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녕, 기독교>(토기장이) 저자 김정주 전도사가 진행한 평신도 글쓰기 모임 '쓰고뱉다' 완성반 참석자가 쓴 글입니다. '한 권의 책 쓰기' 프로젝트에서 저술한 단행본 형식의 미출판 원고 중 일부를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는 매주 가정 예배를 드리는 친구네가 있었다. 자상한 아버지와 따뜻한 어머니, 친구와 친구의 동생은 한 방에 둘러앉아 성경을 읽고 찬양을 부르고 함께 기도했다. 매일 술에 찌든 아버지와 눈물짓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나에게는 부럽고 진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부터 친구의 가정은 내 롤 모델이 됐다. 아버지 전도에 평생을 바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믿음의 사람과 하리라, 가정 예배도 꼭 드리리라 다짐했다.

그때 그 다짐 때문이었을까,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었을까. 나는 신앙이 있는 남편을 만나게 됐고, 우리 부부는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결혼에 골인했다. 자, 이제 가정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남편이 먼저 얘기를 꺼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가 끝내 그 단어를 입에 담지 않기에, 결국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아무 말도 없던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하긴, 신앙인이라면 응당 거부하기는 어려운 제안이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제안의 시기가 신혼이었던 것이 한몫했는지도 모르겠다).

포부도 당당하게 첫 가정 예배를 시작했다. 식탁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사도신경을 외우고, 찬양도 한 곡 거창하게 불렀다. 큐티 책을 펴서 당일 본문 내용을 읽고, 옆에 붙은 해석을 읽어 가며 질문과 답변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가정 예배 초보자였던 우리가 드린 예배는,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기보다는 그저 본문과 질문을 통해 깨달은 내용을 서로 나누는, 어쩌면 '수다'에 더 가까운 형태였다. 그럼에도 남편과 눈을 맞춰 가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냥 좋기만 했다. 어려서부터 꿈꿔 왔던 '믿음의 가정'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기분이었다.

말씀을 통해 주시는 은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결심이 실행된 것이, 그러니까 우리가 '말만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진짜 믿음의 가정'이라는 것을 증명해 나가는 기분이 드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시작은 조금 어설펐지만, 그것조차도 우리 가정에 진정한 예배가 정착돼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가정 예배가 유지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낸 어느 날, 어김없이 가정 예배를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TV 프로그램이 재미있었고, 또 이상하게 그날따라 몸에 기운이 없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던 남편도 웬일인지 입을 닫고 밥만 먹었다. 누구라도 말을 먼저 꺼내는 순간 가정 예배를 드려야 할 것만 같은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이미 예배는 뒷전이고 이 든든한 포만감을 안고 그대로 침대로 직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괜히 책상에 앉아 끼적거리던 남편의 뒤통수를 향해 "우리 가정 예배 드리자" 했다면, 혹은 침대로 슬그머니 도망치는 내 뒤통수를 향해 남편이 "예배드려야 하지 않을까" 했다면 됐을 일이다. 그러나 약속이라도 한 듯 둘 중 누구도 그 얘기를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가정 예배 눈치 작전'이 반복되기를 또 몇 주, 결국 가정 예배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마저도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가정 예배를 지속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드려 왔던 교회에서의 예배 시간이 숭고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우린 왜 가정 예배를 유지하지 못한 걸까? 분명히 싫지 않았는데 말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을 때, 우리 부부는 우리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됐다. 가정 예배는 우리에게 채움의 시간이었을까, 소모의 시간이었을까, '주 1회', '가정 예배'라는 시간과 형식에 집중하지 말고, 채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는지 먼저 돌아봤다면 어땠을까 하고 말이다. 아무리 신앙인이라고 해도, 언제나 예배를 향한 갈급함과 열정으로 충만한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쉼'이 필요한 가정 내에서 '꼭 지켜야 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유지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가정 예배'는 남편과 내게 '눈치 작전'이 필요한 숙제 같은 것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막상 가정을 꾸리고 수년 간 살아 보니, 생각보다 삶은 녹록지가 않았다. 크고 작은 일로 넘어지고 낙담하는 일도 많았다. 예배는커녕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미소 한번 짓기가 쉽지 않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일은 사치같이 느껴졌다. 지치고 힘든 기색을 가족에게 제일 먼저 내비치고 감정적으로 대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가정은 내가 이해하기보단 나를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공간이 돼 버리기도 했다.

언젠가 새벽부터 출근하는 축 처진 남편의 뒷모습을 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남편이 가정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것, 아이들이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는 것, 나 또한 그렇게 쉼과 사랑을 누리는 것, 부대끼더라도 서로를 보듬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상'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 내는 것이야말로 '진짜 가정 예배'를 드리는 '진짜 믿음의 가정'이 아닐까. 그렇게 마음을 다해 가정을 사랑하다 보면, 언젠가는 형식을 갖춘 예배도 진정성 있게 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출근하는 남편 어깨 한번 토닥여 주고, 어린이집 등원하는 아이의 머리를 정성스레 묶어 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하나님께 가정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사라 / 교회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교회 언니. 온전한 은혜 가운데 있지만, 때론 어렵고 힘든 신앙생활을 함께 나누고 싶어 글을 썼다. 삶의 여정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지만, 함께 나눔으로 한 걸음 더 내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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