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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교통사고로 쇄골 골절. 13살 산에서 놀다가 독사에 물림. 16살 성장통으로 무릎이 찢어지는 고통 경험. 20대 초반 치루 수술,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하다 입대. 허리 디스크로 군 생활 중 3개월을 병원 신세. 2년 전 새벽 급성충수염으로 맹장 수술. 작년 겨울 아이들과 놀아 주다 손목 건초염 발병. 지난 3월 온 가족 코로나19 확진. 지난주 10년간 멀쩡했던 허리 통증 재발.

저는 두 아들을 몸으로 키우는 30대 중반 아빠입니다. 아이 낳을 때 말고는 병원에 입원해 본 적도 없다는 아내에 비하면 화려한(?) 병력을 지녔습니다. 그래도 늘 통증 앞에서 태연하게 또 나름 자신 있게 살아왔습니다. '고장나면 고치면 그만이지' 하고요. 하지만 얼마전 다시 찾아오기 시작한 허리 통증의 불안은 저를 <몸을 돌아보는 시간>(사자와어린양)과 만나게 해 줬습니다. 이 책의 저자 조희선 작가님의 통증 연차에 비하면 저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만, 작가님이 꼼꼼히 기록하신 통증 이야기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살 만해졌고 희망이 생겼다. 눌러놓았던 욕구도 고개를 들었다. 어떤 일이든 하고 싶었다." (64쪽)

책을 보니, 통증이 사라지면 작은 희망이 생기고 곧 다시 절망이 찾아오기를 반복하셨더군요. 책을 읽는 내내 언제 허리 통증에서 벗어나실 수 있으실지 응원했습니다. 예쁘게 디자인된 책에서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맛본 것은 저만의 감상일까요. 살짝 스포일러를 하자면, 고통에 있어서 완전한 해방은 없는 듯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고통 탈출의 희열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비슷한 고통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공감과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몸을 돌아보는 시간 - 운동 부족 의자 노동자의 지긋지긋 허리 통증 탈출기> / 조희선 지음 / 사자와어린양 펴냄 / 240쪽 / 1만 5000원
<몸을 돌아보는 시간 - 운동 부족 의자 노동자의 지긋지긋 허리 통증 탈출기> / 조희선 지음 / 사자와어린양 펴냄 / 240쪽 / 1만 5000원

물론 도수 치료, 온열치료, 주사, 시술, 수술 등 허리 통증 선배님의 '꿀팁'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척추 질환 관련 전문 서적도 인용돼 있어서, 실제로 허리 아픈 사람들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가이드라인도 제시해 줍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병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작가님의 가르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늘 의료진에게만 몸을 맡겨 놓고 '고치면 그만이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좋은 병원, 좋은 의사도 많다. 그러나 무책임한 의사·병원, 엉터리 시술도 있다. 그러니 신문 광고 하나만 믿고 내 몸을 전적으로 맡긴 나처럼, 어리석지는 않아야 한다." (61쪽)

조희선 '선배님'의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최근 다시 허리 통증이 생기는 바람에 화들짝 놀란 제게 축복이었습니다. 경추통·요통이 죽음으로 직결되는 병은 아니지만, 작가님의 20년 허리 통증 탈출기는 통증이 사람을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지 깨닫게 해 줍니다.

군 생활을 하며 허리 통증을 겪었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차라리 다리가 부러졌다면 아예 걷지를 못 했을 텐데, 선임들에게는 제가 멀쩡한 사람으로 보였나 봅니다. 어쩔 수 없이 구부정하게 걷는 제 모습은 그들 눈에 '꾀병'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가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고, 제 근무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 맡아야 했으니 실제로 피해를 끼치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허리 수술을 하고 3개월 만에 부대로 돌아왔을 때는 후임들의 존경을 바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추억 없이 조용히 군 생활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몸을 돌아보는 시간>은 제 경험을 회상할 수 있는 기회도 줬습니다. 이 책을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통증의 경험을 다시 떠올려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통증은 누구에게나 흔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돌아보니, 아파한 적은 많지만 정작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정신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정신조차 육체인 몸에 담겨 있었다. 몸을 갖고 사는 이들의 실제적 애환을, 몸을 가진 존재의 '건강', '죽음', '삶'을 이전보다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76쪽)

이 책은 고통의 의미를 깊이 있게 묵상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으셨던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건강은 '걷기'와 '먹거리'처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실 거고요. 예쁜 디자인과 가벼운 책 크기에 끌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었던 저는 무겁고 깊은 성찰과 사색에 잠기게 됐습니다.

누구나 주변에 한두 분은 있을 법한,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분(제 경우 장모님)에게 선물로 드리기에 좋은 책입니다. 아직 허리 통증을 경험하지 못한 '운동 부족 의자 노동자'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건강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작가님도 자신의 몸과 건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들이 부디 '대수롭게' 여기기를 바란다고 하시더군요. 저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셨다가 진지한 책임감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몸을 돌아보는 시간>에서 말하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연결과 공감을 가지고 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생각의 바다는 자연환경에 대한 걱정과 사랑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정말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를 생각하게 되고, 기후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작가님은 "소비를 줄여야 한다"(226쪽)고 개인적 실천을 제안하시기도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어 종이 사용을 줄일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기도의 방향을 제시하며 마무리됩니다. 지구와 모든 생명체를 위해서요. 이러한 작가님의 뜻을 따라 저도 오늘 밤부터 아이들과 작은 손을 모아 함께하겠습니다.

구선우 / 작은 NGO 기관에서 의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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