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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정신이 없는 육체가 지옥이지만, 육체가 없는 정신도 지옥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은 심신 문제(mind-body problem) 논쟁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일찍이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해 "육체는 정신의 감옥"이라고 했고, 데카르트는 실체론을 통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선포하며 물질(신체)에 대한 정신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이처럼 플라톤과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심신이원론'에 대해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는 한 실체의 두 가지 측면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심신수반론의 창시자인 김재권은 정신의 문제는 결국 뇌라는 물질의 문제로 귀속된다고 보는 물리주의(physicalism)를 강력히 옹호하며 '심신일원론'을 주장했다.

전현식 외 10명의 저자들이 저술한 <생태 사물 신학 -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생태신학>(대한기독교서회)은 물질을 열등한 것으로 여겼던 심신이원론에 반기를 든 심신일원론처럼, 물질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이해를 제시하는 책이다.

<생태 사물 신학 -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생태신학> / 전현식·김은혜 외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 312쪽 / 1만 8000원
<생태 사물 신학 - 팬데믹 이후 급변하는 생태신학> / 전현식·김은혜 외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 312쪽 / 1만 8000원

예수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운동은 생명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명은 생명체로만 구성되거나 유지되지 않는다. 더 많은 비생명체·사물과 얽혀서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새롭게 깨닫게 해 주고 기존 '생명 지평'에서 사물·환경을 포함한 '존재 지평'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도록 통찰을 준다.

기존의 생태신학은 환경 파괴와 생태계 위기의 원인을 인간중심주의에서 찾았다. 그래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 유기체(생명체) 중심으로 생태신학을 전개해 왔다. 그러나 <생태 사물 신학>은 유기체 중심주의를 넘어서 '사물의 신학(theology of things)'으로 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제시한다. 생태계 위기의 문제는 생명체·유기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기후·사물·존재 등 전체가 얽혀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생명체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물질과 사물과 환경을 창조하셨다. '유기체 중심의 생태신학'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므로 이재는 '존재 지평의 사물신학'으로까지 나아가야만 생태계 위기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혜안이다. 즉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생태신학에서, 생명체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사물신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물신학은 인간 > 생명체 > 비생명체(사물) 순을 따르는 서열적 사고의 해체를 내포하고 있다. 서열적 사고는 서열 위의 존재가 서열 아래의 존재를 도구화·수단화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공멸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은 우주 만물이 독립된 실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생진화론·가이아이론·연기론緣起論같이,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변화·소멸한다는 것이다.

질 들뢰즈는 사상 체계를 '수목형'과 '리좀형'으로 구분했다. 수목형은 뿌리는 아래에 있고 줄기는 위에 있는 수직적·서열적 구조다. 리좀이란 프랑스어로 고구마 같은 '땅속줄기 식물'을 의미한다. 리좀형은 식물이 땅속에서 연결되어 있듯이 복수성과 이질성이 서로 수평적으로 상생하는 구조다. 질 들뢰즈의 관점에서 볼 때 사물신학은 '리좀형의 신학'이다.

이 책에서 전현식은 최근의 포스트휴먼 담론을 통해 정신과 물질의 상호작용, 인간과 자연의 상호 주체성, 실재 전체의 내적인 생명력 그리고 물질 행위자의 담론을 강조하면서 인간·자연·기계 사이의 내적 상호성과 횡단성에 주목한다. 포스트휴먼 시대란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자연-기계'의 혼종 시대를 의미한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인공지능은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를 보여 주는 일면이다.

특히 생태 중심주의는 만물의 상호 연결과 상호 의존이라는 생명의 본성에 기초한 생태 이론·운동으로 인간중심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와 같은 전인적 관점은 개체군, 종, 생태계, 생태 공간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인간과 다른 존재의 미래적 이익을 인정한다. 생태 중심주의는 개체의 독립과 자율에 자유주의적 가치의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 인간과 자연의 절대적 구분을 허용하지 않는다.

<생태 사물 신학>의 핵심적인 주장, 즉 유기체 중심주의를 넘어 비유기체적 존재의 얽힘을 조망하는 '사물신학'은 마치 칸트가 인식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것과 같다.

이재근 / 경찰대학 경목실장, 연세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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