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가부장적 문화에 저항하는 교회 여성 네트워크 '움트다(WUMTDA)' 활동가들이 '여성주의 예배'를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여성주의 예배 이론을 비롯해 교회 안팎의 다양한 현장 경험, 여성들의 연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배, 여성과 움트다'는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애독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지금부터 움트다 '수움'과 '채움'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움트다에서 4년간 함께해 온 '수움'과 '채움'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수움 / 채움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 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듬해 봄에 목사가 됐고, 그해 가을 한 달간 뉴질랜드 교회에 인턴으로 떠나기 직전이었어. 내가 아는 어떤 분이 널 찾아가 도움을 구해 보라고 해서 우리 마라탕 가게에서 만났지. 그날 우리가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한 건 우리 둘의 만남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줄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는 거야.

채움 / 응, 수움아. 난 기억해. 그날 너는 계속해서 "나는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했어. 그 말이 계속 내 마음에 머물더라. 첫 만남이었고 낯설었지만, 네가 말하는 '새로운 일'이란 뭘까 호기심이 생겼어. 

수움 / 난 그렇게 뉴질랜드로 갔어. 여행도 아니고 교회에서 일을 하러 말이야. 내가 용감하게 이 나라 저 나라 다녀 봤지만, 채움이 너도 알잖아, 나 영어 울렁증 있는 거.(웃음) 역시나 백인들만 잔뜩 있는데 입도 잘 안 떨어지고 처음에는 주눅이 들더라. 근데 나 거기서 이상하고도 새로운 경험을 했어. 나는 백인들의 공간에 당돌하게 들어간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동양인 여자, 한 달 뒤면 떠날 사람, 이방인 중의 이방인이었는데, 점점 내가 이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 있지. 심지어 나중에는 내가 오래전부터 이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같은 생각까지 들었어.

어느 날 목사님이 나에게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했어. 내 영어 실력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거지 싶더라. 번역기를 돌려 가며 열심히 설교를 준비했지만 아무래도 엉터리였을 텐데, 목사님은 내 설교 원고를 하나하나 고쳐 주고 격려해 줬어. 아무튼 용기를 내서 설교를 했는데 웬일이니, 성도들이 내 설교에 귀 기울여 공감해 주고 칭찬의 말들을 해 주는 거야. 그때 용기가 생기더라. '아, 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나는 그냥 나인 걸로 충분하구나' 하는 마음에서 솟아나는 용기 말이야.

뉴질랜드 성에이든교회(2017년). 사진 제공 수움
뉴질랜드 성에이든교회(2017년). 사진 제공 수움

채움 / 우리 처음 만난 날 나는 네게 내가 쓴 책을 선물했고, 수움이 너는 그 책을 뉴질랜드 사람들에게 선물하겠다면서 가져갔지. 그날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너를 떠올리니 나도 네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신학대학원 3학년 필수과목 중에 한 학기 내내 학생들이 다양한 예배를 준비하고 그 예배를 실제로 드려 보는 수업이 있었어. 내가 속한 조는 '성찬 예배'를 맡게 됐어. 나는 그 예배에서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얼마나 다채롭고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분인지, 그분의 살과 피가 어떤 의미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조원들도 내 생각에 동의해 줬지.

우리는 엄숙한 학교 채플을 온통 빨간색으로 채웠어. 성찬 집례는 내가 맡았는데 나는 앞치마를 입고 성찬을 인도했어. 나에게 주님의 살과 피, 떡과 잔이 놓인 곳은 무덤이 아니라 '식탁'이었어. 나는 정성껏 음식이 차려진 식탁으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초대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싶었어. 남성 목사들만 성찬을 집례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성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것 말고도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그날 우리 예배는 그야말로 잔치 같았고, 교수님도 학우들도 이 새로운 시도를 환영해 줬어. 그때부터였던 거 같아. 예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됐던 게.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으로 허기진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성찬. 사진 제공 채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으로 허기진 모든 사람을 초청하는 성찬. 사진 제공 채움

수움 / 채움이 네 성찬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날 마라탕 가게에서 함께한 식사가 우리 둘에게는 일종의 성찬의 시간이었구나 싶어. 성찬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되고 또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잖아. 우리의 만남도 그랬던 거야. 그러고 보니 우리 벌써 4년째 '움트다'에서 함께하고 있네. 움트다가 이런저런 시도를 해 왔지만 우리는 그 시작부터 함께 예배를 드렸잖아. 그러다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팀이 생겼고. 일찍부터 전도사·목사로 살아온 나는 나름대로 꽤 다양한 교회·예배를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주의 예배는 새로운 자극이자 충격이었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신선함이었다고나 할까.

여성주의 예배가 뭔지 몰라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함께 예배를 준비하고 드리면서 매번 예기치 못한 은혜를 경험했어. '우리는 같은 생물학적 성을 지닌 여성이고 이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했으니 함께하자'는 단순한 생각은 통하지 않았어. 나는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여성주의 예배를 통해 우리가 같은 여성이지만 서로 얼마나 다른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내 안에 숨어 있던 틀과 고정관념도 비로소 알게 됐어.

움들은 대부분 오래 교회를 다닌 사람들이고 전도사·목사도 많잖아. 교회에서 예배를 얼마나 많이 준비하고 또 드려 봤겠어. 근데 내가 보기에 우리에게 빈틈이 너무 많은 거야. 깔끔하게 일 처리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틈이 자꾸 보이는 게 불편했어. 근데 지금은 그게 우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다 '다르니까' 당연히 생기는 틈이라는 걸 알아. 시간이 지나 서로를 알아가고 배려하면서 그 틈이 조금씩 메워지는 걸 보는 게 감사해.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모두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관념이 아니라 경험으로 배워 가고 있어. 함께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소하고 감동적인 그러나 묵직하고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아.

채움 / 나는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를 드리면서 고민이 더 많아졌어. 수움이 너도 알겠지만, 작년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에 참석한 움들이 예배 후 설문에서 이런저런 제안을 했잖아. 앞으로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가 어떤 예배를 기획하고 함께 드리면 좋겠는지 물었더니 △미혼모나 여성 노약자 등 배려가 필요한 분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 △아프거나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예배 △춤추며 드리는 예배 △여러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드리는 예배 △마음의 아픔이 있는 여성들을 위한 회복과 치유의 예배 △여성이 나오는 본문을 여성의 시각으로 설교하는 예배 △설교 시간에 참석자들과 함께 말씀을 풀어 나가는 예배 △이별 예배 △집 잃은 난민들을 위한 예배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하는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답들이 돌아왔어. 

예배팀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에 참여한 소위 '회중' 움들의 의견이라 더욱 소중했어.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품고 풀어 나가야 할지겠지. 갈수록 숙제가 더 많아지지만 그만큼 꿈이 더 생겨나. 움들과 함께하면 할 수 있을 거야.

수움 / 움트다의 첫 여성주의 예배는 2020년 6월이었지. 코로나19가 번지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었어. 그 이후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와 워크숍은 계속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잖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생소하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기회이기도 했던 것 같아. 온라인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참가자들에게 '예배 키트'를 미리 택배로 보내기로 했잖아. 움들이 택배 작업을 한다고 우리 집에 모여 앉아 다 같이 수다 떨었던 시간이 지금 생각하니 새삼 소중하네.

우리는 택배 상자 안에 각자가 성찬을 할 수 있는 1인 성찬 세트를 비롯해 여러 물건을 넣었어. 택배를 받은 움들은 예배를 드리기 전에 각자의 공간을 정성껏 꾸미고 성찬을 준비했지. 성찬은 더 이상 교회의 성찬위원들이 준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준비하는 거였어. 성찬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는 움들의 뒷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어.

2021년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 워크숍에 참가한 움이 만든 줌 배경화면(사진 위), 예배에 참여한 '움'이 마련한 예배 공간과 성찬(사진 아래). 사진 제공 움트다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에 참여한 '움'이 마련한 예배 공간과 성찬. 사진 제공 움트다

채움아, 테레사 베르거의 <예배, 디지털 세상을 만나다>(CLC)에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 한번 들어 볼래? 테레사 베르거의 고백이야.

"이 책은 디지털 세계에서의 예배 실행에 관한 하나의 신학적 성찰로 읽히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예배를 '다양한 질감을 지닌'(multi-textuared) 실행, 즉 그 안에는 몸, 목소리, 텍스트들뿐만 아니라, 공간, 이미지, 음향, 그리고 화상(pixel), 인터넷 기기들이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실행으로 이해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우리가 예배드린 온라인 공간(줌·ZOOM)에서는 설교자나 회중이 모두 똑같은 크기의 네모 안에 들어가 있잖아. 나에게는 그게 그렇게 평등하게 보이더라. 줌 배경화면으로 예배 내용을 이미지화한 것도, 채팅창을 사용해 회중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

채움 / 나는 움들과 여성주의 예배를 공부하면서 이 구절을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어.

"페미니스트 예전은 상상력을 동원하고, 차별에 저항하며,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축복을 받으며 소망을 강화한다. 페미니스트 예전은 구원받은, 해방된, 자율성을 획득한 관계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자넷 R. 월튼 <Feminist Liturgy: A Matter of Justice>(Liturgical Press)]

여성주의 예배에서는 단어의 정확성, 사물을 배열하는 공간, 몸짓, 소리,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어. 나는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면서 가장 속상했던 게, 기술의 한계 때문에 합창을 할 수 없다는 거였어. 그 고민을 가지고 방법을 찾다가 결국에 시도했던 게 '가상 합창'이었잖아. 수움이 네가 싱크도 안 맞는 영상 편집하느라 고생이 많았지?(웃음) 또 하나 씨름했던 문제는 '온라인 예배에서 어떻게 몸을 사용해서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였는데, 그것도 예배 중에 찬양에 맞춰 간단한 율동을 하는 시도로 이어졌고.

수움 / 한두 번의 예배를 위해 예배팀이 일 년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수고를 했잖아. 다르게 말하자면 가성비가 엄청 떨어지는 거지. 그렇지만 그런 고민과 열정 덕분에, 코로나19로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도 새로운 일들을 시도할 수 있던 것 같아. 사람들은 그러더라. 코로나19 때문에 예배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나는 코로나 시대 이전에 이미 세상은 디지털 사회로 변했다고 생각해. 다만 우리가 인정하지 않았던 거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자란 세대를 일컫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용어가 이미 2001년에 등장했을 정도니까. 어찌 보면, 우리는 코로나19 덕분(?)에 비로소 그 현실을 직면하게 된 거지. 움트다가 했던 시도들이 새롭고 대안적인 공동체들이 생겨나는 일에 도움이 되면 좋겠어. 

채움 / 나는 처음부터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의 경험이 다른 여성들에게 공유되기를 바랐어. 수움이 너도 목사 안수 받고서 움트다 예배 때 처음으로 성찬 집례를 해 본 거잖아. 여성 목사들은 설교하고, 성찬을 집례하고, 세례를 줄 기회가 남성 목사들에 비해 훨씬 적어. 나는 우리의 경험이 많은 여성 목사들에게 공유됐으면 좋겠어. 그래서 여성들이 담임하는, 여성주의적인 가치를 사역 현장에 녹여 내는 교회가 많이 생기길 바라. 그게 움트다가 존재하는 이유일 거야. 앞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또 어떤 새로운 길로 이끄실지 기대된다. 그 길에 수움이 네가 함께 있으면 좋겠어. 

수움 / 응, 지난 4년간 함께해 줘서 고마워. 나도 채움이 너와 같이했던 모든 일들에 감사해. 우리 앞으로도 우리 곁의 존재들을 돌아보며, 있는 모습 그대를 인정하며 함께 걷자.

2021년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 워크숍에 참가한 움이 만든 줌 배경화면. 사진 제공 움트다
2021년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 워크숍에 참가한 움이 만든 줌 배경화면. 사진 제공 움트다

2021년 8월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 워크숍에 참가한 '움'들이 만든 '공동 기도문'

"포도나무의 주인이신 주님, 우리는 포도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인도하심과 섭리에 따라 향기 나는 와인이 되었습니다. 색깔이 다르고 맛이 각양각색이고, 어울리는 음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향기 나는 와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념하고 상징하는 성스러운 음료입니다. 우리가 알알이 맺은 포도알의 달콤함과 그 안에 들어 있는 씨앗이 품어 내는 생명과 희망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의 잔치에서 와인이 잔에 부어질 때 우리 모두는 설레임과 기쁨을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 나눕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 우리로 주님과 같이 따뜻하고 풍성한 음식이 되어 당신의 식탁을 장식하고 싶습니다. 배고픈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배불리 먹이고 그들에게 살아가는 것의 힘과 환희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함께 주께서 베푸시는 차별 없는 잔치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잔치에는 우정과 존경만이 가득합니다. 이곳에 모인 우리는 모든 차별을 넘어서고 우리의 힘과 권위를 되찾기 원합니다. (다 같이) 우리를 도우시고 힘을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움 / 성평등한 교회를 위해 분투하며 창조적인 예배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채움 / 진리 때문에 자유를 얻고 누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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