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탈시설'. 책이나 신문 기사에서 몇 번 접해 보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는 몰랐다. 대충 시설에서 나온다는 이야기 같은데, 애초에 '시설'이 무엇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시설에서 나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탈시설 운동이 2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일면 부끄럽기도 했다. 불과 몇 개월 전 얘기다.

최근 '탈시설 반대'에 열을 올렸던 여당 대표의 인식 수준도 몇 달 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정말로) 뜬금없이 탈시설 정책을 반대하고 나섰는데, 이야기하는 걸 들어 보면 그 자신도 탈시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한국에서 탈시설 운동을 시작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프리웰재단 이사장)의 진단이 맞다. "저는 이준석 대표가 탈시설 정책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경석 대표(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5월 12일 JTBC '썰전 라이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토론한 후 그에게 <집으로 가는, 길 - 시설 사회를 멈추다>(오월의봄)를 선물해 줬다고 한다. 4월 20일 발간된 <집으로 가는, 길>은 실제로 거주인 100여 명이 시설에서 모두 나가 장애인 시설 하나가 폐쇄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향유의집(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은 2021년 4월 시설을 폐쇄했다. <집으로 가는, 길>은 향유의집 거주인과 직원, 운영진(프리웰재단)의 구술 인터뷰 모음집이다. 각 당사자가 탈시설을 어떻게 생각했고 지원했고 실행했는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집으로 가는, 길 - 시설 사회를 멈추다> / 홍은전 외 지음 / 오월의봄 펴냄 / 352쪽 / 1만 8000원

탈시설은 결국 '시설에서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이해에서 출발한다. 주변에 장애인이 없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설령 가족 중 장애인이 있더라도 시설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비장애인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이 삶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결론은 '시설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시설'이라고 할지라도.

"탈시설 반대 세력이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시설을 좋게 바꾸면 된다는 거거든요. 시설은 그냥 시설이지, 좋은 시설은 없어요. 인력이 부족하니까 사람을 더 채용하고 시설을 리모델링해서 부족한 개인 공간을 확보하자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지원 주택과 다르게 시설 공간은 개인 소유가 아니에요. 향유의집에선 나가는 거주인이 늘어나면서 생활재활교사가 거주인보다 많았던 적도 있어요. 인력이 많다고 직원들이 안 하던 걸 시도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거든요." (사무국장 강민정, 128쪽)

"시설 폐지를 반대할 명분이 없어요. 그분들이 선택해서 가는 건데 우리가 왜 반대를 해요? 시설 인권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환경이 얼마나 나빠요. 오래된 건물에서 복작복작 듣기 싫어도 옆 사람들 이야기 들어야 하고, 도움 받는 입장에서 직원들 눈치 봐야 하고. '나 같으면 살고 싶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는 거죠." (생활재활교사 김만순, 153쪽)

"시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상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사람들은 진짜 모르거든요. 지금은 그래도 인식이 많이 달라졌는데, 제가 시설에 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시설이 좋은 일을 하는 곳이라고 했거든요. 갈 데 없는 장애인들 돌보는 곳이라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시설이 어떤 곳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물론 반대 여론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가 입장에서도 자립 생활보다는 예산이 덜 드니까 시설을 환영하겠죠. 부모님들도 대부분 자립을 반대하세요. 그런데 지금 자립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것 같아요." (거주인 한규선, 227~228쪽)

"시설이 아무리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아요. 감옥 안에서 자유가 아무리 있으면 뭐 해요. 외출을 해도 정해진 시간에 들어와야 하고. 그런데 나오면 그런 거 하나 없거든요. 사람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오로지 나 편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시설에서 나온 걸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안 들어간다고 생각했고." (거주인 김동림, 240~241쪽)

시설에서의 삶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게 됐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 사는 게 가능해?" 향유의집 스토리는 탈시설이 현재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물론 제도도 미비하고, 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도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기상조라고 미룰 수는 없다. 김정하 활동가의 말처럼, 탈시설은 장애인 한 명 한 명의 삶을 가장 극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시급하다.

"하지만 저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절차적 민주성을 확보한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100명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51명만 동의해도 민주성을 확보한 건가요? 저는 이런 논리로 가면 탈시설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요. 탈시설은 인권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는 다수의 동의를 확보해야 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에요. (중략) 제일 중요한 건 시설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에요. 그들의 1년, 하루하루가 중요해요. 그들의 인생을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얼마만큼 동의해야 충분한지 알 수 없는 그런 모호한 논의로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생각해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및 프리웰재단 이사장 김정하, 87쪽)

<집으로 가는, 길>이 흥미로운 이유는, 시설 거주인, 종사자, 운영자 각각 어떤 시각으로 탈시설을 바라봤는지 알 수 있고, 이 각 당사자 사이에도 여러 스펙트럼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향유의집 탈시설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사람도, 탈시설에 대해 잘 몰랐다가 동의하게 된 사람도, 탈시설 기조에는 동의하지만 방식에 있어서 의견 차를 보였던 사람도, 끝까지 반대했지만 결국 탈시설을 선택하게 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는 탈시설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이준석 대표만이 아니다. 기독교계는 사회복지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여러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당연히 거기에 종사하는 기독교인도 많다. 지금까지 국가가 미처 감당하지 못한 영역을 대신해 왔던 이들의 수고를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비리를 저질러 사회의 지탄을 받는 시설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일하는 기독교인이 더 많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시설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할 때가 아닐까. <집으로 가는, 길>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독교인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