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가부장적 문화에 저항하는 교회 여성 네트워크 '움트다(WUMTDA)' 활동가들이 '여성주의 예배'를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여성주의 예배 이론을 비롯해 교회 안팎의 다양한 현장 경험, 여성들의 연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배, 여성과 움트다'는 격주에 한 편씩 발행됩니다. - 편집자 주
여기는 PAM 컨퍼런스
미국장로교회(PCUSA) 수양관인 몬트리트 컨퍼런스 센터(Montreat Conference Center). 사진 제공 美움
미국장로교회(PCUSA) 수양관인 몬트리트 컨퍼런스 센터(Montreat Conference Center). 사진 제공 美움

이곳은 몬트리트 컨퍼런스 센터(Montreat Conference Center).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미국장로교회(PCUSA) 수양관이다. 일 년 중 미국장로교인이 가장 많이 모인다고 하는 예배와 음악 컨퍼런스(Presbyterian Association of Musicians Conference, PAM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이 컨퍼런스에는 성가대 지휘자·반주자 같은 음악인뿐 아니라 목회자·성도 모두가 참가할 수 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고, 가족별·교회별로 예배와 강의 등 다양한 모임에 매일 참여할 수 있다. 낮은 산 중턱 넓은 터에 위치한 수양관은, 작은 강 이쪽 저쪽을 잇는 예쁜 다리를 품은 채 자연과 어우러진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라도 앉아 주변을 바라보면 이내 마음에 쉼이 찾아온다.

2006년 예배학을 전공하는 유학생이자 대학원생 자격으로 PAM 컨퍼런스에 처음 참가했을 때, 많은 가족이 휴가를 내고 이곳을 찾아 예배와 찬양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새로웠다. 말씀을 암송한 뒤 밥을 먹고 뜨겁게 기도하는 밤을 보냈던 한국 수련회의 기억들도 소중하고 좋았지만, 예배와 찬양 그 자체가 쉼이자 호흡이 되는 이곳의 모습은 긴장 속에서 무언가를 달성하고 성취해야 하는 한국교회의 여름 행사들과 너무 달랐다.

16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

나는 미국장로교회 소속 목사다. 우리 교단 소속 목사들은 연마다 의무적으로 4주 간 휴가를 보내야 하고 2주 간 계속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내가 PAM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것을 계속 교육으로 인정해 비용을 대 주었고, 그 외 모든 비용은 교단 선교국 산하 인종평등과여성의다문화사역국(Racial Equity & Women's Intercultural Ministries)에서 케이티 캐논(Katie Cannon) 장학금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올해 PAM 컨퍼런스 주제는 '낯선 이의 모습 속에서(In the Stranger's Guise)'였다. 사람들의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의 삶을 조명하며 우리 삶을 비추는 시간을 보냈다. 악기로, 목소리로, 몸으로, 때로는 조용한 묵상으로, 호흡 하나하나에 말씀을 담고 고백을 올리는 시간은, 나를 찾고 주님을 뵙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PAM 컨퍼런스는 나를 찾고 주님을 뵙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진 제공 美움
PAM 컨퍼런스는 나를 찾고 주님을 뵙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진 제공 美움

여성주의 예배를 논하는 이 연재 글을 PAM 컨퍼런스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16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 컨퍼런스의 원동력과 여성주의 예배에서 내가 느꼈던 감동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경험이기는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사역할 때는 교회가 목사들의 휴가 기간을 보장하거나 재교육을 장려·지원하는 것을 보기 어려웠다. 또한 여성 사역자의 자리가 매우 한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번 PAM 컨퍼런스의 설교자, 예배 인도자(Liturgist), 디렉터는 모두 여성이었다. 이곳에서는 여성 목회자뿐 아니라 여성 성도들의 리더십도 아주 활발하고 두드러진다. 16년이라는 간격을 두고 돌아왔지만 이곳이 주는 놀라움과 감동은 2006년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이 컨퍼런스와 여성주의 예배의 공통점은 예배가 주는 '주체성', '창조성' 그리고 '포용성'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예배

미국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여러 사정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사역을 하다가 '움트다'를 만났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팀과 함께 세 번의 여성주의 예배와 한 번의 워크숍을 기획·준비하는 소중한 기회를 누렸다. 이 시간은 너무도 설레고 재미있었는데, 다름 아닌 우리가 그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많은 예배에 반복적으로 참여하겠지만 시간이 흘러도 전문성과 주체성을 갖기는 어렵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왜 우리는 교회 마당을 30년 밟아도 예배의 전문성과 주체성에 있어서 아마추어에 머무르는 걸까.

움트다에서 여성주의 예배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조금 다른 형식을 받아들이더라도 더 이상 가면을 쓰지 말고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예배드리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전과는 다른 주체성을 조금씩 깨닫게 됐다.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로 드리는 예배'라는 분명한 지향을 갖고 출발했더니, 주체자의 시선으로 각자 다른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을 함께 담아낼 수 있었다. 이는 역으로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참여했던 예배에서 정작 우리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는 기획자들뿐 아니라 참여자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준비 과정부터 예배 현장까지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그랬더니 그 예배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오롯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됐다.

창조적인 예배

움트다 여성주의 예배팀은 창조적인 예배, 다른 말로 하면 '깊게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예배'를 드리기 원했다. 분명한 주제나 메시지가 없거나 참여자들에 대한 사전 조사 등 섬세한 배려가 없다면 창조적인 예배는 불가능하다. 예배는 때로 하나의 무대 예술 작품과도 비슷하지만, 시공간을 뛰어넘는 영적인 모임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 단지 새로운 찬양을 소개하거나 낯선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 창조적인 예배라 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참여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창조적인 예배는 인도자와 참여자가 함께 하나님이 주신 창조 세계에 참여하며 우리 안에 잠재된 창조적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는 예배다. 또한 참여자들을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친근하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초대하는 예배다.

움트다는 지난 온·오프라인 여성주의 예배를 통해 여러 시행착오도 겪고 아쉬운 한계를 느끼기도 했지만, 창조적인 예배에 조금씩 다가가는 큰 기쁨을 누렸다. 우리는 한 번의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몇 달을 함께 공부하고 우정을 나누고 예배를 드렸다. 우리가 먼저 공동체를 이루고 우리 안에 계신 창조의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우리가 예배 안에서 발견한 기쁨을 다른 여성들과 나누기 원했다. 함께 예배드릴 이들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함께 자라가는 은혜의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점은, 창조적 예배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예배가 아니라, 오늘도 우리 가운데 창조의 섭리로 역사하시는 아름다운 하나님을 공동체와 함께 만나는 예배라는 것이었다.

너도 주인공이 되는 예배

여성주의 예배를 통해 나는 예배가 선교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 안에 선교팀이 꾸려지고, 선교 헌금을 보내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단기 선교를 다녀오는 것도 선교의 한 방법이지만, 예배 현장의 순간순간이 곧 선교의 현장이기도 했다. 나의 하나님이 다른 이들의 하나님으로 고백되고, 그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선교라면, 예배 현장은 '나'의 예배가 나를 넘어 '너'와 '우리'의 예배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여성주의 예배는 여성들을 향하지만 결국에는 여성을 넘어서는 '포용성'을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여성주의 워크숍을 통해, 모든 여성을 동질하게 취급하지 않고 여성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층위를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더 다양한 벗들과 함께하는 여성주의 예배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시작됐다.

예수 그리스도는 목소리를 빼앗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지극히 작은 사람들에게 친히 다가가 친구가 돼 주셨다. 그러나 예수를 보여 줘야 할 한국교회에 오히려 교회 밖보다 더 강한 남성 우월주의와 남성 지배적 구조가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 구조는 교회의 조직과 모임과 예배에서 드러난다. 예수는 누구의 이웃일까. 우리는 누구를 환대해야 할까. 아직도 많은 여성이 익숙하지만 낯선, 위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예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없어 괴로워하며 그 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움트다에서 함께 드린 여러 번의 여성주의 예배는 완벽한 모델도 아니고 아주 성공한 케이스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어떤 누구도 아닌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데 집중하며, '너'와 함께 드리는 예배를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여성이라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에 여성으로서 공감했고, 여성의 목소리로 당당하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예배 가운데 공동체를 이뤄 갔다.

교회에 속했으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진 여성들은 움트다의 초대로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고백이 됐고, 우리는 그 고백을 담아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우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이가 예배의 주인공이 되도록, 창조의 하나님 앞에 창조적인 예배를 올리도록 초청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PAM 컨퍼런스에서 부른 찬양 가사를 소개하고 싶다.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 '참 아름다워라'를 개사한 것이다. 총 3절로 된 이 찬양은 각 절 첫머리에서 이 세상을 '어머니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부모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고백한다.

"This is my Mother's world, and to my listening ears all nature sings,
and round me rings the music of the spheres.
This is my Mother's world; I rest me in the thought of rocks and trees, of skies and seas; God's hand the wonders wrought."

"이것은 내 어머니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귀를 기울이면 모든 자연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지.
하늘의 음악이 내 주변을 감싸며 울리고 있네.
이것은 내 어머니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나는 바위와 나무와 하늘과 바다를 생각하며 쉼을 얻네.
하나님의 손이 기적을 일으키네."

美움 / 주신 삶 자체가 예배이기를 소망하며 흥얼흥얼 찬양하며 살아가는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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