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가부장적 문화에 저항하는 교회 여성 네트워크 '움트다(WUMTDA)' 활동가들이 '여성주의 예배'를 주제로 글을 연재합니다. 여성주의 예배 이론을 비롯해 교회 안팎의 다양한 현장 경험, 여성들의 연대 이야기를 나눕니다. '예배, 여성과 움트다'는 격주에 한 편씩 발행됩니다. - 편집자 주
평범한 지역 교회 청년,
교회 문화가 불편해지기까지

나는 흔히들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엄마가 교회를 다니고 계셨기 때문에 나도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녔다. 주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평일에 학교를 가야 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유치부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나이가 많은 여자 전도사님께서 예배를 인도하셨고, 유소년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늘 남자 목사님 또는 남자 전도사님께서 설교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중고등부에 올라가서도, 청년부에 올라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남자' 목사님 또는 '남자' 전도사님께서 설교를 하셨고, 찬양 인도는 '남자' 선생님이나 '형제'가 했고, 반주·노래·율동은 '자매'들이 했다. 나는 예배를 드리면서 그런 상황이 어색하다고 느끼거나 '왜 그럴까?'라는 의문조차 품은 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했고, 교회에서 특히 '주님의 사자'인 교역자께서 하시는 말씀은 언제나 옳고 선한 것이라 믿었다. 나는 찬양팀에서 활동하고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조용하고 성실한 '자매'로 자랐다. 유년시절부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교회 안의 가부장제에 서서히 젖어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사실은 성 역할 고정화이고, 가부장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됐으니 말이다. 교단 내 여성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게 됐는데, 입사하자마자 그 단체의 총회를 치르게 됐다. 전국 곳곳에서 오신 수백 명의 교회 여성들이 모여서 총회를 진행하는 일정 중에 헌신 예배 시간이 있었다. 그 예배에는 '남성' 목사님·장로님이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성찬식이었는데, '여성' 목사님이 성찬을 집례하고, '여성' 장로님이 분병과 분잔을 맡아 진행됐다.

"어? 우리 교단에 여성 장로님이 있어요? 그게 가능해요?"

주일성수가 어려운 직장에 1년 정도 다녔던 때 말고는 평생 교회를 떠나 본 적이 없었는데, '여자'가 장로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서야 처음 알았다.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성경 공부도 열심히 하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했는데 그건 몰랐다. 교회 내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그때 수백 명의 여성들이 함께 한 성찬식은 나에게 꽤나 충격적이고도 감동적이었다. '남성' 없이도 온전히 예배할 수 있었고, 성찬을 나눌 수 있었고,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할 수 있었다. 

그다음 주일, 청년부 예배를 드리러 가서 교단 내 여성 단체에서 일하게 됐다고 말씀드리자, 청년부 목사님께서는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말씀하셨다. 

"그럼 이제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해야지? 금요 기도회 찬양팀 들어올 거지?" 

그전 직장에 다닐 때 출근을 하느라 주일예배에 잘 참석하지 못한 것이 왠지 양심에 찔렸고, 딱히 거절할 다른 이유도 없어 금요 기도회 찬양팀에 들어갔다. 이듬해에는 청년부 셀 리더가 됐다.

교단 내 여성 단체에서 일하면서, 수십 년 동안 여성 안수를 '허락'(?)받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여성과 남성을 평등하게 창조하셨고, 교회에는 분명 여성의 수가 더 많은데도, 여성 안수를 남성들에게 '허락'받아야 했던 과거에 대해서 말이다. 함께 신학 공부를 하고도 여성 안수가 '허락'되지 않아 평생 전도사로 사역해야 했던 여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율로 보면 아직도 적지만 우리 교단 다른 교회에는 여성 목사님들과 여성 장로님들이 꽤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렇지만 내가 디니는 교회의 시계는 여성 안수제 시행 이전 과거에 멈춰 있는 듯, 여전히 '남성' 목사님과 '남성' 장로님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를 꾸려 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강대상에 남성 목사님과 장로님들만 서 있는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고 익숙했는데, 점차 불편한 질문들이 생겨났다.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주일 2부 예배에는 왜 항상 '남성' 장로님들만 기도할 수 있는 거지? 왜 여자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은 수요 예배와 주일 1부 예배 때만 기도할 수 있는 거지? 왜 우리 교회에는 여자 장로님이 안 계신 거지? 왜 우리 교회에 '여성' 사역자는 유치부 전도사님뿐인 거지?’

교단 내 여성 단체에서 일하게 된 지 3년 차 때, 교회에서는 청년부 회장을 맡았다. 나 말고는 딱히 회장을 할 만한 청년이 없고, 또 내가 성실하게 잘할 것 같다고들 말했다. 나는 성격이 내향적이고 리더십이 있는 편이 아니어서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회장으로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그 역할에는 '청년부 헌신 예배' 인도 순서를 맡는 것도 포함이었다. 

청년부 헌신 예배를 드리던 날, 점심을 먹으러 교회 식당에 갔는데 한 집사님께서 나를 낯선 분께 소개했다. 

"교수님, 이 자매가 청년부 회장이에요. ○○아, 오늘 헌신 예배 때 말씀 전하실 교수님께 인사 드려."
"어? 청년부 회장이 여자야?"

띠용. 나를 처음 본 그 교수님의 반응은 청년부 회장인 내가 '여자라서' 놀랍다는 식이었다. 세상에, 21세기에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사실 우리 교회 청년부는 재적 인원으로 보면 '형제'들이 더 많지만, 임원이나 셀 리더로 봉사를 하는 청년은 '자매'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봐온 청년부 회장은 대부분이 언니들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도대체 저게 무슨 말씀이실까?' 생각하며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헌신 예배에서 기도 순서를 맡은 교회 동생과 함께 담임목사실에 다시 인사를 하러 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늘 예배 인도를 맡은 청년부 회장 ○○○입니다. 이 친구는 오늘 예배 때 기도를 인도할 청년부 리더 □□□입니다."
"그래요, 반가워요. 이야~ 여기 청년부 리더들은 다들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얗구만."

공교롭게도 그날 기도 순서를 맡은 그 동생도, 나도 키가 좀 큰 편이었다. 둘 다 피부가 하얀 편이기도 했다. 그러니 교수님의 말씀이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청년부 헌신 예배에 말씀을 전하러 오신 분이 우리에게 하실 말이 그런 것뿐이었을까.

헌신 예배 강사님께 난데없는 외모 평가를 받고 이내 기분이 불쾌해져 예배 내내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그 교수님이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청년의 때에 주께 헌신하라고 외쳤지만, 왠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분은 과연 기도 순서를 맡았던 그 동생과 내가 남자였어도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교회의 가부장적인 예배와 문화에 불편함을 느끼며 나는 점점 불만이 많은 사람이 됐다. 교회에서 몇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목회자에 대한 신뢰도 깨졌다. 항상 옳지만도 않은, 나와 똑같이 불완전한 인간인 목회자와 장로들이 결정하고 지시한 대로 순종하며 따르고 싶지 않았다. '빡치움'이라는 필명은 청년부 임원 시절, 내가 늘 화가 많다며 교회 동생이 지어 준 별명을 살짝 비튼 것이다. 우리 교회 청년부에서 나는 봉사며, 행사며, 참여할 건 다 하지만 동시에 불만도 많은 그런 청년이었다.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늘 예배를 드리고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온전히 예배하지 못했다. 나는 예배의 자리에서도 '마르다(마리아의 언니 - 편집자 주)'라고 불릴 정도로 늘 분주했고 생각이 많았다. 그러던 중 직장에서 친밀하게 지내던 여성 목사님 '채움'이 나에게 움트다 모임을 소개해 주셨다. 나이도, 사는 지역도, 직분도 서로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우리들은,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분노했고 서로를 위로했다.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앞으로의 연대를 꿈꿔 나갔다.

여성주의 예배를 만나다
"우리를 통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움트다 모임이 시작된 이듬해, 우리는 '여성주의 예배'를 드려 보기로 했다. 예배를 준비할 '여성주의 예배팀'을 꾸리는데, 나는 꽤 오랫동안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예배팀원이 되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느껴 지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성주의 예배팀에서 나에게 설교 순서를 맡아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정확히는 목사인 움(우리는 서로를 '○○움'이라고 부른다)과 대화하는 형식의 설교에 참여하는 거였는데, 설교는 목회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 오던 나는 그 제안을 받고 적잖이 당황했다. 당시 움트다에서 활동하던 '움'들은 다수가 여성 목회자이거나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교회 청년이고 신학도 공부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감히 설교를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설교할 '채움'의 권유에 용기를 내어 여성주의 예배 설교를 준비하게 됐다.

설교 준비 과정은 나에게 참 낯선 경험이었다. 여성주의 예배팀에서 정한 설교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첫 증인인 여성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뒤로 성경과 역사에서 그들의 존재가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었다. 나는 '채움'과 함께 사복음서에 기록된 부활 사건들을 읽고, 묵상하고, 비교하고, 질문했다. 같이 식사를 하고 때로 함께 숙박도 해가면서 성경 본문을 정하고 설교를 준비했다. 한 성경 본문을 오랜 시간 여러 번 묵상하며 '할 말'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생경한 일이었다.

여성주의 예배 설교를 준비하며 돌이켜 보니, 그동안 교회 예배에서 수많은 예배를 드려 왔지만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성경 본문을 읽거나 여성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성경 속 여성을 주제로 설교를 들을 때는 주로 룻기나 에스더서가 본문이었고, 신약성경이 본문일 때는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았던 여인이나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눈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하는 정도였다. 그동안 내가 드린 예배에서는 설교를 하던 사람이 '남성' 목회자였을 뿐만 아니라, 설교 속 등장인물도 대부분 '남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드려진 움트다의 첫 여성주의 예배에서는 모두가 둥그렇게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누구도 목회자이거나 순서를 맡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높은 강대상에 올라가지 않았다. 누군가는 예배 공간을 세심하게 꾸몄고, 누군가는 찬양을, 누군가는 기도를, 누군가는 성찬 집례를 담당했다. 나는 발표 울렁증으로 목소리가 덜덜 떨렸지만 '채움'과 함께 준비한 설교를 전했다. 

"사복음서 뒤로 종적을 감춰 버린 여성 사도들은 2000년째 교회에서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보내심을 받았던 예수님의 사도입니다. 가부장적인 교회의 시스템에서 그들의 이름은 조용히 지워졌지만 오늘 우리는 부활의 증인으로, 사도였던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도 2000년 전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첫 증인이었던 선배 여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 위로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무명인이 아니라 유명인이며 우리를 통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 사진 제공 빡치움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 위로하고 사랑할 때 우리는 무명인이 아니라 유명인이며 우리를 통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진 제공 빡치움

여성들이 함께 모여서 준비하고 드린 예배. 그곳에도 하나님께서 임재하셨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셨다. 그 뒤로 이어진 코로나19 확산세 때문에 움트다의 여성주의 예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 공간에서 예배하지는 못하지만, 예배 키트를 준비해 참가자들에게 택배를 보내고, 온라인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예배하고 있다.

움트다의 여성주의 예배에서는 누군가가 예배를 홀로 이끌지도 않고, 예배 참석자들이 수동적이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예배의 공간, 순서, 키트까지 예배를 구성하는 모든 것에 많은 고민이 녹아 있다. 이렇게 잘 차려진 예배의 자리에 초청받은 참석자들은 환대받고,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성경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비춰 본다.

나는 지역 교회의 한 청년일 뿐이지만, 한국교회 많은 여성들이 교회에서, 예배의 자리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지만 소외되고 불편함을 느꼈던 여성들에게 움트다의 여성주의 예배가 하나의 대안과 위로가 되기를!

빡치움 / 지역 교회의 오래 된(?) 청년. 교회의 여러 문제들에 화가 많지만, 예배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는 않은 움트다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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