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성 목사의 성폭력 범죄를 정의롭게 치리하지 못한 교회·노회·총회는 사회의 비난과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대의 화살촉이라 자부했던 기장 공동체는 정의·평화·생명의 거룩함을 잃어버렸다. 지금도 피해자들의 증언이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방관해 온 기장 공동체 또한 진실로 회개하고 사죄해야 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성희롱·성폭력근절을위한대책위원회 김영선 목사)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강연홍 총회장) 소속으로 '중국 이주 노동자의 아버지'라 불린 김해성 목사(중국동포교회)는 2016년 교인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자 자진 사임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교단에서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고, 5년 뒤 다시 중국동포교회 담임목사직에 복귀했다. 

김해성 목사의 성폭력 사건은 기장 교단 안팎에 충격을 줬다. 사건 자체도 논란이 됐지만, 김 목사가 제대로 된 사과나 입장 표명도 없이 자진 사임하고 복귀하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노회와 교단은 '이 정도면 됐다'는 식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김 목사는 지금도 교단의 비호 속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목회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기장 총회가 있는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김 목사의 추가 성폭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에는 또 다른 피해자 2명이 30년 전 김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혔다. 피해 사실을 접수한 교계 단체들은 김해성목사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김해성목사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10월 31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여운송
김해성목사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가 10월 31일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뉴스앤조이 여운송

공대위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김해성 목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단체 및 교단 구성원들에게도 2차 피해를 당했다. 피해자 A 목사는 1990년대 초반 기장 민중교회운동연합(기장민교) 수련회에서 김해성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피해자 B 목사는 1990년 초반 지역민중교회운동연합(지역민교) 정기 모임 이후 김해성 목사에게 강제 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이 오래전 일을 공론화하고 나선 이유는, 반성 없는 김해성 목사를 규탄하고 성폭력 문제에 안일한 교단 대응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공대위는 성명을 통해 △김해성 목사는 범죄를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 △김해성 목사는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선교 사업에서 물러날 것 △피해자들이 속했던 민중 교회 공동체는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성차별적·위계적 조직 문화를 개선할 것 등을 촉구했다.

<뉴스앤조이>는 공대위를 통해 피해자 A 목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1월 4일 만난 A 목사는 은퇴 후 치유 사역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는 "정의를 바랄 뿐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하고 싶지 않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줬다(또 다른 피해자 B 목사와의 인터뷰는 성사되지 않았다).

개인보다 조직 우선하던 때
성폭력 피해 사실 말할 수 없었다

A 목사는 1980년대 초 신학교를 졸업한 뒤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저임금·고강도 노동환경 속에서 어용 노조를 민주 노조로 바꾸는 데 역할을 담당했고,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우다 구속돼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A 목사는 출소 후 1980년대 말 서울 구로동에 ㄴ교회를 개척했다. A 목사가 노동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가 세운 ㄴ교회도 민중 교회가 됐고 기장민교에서도 활동했다.

A 목사는 1990년대 초, 기장민교 수련회 장소였던 유성 대온장에서 김해성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A 목사에 따르면, 당시 술자리가 있었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A 목사는 멀찍이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후배 목사 하나가 선배 목사 머리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모두가 취한 상황에서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급기야 사람이 두들겨 맞아 실려 나가는 폭력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 틈을 타 김해성 목사가 A 목사를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 성폭력을 저질렀다. A 목사는 누구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죠.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려면 세부 상황을 증언해야 하잖아요. '사람들이 술을 마셨다, 그냥 마신 정도가 아니라 누가 누구 머리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업혀 나갈 정도로 두들겨 팼다, 이런 난장판이 벌어졌다' 하는 얘기를 정확히 해야 하는데, 이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외부에 알려지면 조직에 타격을 줄까 봐…."

당시만 해도 개인보다 조직의 명예가 훨씬 중요했고, 특히 총화 단결을 강조했던 민중 교회 운동 조직 내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는 쉽지 않았다. 목사들이 모여서 술판을 벌인 것도 모자라, 폭력 사태에 성폭력까지 벌어졌다는 것을 외부에 얘기하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김해성 목사는 조직 내에서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촉망받는 '남자'의 범죄 사실을 '여자'가 밝히는 건 예전에는 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해성 목사는 그때도 이미 상당한 일들을 했죠. 김 목사가 주민교회 전도사를 하다가 산자교회를 세웠는데, 이해학 목사님(주민교회 원로)이 엄청 지원해 주셨어요. 누가 뭐래도 김해성 목사가 지원도 많이 받고, 누구보다 활발하게 일을 했던 건 사실이었죠. 자기 일에서 눈에 띄는 성과도 냈고요."

결국 A 목사는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야 했다.

"내가 일을 되게 열심히 했어요. 다른 교인들도 우리 ㄴ교회에 오면 감동해서 후원을 많이 했고요. 그랬더니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 'A 목사가 후원을 다 거둬 가니까 우리는 후원받을 게 없다'는 식의 시샘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와중에 성폭력을 당했으니 더더욱 누구한테도 말을 못 했죠. '그냥 (김해성 목사) 얼굴 안 보는 쪽으로 해야겠다' 하면서 몇 년을 버텼어요. 그러다 결국 기장민교를 탈퇴했죠."

A 목사가 탈퇴했을 때 기장민교에서는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똘똘 뭉쳐서 가야 하는데 탈퇴해 조직에 흠집 낸 배신자라면서 A 목사를 비난했다고 한다. 그는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을 묵묵히 삼켰다. 1999년 ㄴ교회를 사임하고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이어 갔다.

10년 만에 목소리 냈는데…
'돈 봉투' 주며 입막음 시도

지난 2000년대 초, 기장 총회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강사로 나섰다. A 목사는 노동운동을 할 때 안면이 있던 김 전 장관을 만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김해성 목사가 외국인 노동자 선교 사례를 발표하고 있었다.

"그때 김해성 목사가 한참 날릴 때였어요. 상도 받고 매스컴에도 많이 나오고. 사례 발표하는 걸 보는데 순간적으로 꼭지가 돌더라고요. 가만 지켜보다가 발표하고 나오는 입구에서 '김해성, 너 나한테 사과도 안 해?'라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주변 사람들이 봤을 때는 내가 미친 사람이었겠죠. 10년간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으니 영문도 몰랐을 거고요. 누구한테나 박수받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한테 갑자기 욕을 한 거였으니까요.

 

바로 다음 날 김해성 목사가 나를 찾아왔어요. 사과하더라고요. 잘못했다고는 하는데 형식적인 사과였죠. 그래도 가족한테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김○○ 목사(김해성 목사 아내)를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다음 날 같이 온 아내 김 목사가 눈을 흘기면서 '우리 남편이 뭘 어떻게 했는데요!'라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가라고 했어요…. 그냥 가더라고요."

이 일이 있고 나서야 A 목사는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서 주변인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해성 목사 아내 신학교 동기가 있어요. 이 아무개 목사 아내인데, 그 사람한테 '내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처음으로 털어놓았어요. 그랬더니 깜짝 놀라면서 '언니, 내가 김해성 목사를 만나 볼게' 하더라고요. 얼마 후 그 사람이 김해성 목사랑 같이 왔어요.

 

저는 기장 홈페이지에 공개 사과를 하라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이게 공개되면 기장이 어떻게 되겠냐', '세상이 기독교를 얼마나 손가락질하겠냐', '자본주의에서는 보상을 돈으로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이건 합의금이 아니라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배상을 하는 거다'라면서 1000만 원을 내밀었어요. '언니, 이건 우리 셋이 무덤까지 묻고 가는 거다'라면서…."

A 목사는 김해성 목사가 후배와 함께 나와 돈 봉투를 내밀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IMF 이후 생활이 힘겨워진 터였다. 10년 넘게 끙끙 앓아 온 성폭력 문제로 더는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없었다. 무너진 일상을 회복해야 했던 A 목사는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제가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죠…. 이걸 어디 가서 더 얘기할 수도 없었고요. 가장 믿었던 민교 사람들도 이미 저를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돈을 건넨 그 사람을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당시로서는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걸 거예요. 이해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었죠."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A 목사는 목회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2007년 교회에서 사임한 후 교단 내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기관에는 A 목사가 성폭력을 당한 현장에 있었던 후배들이 있었다. 물론 후배들은 A 목사의 피해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A 목사는 그들과 마주할 때마다 당시 일이 생각나면서 고통스러웠다. 결국 2012년 기관에서도 사임하고 치유 사역을 시작했다.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땀 흘려 일했다.

또 다른 피해자의 등장
"교단 최초 여성 총회장도
가해자 편들더라"

A 목사는 2016년경 우연히 김해성 목사가 교인을 성추행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일면식도 없는 한 목사의 페이스북에서 <뉴스앤조이> 기사를 본 것이다. A 목사는 그때의 충격을 이렇게 기억했다.

"나는 주변이랑 인연을 끊고 살았으니까 전혀 몰랐는데… 우연히 기사를 본 거예요. 놀랐죠. 기가 막혔어요. '이건 진짜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그때 개인적으로 넘어가지 말고 막았어야 했는데 용기가 없었구나'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요. 그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어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목사님 페이스북이라서 '나도 겪었다'는 얘기까지는 못하고, '이런 사례가 또 있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길게 썼어요.

 

그 댓글을 여러 사람이 봤던 것 같아요. 육순종 목사님(기장 전 총회장)이 전화를 걸어 오셨어요. 저한테 '이거 말고 다른 사례를 알죠?'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알죠' 하고 말았어요. 아마 그게 저라는 걸 눈치채셨을 거예요. 목소리가 하도 떨려서…."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 목사는 페이스북에 댓글을 게시한 이후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주위에 증언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위로와 지지가 아닌 가해자 김해성 목사 옹호였다. 

"2016년 사건이 터졌을 때 김은경 목사(익산중앙교회)에게도 연락했어요. 나도 김해성 목사한테 당했다고. 그런데 '김해성 목사 딸들을 좀 생각해 봐라. 딸들이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랑 친했거든요. 근데 김해성 목사랑 더 친했던 거죠(<뉴스앤조이>는 이 증언에 대한 김은경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응답을 피했다 - 기자 주).
 

또 다른 목사는 제 얘기를 듣더니 '1000만 원 받았으면 됐지 뭘 그러냐'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김해성과 김 목사 아내를 배신할 수가 없대요. (가해자를 두둔할 수밖에 없는) 자기를 좀 이해해 달라고 했어요." 

김해성 목사는 2016년 불거진 성추행 사건 이후 자진 사임했다. 그러나 5년 만에 담임목사직에 복귀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김해성 목사는 2016년 불거진 성추행 사건 이후 자진 사임했다. 그러나 5년 만에 담임목사직에 복귀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당시 김해성 목사는 성추행 사건이 논란이 되자 소속 서울남노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피해자는 김 목사를 노회에 고소했는데, 노회는 이를 기각하고 김 목사의 사직을 받아 줬다. A 목사는 생업 문제로 김 목사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저 교단이 일을 잘 처리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교단에서 아무 징계도 받지 않았고, 5년 뒤 중국동포교회 담임목사직에 복귀했다.

"김해성 목사가 담임목사직에 복귀했다는 얘기도 작년 11월에서야 알았어요. 기가 막혔어요. 게다가 당시 총회장이 된 김은경 목사가 임직식에 참석해 설교하려고 했다더라고요. 한국 장로교회 최초의 여성 총회장이라는 사람이, 김해성의 성폭력 전력을 나한테 다 듣고도 거기에 참석하려 한 거죠. 몇몇 여성 목회자의 반발에 가로막혀서 결국 다른 총회장 출신 목사가 설교하러 갔다고 들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더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11월에 바로 기장 총회 성폭력대책위원회(대책위)에 제가 당했던 성폭력 사건을 다뤄 달라고 제소했어요. 그런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고소·고발 시효가 지났고, 가해자도 사과했고, 제가 돈을 받았으니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그렇게 교단에서 제 사건을 다루지 않기로 결론을 내 버렸어요. 제 얘기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요. 당시 대책위원장이 이미 결론을 다 내려 놓고 나를 위로하러 오겠다길래, 볼 이유 없으니 오지 말라고 했죠."

A 목사는 교단 안팎에서 여러 차례 피해를 호소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 지원도 받지 못했다. 지난 10월 31일 공대위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진행한 김해성 목사 규탄 기자회견에는 이런 피켓 문구가 붙었다. '30여 년간 그 어느 공동체도 다루지 않았다.'

A 목사의 피해 호소는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 어떤 공동체도 A 목사를 도와주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A 목사의 피해 호소는 번번이 가로막혔다. 그 어떤 공동체도 A 목사를 도와주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기가 막혔어요. 그렇지만 이게 현실이죠. 사실은… 한신대 출신이 기장의 주류를 이루긴 하는데, 기장 안에는 아류들도 있어요. 저도 그 아류예요. 예전에 7년간 한시적으로 야간 학생들을 모집했어요. 제가 그 야간 교역과 출신이에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해야 했으니까요.
 

처음부터 아류니까 함께 섞이지 않는, 끼워 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몇 십 년이 지나서 교단 내 기관 사역을 할 때도 'A 목사님은 한신 출신이 아니라면서?'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까요. 지난 30년 동안 어느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주류가 아니라 아류이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얘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던 A 목사는 이 대목에서 북받치는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나마 제가 하는 일이 바빠서 망정이지, 이 일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일단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일(성폭력 사건 해결)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지 못해요. 일상이 타이트하게 돌아가니까. 이 일이 없었다면 아마 미쳐 버렸을지도 모르죠."

민중 교회 역사 자료집 보니
성범죄 이력 쏙 뺀 김해성 목사
피해자는 기록 자체 없어 

주류·아류를 떠나, 민교 집단 내에서 A 목사의 활동 내용 자체가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A 목사와 ㄴ교회는 어려운 시기 민중과 함께하며 숱한 역사를 써 왔지만, 정작 민중 교회 역사 자료집에는 기록 한 줄 남기지 못했다. 반면 김해성 목사의 공로는 빼곡하게 수록됐다. 성폭력 전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기장민교가 1990년대 중반에 민중 교회 역사를 정리한다고 '기장민교 10년사'를 냈어요. 그런데 저와 ㄴ교회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기록 한 줄 없어요. 그래도 기장은 다른 교단에 비해 기록을 잘 남겼다고 하는데도, 애초에 내가 기장민교 활동을 한 적도 없는 것처럼 역사에 이름 한 줄 남아 있지 않은 거예요. 배신자라고. 김해성 목사 얘기는 당연히 들어가 있고요.
 

지난 8월 23일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에서 '민중 교회 운동 30년 역사 정리 집담회'를 했는데, 그 자료집에도 김해성 목사의 공로가 빼곡히 적혀 있더라고요. 역시 제 이름은 전혀 없었고요. 사실 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민중 교회 운동 하던 사람들이 모인 집담회 준비 단톡방에 저를 초대조차 안 해 줬거든요. 제 활동을 아는 다른 여성 목사님이 저를 초대해 줘서 그제서야 알게 됐죠.
 

그 자료집을 보고 단톡방에 문제를 제기했어요. '저는 김해성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해서 탈퇴했는데, 그것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닌가요?' 하고요. '김해성 목사가 저지른 성폭력에 대한 내용도 넣어야 한다', '나와 ㄴ교회 활동도 역사에 들어가야 한다', '기장민교는 내게 사과해야 한다', '김해성 목사가 받은 한신상도 박탈해야 한다'라고 요구 사항도 분명히 전달했고요. 그런데 다들 대꾸도 없다가 나중에는 기장 사람들이 단톡방을 다 나가 버리더라고요."

단톡방에 올린 A 목사의 요구 사항. 이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단톡방에 올린 A 목사의 요구 사항. 이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공대위는 10월 31일 기자회견 당시,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이 배포한 자료집의 편향성도 문제 삼았다. 이와 관련해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원희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집담회 당일 배포된 자료는 현재 배포를 중지한 상태다. 당시 실무적으로 바빠서 배포 자료에 실린 발표자의 원고를 꼼꼼히 살피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지금은 사건이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해당 자료는 내용을 삭제하든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루든 조치해서 차후 수정본을 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A 목사는 올해 봄 은퇴했다. 그는 은퇴식 날 낭독한 답사의 마지막 단락에 "자살하지 않고 은퇴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고 썼다. A 목사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아직도 김해성 목사와 민교 집단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기다린다. 또한 김 목사가 담임목사직과 선교 사역에서 물러나기를 요구한다. 제대로 된 지원은커녕 2차 피해를 입힌 교단을 향해서도 가해자 엄벌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한다. 그것이 A 목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정의'다.

"사람들이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해야 한다는 얘기 많이 하잖아요? 물론 교육도 중요하죠. 그런데 저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폭력을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가 있어야 성폭력을 안 하죠. 김해성 목사처럼 5년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복귀하고, 교인들은 우리 목사님이 최고라고 하고… 이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요.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도 없애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단 차원에서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도 필요해요. 저 같은 경우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지만 일상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고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괜찮다고 해서 모든 피해자가 다 괜찮은 건 아니니까,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교단이 나서서 도와야 해요." 

피해자의 폭로에도
입 닫은 김해성 목사
"내가 지고 갈 짐"
11월 20일 중국동포교회 주일예배 모습. 김해성 목사는 교단의 비호 속에서 지금도 목회를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11월 20일 중국동포교회 주일예배 모습. 김해성 목사는 교단의 비호 속에서 지금도 목회를 이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뉴스앤조이>는 A 목사의 증언과 관련해 김해성 목사의 입장을 듣고자 11월 20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중국동포교회를 찾아갔다. 교회 건물은 공간마다 교인들로 북적였다. 이날 김 목사는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다. 수십 명이 예배해 참석해 김 목사의 설교에 귀를 기울였다.

예배 후 만난 김해성 목사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인터뷰) 안 하겠다. 다 알면서 뭘 물어보나. 내가 지고 갈 짐이다"라고 짧게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기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은 없느냐고 거듭 물었으나, 김 목사는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할 뿐 끝내 답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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