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도저히 20대라고 보기 힘든 노련함. 취재 현장에서 간간이 만나는 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국장 이종건 전도사(29)의 이미지는 그랬다. 대부분 무언가를 비판하는 거친 현장에서 그는 단상에 서 있었다. 그 날선 긴장감 속에서도 특유의 여유로운 애티튜드가 느껴졌다. 발언은 또 왜 그리 잘하는지…. '저분은 누구신가' 했다가, 그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발언을 잘하는 걸 보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종건 전도사는 글도 참 잘 쓴다. 그는 2020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뉴스앤조이>에 '이종건의 연대 밥상'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글이 '맛깔난다'는 느낌을 주기가 어려운데, 그의 글은 정말 말 그대로 맛깔난다. 글을 읽고 있으면 군침이 돌면서 '오늘 끼니로는 꼭 맛있는 걸 먹으리라' 다짐하게 된다. 주제도 이만큼 특이할 수 없지, '철거 현장 + 음식'이라니. 누가 이런 걸 쓴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가 <뉴스앤조이> 연재분에 살을 보태고 원고도 대폭 늘려 <연대의 밥상>(롤러코스터)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게 음식에 대한 책이냐,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책이냐 정체성의 혼란이 오기도 하지만, 일단 재밌다. 맛난 냄새 솔솔 나는 페이지 곳곳에 도시와 골목에 대한 그의 철학이 배어 있다. 마침내 책을 다 읽으면 이종건은 바깥에서 보는 '노련하고 빡센' 이미지와는 다르게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이종건 전도사를 8월 2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났다. 인터뷰라기보다 '연대의 밥상'을 주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기사도 기사지만,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그와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싶다는 사심이 있었다. 인터뷰는 압축적으로 끝내고 충무로 필동면옥에서 시원한 평양냉면 한 사발을 함께했다.

인터뷰할 때도 여유로운 이종건 전도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누군가를 위한 '대가 없는 노력'

2020년 가을 어느 날, <뉴스앤조이>는 이종건 전도사에게 연재를 요청했다. 그가 몸담고 있는 옥바라지선교센터 운동이 기독교계에 신선한 바람이라고 생각했고, 젊은 사람들에게 지면을 많이 열어야 한다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철거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써 달라고 했는데, 이종건 전도사는 '음식'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역으로 제안해 왔다. '철거 현장 + 음식'. 이상하고도 신기한 조합에 처음 든 생각은 '이거 대박 아니면 쪽박인데…'였다. 기우도 잠시, 이종건 전도사는 이내 맛깔나는 글들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마치 이런 글을 쓰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사람처럼.

"그냥 되게 현실적인 이유로 쓰게 된 거예요. <뉴스앤조이>에서 연재 제안이 왔잖아요. 현장 얘기는 이전에도 몇 번 썼는데, 연재를 하려니까 조금 막막하더라고요. 제가 이런 얘기를 황푸하 목사(새민족교회)랑 많이 하는데, 푸하 씨가 그래요. '평소에 음식 얘기 잘 쓰지 않았냐'고. 제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가끔 페이스북에 음식 얘기랑 사회문제를 좀 버무려서 일기처럼 썼거든요. 그래서 철거 현장에서 먹었던 음식 얘기를 쓰겠노라고 역으로 제안하게 됐죠. 평소 관심이 있었던 주제라서 글도 잘 써지고 재밌게 연재했던 것 같아요."

요리는 스무 살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진학해 서울에서 자취를 하면서 자연스레 시작하게 됐단다. 넘쳐 나는 체력의 20대 초반 대학생들에게 밤은 길다. 그 긴 밤을 수다로 채워야 하는데, 밖으로 나가면 그 시간이 다 돈이다. 전도사로 사역을 해도 월 30만 원 받던 때, 이종건 전도사는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 밖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싸기도 하거니와, 누군가를 대접하기 위한 이 '대가 없는 노력'은 사람 사이의 장막을 거두기 마련이니까.

"배달 음식보다 맛이 있는지, 식당 음식보다 가성비가 좋은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나름의 정성이 더해진 한 상이라면 입맛이 허용하는 범위가 더 넓어지기 마련이다. 평소 먹던 것과 달라도, 낯선 감각에 어색한 한입이어도 괜찮다. 누군가가 자신의 눈앞에서 대가 없이 노력하는 모습은 일종의 주문이라 할 만하다. 어느새 주방과 식탁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각자의 혀는 앞에 둔 음식에서 이질감과 차이를 찾기보다 함께 얘기할 공통의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다. 공백의 시간을 채우려 억지로 꺼내던 말들은 민망히 꼬리를 감췄다. 이제 우리는 공통분모에 집중하며 맛의 여정을 떠나는 동료들이다. 말머리는 술이고 끄덕이는 고개가 안주다. 한 그릇 요리가 피워 낸 흐드러진 한판에서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에게 어색함은 없다." (131쪽)

그에게는 철거 현장에서의 음식도 이와 같다. <연대의 밥상>은 사람 냄새 진하게 나는 책이지만, 사실 '철거 현장'은 사람 냄새와는 거리가 먼 공간이다. 용역을 동반한 강제집행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로지 무력만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결국 끌려 나오며 여기저기 생채기가 생기고 때로는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너무 억울한데 법마저도 건물주 편이다. 호소할 데 없는 철거 현장 투쟁은 그야말로 절벽 끝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

"책을 쓰면서 의도했다면 의도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철거 현장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얘기를 은연중에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철거 현장이 되게 빡세고 폭력적이고 그렇죠. 서로 날도 많이 서 있어요. 근데 농성장이 만들어지면 그 자체가 완전 생활공간이 돼요. 뭔가 거대한 하나의 가족이 사는 집처럼 되거든요. 그 속에서 처음 온 사람도 결국 뭘로 풀어지느냐. 밥 먹는 과정을 통해서 풀어져요. 우리나라 사람들 특징인지, 농성을 하더라도 연대인들에게 밥을 먹여야 한다는 강박, 저는 정말 강박이라고 보는데…(웃음) 그 강박으로 뭐라도 만들어서 먹이는 거죠.

 

예전에는 소위 '운동을 한다'고 할 때, 어떤 이론·이념에 설득되는 것이 선행되고 현장에 투입됐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사람이 그냥 마음이 끌려서 왔다가 그 농성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면서, 이것이 내 문제라고 느끼게 되면서 더 투신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결정적인 계기가 저는 '밥'이라고 보는 거죠. 그런 부분을 계속 포착하다 보니까 철거 현장을 이렇게 묘사하게 됐고, 제가 꼭 어떤 부분을 제거하려 했다기보다는 저한테 철거 현장은 늘 그런 느낌이었던 거예요."

<연대의 밥상 - 한없이 기꺼운 참견에 대하여> / 이종건 지음 / 곰리 그림 / 롤러코스터 펴냄 / 272쪽 / 1만 6000원
<연대의 밥상 - 한없이 기꺼운 참견에 대하여> / 이종건 지음 / 곰리 그림 / 롤러코스터 펴냄 / 272쪽 / 1만 6000원
강제집행의 두려움 속에서

목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전까지는 소설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문학을 탐닉했다고. 그의 문장이 맛깔나는 비결이 이것이었나? 설득력 있지만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글은 현장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모니터 위 하얀 바탕에 껌뻑이는 커서를 보며 머리를 쥐어짜내는 게 일상이기는 하나, 현장을 충분히 취재했다면 글은 나오게 되어 있다.

이종건 전도사는 감신대 1학년 때 동아리 도시빈민선교회에 가입한 이후, 지금까지 10년간 빈민·철거 현장에 있었다. 2016년 옥바라지 골목 철거 현장에 연대했던 일을 계기로 '옥바라지선교센터'를 만들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쫓겨남이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를 위해, 지금까지 아현포차, 우장창창, 궁중족발, 노량진수산시장, 을지OB베어 등 강제 철거와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곳곳에서 연대하고 있다. 나는 그의 글이 좋은 진짜 이유는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쫓겨남이 없는 세상'을 계속 추구하는 대가는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이종건 전도사는 궁중족발 투쟁 때문에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아 수감 생활은 면했다. 죄명은 '부동산 효용 침해'. "이 죄는 보니까 형량이 무조건 징역이더고요. 벌금이 없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진짜 잡혀가나 싶었죠. 우리 사회가 부동산 '소유권'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 주는 상징적인 법인 것 같아요. 그 소유권을 침해했을 때 법은 결국 건물주의 손을 들어 준다는 거죠."

"우리의 도시는 수없이 많은 거저 주어진 것들에 빚을 진 채 살고 있다. 나의 하루는 어떤 이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기대고 있다. 그 노동이 모두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으니 오늘의 하루는 거저 받은 것이라 생각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수치화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한 골목과 동네, 나아가 도시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오갔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흔적은 뭘 어떻게 해도 숫자로 남지 않는다. 다만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숫자만 남아 그것을 소유한 이들의 몫만 주장되고 있을 뿐이다. 그걸 거저 받았다고 생각지 않으니, 이 도시의 소유자로 이름 붙여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몫만을 주장하며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다. 그 분열의 끝이 과연 지속 가능한 세상일 수 있을까." (154쪽)

을지OB베어는 결국 강제집행을 당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을지OB베어는 결국 강제집행을 당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저는 지금도 철거 현장이 무서워요. 이번에 을지OB베어 연대하면서도 참 힘들다는 생각을 했는데… 행사가 많아서 물리적으로 힘들기도 했고요. 근데 철거 현장이 힘든 이유는, 사람들이 우리를 되게 이상하게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히 을지로 노가리골목은 사람이 엄청 많으니까, 거기서 예배나 시위를 하고 있으면 누구는 시비를 걸기도 하고 누구는 박수를 주기도 하고 그래요.(웃음)

 

하여튼 뭔가 역동적인 현장인데, 그 반응들 하나하나가 다 스트레스로 다가와요. 소위 일반 시민들은 일상을 살고 있는데, 우리 상황은 그들의 일상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아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거죠. 그들과 우리가 딱 구분돼 있다는 감각이 힘든 것 같아요. 우리는 '섬'이라는 감각. 폭력에 노출돼 있을 때도 주변 사람들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그렇게 무섭지 않잖아요. 철거 현장의 폭력이 무서운 건,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고립된 상태에서 우리가 당할 것 같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연대의 밥상>에는 그런 뉘앙스도 있어요. 우리를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여기도 일상의 공간이라고. 나름대로 그 스트레스를 좀 극복해 보고자 한 거죠.

 

만약 철거 현장에 마음이 있는 분이 있다면 한번 와 보셨으면 좋겠어요. 오고 싶어 하는 분이 은근히 많더라고요. 항상 멀찍이서 행사를 보다가 가시는 분들도 있고. 문턱이 좀 있나 봐요. 아무래도 저를 비롯해서 활동가들이 막 엄청 살갑고 그러지 못해서, 교회 처음 오는 사람 맞이하듯이 하지는 못하니까 그런 것 같은데요.(웃음) 책 읽어 보시면 '이 사람들이 생각보다 유하구나'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현장에 많이 오시면 좋겠어요."

현장이 교회가 되고, 교회가 현장이 되는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노선의 정의라 할 수 있는 법도 철저히 건물주의 편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무력해 보인다. 사회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을 겪으며 점점 신앙의 의미를 잃어 가는 이유다. 이종건 전도사는 지금 신학대학원에 다니며 목사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목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교회 공동체에 대한 꿈이 있다.

"제가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어요. 공동체가 무너져 있고 상처 있는 집안도 많은 동네였죠. 그래도 교회에서 이런 차이들이 극복되는 모습을 많이 봤거든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교회 모습이지만…. 그래서 스멀스멀 목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안타깝게도(?) 하게 됐죠.

 

골목이나 철거 현장이나 이런 데가 공동체가 되기도 하잖아요. 싸우다 보면 공동체가 되기도 하고, 골목은 원래 공동체적인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 공동체가 지속되고 군데군데 있는 게 좋은 도시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마치 그런 교회가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과 동일한 감각인 거죠. 아마 철거민 운동이나 도시 운동 하시는 분들과는 감성이 조금 다를 수 있을 거예요. 저에게는 철거 현장에서의 '연대의 밥상'이 교회에서의 공동 식사와 비슷한 뉘앙스로 다가와요."

이종건 전도사와 궁중족발 윤경자 사장. 뉴스앤조이 여운송

옥바라지선교센터의 주된 활동은 연대의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예배를 중요시한다. 옥바라지선교센터 안에 예배와현장위원회가 있는 이유다. 강제집행이 할퀴고 간 현장에서도 언제나 예전을 갖춰 예배를 드린다. 이전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사회운동에 동화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옥바라지선교센터는 기독교 예전에 신자와 비신자 구분 없이 모두를 초대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방식은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예배에 대한 천착이 오히려 모두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제가 소위 '진보적인 신앙'을 가지고 제도권 교회에만 있었으면 엄청 소진만 됐을 것 같아요. 교회 안에서 교회만 개혁하려고 몸부림쳤다면 벌써 나가떨어졌겠죠. 그런데 저는 정말 현장도 교회고 교회도 현장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니까 제가 현장에서 예배드리거나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힘을 많이 받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저는 지난 10년간 활동하면서 신앙이 더 좋아진 것 같아요. 현장에서 느끼는 건 정말 역동적인 신앙, 살아 있는 신앙이거든요. 아마도 교회가 옛날 어느 시기에 가지고 있었던 거겠죠. 저는 오히려 이 에너지를 어떻게 교회로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해요. 현장은 어쨌든 언젠가 해결돼야 하고 그러면 사라지잖아요. 현장이 계속 교회일 수는 없어요. 교회가 계속 교회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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