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크게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책이 있다. 예를 들면 몇 시간 안에 어떤 주제를 정복한다던가, 며칠 내로 어떤 분야에 대한 이해를 완성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제목을 가진 책들이다. 특히 내 경험상 성경 전체를 그런 식으로 다룬 책은 여지없이 실망감을 줬기에, 그런 책들은 최대한 피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페이지 베노스키의 공저 <30분 성경 드라마>(IVP)은 달랐다. 결과적으로 나의 이런 입장에 수정을 요구할 뿐 아니라 철퇴를 가한 책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이 책의 장점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왕 되심과 주인 되심'이라는 주제를 등뼈 삼아 성경 전체를 일관성 있게 연결했다는 점이다. 또한 성경 전체의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6막 30장이라는 적절한 분량으로 안배돼 있어, 끈기가 약한 독자들에게도 성경을 만날 접촉점을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겹겹이 쌓아 놓아서, 독자의 수준에 따라 더 깊은 진리까지도 발견할 수 있게 했다.

흔히 이런 종류의 책은 '숲'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나무'에는 신경을 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책은 각 주제마다 핵심을 짚어 주면서도, 성경 난해 구절 해설과 역사적·신학적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배경지식에도 적잖은 분량을 할애한다는 점에서 숲과 나무를 모두 품은 입문서라 할 수 있다.

<30분 성경 드라마 - 모든 사람을 위한 30일 완성 이야기 성경 개론> / 크레이그 바르톨로뮤·페이지 베노스키 지음 / 이철민 옮김 / IVP 펴냄 / 282쪽 / 1만 5000원
<30분 성경 드라마 - 모든 사람을 위한 30일 완성 이야기 성경 개론> / 크레이그 바르톨로뮤·페이지 베노스키 지음 / 이철민 옮김 / IVP 펴냄 / 282쪽 / 1만 5000원

성경 본문에는 상당한 역사적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낯선 지명·인명의 나열로 독자들이 금방 지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각 장 시작마다 가벼운 예화로 마음을 열게 하고,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일러스트로 주의를 환기하며, 적절한 지도·표 등을 통해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내용들도 담아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저자들이 깨달은 통찰·적용을 짧은 문장 속에 탁월하게 녹여 냈다는 점이다. 6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발견되는 성경 이야기의 전환점을 소개하고(71쪽), 9장에서는 거룩함과 경외감을 연결해 진정한 사랑이 가진 한계(울타리)를 발견하며(97쪽), 13장에서는 이스라엘 경험에 비춰 왕정 제도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한다(132쪽). 16장에서는 우리 예배가 우리의 삶의 방식과 연결될 뿐 아니라 삶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짚어 내고(157쪽), 23장에서는 신약에서 발견되는 출애굽 모티브를 보여 준다(217쪽). 성경을 잘못 읽고 적용하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을 던지기도 한다(180쪽, 271~272쪽).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새번역을 따라 표기된 "베델"(78쪽)은 개역개정의 표기 "벧엘"을 따랐다면 히브리어의 의미가 더 정확히 담길 수 있었을 것이고, "복음"(212쪽)보다는 "좋은 소식"이라는 표현이 새 신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가나안 땅의 넓이(115쪽)를 설명할 때는 독자들이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예시가 더해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 아울러, 요즘 유행이긴 하지만 쪽 번호가 책 안쪽에 새겨진 것은 개인적으로 페이지를 찾기에 불편했다.

여러 장점이 결합된 이 책은, 성경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는 독자에게는 성경 전체 흐름을 한 번 더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성경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복잡한 성경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고 여정을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 지도가 돼 줄 것이다. 무엇보다 성경을 가르치고 전해야 하는 이들에게 눈높이에 맞는 지침을 주는 조력자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천천히 읽을 것을 권한다. 여러 권의 책을 편집·출간해 온 경험에 비춰 볼 때, 저자·역자·편집자가 글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다듬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핵심 내용을 밀도 있고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담아냈기 때문에, 대충 아는 내용이라 생각하고 빠르게 읽어 버리면 이 책의 진가를 놓칠 수 있다.

서평을 마무리할 즈음 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내년에 성도들과 성경 통독을 하려 하는데, 좋은 책이 없냐고 물어보신다. 그래서 얼른 이 책을 추천해 드렸다. 책 한 권으로 성경 전체를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떤 책은 성경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은 자극과 도전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이 많은 독자에게 그런 책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강산 / 십자가교회 담임목사, <말씀 앞에 선 당신에게>(헤르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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