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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김하나 목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이후 김 목사가 진지한 결단을 내리고 희망에 찬 메시지를 전해 주길 한국교회와 사회가 관심 갖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손왕재 서울동남노회장의 반박문이 등장해 모두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심히 유감입니다. 이 일이 김하나 목사나 명성교회 측 요청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법치를 수호해야 할 치리회장인 노회장이, 노회원이 제시한 해결책을 살펴보고 법치에 근거해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해 보자 격려하진 못할망정, 저급한 말로 언어폭력을 가하고 어느 한편에 서서 불법마저 정당하다고 강변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해 보입니다.

손 노회장께서 이왕 반박문을 쓰셨으니 이제 제 변명을 위해서라도 노회장 글의 사실관계를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합니다.

1. 총회 결의나 행정 집행은 법치를 따를 때 '정당성'을 지닙니다.

제가 공개서한에서 김하나 목사의 법적 신분이 '무임목사'라고 했던 것은 총회 재판국 재심 무효 판결에 근거합니다. 일단 소송이 제기되면 교단의 모든 문제는 종국재판의 결과를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권징 제119조 1항). 재심 판결은 우리 교단의 종국 확정판결입니다(권징 제128조 4항). 총회 재판국 재심에서 국원 전원 합의 판결로 김하나 목사는 무임목사가 된 것이지요.

이후 종국 확정판결에 근거해 총회 결의가 이루어져야 했지만 총회·노회는 수습을 명분으로 교단의 법질서(결의 방법 및 집행 절차 등)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수습을 위한 총회 결의라 할지라도 헌법과 제반 규정에 근거해 결의해야 합니다. 이를 무시할 경우 생기는 법적 정당성 결여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결의의 정당성 못지않게 '절차의 합법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목사의 임직이나 파송에 관한 사항은 노회의 고유한 직무이기에 노회에서 그 절차를 따라 처리해야 합니다. 개교회가 위임(담임)목사 청빙 청원서를 노회에 제출하면(정치 제28조 2항), 노회가 폐회 중일 때는 노회장이 서기를 통해 정치부로 관련 청빙 서류를 넘겨주고, '노회 정치부 결의'를 거쳐 노회 임원회가 청빙을 승인해야 합니다(정치 제29조 3항). 이것이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그런데 이번 반박문을 통해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노회 임원회가 전결 처리하고 끝냈더군요. 손 노회장은 반박문에서 "2020년 12월 22일 서울동남노회 임원회는 (중략) 명성교회가 요청한 김하나 목사의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 결의 보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임원회가 누구로부터 청빙 결의 보고를 받았다는 것입니까. 노회 임원회는 집행부이지 관련 서류의 담당 결의 부서가 아닙니다. 청빙 결의 보고 부서이자 필자가 현재 부장으로 있는 노회 정치부에서는 이러한 청빙 서류를 넘겨받은 적도 없고, 논의하거나 결의한 적도 없습니다. 당시 노회는 폐회 중이었기에 노회장은 최소한 청빙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청빙 서류를 노회 정치부에 넘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차 문제를 강조해 일을 복잡하게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일의 졸속 처리로 당사자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역설적이지만 교단의 잘못된 결의와 수습안, 노회의 잘못된 대처로 앞으로 가장 피해 입을 사람은 어쩌면 김하나 목사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피해를 막아 보려고 그동안 법치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법치를 외면한 임원회의 행정 집행은 당장은 당사자를 돕는 것처럼 보여도 위법성을 제기하는 상황에서는 최악의 패착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요컨대 이러한 제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손 노회장이 반박문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드는 총회 수습안은 물론이요, 노회의 청빙 승인 과정 또한 그 위법성과 절차적 하자로 법적 정당성을 얻기 어려워 보입니다. 일이 이처럼 꼬이게 된 것은 헌법을 위반해 가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총회 수습안 결의 때문입니다. 김하나 목사를 위해서라도 '합법적인' 해결책이 더 절실한 상황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금처럼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고 모든 게 정당하다는 식으로 강변한다면, 아무런 실속도 없을 뿐더러 항간에 떠도는 "서울동남노회는 특정 교회를 위한 노회다"라는 비판을 거둘 길이 없어 보입니다. 참으로 안쓰럽고 답답합니다.

2. 누가 교단의 법질서를 허물고 있고, 누가 부도덕한 자입니까.

손 노회장은 저를 두고 총회 권위를 부정하고 법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라고 질타했지만, 저는 총회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치가 무너지는 교단 현실을 보면서 탄식하는 것입니다. 총회는 각 치리회 중 법치의 최후 보루여야 합니다. 그래야 노회와 교회가 바로 섭니다. 그러나 법치 사회에서 법을 잠재해 버리면 무엇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요. '법의 잠재는 곧 무법 세상'을 의미한다는 어느 법학자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무법 세상에서는 '힘이 곧 정의'가 되고 맙니다. 총회의 권위가 힘 앞에서 무너진다면 약자 앞에서 권위를 내세운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노회 정상화 합의안'은 말 그대로, 2년간 파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노회 내 다른 교회들을 위한 합의안입니다. 이를 두고 명성교회 불법 세습을 인정한 합의안인양 호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울동남노회정상화를위한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처음부터 합법적인 노회장의 직임과 불법적인 명성교회 세습 청빙 건은 거래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합의안의 주요 내용은 김수원 목사가 노회장으로 재임하는 기간만이라도 명성교회 건은 피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손 노회장의 평가대로라면 저는 '패륜아'로 둔갑되더군요. 저에 대한 노회장의 평가 중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히 동의할 수 없지만, 교단 법질서의 회복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할 소리라면, 이게 주님 안에서 감내해야 할 제 몫인 듯합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주님의 평가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하셨습니다(마 7:16).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 맺을 수 없다고 하셨지요(마 7:18).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갈 6:7). 오늘 우리가 심는 것도 언젠가 주님 앞에서 거둘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뭐라고 하실지가 제 관심사입니다.

저와 함께 수고한 비대위 위원들에게는 심비心碑에 새겨 놓은 행동 지침이 있었습니다. 노회 정상화를 이루는 날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불의에 항거하되, 화평(샬롬)의 복음과 교단 헌법 및 제반 규정의 범주 안에서 행동하며, 끝까지 인내하고 철저히 비폭력으로 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손 노회장이 불법 행동이라며 지적한 일들도 우리로서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신중하게 행한 일이기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숱한 고소‧고발을 '무죄' 내지는 '무혐의'로 이겨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를 입증합니다. 절대적인 힘에 부닥쳐 2년 가까이 제지를 당했지만 말입니다. 비록 연약함과 부족함이 많았지만 우리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가 궁금하다면, 언제든 곁에서 지켜봐 온 서울동남노회 일반 노회원들이 그 증인이 돼 줄 것입니다.

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 직전 노회장이자 현 정치부장인 김수원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장통합 서울동남노회 직전 노회장이자 현 정치부장인 김수원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손 노회장에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명성교회를 감싸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들었던 바로는 '노회 소속 교회이니 당연히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답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옳습니다. 보호해야죠. 하지만 같은 노회 소속인데도 비대위에서 활동한 교회·목회자들은 보호 대상에서 예외였던 점과, 무조건 감싸고 도는 일을 보호라고 생각하는 점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명성교회 불법 세습 건에 반대 의견을 내는 이유는 딱 세 가지입니다. 그 일이 ①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고 ②공교회의 화평을 깨뜨리고 있으며 ③그 속에서 예수 십자가의 영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명성교회 세습 건에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보인다면 제가 먼저 환영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불법성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고전 10:31), 형제가 실족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당장 멈추겠노라고 했습니다(고전 8:13). 이것이 진정한 복음의 영성 아닐까요. 명성교회 세습의 불법성으로 다음 세대와 수많은 사람이 실족해 넘어지는 상황인데도 이를 밀어붙이는 모습이 과연 복음 영성에서 비롯된 일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복음 아닌 것을 막아서는 일이야말로 마땅하고도 진정으로 교회를 보호하는 길 아닙니까. 노회장이라면 힘 있는 교회의 주문대로 따라갈 게 아니라, 치리회장의 권위를 갖고 교회를 바르게 지도·감독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다시 한번 김하나 목사에게 호소합니다.

신앙인은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만이 갖는 '신앙 양심'의 자유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김하나 목사에게 호소합니다. 손 노회장의 반박문이 김 목사의 응답이라고 보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번 보낸 공개서한에서 제안한 해결책은 여전히 효력이 있습니다. 김하나 목사가 어떤 선택과 결단을 내리는지에 따라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가 그동안 선포해 온 복음의 내용과 수준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역사 앞에 서서 누구로부터도 속박받지 않는 '신앙 양심'의 자유를 갖고 응답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기다리겠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제가 김하나 목사를 도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 같습니다.

2021년 2월 19일
김수원 목사

김수원 /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서울동남노회 직전 노회장, 현 정치부장. 태봉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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