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벌써 올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습니다. 역시 올해도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갔네요.

저는 지난주 데이터 저널리즘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언론사가 한때 유행이었던 데이터저널리즘팀을 이제는 축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라고 하네요.

국내 언론사들이 많아 봐야 3~4명이 한 팀인 그런 조직마저 축소해 버리는 게 현실인 반면, 주요 외신들은 데이터저널리즘팀 예하 저널리스트만 수십 명에 이를 정도로 이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요. 

얼마 전 <로이터>에서 이태원 참사의 원인과 경과를 인터랙티브 기사로 만들어 제공했는데, 그걸 보면 이태원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보다 명료하게 이해되더라고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인데도 '뉴스타파'를 제외하고는 이런 시도를 한 곳이 없었다는 게 국내 언론사가 데이터 저널리즘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하는 이유는 단지 화려한 인포그래픽을 보여 주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거룩한 범죄자들' 기획에서 확인했듯, 개별 사건을 여러 개 모아 놓으면 시스템과 구조의 근본적 이유가 보입니다. 

다만 그걸 위해서는 수많은 노가다(…)가 필요해서, 가성비가 좋지 않고, 돈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겠죠. (언제나 그랬지만) <뉴스앤조이>가 돈 안 되는 이런 '저널리즘'을 지속해 나간다는 게 구성원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

이를 위해 다 같이 책임을 분담하고 어려운 현장 취재까지 자원해 도맡는 기자들이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내년에도 이런 보도를 계속할 수 있도록, 저희 기획에 많은 응원과 지지(와 홍보)를 보내 주시면 좋겠습니다!

편집국 승현

<뉴스앤조이> 인터랙티브 페이지 
· 비하인드 스토리 - 여성 안수 투쟁사
· 거룩한 범죄자들: 2013~2022 목회자 성범죄 10년 취재

처치독 리포트

 성폭행을 '영적 체험'이라고 세뇌한 목사 

2주 전, '거룩한 범죄자들' 보도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또 한 명의 목회자가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판결문을 살펴봤는데, 그간 수없이 읽어 온 판결문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죄질이 나빴습니다. 

특히 가해자 권 아무개 목사의 범행 패턴과 그가 피해자에게 했던 발언들은 <뉴스앤조이>가 보도해 온 목회자들의 '그루밍 성범죄'와 소름 끼칠 정도로 흡사했습니다. 2021년(사건 발생 시점 기준)에 교회 안에서 또다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에 참담함을 넘어 무력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기사에 전부 담지 못했지만, 피해자인 김서연 씨(가명)에게 들은 이야기는 매우 방대하고 구체적이었습니다. 서연 씨가 피해 상황에서도 권 목사의 발언을 녹음해 뒀기 때문인데요. 

아이러니합니다. 서연 씨가 평소 권 목사의 말을 녹음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권 목사가 교인들에게 자신의 발언을 빠뜨리지 않고 지키라는 비상식적인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니까요.

가해자 권 목사는 과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에서 총회장을 지내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화 사역"을 펼친 인물입니다. 

"전 세계 89차 330여 회 문화 공연과 긍휼, 건축, 세미나 사역… 대통령 표창(2016 대한민국 자원봉사 대상), 대한민국 국회의장상(2017), 서울특별시 표창(2015).…"

실제로 그의 이력에는 화려한 문구가 나열돼 있습니다. 정치인들과도 가까이 지냈나 봅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권 목사의 책 추천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권 목사의 활동 이면에는 지나친 권위주의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탈퇴한 교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권 목사는 "과거 삼각지기도원에서 하나님한테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이 나를 모세처럼 쓰실 것이라고 했다"는 등 예언을 즐겨 하면서 자신을 왕처럼 떠받드는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옛날에 순결을 바치겠다고 하는 청년이 많았다. 그 정도로 너희 선배들이 나한테 충성했다. 너희도 나한테 충성을 다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며 스스로를 신격화했다고 합니다.

권 목사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갓 스무 살을 넘긴 여성 교인을 그루밍했고, 성폭력을 저질렀습니다. 범행 당시 권 목사는 70세에 가까운 나이였습니다.

2019년 10월 시작된 범행은 서연 씨가 사건을 공론화하기까지 1년여 동안 수시로 벌어졌습니다. 

권 목사는 누구보다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던 서연 씨를 신앙적인 언어로 조종하고 고립시켰습니다. 

"이게 진정한 다바크(결합)다."
"넌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른 청년들과 레벨이 달라졌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라."
"목사님의 수제자가 돼서 많은 영혼을 먹여 살려라."

권 목사의 말은 서연 씨의 녹음 파일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처럼 지속되던 권 목사의 범행은 서연 씨가 우연한 계기로 교인 D에게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멈추게 됐습니다. 

서연 씨는 권 목사가 명명한 대로 '영적 체험'을 들려준 것이었지만, D는 단번에 성폭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서연 씨가 범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력했습니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D 덕분에 서연 씨는 교회 청년부에도 사건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교인들의 2차 가해는 권 목사의 범행만큼이나 참담했습니다.  교인들은 "교회를 음해하려는 거짓말"이라면서 서연 씨와 D를 이단으로 몰아갔습니다. 

특히 권 목사의 부인 고 아무개 목사는 서연 씨와 부모님이 동석한 자리에서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교회 측 입장을 듣기 위해 고 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새로운○○교회를 찾아갔는데, 한 부목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합니다.

"요셉이 감옥 간 게 진짜 잘못해서 갔느냐. 자녀끼리 싸우면 두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사실관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 (권 목사님도) 요셉처럼 분명 억울한 부분이 있다. 우리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나도 딸을 키우고 있다. 목사님도 목사님이지만, 그 아이(피해자)의 미래도 있다. 걔는 뭐가 되겠느냐."

교회의 뻔뻔한 태도를 보고 있자니, 도대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저와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법원이 권 목사의 유죄를 인정했는데도 말이죠(권 목사는 10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됐습니다). 교회와 연관된 한 언론인은 <뉴스앤조이> 보도 이후, 후원을 할 테니 기사를 내려 달라며 '거래'를 제안해 오기도 했습니다. 

서연 씨는 결국 사과 한마디도 받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났습니다. 사건 이후 해리 증상을 동반한 외상후스트레스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정작 교회를 떠나야 할 성범죄자와 그 추종자들은 가만히 있고, 사건을 공론화한 피해자들이 끝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쫓겨나야 하는 현실에 분노가 치밉니다. 교회 공동체는 언제쯤 머리를 맞대고 정의를 위한 해결책과 피해 회복을 모색할 수 있을까요. 절망만 깊어집니다.

권 목사는 여전히 범행을 뉘우치지 않는 모양새입니다. 얼마 전 대형 로펌을 선임해 항소장을 접수했습니다. 교단도 권 목사와 새로운○○교회를 대상으로 이렇다 할 사후 처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권 목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호헌 교단은 올해 4월 권 목사를 제명했다고 주장했지만, 노회 홈페이지에는 권 목사와 아내 고 아무개 목사가 노회 임원들과 찍은 봄 정기회 사진이 버젓이 올라와 있습니다.

서연 씨와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피해 사실을 언론에 공론화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수없이 반복돼 온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의 외침이 겹쳐 들렸습니다. 

한국교회 내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를 왜 막지 못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요. 교회 안에서 피해를 겪은 이들을 정말 내버려 둘 건가요.

편집국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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