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찢기고 버려진 자들을 위한 책

작년 이맘때쯤 저는 기성 교회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자발적 사임' 형식을 띠고 있었지만, 사실상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부임 첫날 몇몇 교인들에 의해 제가 소셜미디어에 쓴 지난 몇 년 치 글이 화제가 됐고, 공식적인 문제 제기 절차나 소명의 기회조차 없이 그 글들이 악의적으로 공유되고 회람됐습니다. '동성애 옹호 목사', '유신진화론자', '빨갱이'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이 씌워지면서, 저는 모든 사역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몇 달간 행정 업무와 장애인 부서 예배 인도만 맡다가 끝내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죠. 지옥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동료 목사님들과 여러 성도님들이 제 억울함을 호소해 주고 함께 아파해 주지 않았다면, 장애인 성도들과 섬김이들의 따뜻한 환대와 사랑이 없었다면, 그나마도 버틸 수 없었을 겁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저와 아내는 병을 얻었고, 저는 아마도 평생 그 병과 함께 살아야 할 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끔찍한 트라우마를 얻게 된 경험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흥미롭게도 저는 본능적으로 제 상황을 성경의 여러 인물이 처했던 '고난 서사'에 투영함으로써 그 고통스런 시절을 견뎌 냈습니다. 신앙을 갖고 살아온 이래 성경 인물들에 대한 감정 이입이 그토록 격렬하게 일어났던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친우들에게도 정죄당하던 욥이 하나님께 항변하는 장면이 가슴에 사무쳤습니다. 진흙 구덩이에 던져지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지 않으면 가슴에 불이 붙어 견딜 수 없었던 예레미야의 비극적인 인생은 꼭 제 이야기 같았죠. 무엇보다 모욕과 조롱과 채찍질에도 십자가를 향한 걸음을 끝까지 이어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인내와 사랑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상흔을 남긴 교회를 끝까지 사랑해야만 하는 목사인 제가 궁극적으로 좇아야 할 푯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일을 겪기 전까지 저는 교인·청년에게 '부주의한 묵상의 위험성'을 수시로 상기시키며, 성경 이야기를 섣불리 자기 상황에 대입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목회자였습니다. 성경 인물들의 서사를 현대인의 삶과 등치시키는 일은 '아전인수식 해석'을 야기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가르쳐 왔죠. 모든 본문에는 나름의 배경과 맥락이 있으니, '고대 근동학'과 '제2성전기 문헌들'과 '1세기 그리스-로마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충격과 곤고함에 처하게 되자, 그런 고도의 배경지식이 아니라 당장 이 고통을 상쇄해 줄 단순한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결코 무의미한 낭비가 아니라는 신앙적 확신, 신적 계시의 권위를 덧입은 강력한 '표본'이 요청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성경은, 견디기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나의 고난에 비로소 의미를 부여해 줄 하나님의 '선물'이자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온 여정의 기록

하나님의 신적 계시인 성경이, 어떻게 개인의 트라우마를 상쇄하고 극복하는 데 가장 요긴한 치유와 회복의 도구로 작동하는 걸까요?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성경 본문이 기록되고 편집된 과정 대부분이 바로 민족적·국가적·공동체적 트라우마에 대한 반응과 이해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 자체가 '트라우마적 기원(Traumatic Origins)'을 가진 경전인 셈이지요. <거룩한 회복 탄력성 - 트라우마로 읽는 성경>(감은사)은 신구약 성경 본문의 형성에, 북이스라엘, 남유다, 바벨론 포로기와 제2성전기 유대인들, 그리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경험한 깊은 '트라우마'가 작동했다는 사실을 정밀하게 논증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책(The Bible)의 놀라운 기원을 밝혀 나갑니다.

먼저 저자는 구약성경에 속한 수십 권의 책을 트라우마 '이전'과 '이후'의 경전으로 분류합니다.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성전 파괴로 이어지는 민족적·국가적 트라우마는, 그 이전 시기 이집트 및 가나안 나라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탄생한 왕실 시편, 서사시, 지혜 교훈과는 색다른 문학적 기조를 탄생시켰습니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 세계관의 처참한 파괴를 경험한 후에 나타난 것은, 집단적 트라우마의 흉터가 고스란히 반영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광야를 유리하던 조상들과 모세의 죽음, 큰 민족과 땅과 창대한 이름을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자발적 나그네의 여정을 시작한 아브라함의 결단 등이 그것이지요.

북이스라엘의 호세아, 남유다의 요시야 왕과 예레미야, 포로기의 에스겔·이사야 등은 압도적인 절망과 비참한 현실을 극복할 방안으로서 고대 전승들을 재편했습니다. 망국의 유민이 되어 포로로 끌려간 이국땅에서 멸시당하며 감당해야 했던 나그네의 삶,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도 지속된 피지배민의 설움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결국 트라우마를 민족적·종교적 정체성으로 삼는 독특한 '유일신 신앙'을 형성하고 그 신학적 기반이 되는 경전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승리의 경험을 되새김하고 지배자를 찬미하기 위해 기록된 제국들의 선전(Propaganda) 문서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칭송했던 제국들과 함께 죽었던" 여타 고대 문헌들과 달리, "재앙을 경험한 인간의 트라우마로부터 등장했고 그 트라우마에 대해 말하는"(17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존됐습니다.

<거룩한 회복 탄력성 - 트라우마로 읽는 성경> / 데이비드 M. 카 지음 / 차준희 옮김 / 감은사 펴냄 / 364쪽 / 2만 2000원
<거룩한 회복 탄력성 - 트라우마로 읽는 성경> / 데이비드 M. 카 지음 / 차준희 옮김 / 감은사 펴냄 / 364쪽 / 2만 2000원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M. 카는 저명한 구약학자이자 히브리어 성경 본문 형성사의 대가답게, 성경 본문 배후에 존재하는 트라우마적 기원들을 면밀히 추적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성서 비평 방법론을 취하기 때문에, 성서 비평에 부정적인 목회자들이나 그것을 아예 접해 본 경험이 없는 신자들에게는 추천하기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성서 비평이 주는 유익을 맛보고 싶은 이들, 지금껏 "비평학은 성경을 원자 단위로 찢어발기는 악마들의 소행"이라 듣고 살아온 이들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입문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하나님 말씀 이면에 믿음의 선진들이 울부짖고 몸부림쳐 온 역사가 살아 숨쉬며,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 모든 트라우마와 절망에 대한 하나님의 신적 응답임을, 신앙고백과 교리의 언어가 아닌 학문적 고찰을 통해 톺아보는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치 '상처 입은 치유자'처럼, 성경은 그 자체로 트라우마적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어떤 트라우마에도 대응하고 위로하며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설 원동력을 제공해 줍니다. 이 책은 고대 근동 세계의 약소국이자 피지배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유다 공동체가 직면해 온 역사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그들이 겪은 폭력과 억압의 기억이 어떻게 경전 형성에 반영됐는지 순차적으로 기술합니다. 특히 그 자신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나 의인화된 개념들(딸 시온, 고난받는 종, 예레미야, 에스겔 등)이 어떻게 공동체의 집단적 자아상으로 투영됐는지, 그 이야기들이 현실적 고난에 처한 이들에게 어떻게 '대체 서사'1)로 작용했는지 밝혀 나가는 작업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지요.

저자는 구약을 전공했지만 이러한 작업을 뚝심 있게 신약에까지 확장해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아마도 신앙 공동체가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는 자들에 의해 제국에 넘겨지고, 제국이 자랑하던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로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였겠죠. 하지만 구약과 마찬가지로, 복음서들 역시 이러한 트라우마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발견해 길어 올립니다. '부활'은 십자가를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상징에서 가장 위대한 구원의 표징으로 거듭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에게 있어서 구원은 고통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함으로써 다가오는 것"(313쪽)이며, "로마인들이 절망을 심으려고 의도했던 십자가는 오히려 희망의 봉화가 된 셈"(231쪽)입니다.

'거룩한 회복 탄력성'이라는 책 제목이 암시하듯, 기록된 말씀인 성경은 처음부터 온전한 승리와 강박적인 완벽함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오히려 절망과 죽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삼고, 고통과 트라우마의 절규에서 연원했습니다. 성경은 "구원 자체는 여러 면에서 트라우마적"(162쪽)이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십자가는 승리한 제국이 가하는 극단적 폭력이지만, 부활이 담지한 '거룩한 회복 탄력성'은 그 트라우마를 역전시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힙니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성경의 비전은 혼란스럽고 불가해한 세상, 감당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트라우마 너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원은 부르짖음에 대한 신적 응답이며,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수치를 통해 나타납니다. 저자는 트라우마로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자들의 편에 선 하나님을, 마찬가지로 트라우마적 기원을 가진 책인 성경을 통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통과 상처의 기억을 넘어

1년 전 기성교회로부터 쫓겨났던 그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현재 대안 교회를 개척해 목회하고 있습니다. 아물지 않는 마음의 상처와 평생 고칠 수 없는 육신의 병을 얻었는데도, 다시 말해 극심한 트라우마를 여전히 떠안고 있는데도 교회를 떠나기는커녕 되레 교회를 세워 가는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죠. 지금은 저와 비슷한, 혹은 같은 트라우마를 가진 성도들이 모여 작게나마 건강한 신앙 공동체를 지향하며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떠난 가나안 신자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는 자리를 빚어 가고 있습니다. 트라우마가 제 안에 있는 '교회'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뚜렷하게, 그리고 단단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새벽마다 저를 지목해 저주하는 어떤 교인의 기도 소리를 들었을 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머리 위로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을 때, 저를 위로해 준 것은 고난과 슬픔 가운데 묵묵히 자기 삶과 사명을 감당했던 성경 속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도 깊은 고뇌와 잦은 실패와 육신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를 부정하기보다 그를 통해 섭리하는 하나님의 경륜에 관한 이야기들은, 저 역시 트라우마를 지우려 노력하기보다는 그것을 그저 끌어안고 살아가도록 만들었지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위로 칼을 치켜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비로소 자신의 믿음이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릴 수 있는 분량임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고 기왓장으로 온몸을 긁으면서도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던 바로 그때, 욥은 마침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이 순금과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입증되지 않는 믿음은 허상에 불과하기에,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종종 극한 상황으로 몰아붙입니다. 더 나아가 그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안깁니다. 오래전 바벨론 땅에 있었던 이들에게도, 그리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바로 그 트라우마로부터 구원이 임합니다. C. S. 루이스의 말대로 "고통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확성기"일지도 모릅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복음서는 선언합니다. 이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성경이 제공하는 '거룩한 회복 탄력성'이라는 바탕 위에서 우리 삶을 직조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로 가득 찬 일상을 향해, 또 한번 신앙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네요.

정우조 / 부산에 소재한 대안 교회 '광야그리스도인공동체'의 일원이자 예배 섬김이로 살아가는 사람. '기독교 이단' 말고 '극진공수도 2단'을 목전에 두고 있는 MMA 덕후.


1) 이 책에서는 '은폐 기억(Screen Memory)'이라는 개념을 들어 설명한다. 이는 현재 상황을 직접 말하기 꺼려질 때 마치 먼 시대의 사건을 회상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현실을 반영하고 설명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직접 언급할 수 없거나 그걸 직시할 수 없었을 때,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에 스스로를 투영했고, 그 조상들이 받은 약속 안에서 자신들의 희망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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