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교육연구소를 운영하며 하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임정혁 목사(42)가 암 투병기 '창 너머 풍경'을 연재합니다. 누구보다 정력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을 통해 하나님과 삶을 신앙적·실존적으로 돌아보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뉴스앤조이>는 인생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후반전을 시작하는 임 목사의 이야기를 6회에 걸쳐 격주로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내가 암에 걸린 데는 당신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 운전석에 있는 아내에게 이 말을 던졌다. 무심한 듯, 별로 큰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지만 주변 모든 것을 적막하게 만들었다.

"그래, 난 남편을 암에 걸리게 만드는 나쁜 여자야!"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흐느끼며 답한 이 한마디. 마치 조금 전 일어난 일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아 가슴이 아려 온다.

지금 돌아보면 전혀 진심이 아니었고, 객관적인 사실도 아닌 말이었다. 내가 암에 걸린 것은 열심히 살아가는 누구에게든 올 수 있는 상황이었을 뿐,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이 하얗게 허공에 흩뿌려졌다.

암 투병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는 것.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그랬고, 수술 직후에도 쉽지 않았다. 특히 항암 치료 후에는 정말 힘들었다. 몸이 아픈 만큼 마음도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며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 부분은 초기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었다. 암 판정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먼저 투병 생활을 하던 한 목사님이 우리 부부에게 말했다. 자기도 온전한 정신으로 치료받기 힘들었다고. 우울하고 힘든 마음이 태도로 드러나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는 사람, 즉 가족이 상처받게 되더라고. 하지만 이 점을 이해하고 잘 받아들여야 투병 생활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다고. 그런데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매우 힘들다고.

이후 나는 내 감정이 태도로 드러나지 않게 하려 노력했다. 일단 목소리 자체가 잘 나오지 않아 날카롭고 공격적인 태도를 형성하기 어려웠고, 꾸준히 나 자신을 성찰하는 훈련을 해 왔기에 평소에는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사회적 경로를 통해 만단 이들, 예컨대 학교 등에서 직업상 만난 분들과의 대화도 차분하게 이어 갈 수 있었다. 일정한 개인적 거리를 두며 그간의 사회생활 습성을 그대로 표현했다. 또한 이미 너무 많은 이에게 도움을 받았던 터라 감사의 마음이 훨씬 큰 것이 사실이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 적이 거의 없었다. 사실 아이들이 철딱서니 없게 떼를 쓰거나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며 차분한 감정을 유지하는 것은 건강할 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희한하게 투병 기간 중에는 이러한 아이들의 다툼마저도 한없이 소중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마냥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문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 즉 '아내'와의 관계였다. 이상하게 아내를 아이들이나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던 분들처럼 대하는 게 '불/가/능'했다. 나는 아내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 병 수발까지 하느라 힘든 것을 알면서도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원망과 잔소리를, 모기 소리처럼 나오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퍼붓고 있었다.

아내에게 '무조건반사'처럼 퍼붓는 나 자신을 보며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러한 경험을 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암 환우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 가 보니,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의 한마디에 너무 서러워 눈물을 흘렸다는 글이나, 자신이 배우자와 자녀에게 거친 감정 표현을 한 것이 미안하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아내와의 관계를 이대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아프다는 핑계로 내 마음이 멋대로 뛰쳐나오게 놔두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계속 상처를 줘서는 안 됐다. 어떻게든 지금 할 수 있는 선에서 이것을 정리해 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투병 생활이 끝난 후에도 가정이 무너지고,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에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길 것이 자명했다.

기도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다. 때론 소리 내어 기도하고, 때론 침묵으로 그 음성을 듣고자 했다. 말씀을 읽었다. 성경 속 신앙의 선배들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 이때 하나님은 어떤 말씀을 주셨고, 예수께서는 어떻게 몸소 살아 내셨는지 살피고자 했다.

내 마음을 헤집고 있는 감정을 발견하고자 했다. 어떤 감정에 내가 사로잡혀 있는지 알고자 했다. 아내와의 관계에서 내가 던졌던 말들과 내 눈빛, 내 몸짓을 두루 살피면서 내 자신을 객관화해 봤다. 다시 그 상황에 들어가 부드럽고, 예쁘게 반응하는 연습을 했다.

꾸준히 걸어 보기도 했다. 매일 1만 보 걷기를 실천하며 규칙적인 리듬과 호흡을 형성하고자 했다. 요동치는 마음을 안정화하고, 고민의 실타래를 천천히 살피며 풀어 가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1만 보 걷기는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으나, 시간에 쫓기지 않고 걷다보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내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조금 더 절제된 말이 나오게 됐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하던 것은 감사로 변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도 더 여유롭고 긴 안목으로 찾게 됐다. 사랑이 깊어지고, 희락이 생기며 모든 것에서 화평이 깃들기 시작했다. 암 투병 중에 힘든 감정이 태도로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이 역시 은혜 가운데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마 지금 이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중증 질병과 사투를 벌이는 분도 계실 것이고, 이제 막 투병 생활을 시작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글을 정리하며 이러한 환우들께 자신의 투병 환경에 변화를 주는 것이 감정 조절과 태도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또한 치료비 문제 역시 매우 현실적인 부분이므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지혜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형편이 어려우면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할 것을 권한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음을 신뢰해야 한다. 나는 일면식조차 없는 분들이 기도해 주시는 것을 보았고, 평소 왕래가 거의 없었던 분이 보내 주신 도움으로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둘째, 암 수술 이후와 항암 치료 기간에는 가급적 요양 병원에 입원할 것을 권한다. 아무리 작은 암이라도 암이 몸에 주는 부담은 일반적인 질병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항암 치료는 약 자체가 독하고, 수차례 진행되며, 항암 이후 컨디션이 극도로 안 좋아지는 게 일반적이기에 요양 병원 치료가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때는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지고 자녀나 배우자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이것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며 치료에 전념해야 해결되는 문제다. 회복에 도움이 되는 약도 먹고, 살림이나 자녀 걱정 없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본인이나 가족 모두를 위해 더욱 유익한 길이다.

셋째,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하는 말에 현혹되지 말고, 주치의의 지도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 인터넷을 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가 있다. 암에 특효라는 민간요법도 수없이 많다. 나 역시 주변으로부터 암에 좋다는 것들을 여럿 받기도 했는데, 그분들 마음은 너무나도 감사하지만, 그중 일부는 오히려 암 치료에 상극인 것도 있어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넷째, 내 주변 목회자 중에는 그 흔한 실비 보험조차 가입하지 못한 분이 수두룩하다. 당연히 암 보험은 엄두조차 못 내는 분들이다. 그러나 치료비는 현실이다. 카드 할부 결제를 한다 해도 임시방편일 뿐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밀려온다. 그러므로 저렴하더라도 최소 3대 질병, 즉 암·뇌혈관·심혈관 질환 보험 하나와 실비보험은 꼭 가입할 것을 권한다. 나 역시 1만 원 초반대 실비 보험과 2만 원 후반대 암 보험에 가입돼 있었는데, 이것만으로도 꽤나 도움이 됐다.

어쩌면 은혜가 안 되는 세속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병원비가 모자라 고민하며 발을 동동 구르거나 생활비 때문에 수술과 항암 치료 이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은혜가 안 되는 일이었다. 물질의 시험을 건강히 소화해 내는 일 또한 투병 생활에 임하는 내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기억하며 형편에 맞게 차근차근 준비할 것을 진심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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