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사 수업 2: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 - 신을 향한 사유의 위대한 여정> / 김주연 지음 / 사색의숲 펴냄 / 528쪽 / 2만 4000원
<철학사 수업 2: 고중세 그리스도교 철학 - 신을 향한 사유의 위대한 여정> / 김주연 지음 / 사색의숲 펴냄 / 528쪽 / 2만 4000원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대형 서점 서양철학 서가 앞을 서성이다 우연히 눈에 띄어 집어 든 책. 서양 문명의 두 큰 줄기인 그리스철학과 그리스도교가 만나 얽히고설키며 정치하게 발전해 온 고대·중세의 철학사를 정리한 책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철학 관련 교양과목을 10여 년간 가르친 김주연 박사가 썼다. △그리스도교, 철학을 만나다 △중세, 새로운 사유가 꽃피다 △스콜라철학의 탄생과 전개 △스콜라철학의 황혼 등 4부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의 특징이자 장점은 서술 방식에 있다. 내용 전체가 '철알못' 학생이 질문하면 저자가 답변하는 '문답식' 구성으로 돼 있어, 찰떡 같은 비유와 눈높이 강의력을 보유한 선생님에게 일대일 과외수업을 받는 듯한 독특한 독서 경험을 자아낸다. 그리스도교 탄생기와 교부들의 시대를 거쳐, 플로티노스, 아우구스티누스, 보에티우스, 에리우게나, 안셀무스, 아벨라르두스, 보나벤투라, 토마스 아퀴나스, 둔스 스코투스, 윌리엄 오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 이르기까지 고대·중세 사상사 전반을 훑으면서, '형이상학', '보편논쟁', '신앙과 이성의 관계', '신 존재 증명', '주지주의와 주의주의' 등 굵직한 논쟁을 담은 그리스도교 철학의 맥을 짚는다. 528쪽 분량을 3일 만에 다 읽었다. 그만큼 쉽고도 재미있었다는 얘기.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신성한 지혜에 철학의 옷을 걸쳐 입는 사유의 과정입니다. 계시된 진리를 믿고, 그 믿는 바를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교 정신의 정수가 되었죠. 신앙과 이성은 더 나은 삶을 향해 날아오르도록 해 주는 두 날개와 같았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이 두 날개를 통해 신과 세계를 이해했고, 삶의 의미를 밝혀 나갔습니다. 그 치열했던 사유의 과정이 바로 그리스도교 철학이지요." (서문, 4~5쪽)

"유출론을 들으니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선하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현실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나요? 온 세상이 선한데, 악은 대체 왜 생길까요?
 

오우, 좋은 질문이에요. 악의 문제는 플로티노스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어요. 이 세계가 선한 세계이고 아름다운 질서가 유지되는 최상의 세계라는 게 그의 주장인데요. 그걸 옹호하려면 어떻게든 악의 문제를 해명해야 했죠. (중략)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이렇게 선이 줄어들어 결핍된 상태, 이것이 바로 악이에요. 비록 모든 존재자의 본성은 선하지만, 그 선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악을 포함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플로티노스는 악이 '선의 결핍(elleipsis)' 혹은 '선의 결여(steresis)'라고 규정했어요.


그러면 일자가 아닌 존재자들은 원래는 선하지만, 선이 부족한만큼은 악하기도 하네요?


맞아요. 세상에 악 자체란 건 없고, 다만 선이 부족한 상태가 있는데, 그걸 악이라고 부른다는 거예요. 마치 지혜가 부족한 것이 어리석음이고, 용기가 부족한 것이 비겁함인 것처럼, 악은 선에 의해 부차적으로 정의될 뿐이라는 거죠." (1부 3장 '신플라톤주의와 형이상학', 92~93쪽)

"믿기 위해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는 말은 안셀무스의 유명한 명제입니다. (중략) 이 말은 먼저 믿고, 그 믿음에 바탕을 둔 상태에서 믿는 바를 이해하도록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길을 잃고 만다는 거죠. 믿음은 이성적 이해의 방향과 한계를 제시하고, 타당성을 확인해 줍니다. 따라서 믿음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참된 이해가 가능하다는 의미예요.


그렇게 보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과 같은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신앙과 이성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본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한다고 볼 수 있어요. (중략) 그런데 신앙과 이성의 비중을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점에서는 철학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보에티우스처럼 이성을 더 강조한 사람도 있고 디오니시우스처럼 신앙을 더 우위에 둔 사람도 있어요." (2부 2장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241~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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