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뉴스앤조이>와 IVP가 함께 진행한 서평단 이벤트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 편집자 주

그야말로 MBTI 테스트 광풍이 불었던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들이닥치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조류에 휩쓸린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너나없이 인터넷에 떠도는 MBTI 테스트를 대화 주제를 삼았다. 비록 직접 만나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과 나눌 새로운 대화거리가 생긴 것에 모두 즐거워했다.

사실 나는 이미 지인을 통해 에니어그램이나 MBTI 테스트 같은 성격 유형 검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 유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그 해석에 크게 납득(?)된 상태였다. 혹시 다시 해 보면 다를까 했지만 역시나 이전과 똑같은 결과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주위에서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2020년에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을 딱 두 명 만났다. 심지어 그중 하나는 지금의 남편.

많은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성격 유형이라 그랬던 것인지, 나의 성격적인 취약점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그래도 정도가 덜한 편이었으나, 문제가 극에 달했던 것은 바로 교회에서였다. 모교회에서만 근 30년을 몸담고 있었기에 성도들 모두 내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어려웠던 점은 '관계를 통해 신앙이 성장할 수 있다'는 명제가 내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비롯했다.

실례로 이런 일이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날, 같은 청년회 분반에 속한 한 자매가 결혼으로 곧 청년회를 떠나게 되어 마지막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이 분반에서 여러 일을 겪었고, 때론 힘들고 어려웠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곳에서 진정한 교회가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의아하기만 했다. 여기가 진정한 교회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곳이라고? 알긴 알지만 잘 아는 것도, 그렇다고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들과 타의에 의해 한 반으로 묶여 매주 무언가를 나누고 교제해야 하는 이런 모임에서? 나에겐 깊은 것도 깊지 않은 것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정도의 관계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물론 교회 모임 중 하나지만 이곳이 정말 교회의 참된 의미를 반영하는 곳이 될 수 있다는 건가? 그 자매는 정말로 여기서 교회의 의미와 깊이를 깨달았다는 말인가? 난 그렇지 않은데….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신앙생활을 하는 데 내게 어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 세 분은 더없는 관계의 충만함 속에서 서로 깊이 이해하고 교제하신다는데, 그리고 그 교제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는데, 그 초대에 제대로 응하려면 교회 안에서 그런 아름다운 교제와 동역을 경험해야 한다는데! 나는 왜 그게 잘 안 되는 것인가. 통탄스러운 날들이었다.

한동안 통탄의 날들을 보냈지만, 여전히 명확한 답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금도 배워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차에 극적으로(?) <내향적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 사용 설명서>(IVP)를 만나게 된 것이다. 출간 소식을 접한 나와 남편은, 내 그럴 줄 알았다며 언젠가는 이런 책이 나올 줄 알았다고 손뼉을 쳤다. 그리고 직접 읽어 보니, 내가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길에 분명 좋은 길잡이가 돼 줬다.

<내향적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 사용 설명서 - 외향적 교회 문화에서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하기> / 애덤 맥휴 지음 / 강신덕 옮김 / IVP 펴냄 / 324쪽 / 1만 9000원
<내향적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회 사용 설명서 - 외향적 교회 문화에서 나다운 모습으로 존재하기> / 애덤 맥휴 지음 / 강신덕 옮김 / IVP 펴냄 / 324쪽 / 1만 9000원

책의 전반부는 내향성이 큰 사람들의 특징을 설명하는데, 나도 몰랐던 내 참모습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가 우리 안에 교회의 긍정적인 또는 바람직한 모습으로서 '외향적 모습'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짚어 내는 부분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교회의 모습들이 어쩌면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이미지는 아니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교회에서 어려움을 겪고 상처받은 경험을 어떻게 치유해 나갈 수 있을지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교회에서 그래도 괜찮다!'라고 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를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타인들과 함께하기를 원하는 주체할 수 없고 외부를 향하는 열정으로만 표현될 필요는 없다. 신앙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아마도 표면 아래서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하게 타오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조용한 저녁 시간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으로부터 나온 행위다." (79쪽)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써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함께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을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주변으로부터 둔감하다거나 냉담하다는 평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도 어떻게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어렵지만 노력하고 포기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저자가 나의 고민과 분투를 알아주는 것 같아 정말 고마웠다.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모든 사람을 사용하셨으며 또한 사용하신다(81쪽)는 문장은 나의 모습으로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4장은 내향성이 중심이 된 여러 영성 훈련 방식을 소개하고 거기서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특히 '내향적', '외향적' 영성을 인위적으로 구분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덧글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내향성을 가지고 어떻게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제안을 정리해 둔 5장을 읽을 때는 솔직히 모든 부분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다만 생각하는 과정을 드러나게 하여 더욱 깊은 차원으로 함께 삶을 나누도록 다른 이들을 나의 내적 처리 과정에 초청하라(161쪽)는 말과 관계를 맺는 초기 단계에서는 많은 질문을 던지라(162쪽)는 조언은 새겨듣고 적용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후반부인 6장 이하의 내용은 나와 같은 성격 유형을 가진 남편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교회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은 얼마 전 자신의 기질과 선호가 사역에 진정 도움이 되는지 깊이 생각했다. 자신과 다르게 외향성이 강한 분들이 사역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계발해야 했던 것은 저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고민했던 남편이 많이 생각났다. 물론 당시 하나님은 그에 맞는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지만, 남편이 그때 이 책을 접했더라면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교회 공동체에서 인도자로 앞서 일해야 하는 내향성을 가진 분들이라면, 현재의 사역 성격을 조정하고 미래의 사역 방향을 설정하는 데 이 책이 분명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후반부를 읽으면서는 계속 남편에게 "당신이야말로 이 책을 읽어 봐야 할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하게 됐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향적인 사람의 복음 전도에 관해 설명한 부분이다. 오랜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이 늘 주위에 있지만 그들 중 실제로 교회에 연결되거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없는 나로서는, 복음 전도가 마음 한편에 늘 부담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도 그들에게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오랫동안 함께하고 있으며, 그들을 위해 여전히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됐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은 일들도 복음 전도의 일환이라는 것에 감사하게 됐고, 참된 복음이신 그분이 직접 그들을 만나 주실 날에 기대를 품게 됐다.

얼마 전에 농담 삼아 남편과 'I' 유형인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우리는 킥킥대면서 그 모습이 어떨지 그저 상상만 했는데, 이런 책을 만나게 되다니 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출간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내향인 혹은 외향인이 중심이 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 서로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진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통일되게 하심 아래 어떻게 동역해야 할 것인가다. 이전의 나는 교회 안에서 내 자리를 찾으려 없는 틈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가는 통에 늘 '분투'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께서 이런 나라도 다른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 필요를 보게 하시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INTP도 크리스천이에요."

이소라 / C. S. 루이스처럼 글쓰며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 '사라리'라는 이름으로 브런치에서 틈틈이 일상의 조각들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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