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에는 나를 포함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 240여 명과, 경찰 600여 명, 서울교통공사 직원 5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전장연·경찰·서울교통공사는 왜 삼각지역에 모여 있었을까.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모인 것은 분명하다.

이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1년 전 우리는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을 촉구하며 지하철에 올랐다.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장애인 권리 예산이란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및 자립 생활권 등 장애인이 지역사회 시민으로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뜻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작년 한 해 47차에 걸쳐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 시위를 진행했고, 256일 동안(1월 5일 기준)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했다. 장애인 권리 예산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것을 왜 요구하는지, 삭발 투쟁을 해 가면서, 각자의 차별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시민들에게 알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요구한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분 중 고작 0.8%만이 2023년 예산안에 반영됐다. 1년 넘게 새벽같이 일어나 지하철을 탔는데도 기획재정부는 우리 요구를 반영하지 않고 빈 깡통으로 돌려줬다.

당일 삼각지역은 경찰 통제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진 제공 유진우
당일 삼각지역은 경찰 통제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진 제공 유진우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2월 2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전장연에게 '휴전'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본인도 장애인 관련 예산 증액안 통과를 염원하고 있으니, 국회 예산안 처리 전까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중단해 달라고 한 것이다. 당초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분은 1조 3044억 원이었다. 이후 국회 상임위원회가 49%를 깎은 6653억 원 증액안을 통과했으나, 기획재정부는 이마저도 거부하며 고작 106억 원만 증액한 예산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12월 24일, 국회 본회의는 이 말도 안 되는 예산안을 그대로 통과시켜 버렸다. 이에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를 재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자 오 시장은 12월 26일 '무관용의 원칙'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장연의 시위 재개를 용납할 수 없다며, 서울경찰청장·서울교통공사장과도 논의했으니 지체 없이 신속 대응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더불어 서울시의 운영 기조인 '약자와의 동행'이 불법까지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며, 민·형사상 대응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법적 조치를 다하겠다고 겁박했다.

오 시장에게 묻고 싶다. 전장연이 불법행위를 하는 것이라면, 법이 명시하고 있는 장애인의 권리를 방관한 정부와 서울시의 행태는 불법이 아닌가? 우리가 지하철 탑승 시위까지 벌이게 한 경위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정부와 서울시 아닌가? 그래 놓고 '무관용의 원칙' 따위를 논할 처지가 되는가?

오 시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 1월 1일 MBN '정운갑의 집중 분석'에서 전장연 지하철 탑승 시위를 언급하기도 했다. 전장연과 서울교통공사는 법원이 낸 조정안을 두고 논의하고 있었다. 조정안에는 그동안 '지하철 탑니다'로 공사가 손해 본 금액 3000만 원의 손해배상은 없는 것으로 하고, 전장연은 선전전을 하더라도 5분 내에 지하철을 탑승하라는 것이었다. 전장연은 이 조정안을 받아들였지만, 오 시장은 "1분이라도 늦으면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씩이나 지연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 때문에 전장연·경찰·서울교통공사가 1월 2일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우리는 예고한 대로 지하철을 타려고 했지만,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한 명도 타지 못하게 하겠다며 막아섰다. 이 대치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14시간이나 이어졌다. 그 가운데 전장연 활동가 몇몇은 골절상을 입고 휠체어가 부서지는 등 심각한 폭력을 당했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활동가들은 경찰과 지하철 보안관들의 조롱 섞인 욕설과 반말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나 역시도 경찰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지하철 보안관에게 욕설을 들었다. 분노를 참지 못해 달려들어 따졌지만 제지를 당했고 홀로 울분을 삭여야만 했다.

유진우 활동가가 휠체어에 앉은 채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 제공 유진우
유진우 활동가가 휠체어에 앉은 채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사진 제공 유진우

지하철은 대중교통이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작 지하철을 타겠다는 것인데도 경찰과 서울교통공사는 14시간 동안 우리를 태우지 않았다.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한다', '지하철이 연착될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600여 명의 경찰이 14시간 동안 삼각지역 승강장 1-1부터 10-4까지 온통 막아서는 바람에, 전장연 활동가들은 단 한 사람도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밤 10시가 넘어 해산 의사를 밝힌 후에야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이 사건을 보면, 예수가 당했던 고난과 유사하다. 예수는 그 누구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가 복음을 전했을 때 어떤 이는 미쳤다며 조롱하고, 어떤 이는 거짓 선지자라 음해하고, 로마 당국은 정치범으로 몰아 사형까지 언도했다. 하지만 예수에게는 그를 따르는 무리, 즉 '오클로스(민중)'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 주변에서 혹은 예수가 모르는 곳에서 지지와 연대를 보냈다. 예수가 비난과 조롱 속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을 때도 그들은 예수가 했던 행동을 되새기며 예수 편에 섰다. 마침내 예수는 부활했고, 조롱과 비난을 쏟아 붓던 이들에게 '너희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 줬다.

전장연의 투쟁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시위하지 말고 국회에서 하라', '장애인에게만 권리가 있느냐', 'X신들 육갑 떤다'라며 조롱과 비난하는 쏟는 이가 있는 반면, 우리의 투쟁을 응원하고 연대하는 이들도 있다. 현장에 찾아와서 직접 연대하기도 하고, 후원으로 힘을 보태자는 글도 올라온다. 나는 정체를 모르지만 우리와 함께 투쟁하는 사람들, 지지와 응원을 보내 주는 사람들이 우리의 '오클로스'라고 생각한다.

예수가 골고다에 오를 때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사람, 죽임당하는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람, 예수의 공생애를 함께했던 제자, 예수를 알았지만 가까이할 수 없어 멀리서나마 응원으로 함께했던 사람, 이들은 모두 민중이었다. 힘없고 나약한 존재였으며, 사회에서 배제당했던 민중이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했다.

나는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 권리 예산 투쟁을 이어 가고 있는 전장연과도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 예수가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십자가를 나눠 졌던 사람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전장연의 외로운 투쟁에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 조롱과 폭력의 대상이였던 예수가 민중들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확인했을 때처럼,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조롱과 폭력 앞에 선 전장연이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침내 부활한 예수가 모든 사람 앞에 섰던 것처럼, 전장연이 투쟁에서 승리할 때 '장애인 권리 예산'을 빈 깡통으로 여긴 기획재정부와, 조롱과 폭력을 일삼은 경찰·서울교통공사 앞에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손잡고 "우리가 승리했노라!" 외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유진우 /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해방의 길을 향해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은 '장판(장애인 운동판)'이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겪은 차별과 억압을 장판에서 마음껏 털어내고 있다. 앞으로도 해방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