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교육연구소를 운영하며 하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임정혁 목사(42)가 암 투병기 '창 너머 풍경'을 연재합니다. 누구보다 정력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을 통해 하나님과 삶을 신앙적·실존적으로 돌아보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뉴스앤조이>는 인생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후반전을 시작하는 임 목사의 이야기를 6회에 걸쳐 격주로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제주의 차가운 바람과 유채꽃 향기

제주 성산일출봉을 방문했다. 그곳을 오르기보다 그 앞에 있는 올레 길을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찬바람은 여전히 매서웠다. 바람이 볼을 스칠 때마다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성산일출봉 올레 길은 바람을 막아 줄 만한 건물이나 산도 없어서 유난히 더 춥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그냥 걷고 또 걸으며 아직 정리되지 않은 암 투병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바다와 호수가 만나는 다리를 건너고,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넓은 유채꽃밭이 나왔다. 연인들은 추운 날씨에도 사랑을 고백하며 사진을 찍었다. 친구끼리 온 관광객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홀로 서 있었지만, 마음에 설렘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괜히 풋풋했던 20대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고, 17년 전 신혼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음속에 핑크빛 기운이 가득 찰 때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마스크 안으로 스며들어 왔다. 세차게 불던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유채꽃밭의 향기가 내 쪽으로 몰려왔던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했다. 만약 이 차가운 바람 속을 걷지 않았다면 이 예쁜 유채꽃을 볼 수 있었을까? 만약 거칠게 느껴졌던 이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저 향긋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을까? 내 마음이 설렘을 느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이렇게 사색을 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 순간 볼이 아리게 추웠던 시공간은 가슴 벅차오르는 뜨거운 은혜의 현장이 되었다.

성산일출봉과 유채꽃밭.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성산일출봉과 유채꽃밭.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모든 것을 바꾸는 공감각적 고난
추위, 피로, 감정 기복

'공감각'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자극에 의해 일어나는 하나의 감각이 동시에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고난은 언제나 공감각적으로 다가오곤 했다. 중증 질병 역시 해당 부위에만 문제 또는 변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몸의 모든 부분과 삶 자체를 바꿔 버린다.

실제로 암 투병 이후 나의 삶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늘 더위를 타던 내 몸은 추위에 매우 민감해졌다. 이번 4월 중순까지도 발이 시려 양말을 신고 자야만 했고, 방 안 보일러 온도를 높여 찜질방처럼 지내야만 했다. 가족들은 이미 반소매 옷을 입고 날이 덥다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긴소매 옷에 따뜻한 물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극심한 피곤함 역시 눈에 띄는 변화였다. 호르몬 약을 먹긴 하지만 그 이전에 비해 체력이 떨어지기도 했고, 피로감이 좀 더 일찍 찾아왔으며, 한번 찾아온 피로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갑상선 전체와 양쪽 귀밑부터 쇄골 아래 혈관에 있는 암 덩어리, 어깨 위 임파선의 ⅔를 제거하고 나니, 운전을 조금만 해도 어깨가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져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최소 30분에서 1시간은 마사지해야 겨우 근육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기복은 이 모든 변화의 정점이었다. 암 수술과 항암 치료 이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평소 예민했던 성격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조절이 어려웠다. 이에 스스로 괴로움을 느끼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홀로 지낼 수도 없고, 일상으로 복귀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 당시 내 마음은 답답함과 조급함까지 더해진 혼돈 그 자체였다.

이렇게 복잡하고 스펙터클한 변화와 함께 암 투병을 한 지 벌써 6개월을 넘어섰다. 여기에 앞으로 최소 5년은 중증 환자로 지내야 한다. 그 후 5년을 더 추적 관찰하며 재발이 확인되지 않아야 비로소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다. 실제 내가 항암 치료를 하러 갔을 때는 10년 전 수술했던 암이 재발해 온 이도 있었고, 암 환우 커뮤니티에서도 재발 관련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 기대보다는 답답함이 더 큰 것이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여지껏 고된 인생을 살아 냈기에, 열심히 살다 경험하게 된 이 중증 질병을 삶의 일부로 인정해 냈기에, 비로소 삶의 의미와 신앙을 재점검할 수 있었다. 나아가 조금 이른 나이에 이러한 중증 질병을 경험했기에, 절벽을 향해 앞만 보며 달리던 삶을 멈출 수 있었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단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나는 인생이란 거대한 바람을 혼자만의 힘으로 돌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을 타고 좀 더 가볍지만 힘차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

우리는 중증 질병을 이성으로만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무엇을 잘못 했는지, 저 사람이 내게 어떤 스트레스를 제공했는지 찾게 된다. 그리고는 정신력 하나로, 체력 하나로, 신앙 하나로 이겨 내려고'만' 한다. 중증 질병과 같은 고난은 늘 공감각적으로 다가오는데, 우리는 이에 단편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에서마저 비슷한 사례를 볼 때가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교회는 중증 질병이 하나님께서 복 주시려고 허락하신 것이라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이 고통을 통해 나를 순종하게 하시려고, 은혜 주시고 싶어서 일부러 겪게 하신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감사를 통해 이 고난을 이겨 내라고도 한다. 그러나 막상 중증 질병을 맞닥뜨린 이에게 그 상황은 말 그대로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순간이다. 이것을 부정하고 무작정 감사하라는 건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어떤 사람도 복 받고 싶어서 일부러 암에 걸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기왕이면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감사한 마음으로 건강히 살고 싶어 하지, 뇌출혈 등을 경험한 후 그렇게 살겠다 하는 이는 없다.

위와 같은 설교가 묘사하는 하나님은 과연 누구인가? 아무런 자비나 감정도 없이 인간의 고통을 즐기며, 이 테스트를 통과한 이에게만 은혜를 주려 하는 분인가? 적어도 내가 인생과 성경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크리스천이 아닌 이들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들꽃을 보고, 향긋한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행복함을 느끼기를 원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내 몸과 마음이 내는 소리

이제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귀에 들리는 것을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도 않고, 냄새를 맡아도 냄새 나는 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이면에 숨은 의도나 음모를 파악하기 위해 의심 가득한 눈으로 산다는 것이 아니다. 신비하고 이상한 무언가를 얘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성령의 세미한 음성과 내 몸과 마음의 느낌과 소리, 그 선택이 풍기는 냄새 등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 즉 삶을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살아 보니, 인생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데 차분함과 상상력, 창의성 등이 더해지고, 고난을 소화하는 일도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공감각적인 방식으로 삶을 산다는 건 조금 낯선 느낌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내 몸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 소리를 들으려면 몸의 느낌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몸의 느낌에 집중하려면 호흡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호흡을 정리하며 내 몸과 마음이 내는 냄새를 느껴 보고, 내가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을 잠시 멈춤과 비움의 과정을 통해 천천히 이뤄 보는 것이다.

나는 그 멈춰지고 비워진 시공간에서 주로 '걷기'를 하고 있다. 대자연의 생명을 보면서 바람 소리를 듣고 그 냄새를 맡으며, 내 다리와 몸에서 흐르는 땀을 느끼며 산과 들과 바다를 걷고 또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자신이 비워짐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내 안에서 떠오르는 의식의 파편을 보며 지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채려고 시도한다. 또한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느끼며 그 인도하심에 온전히 나를 의탁하고, 그분의 계시를 신뢰하며 비워져 있는 내 자신이 충만해지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경험하다 보니, 삶의 속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어떤 일을 해도 감사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론 성경 말씀을 공감각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목회자는 일종의 직업병이 있다. 성경 말씀을 계속 주석하고 해석하며 연구하려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말씀의 본질을 찾기 위해 매우 중요한 선행 작업이므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만, 나는 투병 생활을 하며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성경 속에서 질병을 경험했던 인물의 마음과 삶이 내 경험과 다르지 않다는 공감으로부터 시작됐다. 그 인물의 삶과 하나님의 말씀이 만나는 지점을 살펴보는 것, 그 지점에 내가 직접 서 있어 보는 것, 그때 주님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이 성경 속 인물이 지금 내 자리에 와 있다면 어떤 감정과 마음으로 어떤 선택과 반응을 했을지 등을 상상해 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지면 속 말씀을 살아 있는 현장으로 만들고, 내 삶이 곧 주의 역사가 되는 경험으로 인도하는 느낌을 줬다.

인생은 복잡하다면 복잡하고, 단순하다면 단순한 것 같다. 재밌다면 재밌고, 고통스럽다면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떤 가치관과 태도로 살든지 내 몸과 마음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 인생은 불안과 갈등의 연속이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또한 내 안에 계시고 지금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음성과 손길을 느끼며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암 투병을 통해 내가 배운 새로운 삶의 방식은 바로 이것이라 정리할 수 있겠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