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영화 '도쿄 소나타'(2009)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필자 주
1. 소통의 단절

영화 '도쿄 소나타'(2009)에서 중요하게 표현되는 이미지 중 하나는 소통의 단절입니다. 학교 선생님 코바야시와 초등학생 켄지, 켄지와 피아노 선생님 카네코, 코바야시와 켄지의 어머니 메구미, 강도와 메구미. 아버지 류헤이와 두 아들 켄지·타카시까지. 이들의 대화는 모두 상대방에게 부딪혀 튕겨 나가는 듯합니다. 심지어 상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고 건네는 말들마저 우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상대의 무심함에 부딪혀 곧바로 튕겨 나옵니다.

첫 시퀀스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아버지 류헤이는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깁니다. 아내 메구미는 남편이 실직하고 무료 급식소에서 배급받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남편의 자존심을 위해 모른 척합니다. 큰아들 타카시는 미군에 지원하고 싶다며 부모의 허락을 구하지만 아버지에게 거절당하자 집을 떠납니다. 작은아들 켄지는 급식비를 유용해 부모님 몰래 피아노를 배웁니다.

영화 '도쿄 소나타'(2009) 포스터.
영화 '도쿄 소나타'(2009) 포스터.

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비밀을 가진 채 대화를 피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형태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것은 주인공 가족뿐만 아니라 일본 중산층 가정이 보편적으로 처한 상황으로 묘사됩니다. 류헤이가 무료 급식소에서 만난 옛 친구 쿠로스 역시 실직한 지 3개월이 됐다는 사실을 숨긴 채 집에서 직장인 행세를 하며 살다가 결국 아내와 함께 자살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불안정 고용 형태로 변해 가는 노동시장의 세계적 상황과 관련 있습니다. 일본인 1명의 임금으로 외국인 3명을 고용할 수 있는 상황, 고용 형태가 유연하게 변해 가는 시장의 흐름은 대기업 총무과장이었던 류헤이에게도 실직의 칼을 겨눕니다. 류헤이가 권고사직을 당할 때 마주한 임원의 차가운 표정은, 그가 일본어를 잘하는 중국인 지원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과 대조됩니다.

류헤이는 무료 급식소와 고용 지원 센터를 전전하지만, 집에서는 가장의 권위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켄지가 피아노를 배우지 못하게 호통을 치거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미군에 입대하겠다는 큰아들 타카시에게 가족을 지키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 류헤이의 권위는 호통과 거짓말이 아닌 그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했던 아내 메구미의 침묵으로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메구미마저도, 아들을 때리고 가족에게 무관심한 채 자기 체면만 생각하는 류헤이의 모습에 질려 대화도 잘 통하지 않는 강도와 일탈을 합니다.

2. 비어 있는 식탁

켄지의 네 식구를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것은 식탁입니다. '도쿄 소나타' 속에서 식탁은 소통의 무능함과 불가능성이 드러나는 장소이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가족 재현의 가능성이 담긴 장소로 사용됩니다.

영화 내내 식탁은 정물처럼 가족의 일상 곁에 멈춰 있습니다. 가족 구성원이 모이고 흩어지고, 서로 거짓말하고 비밀을 숨기는 동안 식탁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정물처럼 정지해 있던 식탁의 이미지가 영화 속에서 갑자기 샘처럼 솟아오르듯 부각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비어 있는 식탁의 모습, 두 번째는 마지막 시퀀스의 환상 속에 가족들이 한데 모여 분주히 밥을 먹는 식탁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눈속임과 체면치레, 어머니의 침묵과 한숨, 갈등을 피하려 대화하지 않는 아들들의 태도가 어우러져 켄지의 가족은 겉으로는 평범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식탁의 이미지는 표면적으로나마 별 탈 없이 기능하는 가족의 정상성을 담보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곧 아무도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식사에 참여할 수 없게 됩니다. 무임승차를 하려다가 구치소에 끌려갔던 켄지가 집으로 돌아와 식탁 앞에 섰을 때, 켄지는 호통치며 정상적인 가부장을 연기하던 아버지의 억압 대신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그곳엔 자신을 걱정하고 돌봐주는 어머니도 없습니다. 

비어 있는 식탁은 영화 속 인물들이 많은 사건을 거듭한 끝에 도달하게 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마치 이미 간직하고 있던 본래의 이미지처럼 솟아오릅니다. 그 이유는 비어 있는 식탁이 서사적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기존의 가족을 존속할 수 있던 동력이 사라진 것에 대한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소통이 안 되는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던 식탁. '도쿄 소나타' 스틸컷
소통이 안 되는 가족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던 식탁. '도쿄 소나타' 스틸컷
비어 있는 식탁을 바라보는 켄지. '도쿄 소나타' 스틸컷
비어 있는 식탁을 바라보는 켄지. '도쿄 소나타' 스틸컷
3. 정지된 가족

소통의 단절, 소통의 무능함, 비어 있는 식탁 등은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가져온 궐위의 이미지로 볼 수도 있습니다. 기존에 이어 오던 생활이 끝장에 처했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은 어디서부터 망가진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영화는 이들이 망가진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행복한 결말로 이야기를 맺습니다. 다시 식탁을 소환합니다. 비어 있던 식탁에 뺑소니 사고를 당한 류헤이, 강도에게 납치당한 메구미, 구치소에 끌려 갔던 켄지가 하나둘 모여 평화롭게 식사를 나눕니다. 한편에서는 미군에 들어가 중동으로 파병 갔던 타카시가 귀국하게 됐다는 뉴스가 나오고, 잘 지내고 있다는 그의 편지도 도착합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켄지는 시로야마음대부속중학교의 입시 오디션에서 천재적인 피아노 실력을 보여 줍니다. 류헤이와 메구미는 감동과 사랑으로 켄지의 연주를 감상하고, 켄지의 아름다운 연주에 수많은 방청객들이 넋이 나갑니다. 켄지의 가족이 오디션장을 떠나는 순간까지 모든 방청객이 그들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영화의 결말이 남기는 짙은 여운 속에서도, 모든 것이 잘 해결됐다는 개운함은 느낄 수 없습니다. 영화의 결말 부분은 종반부까지의 전개 방식과 달리 모든 갈등을 생략한 담담한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이 연출 방식은 인물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외면한다는 점에서도 독특합니다. 지금까지 보여 준 소통의 무능함을 극복하는 방식은 생략하고, 분주한 식탁과 드뷔시의 연주곡 같은 평화롭고 행복한 이미지를 제시할 뿐입니다.

'도쿄 소나타'는 켄지의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했다면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었을지 말하는 대신 문제의 현상만을 해결합니다. 그를 통해 급격히 정지된 가족의 모습 이후 새로운 가족의 이미지가 없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합니다. 정지된 가족의 모습은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기존의 안락한 공동체가 불가능해졌다는 궐위의 징후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안락한 가족의 정서를 다시 부활시키면서 끝맺는 방식을 사용해, 오히려 안락한 가족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따스한 가족 장소 형성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