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견과 판단의 소용돌이 한복판

"Bullshit, it's all bullshit!"

'이중직 목회자', '자비량 목회자', '자급 성직자' 등 부르는 명칭은 다양하지만, 결국은 "목회자는 반드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유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위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내 경험으로 이중직 이슈는 "세상 물정 모르는 목회자가 신자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필수적으로 경험해야만 하는 것"인 양 논의되고 목회자들에게 종용되는 것이었다. 대체 신자들의 세상살이가 얼마나 범접치 못할 만큼 고되고 대단한 것이길래, 고등교육을 7년 이상이나 받은 전문 서비스 인력인 목회자가 '이중직'이라도 해야만 공감할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 여겨지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뿐만 아니라 내게 한국 개신교회 이중직 논의는 약삭빠른 교회 재정부 안수집사·장로가 목회자들 사례비를 동결·삭감하고 저임금에 평소와 같은 강도로, 혹은 그 이상으로 종교 서비스를 요구하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라는 생각이 강했다. 내 생각에 목회자의 생활은 목회 영역 전반에 투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되고, 스스로 인생과 세상살이를 성찰할 만한 여건이 된다. 굳이 다른 일을 더 해서 에너지를 더 소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런 내게 한국 개신교회의 '이중직 목회자' 이슈가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혹자는 나를 강도 높게 비판할 것이다. 저마다의 가치판단이 있을 테니 비아냥거릴 수도, 허탈해하거나 억울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실제로 이중직에 처해 있는 이들은 더더욱 저마다 느끼는 바가 다를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에는 이중직에 대한 각양각색의 가치판단이 끊임없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중직 이슈는 목회자의 생계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 넓게는 교회론, 좁게는 직제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와 가치가 각축을 벌이는 민감한 전쟁터다.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며 '판단'의 포화를 쏘아 올리지만, 과연 그 수많은 말잔치 속에서 어느 판단이 실제로 적중할 만한 것인지는 의심이 든다.

<우리는 일하는 목회자 입니다 - 한국교회 성장주의의 이면과 이중직 목회자 현실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 김재완 지음 / 이레서원 펴냄 / 184쪽 / 1만 1500원
<우리는 일하는 목회자 입니다 - 한국교회 성장주의의 이면과 이중직 목회자 현실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 / 김재완 지음 / 이레서원 펴냄 / 184쪽 / 1만 1500원

김재완의 <우리는 일하는 목회자입니다>(이레서원)는 무수히 쏟아지는 미심쩍은 의견과 판단 속에서, '이중직 목회자'라는 현상의 실상이 정말 어떠한지 담담한 시선으로 실증하려고 시도한다. 인류학을 전공한 저자는 질적 연구를 통해 '이중직 목회자'라는 부족들(tribes)의 커뮤니티를 직접 참여 관찰하고 면담한다. 그리하여 이중직 한복판에 있는 이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이러한 자기 이해를 둘러싼 구조적 요건들은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이 책에 따르면, '이중직 현상'은 목회자들이 교회·사회라는 서로 상충하는 문화를 동시에 끌어안고 기존 교회 구조와는 다른 형태로 목회자 정체성을 구현해야 하는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한다.

2. 쇠락하는 교회의 산물

왜 목회자가 일해야 할까? 어째서 목회자는 '이중직'이라는 상황에 처하게 됐을까? 저자는 "심화되는 한국 개신교회 균열 속에서 발생하는 서바이벌 상황"(23쪽) 때문이라고 답한다. 저자가 그리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는 (극소수의 '서울권 교회 청빙 담임'을 제외한) 목회자들이 극도로 한정된 자원 속에서 각축전을 벌이며 살아남아야 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숨통이 더욱 조여 오는 '배틀 그라운드'와 같은 곳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통해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형 교회들을 키워 냈고, 이들 교회를 중심으로 생산되는 가치와 프로그램을 다른 교회가 유통하며 성장해 왔다. 이러한 성장 과정 속에서 한국 개신교회는 '개척 - 성장 - 대형화'라는 교회 발달론을 일반화할 수 있었으며, 이는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장 간증을 통해 강화·확산돼 왔다. 개신교인들은 호재의 한복판에서 꿈과 희망에 부풀어 너도나도 목회자의 길로 뛰어들어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만 해도 성장세였던 개신교회에서는 개척을 통해 소위 '부흥'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교회의 성장세는 꺾이고 점차 침체되기 시작했다. 교회는 이제 더는 성장하지 않는다. 목회자들은 새 신자가 더 이상 유입되지 않는 환경에서, 즉 이미 존재하는(나아가 감소하는) 신자 풀(pool) 내에서 목회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좋지 않은 상황 속에도 성장의 관성은 그대로 남아, 새로이 개척되는 교회는 계속해서 생겨난다.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과거와 달리 이 교회들은 더 이상 큰 교회가 되지 않는다. 성장 담론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다. 저자는 성장의 정체기를 넘어 침체기·하락기를 맞은 한국 개신교회에서 "(개척된)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교인 증가'가 이제는 매우 어려워졌다"(30쪽)고 관찰한다.

교세의 하락은 곧 목회자들의 빈곤으로 직결된다. 성장하지 않는 개척교회는 그대로 미자립 교회로 남아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고, 곧 목회자 생계 문제로 이어진다. 더 이상 교회에서 '벌이'를 할 수 없는 목회자들은 빈곤을 해결하고자, 그리고 목회를 어떻게든 지속해 나가고자 구직 현장으로 내몰린다. '이중직 목회자'는 쇠락해 가는 한국 개신교회가 낳은 이들이다.

3. 이중적 고난 속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목회론·교회론

그렇다면 대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중직 목회자란 그저 목회에 전념할 여건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노동하는 '반쪽짜리 목회자'일 뿐일까? 이 부분에서 한국 개신교회는 숨도 안 쉬고 많은 의견과 판단을 쏟아 내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둘러 내린 가치판단을 뒤로하고 실제로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 특별히 그들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두고 벌어지는 현상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중직 목회자들에게 벌어지는 현상이 "죄인 되기"(173~174쪽)1) 현상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일터를 박차고 나가지도, 목회자라는 정체성을 벗어 던지지도 않은 채 두 가지 상충하는 정체성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175쪽)

노동자와 목회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은 서로 충돌하며 이중직 목회자들에게 끊임없는 정체성 혼란을 안겨 준다. 이 혼란은 교회가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역할과 실제로 이들이 수행하는 역할의 불일치 형태로 나타나는데, 성장 환경에 익숙한 개신교회가 더욱 성장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목회자들에게 '오로지 목회에만' 전념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직 목회자들은 새로이 갖게 된 노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목회에 쏟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목회자로서의 윤리관에 가로막힌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금전적인 손해를 막기 위해 점점 타산적이 되어 간다는 점에서 혼란을 느끼고 소위 '현타'에 빠진다.

그러나 이중직 목회자들이 단지 각박한 생존 현장 속에서 절망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성장 담론하에 정립된 기존 교회론·목회론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자신들의 이중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현실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화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의 새로운 노동 현장에서 목회 윤리적인 방향성과 개신교도 정체성을 섞어 가며 독특한 목회관을 창출한다. 나아가 변화하는 교회의 환경 속에 더 적합한 새로운 방향성을 창출한다.

이를 단적으로 요약하면 '이타성'의 추구인데, 이중직 목회자들에게 노동의 의미는 단순히 이익 창출(경제적 생존)과 자아 실현(목회의 지속)을 넘어, 이타성을 지니고 목회자의 정체성을 수행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128~129쪽). 이들은 그동안 개신교회 내에서 유통돼 왔던 '목회자/노동자', '성/속' 이분법 구조를 허물고, 어떤 직종·현장에 있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일, 즉 목회 사역으로 변화시키는 존재로 승화한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변화하는 교회 구조 속에서 새로운 교회론·성소론·직제론을 창출해 내는 최전선에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자각하든 자각하지 못하든 말이다.

일하는 목회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이중직 환경을 '새로운 목회자론'을 통해 극복해 나간다. 이들은 '목회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새로이 답변해 나가는 삶의 집단이다. 물론 이러한 정신적 극복이 실질적인 정체성 혼란과 경제적 곤핍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새롭게 정립된 목회자 정체성은 이들 안에서 목회자·교회·교단의 관계, 노동자이자 목회자인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제시한다. 이중직 목회자는 다층적인 정신 활동 속에서 창출된 새로운 신학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4. 들어 읽기, 멈추고 생각하기

이중직을 둘러싸고 수없이 많은 말이 쏟아진다. 적어도 내 생각에 이와 같은 수많은 말잔치는 이중직 목회자들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관심을 결여하고 있다. 그저 개인적 경험의 '편린'을 앞세운 가치판단하에 단편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교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일하는 목회자입니다>는 이중직 목회자들, 즉 한국 개신교회 대부분의 "보통 목회자"(22쪽)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이 어떠한지 보여 주는, 의미 있는 관찰 결과를 내놓고 있다. 

<우리는 일하는 목회자입니다>는 한국 개신교회 모든 내부자에게 판단을 잠시 유보하라고, '이중직 목회자' 현상을 여러 방면에서 더 자세히 실증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이중직 목회자'라는 '부족(tribe)'에 대한 관찰 결과이기에, 이를 둘러싼 거시적·사회사적 차원에서의 또 다른 실증이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되도록 빨리 판단하고 아무렇게나 해결해 버리고 싶겠지만, 이는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좋은 태도도 아니다(181쪽).

어쩌면 이 책이 제시하는 관찰 결과는 누군가에게는 매우 뜻밖일 수도 있다. 특히 성장의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는 '끝물'의 부류들, 즉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의 제도적·재정적 결정권을 지니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정작 결정권이 있는 자들은 이런 책 따위에 흥미조차 없을 것이고, 설령 읽더라도 교계에는 사회과학적·생산적 논의로 이어질 만한 체계가 대체로 미비하다 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해낸 것과 같은 시도가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진흙탕 속에서도 연꽃은 피는 법이니, 부디 이러한 작업을 누군가라도 들어 읽고 잠시 멈춰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권우진 / 틈을 내는 사유의 실천, '짓:다' 에디터. 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1) 파푸아뉴기니의 자생 기독교 민족인 '우랍민'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 그들의 전통적 윤리관은 '의지'를 숭고하게 여기는 반면, 그들이 새로이 받아들인 기독교적 가치관은 신 앞에 의지를 '굴복'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들은 이 두 가지를 절충하지 않고 상충한 채로 양립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를 통해 일상에서 죄의식을 쌓고 이를 기독교 전례 속에서 털어 버린 뒤 다시 '죄인이 되기 위해' 일상으로 복귀하는 독특한 사회 풍습을 만들어 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