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서울고등법원이 김삼환 목사의 아들인 김하나 목사의 명성교회 위임목사·당회장 지위를 인정했다. 서울고법은 김하나 목사에게 명성교회 위임목사 지위가 없다고 선고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명성교회 정태윤 집사)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10월 27일 판결했다.

이날 공개된 판결문을 보면,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차문호 재판장)는 명성교회의 김하나 목사 청빙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순창 총회장) 총회 헌법 28조 6항 '세습금지법'을 위배한 게 아니라는 취지의 판단을 내놨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2019년 9월 예장통합 104회 총회에서 통과된 '수습안'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예장통합 총회는 수습안을 통해 김하나 목사가 2021년 1월 1일 이후 명성교회에 취임할 수 있도록 했다. 재판부는 김삼환 목사가 2015년 12월 31일 은퇴했고 김하나 목사가 2021년 1월에 취임했으니, 전임자가 은퇴한 지 5년이나 지난 후에 부임한 것이므로 전임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시점이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전임 목사 은퇴 후 다른 위임목사가 청빙되었거나 장기간 경과하면 전임 목사의 영향력이 없다고 상정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총회가 교단 헌법에 대해 최종적 해석 권한이 있기 때문에, 수습안이 "부당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존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판단은 예장통합 내 세습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세습금지법의 "해당 교회에서 사임(사직) 또는 은퇴하는 위임(담임)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라는 조문에서 '은퇴하는'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명성교회 세습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은퇴한 목사'가 아니라 '은퇴하는 목사'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세습 옹호자들은 법조문을 '은퇴한 목사'로 규정하면 담임목사 자리에서 물러난 지 10년, 20년이 지난 목사의 아들도 청빙할 수 없게 되는 것이냐면서, 이미 '은퇴한' 목사에 대해서는 세습금지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펴 왔다. 따라서 2015년 은퇴한 김삼환 목사의 뒤를 이어 2017년 김하나 목사가 명성교회 후임자로 온 것은 세습금지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소송 과정에서 명성교회가 제출한 서면에 담긴 논리와도 유사하다. 애당초 예장통합 수습안 결의 당시, 수습안이 '유권해석'이라는 표현은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 6월 명성교회가 법원에 낸 서면을 보면 "총회는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의미에서 (수습안) 결의를 하되, 그 헌법 해석상의 논란은 '적어도 명성교회의 경우에는 2021년 1월 1일부터 김하나 목사의 위임목사 청빙이 가능하다'는 최종적인 '유권적 해석'을 제시했다"는 표현이 있다.

세습금지법이 교회의 청빙할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논리는 101회기 총회 헌법위원회 등 예장통합 내에서 세습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펴 온 것이기도 하다. 101회기 총회 헌법위는 세습금지법에 대해 "그리스도 정신이 정한 내용에 합당치 않고, 장로교 정치 원리 등에도 합당치 않아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런 사실을 인용하면서, 2019년 8월 명성교회 세습을 무효라고 판결한 총회 재판국은 이런 헌법위원회의 유권해석에서 벗어난 판결을 했다며 명성교회 세습 관련 재심 판결을 부정하는 듯한 인상도 보였다. 총회 재판국이 "이미 퇴임한 목사의 '후임 담임목사의 청빙 없이' 바로 그의 직계비속을 후임자로 청빙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의 장단에 관계없이 문제가 된다"고 판단한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한 것이다.

앞서 1심 재판부인 서울동부지법은 "재심 판결은 교단 최고 재판 기관의 결정으로서 최종적이고 확정적인 효력이 있다고 할 것"이라면서, 명성교회가 김하나 목사를 청빙한 것은 "재심 판결에 따라 무효이고, 교단 헌법에 반해 중대 명백한 하자를 가진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김하나 목사를 다시 청빙한다 하더라도 재심 판결 취지에 따르면 여전히 무효라고도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판단을 전부 뒤집고, 아예 재심 판결을 한 2019년 8월 총회 재판국의 구성 자체도 부정하는 듯한 판결을 내렸다.

명성교회 세습 무효를 판결한 총회 재판국원들은 2018년 9월 103회 총회에서 전원 새롭게 선출된 이들이었다. 기존 재판국원들이 있었지만, 구성원 중 명성교회 출신 목사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총대들의 '불신임'을 받아 전원 교체된 것이다. 예장통합에는 과거부터 재판국원의 뇌물 수수 등 불신임 사유가 있으면 종종 재판국원을 전원 교체해 왔다. 그런데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런 전원 교체가 교단 헌법 위반이라면서 "교단 헌법을 위배해 위법하게 구성된 재판국"이라고 지칭했다.

사법부와 달리 교단 재판국(재판위원회)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떨어진다. 목사나 교회가 문제를 일으켜도 권력이 있으면 교단의 제재를 피해 갈 수 있다. 사진은 2018년 2월 27일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의 명성교회 부자 세습 재판 당시.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울고법 재판부는 명성교회 세습을 무효로 판결했던 103회기 총회 재판국의 구성과 판결 내용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번 서울고법 재판부의 판단은, 김삼환 목사가 명성교회 설립자로서 교회 내에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는 점, 은퇴 후에도 원로목사로서 설교와 각종 회의 등을 주재하면서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해 온 점, 김삼환 목사 은퇴 직후부터 교회가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하기 위해 움직여 온 점 등을 모두 고려하지 않았다.

또한 총회 재판국 구성 자체가 위법하다는 이번 판단대로라면, 2018년 103회기에서 1년간 활동한 총회 재판국이 내린 모든 판결이 위법하다고 볼 소지가 생기는 등 여러 논란이 예상된다.

원고 정태윤 집사(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를 대리한 정재훈 변호사(법무법인 소명)는 10월 27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재판부가 명성교회 손을 들어 주려 해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판결문을 보니 명성교회 쪽 주장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방적인) 내용이 나왔다"면서 허탈해했다.

정태윤 집사 측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정재훈 변호사는 "재판부가 세습 문제를 바로잡아 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는데 모두 무너졌다"며 "대법원에서 허술한 논리들을 바로잡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 주기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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