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도현 대표] 얼마 전 인디애나퍼듀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김재수 교수가 <청소년 매일성경>(성서유니온)에 연재한 글이 논란이 됐습니다. 성서 해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성서 해석은 토론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지식으로 상대를 매도하는 것이겠지요.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거슬린 것은 김재수 교수가 '좌파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돼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경제를 공부한 사람이 보면 완전히 코미디 같은 주장이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이런 황당한 주장이 아직까지도 통하고 있는 현실이 정말 씁쓸합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 보수정당마저도 탈이데올로기 행보를 보이는 마당에 교회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이데올로기 집단을 자처하고 있으니 슬프고 답답합니다.

이번 기회에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경제학'이 어떻게 구분이 되는지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주류 경제학은 대체로 19세기 후반부터 정립된 시장주의 경제사상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보면 얼추 정리가 됩니다. '주류'라는 의미는 과반이 훌쩍 넘는 경제학자들이 그러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기본적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으로 형성된 가격이 최적의 균형점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합니다. 다만 전제가 있습니다. 이 같은 이론이 완전경쟁 시장에서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완전경쟁 시장의 특성을 밝혀내는 것이 20세기 경제학의 주요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문제는 현실 세계의 시장은 자유경쟁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주류 경제학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학자 수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극단적인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정부가 어떤 상황에서도 시장을 건들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가령 밀턴 프리드먼은 대부분의 정부 부처도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장에 맡겨 두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면서요. 사실 요즘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완전경쟁 시장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어떤 문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 문제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여러 갈래로 나뉩니다. 극단적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학자부터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는 학자까지 다양하지요.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이 모두 완전경쟁 시장에서 형성된 균형점의 효율성과 적합성을 인정하는 '주류 경제학자'라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 내가 언제부터 주류 경제학자였지...

반면 마르크스는 완전경쟁 시장하에서 가격이 최적 균형을 이룬다는 주류 경제학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짧은 글에서 마르크스의 주장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마르크스는 자유 시장경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대대적인 시장 실패가 주기적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완전경쟁 시장을 가정하더라도 거기서 형성된 가격이 최적 균형점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주류 경제학과 시장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지요. 실제로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1930년 대공황이나 2008년 금융 위기 같은 대대적인 시장 실패가 반복됐습니다. 물론 시장 실패를 설명하는 방식은 마르크스주의 말고도 다양합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르는 방대한 주장을 펼쳤고 영향력도 대단했습니다. 단순히 시장을 보는 시각으로만 주류 경제학과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저도 주류 경제학을 공부했기에 제한적인 시각으로 마르크스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최소한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류 경제학이 무엇이고, 마르크스경제학은 어떤 주장을 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마음에 안 들면 좌파 마르크시즘이라는 딱지를 갖다 붙이니 대화를 나누기 어렵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무슨 절대악인 것도 아닙니다. 공산당은 중국이나 북한에만 있는 줄 아는 분들이 많으시죠(사실 북한은 노동당입니다). 일본에도 공산당이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이 다수 포진된 공식 정당입니다. 미국에도 공산당이 있습니다. 일본 공산당 정도의 영향력은 아니지만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겪은 우리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어른 세대의 아픔과 트라우마는 그대로 인정하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아픔과 트라우마를 이용해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이 진짜 문제입니다.

다시 김재수 교수 이야기로 돌아와서, 김 교수님이 쓴 논문들 제목을 보니 '계약론'과 '정보 비대칭'에 관한 연구를 하셨더군요. 주류 경제학의 주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넓게 보면 계약론, 정보 비대칭 모두 완전경쟁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입니다. 그러니 김재수 교수도 주류 경제학자라고 봐야겠지요. 아무에게나 '마르크스주의자' 딱지를 붙이면 비웃음을 삽니다. 이처럼 당연한 일에 우리 기독교인들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어쭙잖은 이데올로기로 상대방을 짓밟는 일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습니다. 생각은 다를 수 있고 논쟁도 언제든지 벌일 수 있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상식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철 지난 프레임으로 고압적인 자세를 유지할수록 교회는 위기에 빠집니다. 

이번 달 후원회원 모임(메이플라워)에서는 김재수 교수 사건을 돌아봅니다. 이 사건을 취재한 <뉴스앤조이> 최승현 기자가 사건을 간단히 브리핑하고 저는 경제 관련 질의응답을 진행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다양한 경제사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후원회원님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특별히 이번 모임에는 뉴스레터 '처치독' 구독자님들도 초대합니다. 후원회원이 아니어도 참여를 원하시는 독자님이 계시다면 처치독 구독 후 참여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최소한의 상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뉴스앤조이>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 06. 18.
강도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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