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편집기자 일을 하다 보니, 칼럼이나 연재 글을 받을 때 부득이하게 익명 혹은 가명 처리를 요청하는 분을 많이 만납니다. 다른 기자들이 작성하는 인터뷰 기사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아무래도 이런 글들은 주로 교회의 현실을 내부 고발하는 형식을 띠기 때문에, 저로서는 알 수 없는(그러나 충분히 예상되는) 어떤 압력이나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요청하시는 거겠죠. <뉴스앤조이>도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지만, 이런 경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요청을 들어드립니다. 그런데 그런 기사에는 심심찮게 이런 댓글이 달립니다.

"세상에 저런 교회가 어딨냐. 다 지어낸 거짓말이다."
"쯧쯧쯧, 가상의 인물 만들어서 소설 쓰느라 애쓴다 뉴스앤조이."

실명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육하원칙의 몇몇 요소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건데요. 그냥 <뉴스앤조이>가 보도하는 내용이라면 뭐든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웬만하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이런 댓글을 마주할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심지어 어떤 기사에는 "이게 진짜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댓글을 단 분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껏 있지도 않은 '가상의 인물'에게 원고를 청탁하고, 글을 받아 편집하고, 발행 후 원고료 처리까지 안내했단 말인가요? <뉴스앤조이>가 교회를 폄훼하고 망치는 걸 즐거워하는 음흉한 언론이라서 거짓 소설을 썼거나, 기고자·인터뷰이들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가계정이라도 만들어 얼른 반박하는 댓글을 달고 싶은 욕구가 수십 번도 더 올라오지만, 언론 윤리상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저도 차라리 소설이면 좋겠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차별·배제를 경험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겉만 번지르르한 교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들의 목소리가 <뉴스앤조이> 편집국이 머리를 맞대고 지어낸 이야기라면 좋겠습니다. 아니, 만일 제게 그런 놀라운 창작 재능이 있다면 당장 기자 일 그만두고 소설 작가를 하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분들은 '실명'을 기재하면 믿을까요? 아뇨,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그분들에게 중요한 건 '실명이냐 익명이냐'가 아닌 것 같거든요. 글이 폭로하는 교회의 참담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기 때문이거나, 정말 교회에서 아무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이러나저러나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필자·화자가 누군지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인디 포크 가수 김목인 씨의 노래 '대답 없는 사회'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누가 그랬나? 질문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뭐든지 물어보라고. 질문이 끝나고 나면 침묵이 흐르고, 저 사람 누군지부터 물어보는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에게 "저 사람 누구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일까요? 내부 고발자들에게 "떳떳하면 실명 까고 얘기하라", "'당당히 앞에 나와서 말하라"고 요구하는 태도는 누구의 이익에 부합할까요? 언론이 실명 보도를 하며 육하원칙을 철저하게 들이밀어야 할 이들은 약자들이 아니라 권력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자에게 '실명'과 '육하원칙'을 들이밀며 '네 말은 다 가짜다'라고 매도하는 일은, 애써 목소리 내는 그들의 입을 다시 한번 틀어막는 폭력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더 묻고 싶습니다. 당당히 이름을 드러내고 말할 수 없는 이들이 문제일까요, 당당히 이름을 드러내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교회가 문제일까요. 이쯤에서 <뉴스앤조이>가 지향하는 핵심 가치 중 한 대목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교회와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힘을 쏟는 공의로운 언론이 되고자 한다."

모든 이가 자신 존재 그 자체로 용납받고,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고 당당하게 꺼낼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굳이 '익명'을 쓰지 않고도 <뉴스앤조이>에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소설 작가가 아니라 기자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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