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한 주민이 선교 단체에서 받은 물품을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한 주민이 선교 단체에서 받은 물품을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성탄절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한 놀이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추운 날씨에 발을 동동거리며 서성이던 사람들은 선교 단체가 주는 20리터짜리 비닐봉지를 건네받았다. 봉지에는 양갱, 빵, 캔 음료 등 먹을거리가 가득 담겨 있었다. 주민들은 봉지를 받자마자 언덕배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처럼 헝클어진 오르막길은 연식을 구분하기 어려운 집(방)들로 빽빽했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동자동 쪽방촌에는 1000여 세대가 살고 있다. 지난해 2월 정부는 주거 환경이 열악한 동자동 쪽방촌의 공공 주택 사업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공공 개발을 반대하는 일부 건물주와 현 정부의 무관심으로 지금까지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봉지를 손에 쥔 60대 남성은 기자에게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교회에서 (물품을) 나눠 줘서 고맙긴 한데, 그것보다 여기가 빨리 (공공) 개발이 되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돈이 없으니까 세 들어 사는 거지, 여긴 사람 살 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자동사랑방 전 대표 김호태 씨도 12월 25일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 예배에 참석해 쪽방촌 현실을 전했다. 그는 "겨울엔 난방이 안 되고 여름에는 비가 새는데, 건물주들은 나 몰라라 한다. 누울 자리도 아주 불편한데 1평에 월 25~30만 원을 내고 산다. 금싸라기 땅에 사는 셈이다"라면서 "정부에 집 지어 달라고 수없이 싸웠다. 작년 2월 정부가 (공공 주택 추진 계획을) 발표하긴 했는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삶의 질이 열악하니 주민 중에 건강한 사람이 없다. 1년에 30~40명이 돌아가신다. 그런데도 정부는 나 몰라라 한다. 따뜻한 거처를 마련해 줘야 할 정부가 외면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자동사랑방 전 대표 김호태 씨는 주거권을 보장해 줘야 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동자동사랑방 전 대표 김호태 씨는 주거권을 보장해 줘야 할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성서한국·영등포산업선교회·옥바라지선교센터·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 단체들은 쪽방촌 주민을 비롯해 제대로 된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취지에서, 올해 성탄절 연합 예배 주제를 '들어갈 방은 없지만 with 쪽방촌 블루스'로 정했다. 25일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예배에는 영하의 날씨에도 400여 명이 함께했다.

이날 현장 증언자로 나선 빈곤사회연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쪽방촌에 사는 분과 홈리스(homeless·노숙인) 등을 포함해 돌아가신 분만 430여 명이다. 집이 없어서, 보금자리가 없어서 한 해 수백 명이 죽어 간다. 새 대통령이 '비정상 비거처 주민 완전 해소'라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정작 새 정부 들어서 영등포 고시원에서 2명이 죽고 반지하에서 수해로 4명이 숨졌다. 무엇보다 이번에 공공 주택 예산이 5조 7000억 원이나 삭감됐다.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예수님도 홈리스로 오셨다. 집이 아닌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성탄절을 맞아)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 봤으면 한다. 집이 없어서 거리에서, 쪽방에서, 고시원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또 집 (전세 제도) 때문에 2년, 4년마다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인들이) 주거권 해방을 위해 함께 싸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연합 예배가 열렸다. 그리스도인 400여 명은 주거권 투쟁을 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 연합 예배가 열렸다. 그리스도인 400여 명은 주거권 투쟁을 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들어갈 방은 없지만'이란 제목으로 설교한 이민희 목사(옥바라지선교센터)는 "가난하기 때문에 삶의 자리를 빼앗기고 내몰려 생존을 위협받는 사건은 도시 안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회는 빈민에 대한 왜곡된 통념을 흩뿌리고 사람들은 성급하게 냉소한다. 집다운 집을 보장받고 삶을 꾸릴 권리가 인권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 쉽게 간과된다"고 했다. 이어 "고시원 화재 참사, 반지하 수재 참사 같은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빈민인 도시형 재난도 반복적으로 발생하지만, 2023년 예산안 중 공공 임대주택 예산은 올해 대비 5조 원이 넘게 삭감된 채로 통과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빈방은 없지만 온 세상의 주님이 태어났다. 빈방은 없지만 양치기들은 성탄의 소식을 하나님의 천사들로부터 직접 들었고 주님을 뵈었다. 우리의 인간됨은 방의 소유 여부나 겉모습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탄의 순간이 방증한다. 이 인간됨, 즉 하늘의 영광을 상상하고 이 땅에서 평화를 구축해 갈 능력은 오히려 방보다 앞선다. (중략) 사회가 말 그대로 '괴랄(괴이하고 악랄)'해도 인간은 고귀하다는 믿음에서 몸과 영혼이 쉬고 삶을 꾸릴 기반이 될 방을 요구한다. 이 요구를 위해 함께 노래하고 투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쪽방촌 주민을 비롯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연대를 강조하기도 했다.

옥바라지선교센터 이민희 목사는 이 땅의 교회들이 현존하는 빈민들을 외면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옥바라지선교센터 이민희 목사는 이 땅의 교회들이 현존하는 빈민들을 외면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주님을 노래하고 삶을 기뻐하는 일로부터,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누리는 일로부터, 무고하게 배척당하고 차별당하는 이가 있다면 절망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구조적인 폭력과 약탈에 유린당하는 이가 있다면 위축되지 말고 고귀한 생명을 챙기라고, 존엄하게 서라고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면 앞서서 연대하고 정의를 실현하라고 촉구한다. 그렇게 우리가 투쟁한다면, 지금 이곳에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경험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민희 목사는 이 땅의 교회들이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로 설교를 마무리했다.

"이 땅의 교회들이 눈을 뜨게 하셔서 빈민의 현존을 외면하지 않게 하십시오. 약탈과 무시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도시 한복판에서 사악한 권위를 고발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 복을 선포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이 땅의 교회들이 주님처럼 소수자, 장애인, 난민, 집 없는 자,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자, 따돌림당하고 외로운 자, 억울한 자를 끝까지 살피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예배 참석자들은 성찬식을 하면서, 가난할지라도 차별과 멸시는 거부하며 시혜와 동정이 아닌 투쟁과 연대로 빈곤을 철폐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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