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이유진 씨(가명)는 모태신앙으로 30년 가까이 교회를 다녔다. 여성 목회를 해 보고 싶었던 그는 지난해 말 서울장신대학교(황해국 총장) 신학대학원에 응시했다. 이 씨는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개강 3주를 앞두고 황당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울장신대는 합격자에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안내하며 '서약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서약서에는 "입학 전 또는 재학 시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동성애자로 판명될 시에는 퇴학을 포함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본인뿐만 아니라 보호자도 주소 등 신상 정보를 기재하고 이 내용에 서약하도록 했다. 대학원 모집요강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절차였다.

성소수자인 이유진 씨는 결국 신학대학원 등록을 포기했다. 한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여성 목회를 해 보겠다는 꿈도 접었다. 이 씨는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열심히 준비했다. 담임목사님에게 허락도 받고, 노회 추천서를 받기 위해 면접도 봤다. 그런 절차를 모두 밟아 합격했는데, 말도 안 되는 서약서를 요구하는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합격한 이유진 씨가 성소수자 입학을 제한하는 학교 방침 탓에 뒤늦게 등록을 포기했다. 사진 출처 서울장신대학교 홈페이지
서울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합격한 이유진 씨가 성소수자 입학을 제한하는 학교 방침 탓에 뒤늦게 등록을 포기했다. 사진 출처 서울장신대학교 홈페이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순창 총회장)에 속한 서울장신대는 2019년부터 교단 목회자 양성 전문 과정인 신학대학원 교역학 석사(M.div) 입학생에 한해 위 서약서를 받고 있다. 신학과·목회사역학과·사회복지학과·교회음악과·실용음악과가 있는 학부는 성소수자라고 해서 응시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학부 입학생들도 유사한 서약서를 제출하지만 동성애 관련 조항은 빠져 있다.

서울장신대뿐만 아니라 나머지 예장통합 직영 신학대학교 6곳도 동성애자 및 동성애 옹호자의 입학을 제한하고 있다. 서울장신대처럼 모집 요강에는 없지만 서약서를 받거나, 신입생 모집 요강 중 응시 자격에 '동성애자가 아닌 자'를 명시하고 있다. 2017년 예장통합 102회 총회가 "성경에 위배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교단 소속) 7개 신학대 입학을 불허한다"고 결의했기 때문이다.

이듬해 5월에는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들이 성소수자 혐오·차별에 반대하는 의미로 '무지개 행동'을 벌였다. 그러자 103회 총회는 동성애자·지지자의 목사 고시 응시를 제한하는 결의를 하기도 했다. 교단법을 내세우며 이 같은 차별 조항이 생기도록 앞장선 장본인은 고만호 목사(여수은파교회)인데, 정작 자신은 세습을 금지하는 교단법을 어기고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준 뒤 교단을 탈퇴했다.

예장통합 7개 신학교는 총회 결의에 따라 학칙·정관을 규정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는 2018년부터 반동성애 관련 '입학 서약서'를 받기 시작했다. '총회의 동성애에 관한 결의에 반하는 행위를 한 학생'은 징계할 수 있다고 학칙을 개정했다. 호남신학대학교는 2019년부터 신학대학원 모집 요강에 '동성애자 입학 금지'를 명시하고, 학부 모집 요강에도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가 아니어야 한다. 따라서 이에 위배된 사실이 확인되면 입학을 취소할 수 있다"는 '기타 유의 사항'을 덧붙였다. 호남신학대학교는 신학대학교 중 처음으로 학부와 신학대학원 모두 동성애자의 입학을 제한했다.

'동성애자 판명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 내용은 입학생 본인과 보호자 모두 동의해야 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동성애자 판명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서약 내용은 입학생 본인과 보호자 모두 동의해야 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유진 씨는 부당한 서약서 내용을 보고 입학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강 3주 전 거의 통보받듯이 서약서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소수자 입학을 제한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지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성소수자로 적발될 시 퇴학당할 수 있다는 내용을 부모님에게까지 보증하게 하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모태신앙으로 교회에서 30년간 신앙생활을 해 왔다. 이렇게까지 비인도적으로 입장을 밝혀야 하는 게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장신대 측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생처 관계자는 2월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총회 결의 이후, 반동성애와 관련해 교육하고 (입시 과정에) 동성애자 입학 금지 항목을 넣으라는 내용으로 공문이 내려왔다. 교단 소속 목회자를 위탁 교육하는 신학교로서는 총회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규정을 바꾸려면 교단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응시 자격 제한을 모집 요강에 명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목회자 후보생이라면 교단이 (동성애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처음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장신대 신학대학원장 정병준 교수도 총회 지침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의 양심이나 신념의 문제가 제도의 문제와 충돌하게 돼 학교로서도 난처하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학교가 학생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교단은 성소수자를 사랑하는 것과 성소수자가 성직자가 되는 문제를 구별하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교회는 성소수자 목회자를 수용할 수 없는 분위기여서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예장통합 신학교들이 입학생을 대상으로 서약서를 받는 것을 두고 양심의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는 교단 목회자를 양성을 위한 신학교라 하더라도 성소수자 입학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학생·보호자에게 서약서를 요구하고, 입학 제한 사항을 입학 요강을 통해 사전에 명시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학교는 교단의 돈으로만 운영되는 곳이 아니지 않나. 국가보조금을 받는 학교라면, 고등교육법에 따라 차별 없이 교육하고 표현의자유·양심의자유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총회 결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이 학교의 신념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자유 침해에 해당한다. (서약서 제출은) 학교가 학생들에게 동성애 차별·혐오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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