 가는 이 나쁜… 아, 다 모르겠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심한 말). 별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분노와 실의에 가득 차서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국제전화를 빌려 곧바로 카드와 핸드폰을 정지시켰지요. 유튜브에 '유럽 핸드폰 분실'이라고 검색해 봤지만 도움이 되는 정보는 없었습니다(하나같이 절대 못 찾는다며 단념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찰나, 노트북을 열어 보니 인스타그램에 DM이 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핸드폰 잃어버리신 분 맞죠?

제가 베르사유 앞에서 주워서 가지고 있는데 마침 한국인이에요."

세상에… 제 핸드폰은 누군가 훔쳐 간 것이 아니라, 무려 '한국 사람'이 주웠던 것입니다(지금부터 이분을 '천사'라고 부르겠습니다). 천사님께서는 제 핸드폰을 줍자마자 '유랑(유럽 여행 커뮤니티 카페)'에 게시물을 올리기도 하셨는데요. 제가 카드를 정지시키면서 발송된 문자메시지를 통해 제 이름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저를 찾아내신 거더군요. 제 이름이 '여운송'이었기에 망정이지, '최승현'이나 '김은석'이었다면 절대 못 찾으셨을 겁니다. 30년 넘게 살면서 손에 꼽게 이름 덕을 본(제 이름에 들어가는 '운'이 'Lucky'입니다) 순간이었습니다.

천사님께서는 제 핸드폰을 베르사유궁전 분실물 보관소에 맡겨 두셨고, 저는 다시 베르사유궁전으로 향했습니다. 핸드폰을 찾은 뒤 천사님께 약소한 사례금을 보내 드리는 것으로 모든 해프닝이 훈훈하게 마무리됐지요. 모르긴 몰라도, 하루에 베르사유궁전을 두 번이나 갔다 온 사람은 저밖에 없을 겁니다.

반나절 동안 그야말로 지옥과 천국을 오갔습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숙소로 돌아갈 때와 다시 찾은 후 같은 길을 걸을 때 기분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어서 자꾸만 웃음이 나더군요. 그날 저는 핸드폰의 생환을 자축하며 비싸고 맛있는 저녁을 먹었습니다. '잃은 양 비유', '열 드라크마 비유', '탕자의 비유'에서 왜들 그렇게 '잔치'를 벌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핸드폰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한편으로는 회개하고 반성도 했습니다. 결국 제 부주의로 핸드폰을 잃어버려 놓고, 애먼 사람들을 의심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한 꼴이 됐으니까요. 지금이야 웃어넘길 일이지만, 그 당시엔 꽤나 진지하게 제 안에 남아 있는 '편견'과 '분노', '남 탓하는 경향'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 동료들의 배려로 3월 한 달간 안식월을 잘 보내고 왔습니다. 유럽 곳곳을 돌아보며 겪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적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집국 운송

처치독 리포트

충격적인 그루밍 성폭력
그리고 언론의 역할

또다시 참혹한 그루밍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거룩한 범죄자들' 기획 취재를 하면서도 수많은 목회자의 성폭력 사건을 접했지만, 이 사건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은, 정말 심각한 수준의 그루밍 성폭력 사건이었습니다.

경기도 화성 ㅈ교회에서 벌어진 한 아무개 목사의 그루밍 성폭력 사건, 그리고 교인들을 가스라이팅해 그들의 열정과 재산을 착취한 사건입니다.

목사의 신격화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의 제목처럼, 한 목사는 거의 신격화되어 교인들을 통제했습니다. 한 목사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고성과 욕설, 폭력이 난무했다고 합니다. 피해자들은 한 목사에게 심리적으로 완전히 지배당한 상태였습니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토로해도 가족조차 믿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요.

얼핏 교인들이 왜 대체 말도 안 되는 사이비 같은 목사에게 빠질까 싶지만, 한 목사는 나름대로 유명한 목회자들과 교류하고 그들을 강사로 교회에 초청하면서 교인들의 의심을 지우는 데 힘썼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들이 우리 목사님과 친한데, 목사님을 의심하는 내가 잘못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도 했고요.

피해자들은 사리사욕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종인 목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헌신하면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헌금하라는 독촉에도 시달렸지만 '심으면 거둘 것'이라는 말이 진짜처럼 들렸다고 합니다.

한 목사는 지난 4월 4일 구속됐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은 모두가 심각한 트라우마와 경제적 피해에 시달리고 있기도 합니다. <뉴스앤조이>는 앞으로 진행될 한 목사의 형사재판을 비롯해 후속 보도도 이어 갈 계획입니다.

사건을 소비하는 언론들 

한편으로, 이번 ㅈ교회 사건은 '좋은 기사'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2주간 취재했는데요. 피해자를 전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교회 그루밍 성폭력의 특성을 확인하면서 디테일한 부분을 맞춰 보고 싶었습니다.

피해자들이 마음을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관련 자료를 하나하나 따져 볼 시간도 필요했고요. 그러다 보니 보도가 지연됐습니다. 기사화 직전에 한 목사가 구속된 탓도 있었죠.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어요. 보도가 나가는 날, 아침에 피해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한 방송국에서 오후 3시 뉴스(유튜브 프로그램)에 이 사건을 보도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잠깐 전화 통화 후 기사를 내보낼 예정이라면서요.

피해자가 저에게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의견을 묻더라고요. <뉴스앤조이>는 단독 보도에 목을 매거나 타 언론사가 먼저 보도하는 것을 경계하지는 않으니, 원한다면 인터뷰에 응하시라고 답했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생각하기에 해당 방송국이 사건을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것 같거나, 피해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않을 것 같으면 신중하게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피해자는 중요한 기사라면 왜 저녁 뉴스가 아닌 유튜브로 다루는지 의아해했고, 이미 저와 오랜 기간 소통해 왔기 때문에, 방송국 보도를 원하지 않고 <뉴스앤조이>가 먼저 이 사건을 보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방송국은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두 번 상처받는 피해자들

제목은 자극적이었습니다. 그루밍 성폭력의 심각성을 강조하기보다 피해자들의 나이, 범행 횟수를 강조했습니다. 목회자가 미성년자 자매에게 수십 차례 성폭력을 가했다는 자극적인 보도는 곧 여러 언론을 타고 퍼졌습니다. 제목과 내용은 대동소이했고, 한 통신사가 피해자들의 고소 시점을 잘못 기재한 것 역시 사실 확인 절차 없이 그대로 베꼈더군요.

피해자들은 기분이 나빴고,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당장 당일 오후에 기사를 내야 한다며 재촉하는 태도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기사화를 원치 않는다고 했는데도 피해 당사자의 이야기 없이 이런 보도를 해도 되는 건지 의아해하더군요. 딸의 피해 사실이 이렇게 자극적인 기사로 유통되는 것을 보며 피해자의 가족들도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기자님에게 메일을 보내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목회자 성범죄 문제가 심각하다는 논조로 좋은 취지에서 접근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군데군데 틀렸을 뿐더러 피해자가 거부를 했는데도 보도하는 게 맞는 건지도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단독 기사를 빼앗겨서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끝에 이내 생각을 접기는 했지만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어떻게든 이런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해 지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기사 제목들은 자극적이었어요. 하나같이 그루밍 성폭력의 심각성을 강조하기보다 피해자들의 나이, 범행 횟수를 강조했습니다. 더군다나 피해자 중 한 명은 미성년자가 아니었으니, 사실관계도 틀렸어요.

피해자들을 위한 보도란

<뉴스앤조이>의 기사는, 그런 기사들에 비해 조회 수도 높지 않고 많이 유통되지도 않습니다. 어느 언론사는 '단독' 기사를 쓰면 인센티브를 준다는데 저희는 그런 것도 없고요. 제 씁쓸한 마음은 오히려 피해자가 위로해 주었습니다.

"다른 데서 기사들이 그렇게 많이 나갔지만, 저는 기자님이 기사를 잘 써 주실 거라 믿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보도가 늦어지면서 스스로도 많이 부담됐던 게 사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는 회사와, 이런 취재 방식이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구성원들 덕에 ㅈ교회 기사를 두 편 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잠시 휴가를 다녀와서 5월부터 다시 ㅈ교회 사건을 비롯한 '거룩한 범죄자들' 후속 취재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늘 응원 부탁드려요.

편집국 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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