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사회복지사로 일한 적 있는 40대 남성이 지적장애 여성들과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러 올해 1월 징역 25년을 선고받았다. 범죄 수법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였다. 그는 지적장애 여성들에게 혼인을 빙자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었고, 때로는 약물을 사용해 피해자들을 잠들게 만든 다음 강간했다. 그가 찍은 성 착취 영상도 수십 개에 달했다. 그는 항소심에서도 똑같은 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이 지난 6월 30일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충격적인 범죄가 드러나게 된 계기는 한 평범한 강도사의 신고였다. 주중에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ㄱ교회에서 사역하는 김안나 강도사(37·가명)는, 자신이 일하는 교회에 나오게 된 지적장애 교인이 가해자와 오랜 기간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었고 그의 친구들도 가해자와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 김 강도사는 이것이 성폭력 사건이라 확신하고 작년 초 경찰서에 가해자를 신고했다. 1년 여간의 수사·재판 과정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고, 위축될 수 있는 피해자들을 설득하고 지지해 주었다. 

경찰 수사나 재판을 경험해 본 적 없는 김안나 강도사를 지지해 준 사람은 박진희 씨(32·가명)였다. 박 씨는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교회 성폭력 피해자다. 미성년 시절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트라우마에 힘들어하다가, 성인이 된 후 사건을 공론화하고 가해자를 고소했다. 가해자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며 교단에서는 면직됐다. 박 씨와 김 강도사는 같은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하면서 서로를 '이모'라 부르며 성폭력 사건과 신앙 이야기를 나누는 절친한 사이로 지냈다. 김 강도사가 이번 사건을 신고할 수 있었던 것도 박 씨의 도움이 컸다. 

작은 의심에서 시작된 신고였지만 수사가 진행되며 점점 흉악 범죄의 면모가 드러났다. 김안나 강도사와 박진희 씨는 어떻게 가해자를 처벌해 피해자들과 분리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가해자에 대한 형이 확정된 지금, 김 강도사는 "긴 숙제를 끝낸 기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을 7월 18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만나,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심각한 사건에 개입한 건지 물어봤다.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교회가 착취에 취약한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김안나 강도사와 박진희 씨는 '방구석 탐정'을 자처하며 가해자를 어떻게 신고할지 머리를 맞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김안나 강도사와 박진희 씨는 '방구석 탐정'을 자처하며 가해자를 어떻게 신고할지 머리를 맞댔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 이런 악질적인 범죄자를 어떻게 신고하게 되셨는지 경위가 궁금합니다.

김안나 / 저희 교회에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A라는 분이 오셨어요.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있는 분이었죠. 이분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는 중에 좀 이상한 거예요. 어떤 남자와 오랜 기간 사귀었는데, 그 사람이 지금 자기 친구 B의 남편이라는 이야기였어요. 가해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씀하셨고, 자기가 아는 사람들도 그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 같다고 했어요. 가해자와 결혼했다는 B도 만나서 상황을 들어 보니, 자녀들은 있는데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고 가해자는 다른 곳에 살면서 한 달에 한두 번만 온다는 거예요. 가해자가 집안에 CCTV를 설치해서 수시로 감시했죠.

그때가 작년 1월이에요. 일단 A를 설득해서 경찰서로 갔어요. 경찰 수사관 질문에 답하는 걸 들으니 저한테 얘기했던 것 외에도 더 많은 사건이 있었더라고요. 그런데 수사관이 좀 꼬치꼬치 묻잖아요. 그러니까 조사를 받다가 A가 갑자기 겁을 먹고 마음을 탁 닫아 버린 거예요. A가 입을 열지 않으니 아무것도 안 됐어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당사자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아무것도 못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갑자기 A에게 전화가 왔어요. 지금 자기 친구 C와 가해자가 같이 있는데, 가해자가 어제 C의 딸을 추행했다는 거예요. 그때 마침 제가 진희 이모와 같이 있었거든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면서 멍해져 있었는데, 진희 이모가 이건 아동 학대 사건이니 바로 신고해야 한다고 알려 줬어요. 그 말을 듣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랬더니 경찰이 또 바로 출동했더라고요. 그러면서 가해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거예요. 돌아보면 어떻게 진희 이모랑 같이 있을 때 딱 전화가 왔는지, 정말 하나님이 하신 일이죠. 

박진희 / 제 사건을 진행하면서 안나 이모가 큰 힘이 돼 줬어요. 같이 일하면서 마음도 나누고 기도도 하고 의지가 됐죠. 자연스럽게 이 사건도 이야기하게 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했어요. 가해자가 지적장애 여성 여러 명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이 확실한데 어떻게 신고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던 중 A에게 전화가 온 거죠. 일단 아동 학대 사건으로 신고하면 경찰이 빨리 나설 것 같았어요. 당시 '정인이 사건(양천구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이 알려진 지 몇 달 안 됐을 때라 경찰도 민감할 때였거든요. 

김안나 / 얼마 후 제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갔어요. 그때도 진희 이모가 종이에 적어 가면 좋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제가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계도도 그리고 내용도 상세히 적어 가서, 빠뜨린 게 없는지 동그라미 쳐 가면서 말했어요. 피해자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가해자가 약물을 사용한 것 같은 정황이 있었거든요. "가해자가 따 준 캔맥주를 마셨는데 이상하게 거품이 많았고 마시고 나서 너무 힘이 들었다", "다음 날 저녁에야 일어났는데 기억이 안 난다", "드문드문 모텔에 갔던 기억이 난다" 등등. 그런 것도 다 진술했죠.

박진희 / 제가 '버닝썬 사건'이 있었을 때 관련 기사들을 정독한 적이 있거든요. 피해자들 이야기랑 버닝썬 피해자들 이야기가 너무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혹시 약물을 쓴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됐죠. 참고인 조사 때 이런 걸 다 이야기해야 수사에 들어갈 것 같았어요. 결국 경찰이 피해자들 머리카락을 검사해서 약물 반응이 검출됐어요. 

- 드러난 범죄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는데요. 흉악 범죄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면서 두렵지는 않으셨나요?

김안나 /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좀 무섭더라고요. 아직 가해자는 신고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 제가 진술을 했잖아요. 가해자가 이걸 알게 되면 나에게 해코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좀 있었어요. 밤에 퇴근하고 집에 갈 때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가해자의 차가 외제차여서 기억하고 있는데 비슷한 차가 보이면 약간 주춤하게 되고…. 

박진희 / 저도 좀 걱정됐어요. 가해자가 안나 이모를 찾기가 너무 쉬운 거예요. 주말에 ㄱ교회에 가면 안나 이모를 만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안나 이모는 금세 '뭐 올 테면 와 보라지' 하시더라고요. 안나 이모는 일할 때도 별명이 '김 형사'였어요.(웃음) 옆에서 지켜보니 그보다는 다른 데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피해자들이 안나 이모에게 고맙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비난했거든요. 

김안나 / 피해자들 중에는 직접적으로 이 사건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를 비난하고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어요. 사실 저도 고민이 많았어요. 지적장애가 있는 분들은 비장애인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해하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외제차 타는 비장애인 남성이 자기한테 사랑한다면서 평생 함께하고 책임 질 것처럼 하니까…. 가정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이용한 굉장히 악질적인 행동인데, 피해자들은 그 상태가 행복하다는 거예요. 자녀들도 있는 상황이니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출퇴근길이 좀 먼데, 수사가 진행 중일 때는 너무 힘들어서 회사 근처에 고시원을 잡았어요. 혈압이 올라서 약도 먹었죠. 진희 이모랑 얘기하고, 진희 이모가 소개해 준 상담사와 상담하면서 좀 괜찮아졌어요.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저를 계속 지지해 줬어요. 지금 옳은 일을 하는 거라고, 잘하고 있는 거라고….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하나님, 나는 모르겠어요. 못 해요' 하면서.

박진희 / 신고하기 전에 안나 이모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이거 굉장히 힘들 거라고, 피해자들이 다 돌아설 수도 있다고. 이분들은 오랜 기간 학대를 받았고 그 결과 학대를 사랑으로 생각하게 됐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학대자가 없어졌을 때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거든요. 그 학대자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찾기도 하죠. 그런데 안나 이모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안나 이모를 공격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저도 성폭력 피해자로서 그분들 마음이 이해가 가요. 경찰 조사 때 갑자기 진술을 거부한 것도 너무 공감이 되는 거예요. 누군가에 의해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는 게 되게 힘든 일이거든요. 저는 비장애인인데도 수사·재판 과정을 겪으면서 정말 일상이 무너져 버렸어요. 저도 그랬는데 학대에 취약한 분들은 더 힘드셨겠죠.

김안나 강도사는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다. 김 강도사가 그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도. 뉴스앤조이 구권효
김안나 강도사는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다. 김 강도사가 그린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도. 뉴스앤조이 구권효

- 그래도 피해자들이 당한 것이 성폭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신속하게 대처하신 게 좀 놀라웠어요. 사실 요즘은 교회와 목회자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니까요.

김안나 / 진희 이모 사건을 옆에서 보고 들으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어요. 또 한 가지는 제가 사역하는 교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데요. 제가 오기 몇 달 전, 이 교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분이 계셨어요. 유서에는 자신이 한 부교역자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 있었죠. 뉴스에 나오기도 했어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연인 관계였다고 변명했는데…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사람이 10대 여성과 관계를 맺었다는 건 성폭력이죠. 그런데 가해자가 지금도 목회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어요. 이건 너무 정의롭지 않은 거예요. 그런 일을 보면서 성폭력 사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목회자로서 피해자들을 돕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친구가 되려고 했죠. 저는 상담사가 아니니까 상담은 전문적인 기관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역할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이들과 계속 만나고 통화하면서 지지해 준 것뿐이에요, 친구처럼. 이제 교회를 떠난 분은 어쩔 수 없지만 떠나지 않은 분에게는 계속 그러고 있어요. 이 사건은 교회에서 저와 담임목사님만 알고 있기로 했는데요. 목사님도 저를 엄청 지지해 주셨어요. 너무 잘하는 거라고, 용기 있다고,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고.

박진희 / 어린 시절부터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착취당해 온 사람들, 그렇게 착취당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굳어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은 참 힘들어요. 이런 분들에게는 건강한 사람들은 접근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이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계속 꼬이죠. 특히 이번 사건 피해자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경계에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사회제도의 도움도 받기가 어려운 면이 있었어요. 사각지대죠. 

이 사건이 진행되면서 오히려 제가 위로가 됐던 게, 안나 이모가 말씀하신 교회가 친구가 돼 줬다는 점이에요. 안나 이모가 많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미안하기도 했는데, 한편으로 감사하기도 했어요. 이런 사각지대를 비추는 것은 정말 교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저는 제 사건을 해결해 가면서 교회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계속 기도했거든요.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은혜가 흘러가는데, 그 가운데 내가 서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했어요. 

- 사회복지사나 목사처럼 약자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보호 대상을 착취하는 성폭력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데요.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안나 / 사회복지사나 목회자가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어요. 반사회성·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접근하기 쉽고 되기 쉬운 직업군이 아닌가 싶어요.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기를 원하는데, 교회가 딱 그렇잖아요. 신학교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전도사님" 이렇게 불러 주니까요. 특히 교회에서는 또 남자 목회자를 우러러보는 분위기니까. 그런 사람들을 거를 수 있는 체계가 없다는 것도 문제 같아요. 감시할 수 있는 제도도 없고요.

또 한 가지는, 약자를 대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저 사람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대상자가 나를 의지할 때가 위험한 때예요. '내 말대로 해야 한다', '내 말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흐트러지기 쉽거든요. 그때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신경 써야 하는데, 그걸 놓치면 대상자를 보호가 아니라 지배하려는 마음이 들게 되는 거예요. 그러기 쉬운 직업군이죠. 

저는 교회가 이런 경계에 있는 분들의 평생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사회복지시설도 결국 '종결 기간'이라는 게 있고, 또 사회복지사가 이직하면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에 평생 함께할 수 있는 건 교회라고 봐요. 근데 그 말이 이분들의 평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아까 그저 친구가 되려고 했다는 맥락과 같은데요. 이들의 '건강한 이웃'이 되어 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이야기를 듣다가도 "아무리 목사님이어도, 사랑한다고 해도 그건 아니지"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성도 한 명 한 명이 건강해져야 하지 않을까, 나 자신부터 그렇게 돼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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