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이교도의 사도> / 파울라 프레드릭슨 지음 / 정동현 옮김 / 학영 펴냄 / 480쪽 / 3만 2000원
<바울, 이교도의 사도> / 파울라 프레드릭슨 지음 / 정동현 옮김 / 학영 펴냄 / 480쪽 / 3만 2000원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바울에 관한 급진적 새관점' 혹은 '유대교 안의 바울' 학파의 책. 보스턴대학 명예교수이자 히브리대학 교수인 파울라 프레드릭슨(Paula Fredriksen, 1951~)이 썼다. E. P.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알맹e) 출간 이래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섰던 '바울과 유대교·율법의 관계'를 둘러싼 신학적 지형을 거칠게 양분하자면 다음과 같다. 바울이 유대교와 율법주의 일체를 거부하고 기독교로 회심 내지 개종했다는 입장(옛 관점)과, 바울이 유대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유대인·이방인을 아우르는 새롭고 보편적인 기독교 신학을 전개했다는 입장(새 관점). 두 관점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바울이 반유대적 혹은 탈유대적이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들이 후대에 덧입혀진 이미지라고 비판하면서, 바울은 유대교 정체성을 버리거나 수정하여 기독교 신학을 새로이 창안해 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그가 나고 자란 유대교 안에서의 삶을 살았다"(29쪽)고 주장한다.

저자가 그리는 바울은 다가올 왕국의 임박성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이교도 선교에 매진했던 '이교도의 사도'였다. 이 책 1장은 유대 묵시 종말론의 내러티브를 개괄적으로 살피면서 유대인 바울이 믿고 희망했던 바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2장은 '종교 제의'와 '민족성'과 '사회질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당대 그리스-로마적 환경을 역사적으로 복원하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교도들과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갔는지, 바울의 활동 무대가 되는 1세기 지중해의 문화적 배경이 어떠했는지 그린다. 3장은 위와 같은 신학적·사회적 배경을 토대로 바울이 누구였으며, 유대인인 그의 선교가 왜 '이교도'를 향하게 됐는지, 선교에 대한 그의 열정을 고무시킨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인지, 그가 박해를 당한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한다. 4장은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바울이 이방인 할례에 반대한 이유가 무엇인지 논증하고, '율법 없는 바울'에 대한 학계의 오해를 불식하면서 '이신칭의'가 본래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 살핀다. 또한 로마서 7장 '율법의 저주' 문제를 다루면서 바울의 편지들이 오로지 '이방인' 회중을 대상으로 쓰인 게 분명하다고 논증한다. 5장은 로마서를 중심으로 예수를 지칭하는 바울의 용어, 이방인들의 영적 양자 됨과 민족적 구별, 이스라엘과 열방의 관계와 최종적 비전 등을 살피고, 바울이 '이교도의 사도'로 사역하면서도 철저하게 유대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확언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민족적 경계를 없애기는커녕 육신에 따른 유대인·이방인(민족들/열방) 구별을 강화하는 바울, 이교도를 낯설어하기는커녕 환영하는 유대인 공동체, 율법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는커녕 이를 옹호하고 준수하는 바울, 개선장군처럼 귀환하는 제왕적·군사적 메시아를 기대하는 바울, '율법과 복음', '행위와 은혜'는 이항 대립 구조가 아니라는 주장 등 반유대적·탈유대적 외피를 벗은 바울 해석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바울은 헌신된 유대인으로서 (중략) 그 확신을 행동으로 옮겼다. 간단히 말해, 본 연구는 바울이 전적으로 그가 나고 자란 유대교 안에서의 삶을 살았다는 점을 주장할 것이다. 후대의 전승들의 경우 바울의 편지들에 기초해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바울을 그 맥락으로부터 이탈시키고 말았다. 역사의 회고 작업을 거치면서 바울은 '개종자'로, 탈-유대인ex-Jew으로, 심지어 반-유대인anti-Jew으로, 요컨대 이방인 기독교의 창시자로 변모하였다. (중략)
 

역사학자로서 우리는 고대의 증거들을 통하여 그의 결백함을 잘 훈련된 상상력의 활동으로 소환하고자 한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바라봤던 것처럼 그를 바라볼 수 있다. 즉, 임박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열방에 전하기 위해 모태로부터 빚어졌으며, 시간의 종말의 가장자리에서 경주하듯 달리는 하나님의 예언적 메신저로서의 바울을 보는 것이다." (서문, 29쪽)

"현존하는 바울의 편지들 전부는 이방인을 향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울이 율법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든 간에, 그는 그것을 무엇보다도 이방인들과 관련해서 말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이것은 율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저주가 아니라(사실,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이다[롬 9:4]), 그리스도 바깥에서 율법의 요구에 따라 살 수 없는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만 저주라는 점을 의미한다(왜냐하면 그들이 율법의 요구에 따라 사는 것이 가능하려면 그리스도의 프뉴마pneuma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율법 준수에 반대하며 말할 때, 그는 이방인의 유대화를 자신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지, 유대인의 토라 준수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바울이 할례에 반대하며 말할 때, 그는 이방인의 할례를 반대하는 것이지 유대인의 할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바울은 이런 특수한 방식으로, (몇몇 형태의) 유대화judaizing를 거부하는 것이지, (전체 형태의) 유대교Judaism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4장 '바울과 율법', 298쪽)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