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복음주의 시리즈' 3부작을 쓴 '두크나이트'가 <뉴스앤조이>에 '종교와 사회'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시민종교 △종교를 이용한 경제적·정치적 이익 추구 비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오해 등을 주제로 총 4회 글을 게재합니다. 연재를 통해 종교와 사회를 사회과학적 시선으로 보다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 편집자 주

1997년 국제사회학회(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에서는 20세기 사회학 유산을 평가하기 위해 회원들을 대상으로 '세기의 책(Books of the Century)'을 선정했다. 학회 회원 2800여 명 중 455명이 참가한 이 투표에서 1위는 막스 베버(Max Weber)의 <경제와 사회>가 차지했고, 4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차지했다.1) 사회학계에서 베버와 그의 작업이 차지하는 명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막스 베버는 사회학사는 물론, 인류 지성사 전체에 매우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별히 그의 여러 저작 중에서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잘 알려진 <신교 논문>은 '베버'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트레이드 마크다. <신교 논문>은 고전인 동시에 출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여러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읽히며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온 문제작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 개신교가 막스 베버의 <신교 논문>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오해로 점철돼 있는지 짚어 보고, 그를 통해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2)

1. 개신교가 자본주의를 만들어 냈다?

"첫째는 청교도들에 의해서 근대사회의 경제 체계를 뒷받침하는 '자본주의(capitalism)'가 잉태되고 발전되었다는 평가는 매우 주목을 받아 왔다".3)

막스 베버의 <신교 논문>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베버가 "개신교가 자본주의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위 문장의 '개신교' 자리에는 '칼뱅주의', '청교도' 등이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베버는 그의 저작에서 단 한 번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자본주의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베버가 주장하는 것은 개신교 윤리가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Geist)'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

우선 베버는 자본주의를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했다. 종종 베버와 대척점에 서게 되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에게 자본주의는 역사적 특수성을 가진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에게 자본주의는 역사 발전의 단계 속 어느 시기에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베버에게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탄생과 소멸을 거친 수많은 자본주의'들'이 존재한다. 고로 베버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세계를 지배하는 총체적이고 단일한 자본주의의 기원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연구 대상으로 설정한 영국·네덜란드 등 한정된 개신교 지역 내에서 근대 산업자본주의 정신이 어떻게 이와 조응해 만들어졌는지 분석한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주의의 한 요소에 불과하고, 칼뱅주의 역시 자본주의 정신의 한 요소일 뿐 자본주의 정신과 칼뱅주의가 일대일로 대응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를 정신과 체계(System)로 구분했다. 즉 '체계로서의 자본주의'와 '정신으로서의 자본주의'를 구별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시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담지하는 행위자의 정신은 상이하다. 이를테면, 한국에 작동하는 자본주의는 서구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는 별개로 한국적인 자본주의 정신을 지닌다.

베버가 <신교 논문>에서 논한 것은 수많은 자본주의'들' 중 시민 계층이 자유노동의 합리적 조직에 기반을 두고 그 체계와 정신을 구현한 '기업 자본주의'에 국한한다. 연구 범위도 그가 한정한 지역에 그친다.4) 베버는 전통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기까지 한 칼뱅주의에서 우연히 자본주의 '정신'이 탄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일어낸다. 이런 논지에 의하면 칼뱅은 자본주의의 원조일 수 없다.

2. 베버는 마르크스와 대결했다?

"베버는 융커 세력이 자본주의 발전에 족쇄를 채우고 독일의 미래를 가로막는다고 강력하게 비판했고, 자본주의를 지배와 착취의 체제로 규정하고 이를 해체할 것을 주장하는 사회주의 세력에 대해서는 그 이론적 지주인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무력화하는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5)

"막스 베버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금욕으로 요약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자본주의를 만들었다고 했다. 반면에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만들어지면서 그에 조응하는 정신적인 가치들이 생겨났다고 본다."6)

'마르크스 vs. 베버'라는 도식은 유명하다. 마르크스에게는 사회주의·유물론이, 베버에게는 자본주의·관념론이 곧바로 연결된다. 물론 마르크스와 베버를 비교하는 일은 일면 적절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와 베버가 감당하고 있는 정신의 깊이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영향력에 관한 것일 뿐이다. 이를 넘어서 마르크스와 베버가 서로를 의식하며 대결했거나, 베버가 마르크스를 극복하기 위해 <신교 논문>을 썼다는 식으로 얄팍하게 말해서는 곤란하다. 일단 마르크스와 베버는 약 50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났으며, 마르크스의 <자본>과 베버의 <신교 논문>은 연구 대상과 문제의식이 아예 다르다. 이것은 두 책을 읽어 본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사실이다.

베버는 마르크스의 유산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오늘날 지식인이 가진 정직함의 척도는 그가 니체와 마르크스에게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와 니체에 의해 각인되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더불어 본인이 생각 이상으로 유물론적7)이라고도 밝혔다.8) 베버는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상품·가치·화폐·자본 등 개념으로 근대의 경제적 운동 법칙, 자본주의의 작동,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를 설명한 것은 과학적인 업적이라고 평가했다.9) 마르크스와 베버는 분명 다르고, 다른 문제를 다뤘지만, 베버가 마르크스의 업적을 인정했고 자본주의 작동에 기여하는 물적 토대를 중요하게 인식한 것은 분명하다.10)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베버의 <신교 논문>은 마르크스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지내며 교류했던 당시 지적 상황에서 나온 산물이다. 단적으로 베버는 <종교사회학 논총> 서문 각주에서 경제학자 브렌타노(Lujo Brentano), 사회학자 짐멜(Georg Simmel)과 좀바르트(Werner Sombart) 등을 언급하고 있으며, <신교 논문>이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 쓴 서문에서는 이 논문에 대한 주요 비판자로 역사학자 라흐팔(Felix Rachfahl), 좀바르트, 브렌타노를, 관련된 학자로는 신학자 트뢸치(Ernst Troeltsch)를 언급하고 있다.11) <신교 논문>을 제대로 읽는다면 베버가 마르크스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썼다는 오해는 피할 수 있다. 당시 독일에서는 이미 1892년 역사학자 고트하인(Eberhard Gothein)이 칼뱅주의와 자본주의의 친화성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관련된 여러 담론이 형성된다. 베버는 이런 지적 배경 속에 존재했다.12) 다양한 논의와 논쟁 속에서도 좀바르트는 베버의 절친한 동료이자, 진정한 논쟁자였는데 베버가 윤리, 금욕적 생활양식으로 자본주의 정신을 설명했다면 좀바르트는 영리욕과 사치를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설명했다.13)

3. 베버는 자본주의의 옹호자였다?

"요약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제시된 막스 베버적 해석처럼 기독교 신앙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심층 연대(deep solidarity)되어 있다. 따라서 기독교 정신을 해체하지 않고는 무신론적 사회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이 심각하게 인식하게 되었다."14)

"베버는 자본주의의 옹호자였다"라는 오해에는 미세하게 다른 두 층위가 겹쳐 있다. 우선 베버가 자본주의는 개신교에서 나왔으므로 자본주의 자체가 성스럽다고 주장했다는 오해인데, 이것은 사실 베버와 직접 연관이 없을 뿐더러 앞서 설명한 내용으로 반박할 수 있다. 베버에게는 전 세계에 작동하는 단일한 자본주의가 존재하지도 않으며,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자본주의가 아닌 그것도 한정된 지역에서의 자본주의 '정신'을 만드는 한 요소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위와 같은 오해는 '오독' 때문에 발생한다.

다음은 베버가 의도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했다는 오해다. 앞선 한신대 강원돈 교수의 주장이 전형적이다. 그렇다면 베버는 자본주의를 옹호한 사회학자였을까? 베버는 <신교 논문>에서 "우리 근대인의 삶의 운명을 가장 강력하게 결정하는 힘인 자본주의"라고 서술하고, 글의 후반부에서는 자본주의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는 '쇠 우리'가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베버는 근대화의 진전을 통해 인간이 관료제화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개인이 자신의 창조력을 상실하고, 주어진 합리적 업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할 뿐인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음울한 변화를 읽어 내기도 한다. 이는 자본주의에서의 '소외'를 지적한 마르크스의 견해와도 일면 통하는 부분이다.

이렇듯 베버는 자본주의를 옹호하기보다는 서구 자본주의의 도래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삶의 변화를 읽어 내는 데 주안점을 둔다. 마르크스에게 사회주의의 도래는 필연적 역사철학이었으나, 경험과학으로서 사회학을 했던 베버는 그런 철학적 세계관을 수용하지 않는다. 서구에 도래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분석하고 설명하며 특정 체제의 우월성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학자의 사실판단이 아닌 가치판단이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지음 / 김덕영 옮김 / 길 펴냄 / 734쪽 / 4만 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지음 / 김덕영 옮김 / 길 펴냄 / 734쪽 / 4만 원
4. 베버와 오늘날의 한국 개신교

지금까지 베버의 <신교 논문>에 대한 한국 개신교의 대표적 오해를 다뤘다. 한국 개신교가 베버의 글을 다루는 대표적인 특징을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텍스트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 텍스트의 정치적 사용이다.15) 이 둘을 구분해서 말했지만, 이 둘은 실상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난제처럼,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해서 잘못 사용하는 것인지, 애초에 정치적으로 베버의 논지를 사용하기 위해 텍스트를 이해하지 않는 것인지는 판단하기는 어렵다.

특기할 것은 이런 문제가 개신교를 정치 이념으로 분할했을 때, 좌우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이념의 반목과 대립을 초월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개신교 우파에서는 "베버는 개신교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고 했어. 그러니까 자본주의는 신성해"라고 말하고, 개신교 좌파에서는 "베버는 마르크스에 대적한 보수주의자야. 그리고 신학도 틀렸어"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서 지적인 성실성과 투명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자본주의를 옹호하거나 비판할 때 꼭 베버를 인용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베버뿐만이 아니라 개신교와 신학계 전반에서 통용되는 무의미한 사회과학 사용을 보며 느낀 의문이기도 하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베버의 테제가 무오하다는 게 아니다. 베버의 논문은 1904·1905년에 출간됐다. 벌써 100년이 지난 논문이고, 당시에도 이견이 있었으며, 그동안 진행된 학술적 발전을 통해 본다면 베버의 테제에는 여러 문제와 오류가 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도 베버의 접근법과 방법론은 후대 사회학에 큰 영향을 미쳤고, 사회학은 베버의 유산 아래 발전해 왔다. 후대 사회학자들에게 '유일한 사회학자'이자, '사회학의 이정표'라는 평가를 들었던 베버는 생전에 자신의 작업 역시 학문의 진보와 함께 탈주술화해 낡은 것이 될 것이라고 정직하게 이야기했다. 한국 개신교가 베버의 논의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자본주의가 어디서 탄생했냐'는 오해에서 비롯되고 의미도 없는 질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 준 지적인 성실성과 투명성이다. 이젠 베버를 그만 괴롭히길 바란다.

두크나이트 / 대학에서 사회학·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현재 사회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스타그램 계정 '북큐레이터 아틀라스'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으며, 블로그 '사회과학 소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1) http://www.isa-sociology.org/en/about-isa/history-of-isa/books-of-the-xx-century
2) 이 글을 세계적인 베버 전문가 김덕영 선생님의 작업에 크게 빚지고 있다. 김덕영은 독일 고전사회학의 전통이 있는 괴팅엔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베버와 짐멜에 관한 연구로 독일에서 하빌리타치온(Habilitation, 교수 자격 논문)을 받았으며, 그의 연구는 독일 내에서도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이 글은 김덕영이 축적한 막스 베버에 관한 작업을 통해 쓰일 수 있었다.
3) 김재성, '청교도의 찬란한 유산: 사회의 갱신, 심령의 부흥, 선교의 확장', <크리스천투데이>, 2020.08.23.
4) 김덕영, '종교·경제·인간·근대 –통합적 모더니티 담론을 위하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해제, 도서출판 길.
5) 강원돈, '교회는 자본주의를 옹호할 수 없다', <에큐메니안>, 2019.10.28.
6) 김규항, '[164호 신학과신앙Ⅱ] 자본주의 모르면, 신앙도 없다', <뉴스앤조이>, 2005.07.25.
7) 물론 베버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가 일방적인 유물론자였던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토대와 상부구조에 관한 논의에서 엥겔스는 "상부구조가 토대의 일방적 반영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8) 김덕영, <막스 베버>, 도서출판 길.
9) 김덕영, '종교·경제·인간·근대 – 통합적 모더니티 담론을 위하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해제, 도서출판 길.
10) 마르크스와 베버에 관계에 관해서는 한국의 또 다른 베버 전문가인 전성우의 <막스 베버 사회학>을 참고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마르크스와 베버의 유치한 대립 구도는 기각된다.
11)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김덕영 역, 도서출판 길.
12) 당시의 지적인 상황에 관해서는 김덕영, '종교·경제·인간·근대 – 통합적 모더니티 담론을 위하여',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해제를 참고.
13) 베르너 좀바르트, <사치와 자본주의>,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14) 최한우, '일부 지식인과 언론들이 기독교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이유', <크리스천투데이>, 2020.04.09.
15) 이 글에서 따로 다루지 않았지만, 베버의 <신교 논문>을 칼뱅에 관한 훈고학으로 비판하는 것 역시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이다. 베버가 <종교사회학 논총> 서문에서 언급하듯, 그가 문제 삼았던 것은 교리가 아닌 당시 개신교인들이 실제 지니고 있었던 신앙 관념이다. 이를 제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칼뱅에 관한 훈고학을 가져올 것이 아니라 베버가 대상으로 한 개신교인이 실제 공유하고 있던 신앙 관념이 베버의 주장과 달랐다는 것을 논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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