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독 61호 보기

산을 오르는 이들에게

산에 오르다 중간에 포기하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나름 운동선수였기에 '운동부심'이 있는 편입니다. 등산을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죠. 그런데 그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남 지역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요. 가는 길에 소백산이 있더군요. 전부터 꼭 한번 가고 싶었던 부석사도 근처에 있었고요.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부석사를 찍고 소백산을 올라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부석사는 자연과 가장 조화롭게 세워진 건축물이라고 하던데, 역시 그런 칭송을 받을 만했습니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고민해야 하는 현대인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이었습니다.

나름 멋지게 묵상을 하고 소백산으로 향했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계산해 안내 책자에 난이도 중中으로 표기된 코스를 찾았습니다. 희방사에서 출발해 비로봉에 도착하는 코스였습니다. 한 가지 꺼림칙한 것은 희방사 - 연화봉에 이르는 구간 이름이 '깔딱 고개'였다는 겁니다. 속으로 '뭐냐…'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난이도 중급을 내가 못 오를 리 없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소백산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중간에 나타난 계곡과 희방폭포는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선물 같았습니다. 등산로 옆에 핀 작은 꽃들에게서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오르는 산이라 체력적으로 조금 부치긴 했지만, 소백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졌습니다.

희방사를 지나 드디어 깔딱 고개에 이르렀습니다. 가을 낙엽으로 수북이 덮힌 고개는 아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름이 왜 '깔딱'인지 온몸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그러나 돌아설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다리는 이미 후들거렸지만 꾸역꾸역 올라갔습니다. 중간중간 작은 꽃들이 응원해 줬지만 이미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습니다. '포기'

소설 <태백산맥>이 생각났습니다. 소백산에도 유명한 빨치산 유격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소설에서는 이런 산길을 막 뛰어다녔다고 하잖아요. 진짜 죽어라 고생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들뿐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가 이 고개를 넘으며 숨을 깔딱거렸을지 생각해 보니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이 후들거리는 제 다리를 보며 참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알량한 자존심 지키려다가 약속 시간도 못 지키고 잘못하면 내려가지도 못하겠다는 판단(혹은 핑계)을 내렸습니다. 등산로는 돌아서지 않는다는 원칙을 처음으로 깬 순간이었습니다. 패배자의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왠지 익숙한 기분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뉴스앤조이>에 와서 자주 느끼는 감정 같기도 했습니다. 산을 오르다 목표에 다다르지 못하고 다시 내려오는….

착잡한 마음으로 다시 희방사를 지나 폭포가 보이는 다리에 섰습니다. 그때 제 마음이 띵~ 하고 강하게 울렸습니다. 산을 내려오는 길이 정말 아름다웠거든요. 중요한 건 정상을 찍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이 산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고, 그 산길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도 그런 것 같습니다. 비록 깔딱 고개를 오르지 못하고 멈춰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이 산에 있고 이 산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산을 오르는 모든 동지들이 다 정상에 오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누군가는 처절히 실패할 것이고 아마 저 또한 그 길을 가겠지요. 그러나 내가 이 산에 있었고 내가 걸은 실패의 길을 교훈 삼아 누군가 정상에 올라 정의와 공평의 깃발을 꽂을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가끔은 이 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멈춰서 돌아볼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산을 오르는 모든 동지들께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뉴스앤조이 도현

친절한 뉴스B

 교회 밖에서 더 치열하게 살아요

"이분은 목사 아들인데 가나안 교인으로 지내면서 '가나안 청년'을 연구해 논문을 썼어요. 기자님이 들을 이야기 많을 것 같은데요?"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이사의 '만나'와 같은 제안을 받고 제 동공이 확장됐어요. (취재하다가 이렇게 소스를 얻을 때면 정말 행복하지 말입니다!)

주인공은 연세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서도원 씨입니다. 그는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랐는데요. 주변 기독교인 친구들이 어느 날부터 하나둘씩 교회를 떠났다고 해요. 그 이유가 궁금했고, 제대로 연구도 하고 싶어서 20·30대 가나안 청년 12명을 심층 인터뷰한 다음 올해 초 논문을 펴냈어요. 

연구에 따르면, 가나안 청년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였어요. 

- '사회적 관계', '문화 자본'를 쌓았고, 교회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과 '공동체'를 원했고요.
-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정치적 보수주의를 거부했어요.

논문에 담긴 청년들의 인터뷰를 찬찬히 읽어 보니, 왜 젊은 세대가 교회를 떠나가는지 이해가 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이 가더라고요. 서도원 씨는 교회를 떠나간 가나안 청년들을 단순히 '교회 부적응자'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들도 오히려 삶 속에서 누구보다 기독교 교리와 가르침(이웃 사랑)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어요. 교회를 떠나면 자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더 윤리적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이 연구 내용을 보면서 새로움과 찌릿찌릿한 울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혹시 독자님도 논문 전체를 보기 원하시면 제 메일로 연락 주세요~!

편집국 용필(feel2@newsnjoy.or.kr)


사격 중지! 차별금지법 반대로 대동단결!

지나가는 김 아무개 권사님을 붙잡고 물어봅시다. "권사님, 한교총이 뭐하는 덴지 아세요? 한기총은요? 한교연과의 차이점은 뭘까요? 코로나19처럼 정부와 교계가 협의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어느 채널과 소통할까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한국교회 교인은 얼마나 될까요?

 

'정통 원조 해장국집'처럼 비슷비슷한 이름을 지닌 이 교계 연합 기구들이 지난해부터 통합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교총 공동대표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주도로 협상 테이블을 차리고, 몇 차례 만나 가능성을 타진한 거죠. 그러나 1년간 협상은 지지부진했습니다.

통합이 안 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의명분이 부족해서 그래요. 

 · 한교총을 중심으로 연합 기관 체제가 구축됐고요(예장합동·예장통합·예장백석·예장고신·예장합신·감리회·기하성·기성·기침 등).

 · 한기총과 한교연은 군소 교단과 이단들의 연합체로 몰락했습니다. 

 · 한교총 소속 보수 교단들은 이단과 연합할 수 없다며 통합을 반대하고 있죠.

 · 반면 한기총·한교연은 '지분'을 확실히 보장받고 싶은 모양새입니다. 

 · 여기에 최근 한교연이 '윤석열 후보 지지'를 공개 발표해서 정치 중립을 표방하는 한교총에 물을 먹인 바 있죠.

이런 상황이지만 최근 세 기관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는데요. 바로 '차별금지법 반대'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 차별금지법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하자, 세 교단이 공동 성명서를 내고 논의를 중단하라고 촉구한 거죠. 별 의미도 명분도 없는 기관 통합을 눟고 주판알을 튕기던 세 기관이 차별금지법 문제에는 한목소리를 내는 걸 보니 꼭 '통합'한 것처럼 보이긴 하네요.

편집국 승현


'성소수자 부모'는 불행하다고요?

한 취재 현장에서 성소수자 부모님들을 향해 "누구보다 힘든 분"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성소수자 자녀를 향한 사회의 차별과 배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부모님들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일 텐데요. 한편으로는 '부모님들이 무조건 힘들고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존재의 삶에 시시각각 깃들 기쁨과 괴로움, 슬픔과 즐거움을 '힘들다'는 말에 충분히 다 담을 수 있을까요? 성소수자 부모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 이 또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적인 시선과 닮아 있을지 모릅니다.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에 담긴 '나비'와 '비비안'의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성소수자'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녀의 커밍아웃을 듣고 가장 강력한 지지자가 돼 주기로 결심합니다. 

아이와 함께 당당히 퀴어 퍼레이드를 걷고, 혐오 세력에 맞서며 성소수자 부모로서의 정체성을 다져 갑니다. 수많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스펙트럼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변규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너에게 가는 길'은 나비와 비비안,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한솔과 예준의 일상을 4년에 걸쳐 담은 영화입니다. 저는 극장에서 먼저 보고 왔는데요. 독자님에게도 관람을 강력히 권해 드려요. 기사에는 모두 담지 못했지만, 보물같이 반짝이는 장면들이 많거든요. 11월 17일 정식 개봉합니다.

편집국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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